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회 2022 봄수양회1강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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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본문 말씀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마태복음 3:2)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했는 데 이 말의 핵심은 천국, 하늘의 나라에 있습니다. 회개하라는 건 돌이키라는 말입니다. 어디에서 어디로 돌이키라는 걸까요? 땅의 나라에서 하늘의 나라로 돌이키라는 말입니다. 땅의 나라에서 살던데서 이제 하늘의 나라에서 살 것을 생각해라 이 말입니다. 왜죠? 하늘의 나라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나라 곧, 하늘의 다스림, 하늘의 통치가 가까이 왔고 이제 곧 하늘의 다스림을 받게 될거야 하는 말입니다.
하늘의 나라는 땅의 나라와 어떻게 다를까요? 예를 들어 여기 한국과 미국은 어떻게 다를까요? 한 형제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미국에 가보니까 뭐가 다른가요? “공기가 달라요. 사는 모습도 다르고요.” 맞습니다. 법도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 살아가는 모습이 다릅니다.
하늘 나라의 법과 땅의 나라의 법은 다른가요? 뭐가 다를까요? 땅에서는 죄를 져도 돈 있으면 벌을 덜 받고, 돈이 없으면 무거운 벌을 받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하늘에서는 공평합니다. 땅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행위만 봅니다. 아무리 나쁜 마음을 품고 있어도 드러나지만 않으면, 들키지만 않으면 괜찮습니다. 하늘에서는 사람의 마음의 중심을 봅니다.
또 어떤게 다를까요?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잘 나와 있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얻을 것임이요.”(마 5장) 땅에서는 어떤 사람이 땅을 차지할까요? 욕심 많은 사람이 차지합니다. 재테크에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사람이 땅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하늘의 나라에서는 온유한 사람이 땅을 얻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 5장) 어떤 사람이 의에 주리고 목마를까요?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입니다. 땅에서는 그 억울함이 잘 풀어지지가 않습니다. 아직도 세월호 피해가족이 진실을 규명해달라고 이야기합니다. 많은 사람에게는 잊혀졌지만 당사자들은 여전히 그 아픔 속에 있습니다. 하늘에서는? 하나님께서 그 억울함을 풀어 주십니다. 내가 대신 갚아줄게. 하나님께서 진실, 공의대로 재판하시고 그 아픔을 위로하십니다.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나요? 언젠가는 풀어주시겠지만 언제일지도 모르는 데 참고만 살아야 할까요? 그 억울함 때문에 현재 내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롬 12:19). 대신 갚아주시는 그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으면 마음에 억울함을 풀고 현재 내 삶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38년 된 병자는 베데스다에서 맨날 꼴찌였습니다. 땅의 나라에서는, 경쟁 사회에서는 그는 항상 꼴지였고 나음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시니까 어떻게 변했습니까? 그는 베데스다에 있던 어떤 사람보다도 제일 먼저 나음을 받았습니다. 하늘의 나라에서는 꼴찌가 일등이 될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다섯 남편이나 두었던 사람입니다. 땅의 나라에서는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르는 별난 여자일 뿐이었습니다. 스스로도 자기 인생이 해석이 안되었습니다. 인생의 많은 질문이 있었지만 제대로 된 답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어떻게 달라졌을 까요? 이 여인에게 하늘의 나라가 임했습니다. 여인의 질문에 예수님은 모두 답해주셨고, 가장 좋은 답을 얻었습니다. 물음표만 가득했던 여인은 인생에 답을 찾았고, 하늘의 다스림을 받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또 하늘의 나라와 땅의 나라는 어떤 게 다를까요? 땅의 나라에서는 열심히 땀흘려야 먹고 삽니다. 무노동 무임금입니다. 하늘 나라에서는 일을 아니하고 삯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땅에서는 일한만큼만 보상을 주지만 하늘에서는 주인 마음입니다. 오히려 땅의 나라가 공평하고 하늘의 나라가 불공평해 보입니다. 그런데 땅의 나라에는 일 못하고 돈을 못 벌면 살기가 힘듭니다. 하늘의 나라에서는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두려워말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먹이신다고 하십니다. 