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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 스가랴1강(1,2장)/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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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4,410회 작성일 03-11-09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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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스가랴서 공부 제 1 강                                                 
말씀 / 스가랴 1:1-2:13
요절 / 스가랴 1:3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그러므로 너는 무리에게 고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우리가 스가랴서를 공부하게 된 이유는 스가랴서의 주제가 우리의 중요한 관심사인 회복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세 가지 환상이 나오고 그에 대한 해석이 나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회복의 비전을 보기를 기도합니다. 

  스가랴는 다리오 왕 2년 팔월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한 선지자입니다. 그는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로서 제사장 가문 출신의 선지자입니다(느12:1,4). 스가랴는 바벨론 포로 중에 태어났으며, 이스라엘로 귀환할 당시에는 상당히 어렸을 것입니다. 그는 바벨론 포로 귀환 후에 활동한 선지자로서 민족과 세계를 동시에 품고 살았습니다(14:9).
  스가랴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두 달 전에 선지자 학개에게 말씀이 임하여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도록 격려하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학1:2-4).” 그들이 고국에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고자 했는데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로 중단되어 15-16년이 지났는데도 성전 건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성전 회복에 대한 소망을 주시기 전에 먼저 열조에게 심히 진노하신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조상들의 죄로 인해서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가 되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너희 열조를 본받지 말라 옛적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외쳐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실을 떠나서 돌아오라 하셨다 하나 그들이 듣지 않고 내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 성전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고 말씀을 멸시하며 그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로 그 백성에게 미쳐서 만회할 수 없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악한 길, 악한 행실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탐욕에 눈이 멀었고 우상을 숭배하였으며 공의가 그 사회에서 사라졌습니다. 회복의 시작은 징계를 받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망한 이유를 알아야 거기서 돌이킬 수 있습니다. 진단을 잘 해야 치료를 잘 할 수 있습니다. 

  스가랴가 전해야할 첫 번째 메시지가 무엇이었습니까?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게로 돌아오라는 것은 불의한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불의한 생각은 자기 의를 주장하는 생각입니다. 믿음이 없는 생각입니다. 또한 악한 생각은 음란하고 거짓되고 교만한 생각입니다. 탐욕입니다(막7:21,22). 4절에서는 악한 길, 악한 행실을 떠나서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고집과 교만과 불순종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는 마음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돌아오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계속 악한 생각, 악한 행실 가운데 거하면 하나님께서 슬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떠나시지는 않지만 우리를 쓰실 수 없습니다.

