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회 2009 여름수양회 주제강의3강(출19장) 거룩한 백성 제사장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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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여름수양회 주제강의3강
말씀 출애굽기 19:1-9
요절 출애굽기 19:6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여러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시는 역사를 보면 드라마틱 하고 스택타클하고 환타스틱 합니다. 찰슨 헤스톤이 모세역을 맡고, 율브리너가 바로 역을 맡아 만든 영화, “십계” 그 영화보셨나요? 워낙 오래된 영화(1956년)라 요즘 학생들은 잘 모르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영화가 당시에는 특수효과기술이 대단한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특수효과기술이 워낙 발달해서 요즘에 이 영화를 다시 만들면 정말 멋지게 만들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이집트에 내리신 열 가지 재앙, 그리고 홍해가 갈라지는 장면,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시는 장면, 반석을 쳐서 물이 나오는 장면 등 정말 대단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더 놀라운 사실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신 하나님은 그들을 제사장나라요 거룩한 백성 삼고자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시 노예백성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 있으나 마나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있다나 쓸모없어지면 버려지는 소모품과 같은 인생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그들을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삼고자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 별로 안놀라시네요? 누군가 우리에게 와서 “당신은 세계적인 사람이 될 것입니다. 위대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시다. 이게 믿어지냐고요? 물론 이 말이 듣기는 싫지 않지만 왠지 믿어지지 않습니다. 안믿어지는데 놀랄 일도 아니죠? 여러분들이 안놀라시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누가 했느냐를 생각해 보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이 말을 그저 그런 사람이 말했다면 우린 아마도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겁니다. “니가 뭔데 니가 날 알어” ‘니가 뭔데’라는 반응은 뭡니까? 내게 그런 말 할 자격이 되느냐?는 것이죠. 곧 권위의 문제죠. 그리고 “니가 날 알어”는 뭡니까? “너 그 말 책임질 수 있어?” 곧 능력의 문제입니다. 그러면 이 말을 제일 높은 분, 영향력 있는 분이 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런 분이 누굽니까? 오바마 대통령이라고 생각해 보십시다. 이 분이 나에게 와서 이 말을 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래도 놀라지 않으시겠습니까? 나와는 상관이 없는 말이라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그렇습니다. 오늘 여러분들 말씀공부 다 잘 하셨죠. 이미 다 배워서 사실 제가 더 가르칠게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말씀을 어떻게 들어야 되겠습니까? 이 말씀을 하나님이 내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때 이 말씀이 그저 스쳐지나가는 말씀이 아니라 나의 마음에 부딪히는 말씀, 내 인생을 하나님 앞에 무릎끓게 하는 말씀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말씀을 통해 우리 각 사람을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소망을 영접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 독수리 날개로 엎어 인도하신 하나님(1-4)
1,2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이스라엘이 거기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할 때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홍해를 마른 땅 같이 건너게 하신 하나님, 애굽의 군대를 홍해 바다에 수장시키시는 하나님을 노래하고 춤추며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광야의 길을 들어서자 마자 그들의 환호는 원망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물이 없다, 양식이 없다, 우리를 이 광야에서 죽이려 하느냐?” 그들의 불평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광야의 길을 행하고 있는 그들에게는 출애굽의 환희와 감격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 속담에 “물에서 건져 놨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꼭 그런 것 같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과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였으나 광야의 길이 험하고 힘들자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불신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백성들, "노예 백성이 그렇지 뭐" 이렇게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다를까요? 