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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 스가랴제 3 강(5,6장)/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돋아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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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4,183회 작성일 04-01-11 09:23

본문

2004년 스가랴서 제 3 강                                                                194
말씀/스가랴 5:1-6:15
요절/스가랴 6:12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돋아나서
“고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보라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오늘 말씀은 스가랴 선지자가 본 여섯, 일곱, 여덟 번째 환상과 은금으로 면류관을 만들어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씌워주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 백성에게 있는 죄를 심판하고(5:1-4), 제거하시는 하나님(5:5-11), 제사장의 직무와 왕의 직무를 통합하여 영적 지도자를 세우시고(6:1-15), 그 일을 감당할 그리스도의 탄생을 약속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게 됩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서 그 백성을 정결케 하시고, 새 순이 돋아나게 하셔서 성전을 건축하고 그 백성에게 평화를 선물해 주시는 은혜와 소망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이스라엘을 정결케 하시는 하나님(5:1-6:8)

  스가랴 선지자가 다시 눈을 들어 여섯 번째 환상을 보니, 성소의 넓이만한 길이 9미터, 폭이 4.5미터나 되는 큰 두루마리 하나가 휙휙 날아다니며, 이 집에도 들어가고 저 집에도 들어가면서 그 집의 나무와 돌을 불사르고 있었습니다. 이는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폭격기와 같았습니다. 이 두루마리에는 율법의 말씀이 적혀 있었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라. 무릇 도적질 하는 자는 이 편 글대로 끊쳐지고 무릇 맹세하는 자는 그 저편 글대로 끊쳐지리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것을 발하였나니 도적의 집에도 들어가며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서 그 집에 머무르며 그 집을 그 나무와 그 돌을 아울러 사르리라” 이 말씀을 볼 때 두루마리가 날아다니는 것은 거기에 적힌 대로 그 백성의 죄악을 찾아서 심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환상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의 죄를 어떻게 다루시는가를 보여 줍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많은 죄가 있었지만 가장 보편적인 것은 도적질과 망령되이 맹세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남의 것을 훔치는 자들로 가득했습니다. ‘나는 생계형 도둑이다’하면서 죄의식 없이 생필품을 훔치는 자들, 명품이 없으면 사람취급 못 받는다고 하면서 백화점에 가서 명품을 훔치는 자, 불법 정치자금과 뇌물로 기업의 돈을 강탈해 가는 자들,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십일조를 드리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것을 훔치는 자들, 빚을 지고도 갚지 않는 사람들, 직장에서도 문제의식이 없이 복사지와 장갑을 가져가는 사람, 남의 지갑, 노트북 컴퓨터를 훔쳐가는 사람 등등 도둑질이 횡행했습니다. 이렇게 도적질이 많아진 이유는 먹고 살기 힘든 현실이 문제인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이기심과 고난 없이 편하고 살고자 하는 욕심 때문입니다. 또한 잘 사는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또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급할 때 하나님께 서원을 했다가 기도의 응답을 받으면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맹세한 것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워 맹세를 하지만 그 맹세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지만 진실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그들은 하나님께 사기를 쳤고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의 죄에 대해서 율법의 말씀대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이 성전을 건축한다고 그들의 죄를 용납해 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그 백성을 감찰하시고, 그 말씀대로 저주를 내리는 공의로운 하나님이십니다. 두루마리는 하늘을 날라 다니며 죄가 있는 집에 들어가 심판을 내렸습니다. 대통령 궁에도 들어가고 서민의 단칸방에도 들어가고 제사장의 집에도 들어가고 전자보안시스템을 설치한 집에도 들어가서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대로 죄를 찾아 준엄한 심판을 내립니다. 아무도 이 두루마리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대로 저주가 임함을 알고 죄짓기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5-11절에는 일곱 번째 환상이 나옵니다. 스가랴는 다시 환상 중에 에바를 보았습니다. ‘에바’는 곡식을 담아서 양을 재는 용기로서 22. 4리터를 담을 수 있는 말보다 조금 큰 부피였습니다. 그런데 이 에바에 “이는 악이라”하면서 한 여인을 잡어 넣고 열고 나오지 못하도록 무거운 납으로 뚜껑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학과 같은 큰 날개를 가진 두 여인이 나타나서 그 여인을 넣은 에바를 하늘 높이 들고 올라가서 저 멀리 시날 땅에 준비된 그 집으로 옮겨 보냈습니다.