땅에서는 종처럼 일해야 먹을 것을 주지만 하늘에서는 너는 내 아들이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라고 하십니다. 한 선교사님이 자매들과 센터 근처에서 공동생활을 할 때였습니다. 세들어 사니까 밤늦게 집에 들어갈 때 시끄럽게 할까봐 집주인의 눈치를 엄청 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집주인 아들은 밤늦게 술먹고 들어와서 큰소리로 “아빠, 문열어!” 했다고 합니다. 땅의 나라에서는 사람의 종되어 눈치보며 살던 사람도 이 하늘 나라에서는 언제든지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갈 수 있는 은혜와 긍휼이 있습니다. 이 하늘 나라는 먼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로부터 시작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 가난하다는 건 뭘까요? 살기 위해 필요한 게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란 마음 안에 살아갈 힘, 용기가 없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땅에서는 그런 사람은 복이 없습니다. 제대로 살수가 없습니다. 땅에서는 그 사람이 나약한게 문제라고, 나 때는 안그랬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그런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하늘의 나라가 그런 사람의 것입니다.” 마음이 정말 가난해서 땅의 나라에서는 살 수 없는 그 사람이, 하늘의 나라를 제대로 알게 되면. 하늘의 나라를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땅의 나라에서는 살 수 없는, 그 사람을 ‘나’라고 생각해봅시다. 그런 내가 하늘의 나라에서는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하늘 나라에서의 법, 살아가는 방식은 어떻게 다를까요? 땅에서는 왜 살아갈 힘, 용기를 잃어버렸을까요?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당하니까? 스스로를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해서? 세상에서 자기의 존재의미를 찾지 못해서입니까? 하늘에서는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당장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도 쓸모없다고 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너의 존재가 좋다고 very good 이라고 하십니다. 나에게만 있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밤하늘을 보면 수많은 별들이 반짝입니다. 그 별이 그 별 같지만, 별들은 각자 위치에서 자기만의 빛을 냅니다. 하늘 나라는 그냥 밝고 환한 나라가 아닙니다. 각각의 다양하고 아름다운 색깔이 빛나는 세계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다르게 창조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나만의 다른 색깔의 삶을 주셨습니다. 그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세계가 하늘의 나라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세례 요한이 전하는 이 말을 듣고 많은 사람이 죄를 자복하려고 나아왔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오히려 종교지도자들에게는 독사의 자식들아 하고 책망했습니다. 그들이 독을 품고 있는 것을 본 것일까요? 그렇다면 무슨 독이 있었을까요? 성경을 연구했지만 여전히 땅의 나라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들은 사람을 겉으로 드러난 행동, 행위, 결과로만 판단했습니다. 했나 안했나, 잘했나 못했나, 안식일을 지켰냐 안지켰냐 만 보았습니다. 간음한 여인을 보고 “돌로 쳐 죽여야 돼,”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온 세리를 보며 “나는 저런 사람 같지 않은 것을 감사합니다.” 라고 합니다. 그들은 막상 회개한다고 했지만, 그 안에 여전히 사람을 죽이는 독이 있었습니다.
진정 회개해야 할 건 무엇일까요? 종교지도자들처럼 한 것, 안 한 것, 행위 중심으로 회개를 많이 합니다. 세례 요한이 회개의 열매를 맺으라고 했는 데 그 회개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땅의 나라에서 하늘의 나라로 돌이켜 하늘 나라의 법, 하늘 나라의 살아가는 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땅과는 전혀 다른 하늘 나라의 방식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우리는 하늘 나라의 방식으로 살 수 있을까요? 꼴찌가 된 사람을 데려다가 일등으로 세울 수 있습니까? 나보다 조금만 일한 사람이 똑같이 보상 받아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자신이 원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을까요? 너무 수준이 높은 것 아닌가요? 수준이 높은 것이 아니라 아예 다른 것입니다. 다른 삶의 방식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가의 문제입니다.