제가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다가 어떤 목사님이 시내산을 다녀오신 후에 올린 후기를 보게 됐습니다. 그 목사님은 막상 광야의 길을 걸어보고 시내산을 올라가보니 어찌나 힘든지 배은망덕한 백성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이 이해가 되더라는 고백을 하시더군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온 광야의 길은 정말로 힘든 길이었습니다. 그들은 광야의 길에서 죽을 고생을 하면서 시내산에 다다르게 된 것입니다. 저는 그 분의 글을 읽으며 "우리 자신에 대해서 좀더 진실해질 필요가 있겠구나!"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의 모습, 우리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했고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우리의 심장은 뜨거웠고 예수님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직도 그 심장이 뛰시나요? 아직도 그 열정이 식지 않으셨나요? 네, 우리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구원받은 이후에 행복할 일만 있으며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는 일마다 잘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제자양성도 잘되고 시험을 보면 보는대로 합격하고 취업도 잘 되고, 직장에서 인정받고 사업도 승승장구하고, 언제나 건강하고 아이들도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공부도 잘하고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 모임이 제자양성이 잘되고 인간갈등이 없고 사랑이 넘치고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는 행복하고 싶은데요, 승리하고 싶은데요, 잘해보고 싶은데요 그런데 이런 우리의 바람과 현실은 다소 다릅니다. 그로인해 우리는 실망합니다. 우리는 의심합니다. 우리의 발걸음은 무거워지고 원망과 불평이라는 쓴뿌리들이 우리의 마음을 힘들게 합니다. 이제 뭐하라고 하면 힘든 생각부터 듭니다. 조금만 누가 요구하며 ‘울컥’ 반발심마저 생깁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형편없는 백성들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배은망덕한 사람들이라고 정죄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죽을 고생을 하며 광야의 길을 지나 시내산에 다다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3,4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하나님은 애굽의 바로와 그의 백성들을 열가지 재앙으로 심판하셨습니다. 그제서야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시고 마른 땅 같이 건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광야의 길에서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보호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습니다.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셔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의 길을 지나오는 동안 힘들다고 입이 이만큼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너희를 어떻게 인도했는지 좀 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치 독수리가 제 새끼를 날개에 업어 나는 법을 가르치듯이 그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독수리는 하늘의 제왕입니다. 이런 독수리는 새끼독수리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는데 독수리만의 특별한 방법이 있습니다. 독수리는 때가 되면 새끼 독수리를 발톱으로 잡아 올라갈 수 있는데까지 높이 올라갑니다. 그리고 새끼 독수리를 떨어뜨립니다. 그러면 새끼 독수리는 어떻게 될까요? 속절없이 추락합니다. 살아보겠다고 아무리 날개짓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직은 날개에 힘이 없고 나는 법을 알지 못하는 새끼독수리는 그냥 추락하는 것입니다. 그때 새끼 독수리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구나." 혹은 "엄마가 나를 죽이려나보다. 엄마가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새끼 독수리의 생각이 맞습니까? 어미 독수리가 정말로 새끼를 죽이려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미 독수리는 새끼 독수리를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가 이제 죽었구나 싶을 무렵 쏟살같이 날아가 새끼를 날개에 업고 다시 올라갑니다. 그리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 다시 떨어뜨립니다. 이렇게 하기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비로소 새끼 독수리는 날개에 힘을 얻고 공기의 흐름을 타고 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독수리는 이렇게 혹독한 훈련의 과정을 통해 하늘의 제왕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새끼 독수리를 하늘의 왕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 어미 독수리의 사랑입니다.