  이 환상에서 에바에 갇힌 여인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있는 악을 상징합니다. 여인을 악으로 상징할 때는 음녀라고 해서 우상숭배의 죄를 나타냅니다(계 19:2). 시날 땅은 옛날에 하나님을 대적해서 바벨탑을 쌓았던 곳입니다(창 11:2‐4). 악이라고 하는 음녀를 이곳으로 옮겨다가 집을 짓고 머무르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 가운데 있는 악, 특히 음란과 우상숭배의 죄를 그 땅으로 옮긴다는 뜻입니다. 바벨론의 우상숭배의 문화 속에서 태어나서 수 십 년 동안  살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자들 속에는 우상숭배가 습관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을 것입니다. 그 외에도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는 악들이 그들 문화와 삶 속에 문제의식 없이 녹아들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악을 용납지 않으시고 그 악을 본고장으로 돌려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심으로 이스라엘이 정결하고 거룩한 공동체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악을 바벨론 땅으로 옮기신 것은 그곳에 임할 심판까지도 바벨론으로 옮기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은  성전을 두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 가심을 배우게 됩니다. 첫째는 외적인 성전 건축을 통해서 백성들 내면에 하나님의 성전이 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 백성들 가운데서 악을 제하심으로 하나님께서 머무실 수 있는 성전 된 백성들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복음 전파를 통해서 영적인 성전을 건축하게 하십니다. 일대일이나 수련회를 통해서 성전을 건축하십니다. 또 한편으로는 교회 공동체 안에 있으나 돈을 숭배하는 자들은 돈을 숭배하는 자들의 땅으로, 인본주의자들은 인본주의자들의 땅으로, 음란을 섬기는 자들은 음란한 사람의 땅으로 보내심으로 그 백성들 가운데 거룩한 성전이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우리가 이런 공의의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을 준행함으로 신령한 성전으로 지어지기를 기도합니다(벧전 2:4,5).
  6:1-8절을 보면 스가랴 선지자가 여덟 번째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네 병거가 놋으로 된 두 산 사이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놋으로 된 두 산은 견고한 하나님의 성을 가리킵니다. 그 하나님의 산에서 네 병거가 나왔습니다. 첫째 병거는 홍마들이, 둘째 병거는 흑마들이,  셋째병거는 백마들이, 넷째병거는 어룽지고 건장한 말들이 메었습니다. 홍마는 전쟁을, 흑마는  죽음과 슬픔을,  백마는 승리와 기쁨을, 어룽진 말들은 기근과 질병을 상징합니다. 이런 네 말들이 하나님의 성문을 열고 힘차게 달려 나왔습니다. 천사는 이들이 하나님 앞에 모셔 섰다가 바람과 같이 달려 나와서 하나님의 뜻을 집행하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5).
  그 중에서 흑마는 북편으로 나가고 백마가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어룽진 말은 남편으로 나가고 건장한 말은 세상에 나아거서 두루 다니고자 하였습니다. 이때 스가랴에게 말하던 천사가 큰 소리로 외쳐 말했습니다. “북방으로 나간 자들이 북방에서 내 마음을 시원케 했느니라” 하나님은 그 백성을 지나치게 괴롭게 한 바벨론, 우상숭배의 도시 바벨론의 죄악으로 인해서 고통하셨습니다(1:15). 그런데 이제 때가 차서 그 사자가 재앙으로 그들을 징계하고 그 백성들에게는 승리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이 시원하셨습니다.