  4절을 다시 보십시오. “너희 열조를 본받지 말라 옛적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외쳐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실을 떠나서 돌아오라 하셨다 하나 그들이 듣지 않고 내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가려면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며 널리 용서하시는 분이십니다. 열조를 본받지 말라는 말은 조상을 본 받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사야나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은 그들이 살 길을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끝끝내 불순종하다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 전통은 본받아야 하지만 잘못된 것은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도 조상의 망령된 행실을 버려야합니다. 술 마시고 계집질하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술 소비량이 우리나라가 세계 1위라고 합니다. 우리 나라는 어디를 가든지 술을 먹지 않으면 적응하기 힘든 사회가 되었습니다. 또한 음란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습니다. 우리들 중에는 선배들의 믿음을 잘 배우고 계승해야할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버려야 할 점은 주님과 양들에게 헌신한 것은 잘했는데 가정은 소홀히 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정과 자녀 교육에 대한 강조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요즈음은 반대로 사명을 중심으로 한 가정 교회를 이루기보다 아기자기한 삶에  빠져서 생활인으로 전락해 버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데이 크리스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주중에 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사명과 가정생활에서 균형과 성숙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직장 생활을 충실히 하면서도 캠퍼스 목자로서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심정입니다. 하나님과 양들을 향한 불타는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개인 개인의 영성이 자라야 합니다. 방향이 없으면 일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려고 하는 마음들을 버려야합니다. 설상가상으로 분명히 리더미팅을 한다고 하는데도 참석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서 자라기를 바랍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서로가 자기 문제를 뛰어넘어 남을 돌아보고 훈련하고 이끌어 주고 격려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헌신했는데 이 세상에서  당장 상급을 받고자 하기보다 하나님 나라 상급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두움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환상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스가랴가 본 환상이 무엇입니까?
첫째, 홍마를 탄 사람의 환상(7-17). 처음 환상을 본지 3개월이 지난 다리오 왕 이년 십일월 곧 스밧월 이십사일에 스가랴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그가 밤에 보니 사람이 홍마를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 그 뒤에는 홍마와 자마와 백마가 있었습니다. 그가 “내 주여 이들이 무엇이니이까?”라고 물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밤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이는 그가 살던 시대가 어두운 밤과 같았다는 것입니다. 암흑의 시대에 하나님이 비전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때가 어두울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환상, 곧 비전입니다. 내 인생이 어두울수록 비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비전은 내가 보고 싶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전은 보여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비전을 볼 수 있습니까? 주의 말씀에 순종하기 원할 때, 엎드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비전을 보여 주십니다.
  스가랴가 본 홍마, 자마, 백마는 여호와께서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입니다. 그리고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사자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화석류 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데 골짜기 속 화석류 나무란 고난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키고 주님은 고난당하는 백성들과 함께 하심을 나타냅니다. 시23:4절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이 고난을 당할 때 버려두지 아니하십니다. 요셉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할 때에도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할 때에도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은 지금 경제적으로 고통당하는 우리 백성들과도 함께 하십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어두운 골짜기 가운데 있습니까? 주님께서 그 곳에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천사들이 땅을 두루 다녀보니 온 땅이 평안하여 정온했습니다. 이때 여호와의 사자가 응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려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12).”하매 여호와께서 스가랴에게 말하는 천사에게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셨습니다. 그 위로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14,15절을 보십시오.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너는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여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안일한 열국을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만 노하였거늘 열국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조금만 노하셨는데 그들이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한 것을 보고 크게 질투하셨습니다. 여기서 질투했다는 것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질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해서 징계하는 막대기로 바벨론을 사용하셨는데 그들이 긍휼이 없는 징계를 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분노하셨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을 치고 이스라엘을 자유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을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하여 성전을 건축하고 예루살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하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6,17).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치어진다는 것은 건축하기 위해서 줄을 쳐주는 것을 말합니다. 예루살렘 도성의 재건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저는 우리가 예수님을 깊이 사랑하고 닮아가는 가운데 영적 부흥이 일어나기를 꿈꿉니다. 캠퍼스에 일대일 성경 공부와 그룹별 성경 공부가 단과대학마다 일어나고 학생들이 이곳을북적거리게 드나들며 말씀을 공부하는 꿈을 꿉니다. 더 나아가 세계 각 곳에서 이방 양들이 이곳에 와서 말씀을 공부하고 제자 훈련을 받는 꿈을 꿉니다. 우리가 세계를 섬기며 봉사하는 민족이 되는 꿈을 꿉니다. 또한 우리의 자녀들이 이곳에서 매주 말씀을 공부하고 제자로 훈련을 받으며 성숙한 시민이요 사명인으로 자라기를 소원합니다. 더 나아가 양들이 너무나  많아져 5층짜리 선교 센타를 건축할 꿈을 꿉니다. 이런 역사가 일어나려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야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려면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현재 문제를 해결하는데 급급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한 불타는 사랑으로 타올라야 합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젊은이들이 비온 후의 잡초 같이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꿈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네 뿔과 네 공장의 환상(1:18-21). 스가랴 선지자가 눈을 들어 보니 네 뿔이 보였습니다. 그가 천사에게 이들이 무엇이냐고 묻자 이들은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헤친 뿔이라고 했습니다(19). 뿔은 권세나 세력을 상징합니다. 그 뿔들이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사렘을 헤쳤다는 것은 흩어 놓았다는 뜻입니다. 네 뿔은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모든 세력을 상징합니다. 때에 공장 네 명이 보였는데 그들이 무엇을 하러 왔습니까? 그 뿔들이 유다를 헤쳐서 사람으로 능히 머리를 들지 못하게 하매 이 공장들이 와서 그것들을 두렵게 하고 이전에 뿔들을 들어 유다 땅을 헤친 열국의 뿔들을 떨어치려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세력은 반드시 하나님 자신이 대적하신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원수는 주님이 갚아주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약속을 성취하시는 것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이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12:3).”

  오늘날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 개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임과 동시에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향한 언약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는 자와 동시에 그 자녀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축복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지만 그 교회를 대적하는 자는 대적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원수들을 공격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보복은 그리스도인의 방법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잡아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2:9절은 말씀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원수는 누가 갚습니까? 주님이 갚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흥분할 필요가 없습니다. 같이 맞서서 혈기 부릴 필요가 없습니다.
 