카프만 부인의 '광야의 샘'이라는 책에는 이런 경험담이 실려 있습니다. 그녀는 어느 날 누에고치를 보다가 나비가 2mm 정도 밖에 않되는 작은 구멍으로 몸부림을 치며 나오려는 것을 봤습니다. 그녀는 그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 가위로 잘라서 구멍을 넓혀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나비는 다 날아오르는데 그렇게 편안하게 나온 나비는 날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죽더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나비는 그 좁은 구멍으로 나오려고 몸부림을 치는 동안에 비로소 그 영양이 온 날개로 뻗치고 온 몸에 근육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강한 마찰과 함께 전체 체력이 강해지고서야 살아남을 수 있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를 통해 순간적으로 편한 것이 진정한 도움이 아니며 힘들고 어려워도 스스로 해야 할 일은 스스로의 힘으로 해야 함을 깨달았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박사과정을 밟던 한 분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공부하는 것을 무척이나 힘들어 했습니다. 역시나 제대로 공부 안하신 이 분은 박사논문발표를 위해 거쳐야 하는 중간보고에서 교수님들에게 개망신을 당하며 두 번이나 떨어졌습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두 번이나 혹독하게 훈련을 받으며 중간보고를 준비하면서 연구방법과 논문쓰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로인해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에도 계속하여 연구실적을 낼 수 있었고 박사과정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들을 훈련하십니다. 하나님은 훈련을 통해서 우리가 스스로의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시고 상황에 지배받지 않는 자유함을 주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독수리 날개 업음같이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죽을 것 같이 힘든 상황일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며 구원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40:31) 우리 모두가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말씀과 기도의 두 날개를 힘껏 펼쳐 하나님이 소망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 노예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소망(5-6)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하심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광야의 길을 지나온 이스라엘 백성에 그들을 택하여 부르신 목적이 무엇인지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5,6절을 보십시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첫째 그들을 제사장 나라 삼고자 하셨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중보자입니다. 제사장은 중보자로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또한 백성들의 문제를 들고 나가 중보기도를 감당합니다. 백성들은 제사장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으며 죄문제를 해결받을 수 없습니다.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그들을 통해 만백성의 구원역사를 이루시겠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그들을 만백성의 영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목자의 나라요, 성경선생의 나라로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제사장 나라가 필요한 것입니까?
5절 전반절을 다시 보십시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세계가 다 하나님의 속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만유의 주인이십니다. 이 세상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어떠합니까? 이 세상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알되 영화롭게도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이 세상은 죄악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로인해 마음에 상처를 받고 상실감에 고통하며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하기도 합니다. 저희 요회에서 성경공부를 하던 한 홍대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키도 크고 멋진 젊은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아버지로부터 충격적인 문자가 날아왔습니다. '그가 자살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가 한 자매님에게 실연을 당한 후 괴로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알았다면 그래서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그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소망이 얼마나 큰지를 알았더라면 그는 자매님에게 실연당했다고 그렇게 자신의 삶을 끝낼 수 있었을까요? 이것은 하나님을 아는 못하는 세상의 비극입니다. 이러한 비극이 이 세상에는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체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 하나님을 알게 하고 그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제사장의 직분이야 말로 아름답고 영화로운 직분인 것입니다. 한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불문학을 전공한 키 크고 멋진 젊은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많은 마음의 상처와 상실감으로 고통하며 프랑스에 가서 멋지게 자살하리라는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가 한 목자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일용할 양식을 같이 먹고 성경공부를 하는 가운데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후로 자신의 존재의미와 사명을 발견하고 변화되어 캠퍼스와 직장에서 양들을 먹이는 훌륭한 목자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은 마음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잃어버린한 영혼, 바로 그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는 것입니다. 어제 저녁에 배운 말씀인데요,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하셨습니다.(마24:14) 하나님은 이 천국의 복음, 구원의 복음이 온 세상 구석구석 전파되길 원하시며 그래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길 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시대에 복음의 제사장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이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내게 보내 주신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며 그들에게 최선을 다해 말씀을 가르치고 그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특권이며 축복입니다. 