II.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돋아나서(6:9-15)
  이상의 환상을 보여 주신 하나님은 스가랴 선지자에게 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9-1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사로잡힌 자 중 바벨론에서부터 돌아온 헬대와 도비야와 여다야가 스바냐의 아들 요시야의 집에 들었나니 너는 이 날에 그 집에 들어가서 그들에게서 취하되 은과 금을 취하여 면류관을 만들어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자 중에 헬대와 도비야와 여다야가 예루살렘에 와서 스바냐의 아들 요시야의 집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전 건축을 위해서 은, 금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에게서 헌금을 모아 대표로 가지고 왔을 것입니다. 한편 스바냐의 아들 요시야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지 않고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제사장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스가랴 선지자에게 이들에게 가서 그들의 은금을 취하여 면류관을 만들어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씌우라고 하셨습니다. 면류관은 왕이 쓰는 왕관으로서 왕의 영광과 통치권을 상징하는 것인데 대제사장에게 씌워 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일에 담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그 백성에 대한 통치권을 위임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과 왕, 선지자의 역할이 아주 분명하게 구분이 되어 있었습니다. 제사장은 백성들의 죄사함을 위해서 제사를 드려주고 하나님과 백성들을 중보하는 영적인 일만 하였습니다. 왕은 그 백성을 통치하고 다스리는 자이고,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서 왕이나 제사장, 백성들에게 전하는 직분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제 대제사장에게 왕의 직분을 더해 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식민지가 된 이후로 왕이 없었습니다. 스룹바벨이 유다 총독으로 와서 그들을 다스리기는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바사 제국에 의해서 임명된 바사의 총독으로 진정한 의미의 유대인의 통치자가 아니었습니다. 또 당시 스룹바벨이 백성들을 통치할 수 없는 상황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 백성을 인도하여 성전건축 역사를 섬길 지도자가 필요했습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면류관을 만들어 씌우는 것은 백성들의 대표가 그에게 왕권을 위임하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 그 백성들이 우왕좌왕하는 오합지졸이 되지 않고 영적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성령의 그릇, 한 공동체를 이루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둘째, 바벨론에서 돌아온 자들과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자들이 연합해서 하나님의 일을 섬기도록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요시야는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제사장이었고 세 사람은 성전 건축을 지원하기 위해서 바벨론에서 은금을 가지고 온 자들이었습니다. 즉 현지인 대표와 재외 거주 백성들의 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연합해서 대 제사장을 왕으로 추대하여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당시 관습이 아니었기 때문에 많은 반대에 부딪힐 수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면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중요하나 위험한 일을 국내 백성과 재외 백성이 연합해서 섬기게 하심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하나 되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국내 유대인과 재외 유대인들의 의식과 마인드는 많이 다를 수가 있었습니다. 바벨론에 있는 유대인들의 생각은 개방적이고 세계화되어 있었으며, 또 속히 성전이 재건되어 기쁜 마음으로 성지 순례를 할 때가 오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한편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현실 형편을 생각하지 않고 성전 건축을 재촉하는 재외 유대인들에게 남의 형편은 생각지 않고 요구만 한다고 원망할 수도 있었습니다. 또 그들 사이에 알게 모르게 기득권 다툼이 있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재외 유대인들과 국내 백성들 사이에 갈등과 분열이 있으면 성전 건축 역사는 그만큼 어려워지고 또 의미도 반감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대제사장을 지도자로 추대하는 중차대한 일을 연합해서 하게 함으로 그들의 내면에 영적인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우리 선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표가 해외 선교지에 나가서 국제적인 마인드를 갖고 국내 목자들과 연합하여 하나님의 뜻을 섬긴 것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서 소망의 하나님, 부활의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고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보라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위에 있으리니 이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 먼저 하나님은 그 백성들에게 순이라고 이름하는 자가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순은 겨울이 지나고 봄에 돋아나는 새싹입니다. 순은 잘려진 나무나 고목같이 죽은 것 같은 나무의 밑동에서 돋아나는 새싹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순이라고 불리는 한 사람이 나와서 성전을 건축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다 죽은 고목과 같았고 밑둥이 잘려나간 나무와 같았습니다. 그들은 70년간의 바벨론의 포로 생활로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불신도 커졌고 관계성이 파괴되어 서로 원망하는 마음도 컸습니다. 또한 경제, 사회적으로도 붕괴되어 안정된 생활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성전을 건축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성전 건축이 안 되는 것은 그들을 거룩한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를 세우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망한 것 같고 소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현실에 절망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새 순같이 돋아나서 성전을 건축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요 생명의 부여자로서 어떤 죽은 곳에서도 새 순이 돋아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한 순이 잘리면 그 상처에서 세 개의 순이 덧납니다. 하나님은 그 나라가 사람들의 죄로 생명력을 잃고 고목같이 되거나, 잘려나가게 되면 그곳에서 새 순이 돋아나게 하셔서 다시 큰 나무로 자라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어진 것 같았을 때 하나님은 아담에게서 셋이라는 새 아들이 돋아나게 하셔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하셨습니다. 노아,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 등은 모두 당시 절망적인 시대에 새롭게 돋아난 새 순들이었고 이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큰 나무로 자라났고 계승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새 순이 돋아나게 하시는 부활의 하나님이요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UBF 모임도 1961년에 대학생들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선물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 가운데서 친히 돋아나게 하신 새 순이었습니다. 그런데 외국의 원조로 먹고 살던 후진국 한국 대학생들에게 세계선교를 외치던 이 ‘순’은 자랄 것 같지 않았습니다. 또 자립적으로 세계 선교 한다고 이상한 눈으로 보고 핍박하는 자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돋아나게 하신 새 순이었기 때문에 우리 모임은 지난 42년 동안 세계적인 모임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학생 역사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올해 성마태 팀에서 네 명이 자라고 JBF에서 10명의 학생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시우, 허바울, 임요한 형제들이 봄에 군에 입대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학생 역사에 새 순이 돋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썩은 고목이 되지 않고 항상 성령의 생명으로 충만하여 새 순을 틔우는 복된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생명의 기운이 왕성하여 새 순이 많이 돋아나는 모임일수록 생명력이 있고 소망이 있고 아름답습니다.