  대적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최대 과제는 성전 건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건축의 열망을 갖고 시온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성전 건축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원인은 주변 세력들의반대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시점에 하나님께서 학개에게 말씀을 주시고 스가랴에게 환상을 주십니다. 그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성전 건축은 이루어진다. 주변에서 아무리 반대해도 반드시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획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성전 건축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격려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지금 일대일 성경 공부와 제자 양성을 통한 성서 한국, 세계 선교의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마귀가 성서 한국과 세계 복음화를 적대시하고 있습니까? 제자 양성에 대한 불신을 심고 있습니까? 그러나 결국 지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편만하게 전파되고야 맙니다. 또한 홍대 캠퍼스에도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흐르는 강에 홍수로 물이 덮이듯이 넘치고야 말 것입니다.

셋째, 척량줄을 잡고 있는 사람의 환상(2장). 하나님께서는 원수들을 제압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세 번째 환상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회복을 이루는지를 보여주십니다. 스가랴가 또 눈을 들어 보니 한 사람이 척량줄을 그 손에 잡고 있었습니다. 그가 어디로 가느냐고 묻자 예루살렘을 척량하여 그 장광을 보고자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천사가 스가랴에게 와서 “예루살렘에 사람이 거하리니 그 가운데 사람과 육축이 많으므로 그것이 성곽 없는 촌락과 같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그 사면에서 불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서 영광이 되리라(4,5).”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예루살렘에 사람과 육축이 많아질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곽 없는 촌락과 같으리라고 하십니다. 이는 확장의 비전을 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많아지므로 성곽 밖으로 까지 도시가 확장되어집니다. 성곽이 없으면 안전에 대한 염려가 생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친히 그 사면에서 불 성곽이 되어주신다고 합니다. 당시에 사람들은 성곽 걱정, 성벽 걱정을 하였지만 현대인들은 무엇을 걱정합니까? 돈을 걱정합니다. 하나님 돈이 없으면 어떻게 삽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가 돈이 되어 주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십니다. 미국인들이 초창기에 청교도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돈을 만들면서 지폐에다 ‘하나님을 우리가 믿는다’라고 새겨 넣었습니다. 비록 돈을 우리가 쓰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신앙이 없어지자 사람들은 그 의미를 잃어버렸습니다. 신앙이 없어지자 돈을 쓰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돈 자체를 믿기 시작했습니다. 돈이 있다고 안전한 것이 아닙니다. 직장이나 건강이나 학위가 인생을 안전하게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안전을 지켜 주십니다.

  6-8절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바벨론의 포로 상태에서 돌아오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무릇 너희를 범하는 자는 하나님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10-12절에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노래하고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왜 그들이 기뻐하고 노래해야 합니까? “이는 내가 임하여 네 가운데 거할 것임이니라(10b).” 하나님께서 임하여 그 백성 가운데 거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메시야가 오셔서 그 백성 가운데 거할 때 모든 희망찬 역사가 일어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요 나는 네 가운데 거하리라 네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네게 보내신 줄 알리라.” 메시야 시대는 이방인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나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백성은 복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에 복음의 영광을 나타내셨듯이 이 복음이 전파되어 충만하게 되는 나라마다 복을 받습니다. 그런 개인이 복을 받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3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무릇 혈기 있는 자들이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성소에서 일어나심이니라 하라 하더라.”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이 땅에 임하여 그 분이 계획하셨던 일을 시작하기 위해 일어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 앞에서 잠잠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이기 때문에 잠잠해야 합니다. 홍해 앞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뒤에서 애굽 군대가 추격해 오자 모세를 향하여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출14:11).” 그들은 모세를 원망하며 자기들을 광야에서 죽도록 하기 위해서 출애굽을 하였다고 가슴에 못을 박는 소리를 해댔습니다. 이 때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14:13).” 우리는 가만히 있어 주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 자신이 하십니다. 우리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오직 우리는 주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일도 하지 않으면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입니다. 말만 무성한 사람, 일만 만드는 사람은 쓰임 받지 못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쓰임 받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까? 여호와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조용히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면서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역사를 드러내십니다. 성전을 재건하고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일에 중요한 도구로 쓰임 받은 인물은 느헤미야입니다. 느헤미야는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앞서 우선 “기도”를 하였습니다. 사람이 내뱉는 수많은 말들로는 하나님의 일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그 백성의 안타까운 현실과 참상을 가슴에 끌어안고 주님 앞에 금식하며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예루살렘 재건을 이루셨습니다. 성전 건축을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매일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는 가운데 성전 재건 역사에 쓰임 받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가운데 제자 양성 재건 역사에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영성을 회복하는 역사를 이루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돌아오겠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세상일에 기울어진 마음을 돌이켜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실 때 놀라운 회복과 확장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이러한 회복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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