오래전에 방영된 TV 프로그램에 어떤 한 아버지가 나왔습니다. 그는 학교 폭력으로 자살한 아들을 둔 아버지였습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요? 그때는 20여년전이라 학교 폭력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높지 않았습니다. 경찰서나 학교에서 문제를 제대로 처리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덮으려고 하는 것을 보고 그는 실망하고 분노했습니다. 그는 빵가게로 자신을 폭행했던 아이들을 한명씩 불러내었습니다. 왜 그렇게 했는 지 따져 묻고 싶었고, 개인적으로 복수하고 한국을 떠나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빵가게로 불러낸 아이들이 떨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이 아이들은 결국 아이일 뿐이구나 미숙한 아이일 뿐이구나 깨닫고 복수의 마음을 내려놓았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비영리재단을 만들어 학교폭력방지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이 기초가 되어 학교폭력방지법도 만들어졌습니다. 그분이 크리스쳔인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이것이 하늘나라의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하늘의 나라를 상상하고 생각하고 수 많은 말로 표현했지만 잘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하늘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천국을 무엇에 비유할까” 예수님은 말씀을 통해 하늘의 나라를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하늘의 나라, 하늘의 다스림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에 있습니다. 지금 그 길이 열려 있습니다. 지금 여기로부터 시작합니다. 내가 땅의 나라에서 돌이켜 하늘의 나라를 생각하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런데 하늘나라가 사람 눈에 보입니까? 미국은 보이지만 하늘나라는 보이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하늘 나라가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땅의 나라, 사람의 나라만 있는 것 같습니다. 하늘나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땅의 나라에 숨겨져 있습니다. 땅의 일, 사람의 일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뒤에서 "찾으라." "두드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땅의 일, 사람의 일 속에 숨겨져 있는 하늘 나라를 볼 수 있을까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최근 한 2여달동안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눈먼 소경처럼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늘의 나라, 가까이 있다고 하는 데 내게는 너무나 멀게 느껴지는 하늘의 나라를 보여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상황 속에 하나님이 하고 계시는 일이 있다면 그것을 보여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는데도 자신의 미숙함을 느끼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제 마음 깊은 곳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이들의 인생을 책임져 주고 함께 하리라. 지켜주리라. 인도해주리라. 내가 네 가정을, 네 아이들을 붙들고 있다. 내가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이 아이들의 참 부모가 되시고 아이들의 삶을 불들고 다스리고 계십니다. 아이들 안에 있는 하늘의 나라를 제가 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먼 미래에 하늘의 나라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늘의 나라가 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생각해보니 하늘의 나라는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 땅의 나라의 기준으로는 제 삶 속에 있는 모순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하늘 나라를 붙들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늘 나라의 가치관, 하늘 나라의 기준으로 제 삶을 다시 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하늘 나라의 기준, 하늘 나라의 살아가는 방식을 받아들이고 지금 여기로부터 하늘 나라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여전히 하늘 나라를 잘 보지 못하는 게 많은데, 형제 자매 동역자님들께서 많이 가르쳐주십시오. 제가 잘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본문 말씀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마태복음 3:2)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했는 데 이 말의 핵심은 천국, 하늘의 나라에 있습니다. 회개하라는 건 돌이키라는 말입니다. 어디에서 어디로 돌이키라는 걸까요? 땅의 나라에서 하늘의 나라로 돌이키라는 말입니다. 땅의 나라에서 살던데서 이제 하늘의 나라에서 살 것을 생각해라 이 말입니다. 왜죠? 하늘의 나라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나라 곧, 하늘의 다스림, 하늘의 통치가 가까이 왔고 이제 곧 하늘의 다스림을 받게 될거야 하는 말입니다.
하늘의 나라는 땅의 나라와 어떻게 다를까요? 예를 들어 여기 한국과 미국은 어떻게 다를까요? 한 형제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미국에 가보니까 뭐가 다른가요? “공기가 달라요. 사는 모습도 다르고요.” 맞습니다. 법도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 살아가는 모습이 다릅니다.
하늘 나라의 법과 땅의 나라의 법은 다른가요? 뭐가 다를까요? 땅에서는 죄를 져도 돈 있으면 벌을 덜 받고, 돈이 없으면 무거운 벌을 받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하늘에서는 공평합니다. 땅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행위만 봅니다. 아무리 나쁜 마음을 품고 있어도 드러나지만 않으면, 들키지만 않으면 괜찮습니다. 하늘에서는 사람의 마음의 중심을 봅니다.