  순은 당시 성전을 건축하는 여호수아나 스룹바벨과 같은 지도자를 나타내면서 장차 오실 메시야인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사 11:1). 그리스도 예수님은 순과 같이 돋아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말구유에서 한 아기로 탄생하셨습니다. 그 순은 그 백성을 자기 죄에서 구원하고, 그 백성 위에 영원토록 왕노릇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비전 가운데 새 순으로 보내어 졌는데(마 1:21, 눅 1:33), 너무나 연약하여 그 순이 자라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새 순이 돋아나게 하시는 하나님은 부활의 능력을 가지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가운데 돋아난 새 순이 현재는 연약하고 보잘 것 없이 보이지만 이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순이요 생명이므로 반드시 창대해질 것을 믿습니다(마 16:18, 28:20). 이 하나님 안에서는 언제나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틔우신 순을 통해 일어날 놀라운 역사는 무엇입니까? 13절을 보십시오.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위에 있으리니 이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새 순으로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합니다. 구약 시대의 성전은 참 성전인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그림자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로서 죄인들이 단번에 영원히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속죄제사를 드리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언제든지 죄사함을 받고 영광의 하나님을 만나고 그 앞에 나아가서 말씀을 듣고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어떤 원수들의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고 그 백성의 어떤 죄로도 황폐화되지 않는 영원한 참 성전을 건축해 주신 것입니다. 참 성전을 건축하여 우리에게 선물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13절에서 ‘영광도 얻고’라는 말은 그 백성의 왕이 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이실 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세상을 심판하고 그 백성을 공평과 정의, 사랑과 평강으로 다스리는 왕이 되셨습니다. ‘제사장과 왕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는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서 제사장과 왕의 역할이 조화롭게 공존하며 그 백성에게 평화를 선물해 준다는 의미입니다. 평화! 이는 얼마나 소중한 보물입니까? 그런데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는 자는 세상의 그 누구도 뺏을 수 없는 하늘의 평화를 얻게 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은금을 드려서 여호수아에게 왕관을 만들어 씌운 헬렘(헬대와 같은 이름)과 도비야야 여다야와 스바냐의 아들 헨(요시야의 다른 이름)을 기념하기 위해서 그들이 만든 은금 면류관을 성전 안에 전시해 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다스리는 자로 세우고, 또 오실 그리스도의 예표를 세우는데 믿음과 희생을 드린 네 사람의 아름다운 행위를 기념하심으로 후손들이 역사적인 교훈으로 삼고 본받을 모델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또한 그 면류관을 보면서  순이라는 이름으로 오셔서 그 백성을 평강으로 다스려 주실 왕,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갖고 소망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결정적인 순간에 믿음과 헌신을 드려서 하나님의 뜻을 섬긴 자들을 기념이 되게 해주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새 순이 나타나서 성전을 건축할 때 먼데 사람들이 와서 성전을 건축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택함 받았던 자들이 불신과 세상 사랑으로 쓸모없이 되었을 때 먼데 사람을 쓰셔서 성전이 건축되게 하십니다. 이 예언은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던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건축하게 될 것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15b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은혜가 임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면 그들 가운데서 그리스도가 새싹으로 돋아나게 되고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성전이 건축되고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영광스러운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자 할 때 우리의 죄악 된 본성을 부인해야 하고 세상의 죄악 된 가치관과 사상과 갈등을 빚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이 자신에게 임하게 하는 통로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함으로 참 성전인 그리스도를 얻으며, 이 시대의 새 순이 되어서 큰 거목으로 자라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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