또 어떤게 다를까요?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잘 나와 있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얻을 것임이요.”(마 5장) 땅에서는 어떤 사람이 땅을 차지할까요? 욕심 많은 사람이 차지합니다. 재테크에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사람이 땅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하늘의 나라에서는 온유한 사람이 땅을 얻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 5장) 어떤 사람이 의에 주리고 목마를까요?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입니다. 땅에서는 그 억울함이 잘 풀어지지가 않습니다. 아직도 세월호 피해가족이 진실을 규명해달라고 이야기합니다. 많은 사람에게는 잊혀졌지만 당사자들은 여전히 그 아픔 속에 있습니다. 하늘에서는? 하나님께서 그 억울함을 풀어 주십니다. 내가 대신 갚아줄게. 하나님께서 진실, 공의대로 재판하시고 그 아픔을 위로하십니다.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나요? 언젠가는 풀어주시겠지만 언제일지도 모르는 데 참고만 살아야 할까요? 그 억울함 때문에 현재 내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롬 12:19). 대신 갚아주시는 그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으면 마음에 억울함을 풀고 현재 내 삶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38년 된 병자는 베데스다에서 맨날 꼴찌였습니다. 땅의 나라에서는, 경쟁 사회에서는 그는 항상 꼴지였고 나음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시니까 어떻게 변했습니까? 그는 베데스다에 있던 어떤 사람보다도 제일 먼저 나음을 받았습니다. 하늘의 나라에서는 꼴찌가 일등이 될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다섯 남편이나 두었던 사람입니다. 땅의 나라에서는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르는 별난 여자일 뿐이었습니다. 스스로도 자기 인생이 해석이 안되었습니다. 인생의 많은 질문이 있었지만 제대로 된 답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어떻게 달라졌을 까요? 이 여인에게 하늘의 나라가 임했습니다. 여인의 질문에 예수님은 모두 답해주셨고, 가장 좋은 답을 얻었습니다. 물음표만 가득했던 여인은 인생에 답을 찾았고, 하늘의 다스림을 받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또 하늘의 나라와 땅의 나라는 어떤 게 다를까요? 땅의 나라에서는 열심히 땀흘려야 먹고 삽니다. 무노동 무임금입니다. 하늘 나라에서는 일을 아니하고 삯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땅에서는 일한만큼만 보상을 주지만 하늘에서는 주인 마음입니다. 오히려 땅의 나라가 공평하고 하늘의 나라가 불공평해 보입니다. 그런데 땅의 나라에는 일 못하고 돈을 못 벌면 살기가 힘듭니다. 하늘의 나라에서는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두려워말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먹이신다고 하십니다. 땅에서는 종처럼 일해야 먹을 것을 주지만 하늘에서는 너는 내 아들이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라고 하십니다. 한 선교사님이 자매들과 센터 근처에서 공동생활을 할 때였습니다. 세들어 사니까 밤늦게 집에 들어갈 때 시끄럽게 할까봐 집주인의 눈치를 엄청 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집주인 아들은 밤늦게 술먹고 들어와서 큰소리로 “아빠, 문열어!” 했다고 합니다. 땅의 나라에서는 사람의 종되어 눈치보며 살던 사람도 이 하늘 나라에서는 언제든지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갈 수 있는 은혜와 긍휼이 있습니다. 이 하늘 나라는 먼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로부터 시작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 가난하다는 건 뭘까요? 살기 위해 필요한 게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란 마음 안에 살아갈 힘, 용기가 없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땅에서는 그런 사람은 복이 없습니다. 제대로 살수가 없습니다. 땅에서는 그 사람이 나약한게 문제라고, 나 때는 안그랬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그런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하늘의 나라가 그런 사람의 것입니다.” 마음이 정말 가난해서 땅의 나라에서는 살 수 없는 그 사람이, 하늘의 나라를 제대로 알게 되면. 하늘의 나라를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땅의 나라에서는 살 수 없는, 그 사람을 ‘나’라고 생각해봅시다. 그런 내가 하늘의 나라에서는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하늘 나라에서의 법, 살아가는 방식은 어떻게 다를까요? 땅에서는 왜 살아갈 힘, 용기를 잃어버렸을까요?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당하니까? 스스로를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해서? 세상에서 자기의 존재의미를 찾지 못해서입니까? 하늘에서는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당장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도 쓸모없다고 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너의 존재가 좋다고 very good 이라고 하십니다. 나에게만 있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밤하늘을 보면 수많은 별들이 반짝입니다. 그 별이 그 별 같지만, 별들은 각자 위치에서 자기만의 빛을 냅니다. 하늘 나라는 그냥 밝고 환한 나라가 아닙니다. 각각의 다양하고 아름다운 색깔이 빛나는 세계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다르게 창조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나만의 다른 색깔의 삶을 주셨습니다. 그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세계가 하늘의 나라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세례 요한이 전하는 이 말을 듣고 많은 사람이 죄를 자복하려고 나아왔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오히려 종교지도자들에게는 독사의 자식들아 하고 책망했습니다. 그들이 독을 품고 있는 것을 본 것일까요? 그렇다면 무슨 독이 있었을까요? 성경을 연구했지만 여전히 땅의 나라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들은 사람을 겉으로 드러난 행동, 행위, 결과로만 판단했습니다. 했나 안했나, 잘했나 못했나, 안식일을 지켰냐 안지켰냐 만 보았습니다. 간음한 여인을 보고 “돌로 쳐 죽여야 돼,”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온 세리를 보며 “나는 저런 사람 같지 않은 것을 감사합니다.” 라고 합니다. 그들은 막상 회개한다고 했지만, 그 안에 여전히 사람을 죽이는 독이 있었습니다.
진정 회개해야 할 건 무엇일까요? 종교지도자들처럼 한 것, 안 한 것, 행위 중심으로 회개를 많이 합니다. 세례 요한이 회개의 열매를 맺으라고 했는 데 그 회개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땅의 나라에서 하늘의 나라로 돌이켜 하늘 나라의 법, 하늘 나라의 살아가는 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땅과는 전혀 다른 하늘 나라의 방식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우리는 하늘 나라의 방식으로 살 수 있을까요? 꼴찌가 된 사람을 데려다가 일등으로 세울 수 있습니까? 나보다 조금만 일한 사람이 똑같이 보상 받아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자신이 원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을까요? 너무 수준이 높은 것 아닌가요? 수준이 높은 것이 아니라 아예 다른 것입니다. 다른 삶의 방식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가의 문제입니다.
오래전에 방영된 TV 프로그램에 어떤 한 아버지가 나왔습니다. 그는 학교 폭력으로 자살한 아들을 둔 아버지였습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요? 그때는 20여년전이라 학교 폭력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높지 않았습니다. 경찰서나 학교에서 문제를 제대로 처리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덮으려고 하는 것을 보고 그는 실망하고 분노했습니다. 그는 빵가게로 자신을 폭행했던 아이들을 한명씩 불러내었습니다. 왜 그렇게 했는 지 따져 묻고 싶었고, 개인적으로 복수하고 한국을 떠나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빵가게로 불러낸 아이들이 떨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이 아이들은 결국 아이일 뿐이구나 미숙한 아이일 뿐이구나 깨닫고 복수의 마음을 내려놓았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비영리재단을 만들어 학교폭력방지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이 기초가 되어 학교폭력방지법도 만들어졌습니다. 그분이 크리스쳔인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이것이 하늘나라의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하늘의 나라를 상상하고 생각하고 수 많은 말로 표현했지만 잘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하늘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천국을 무엇에 비유할까” 예수님은 말씀을 통해 하늘의 나라를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하늘의 나라, 하늘의 다스림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에 있습니다. 지금 그 길이 열려 있습니다. 지금 여기로부터 시작합니다. 내가 땅의 나라에서 돌이켜 하늘의 나라를 생각하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런데 하늘나라가 사람 눈에 보입니까? 미국은 보이지만 하늘나라는 보이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하늘 나라가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땅의 나라, 사람의 나라만 있는 것 같습니다. 하늘나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땅의 나라에 숨겨져 있습니다. 땅의 일, 사람의 일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뒤에서 "찾으라." "두드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땅의 일, 사람의 일 속에 숨겨져 있는 하늘 나라를 볼 수 있을까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최근 한 2여달동안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눈먼 소경처럼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늘의 나라, 가까이 있다고 하는 데 내게는 너무나 멀게 느껴지는 하늘의 나라를 보여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상황 속에 하나님이 하고 계시는 일이 있다면 그것을 보여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는데도 자신의 미숙함을 느끼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제 마음 깊은 곳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이들의 인생을 책임져 주고 함께 하리라. 지켜주리라. 인도해주리라. 내가 네 가정을, 네 아이들을 붙들고 있다. 내가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이 아이들의 참 부모가 되시고 아이들의 삶을 불들고 다스리고 계십니다. 아이들 안에 있는 하늘의 나라를 제가 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먼 미래에 하늘의 나라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늘의 나라가 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생각해보니 하늘의 나라는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 땅의 나라의 기준으로는 제 삶 속에 있는 모순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하늘 나라를 붙들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늘 나라의 가치관, 하늘 나라의 기준으로 제 삶을 다시 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하늘 나라의 기준, 하늘 나라의 살아가는 방식을 받아들이고 지금 여기로부터 하늘 나라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여전히 하늘 나라를 잘 보지 못하는 게 많은데, 형제 자매 동역자님들께서 많이 가르쳐주십시오. 제가 잘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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