왜냐면 제사장 나라로 쓰임받는다는 것은 세계 역사의 주역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세계사를 보며 제사장 나라의 직분을 감당한 나라가 축복을 받고 세계사의 흐름을 주도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복음은 로마를 통해 세계화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하나님은 독일, 영국, 미국을 제사장 나라로 사용하셨고 지금은 동방의 작은 나라 코리아를 제사장 나라로 사용하고 계십니다. 아멘 우리나라는 과거 울밑에선 봉선화와 같이 한많고 가난하던 은둔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나라는 2008년말 통계로 미국 다음으로 많은 1만7천여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세계선교의 15%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나라를 축복하사 6.25전쟁으로 잿더미가 되었던 이 나라를 세계13위의 경제강국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임이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영접했을 때 78개국에 1,500여명의 선교사님들을 파송케 하셨습니다. 특히 올해는 유럽개척 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를 기념하는 유럽 국제수양회가 준비되고 있습니다. 한때 복음의 꽃을 피웠던 유럽대륙이 지금은 영적으로는 검은 대륙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교회 건물들이 술집으로, 모슬림 사원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유럽국제수양회를 통해 유럽대륙을 다시한번 제사장 나라로 세워주시도록 중보기도를 해야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럽수양회를 축복하사 충만한 말씀의 은혜를 주시고 유럽이 제사장 나라로 변화될 소망과 비전을 보여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소망은 우리를 제사장 나라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제사장 나라로서 우리의 사명에 대해 네비게이토 선교회 창시자인 도슨 트로트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를 알고 그를 알게 하라." 이는 제사장 나라로서 우리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제사장 나라로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그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알고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만큼 가르칠 수 있고 하나님을 아는 만큼 쓰임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제사장 나라로서 힘써 하나님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힘써 하나님을 알게 해야 되겠습니다. 우리 모두 온 세상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우리가 비록 부족하지만 나를 제사장 나라로 부르신 하나님의 소망을 영접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이 시대 하나님 구속역사의 동역자요 세계역사의 주역들로 모두 쓰임받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둘째 그들을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거룩한 백성이 되길 원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니라."(레11:45) 그 이유는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부모님들은 자녀를 보면서 기뻐합니다. 너무나 이뻐서 어쩔 줄 모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아이들이 자신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단점일지라도 닮으면 무조건 좋은 것이 부모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제 둘째 아들 노아가 요즘 유치를 갈고 있는데 유치는 가지런 했는데 아랫이빨이 빠지면서 영구치가 나오는데 삐뜷게 나왔습니다. 아내는 이것을 보고 "이상하다"고 "속상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제 아랫이빨이 삐뚫어진 것입니다. 노아가 저를 닮아서 이빨이 삐뚫게 난 것이죠. 별도 좋은 건 아니잖아요 그래도 노아가 나를 닮은 구석이 있다니 반가웠더라구요 삐뚫어진 이빨도 기뻤습니다. 그렇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거룩한 백성이 될 때 너무나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사랑하시는데 거룩한 백성이 되면 얼마나 사랑하시겠습니까? 이처럼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닮은 백성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한 백성이 될 때 심히 기뻐하시며 영광을 받으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거룩한 백성이 될 때에 비로소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신부님이 장터에 차를 세워 놓고 어린이들과 쉬는 농부들을 모아 영화를 보여주거나 간단한 마술을 하며 복음을 전하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힌두교인인 한 노인이 신부님에게 말했습니다. "신부님, 우리는 그리스도를 좋아합니다. 그를 인간적으로 또 신으로서 존경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 신자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신부님 본당 신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옥신각신 반목질시하고, 술 퍼먹고 주정 부리고 거짓말하고 그런 일이 좀 많습니까? 우리보단 낫게 살고 있달 것도 없지요."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말보다 우리의 삶에 더 큰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말씀을 잘 가르쳐도 우리의 삶이 거룩하지 못하면 우리는 그들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끼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밝힐 뿐이니라"(마5:13)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하지 못하면 이는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쓸모없는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쪽정이 같은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거룩한 백성이 제사장 나라로 쓰임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것은 소금과 같이 세상의 부패를 막고 불의와 싸워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미국은 노예제도 폐지에 찬반으로 남북이 나뉘어 발생한 남북전쟁(1861~1865)으로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 나서 노예제도를 폐지하였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남북전쟁 이전에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노예제도를 폐지하였습니다.(1807) 그 배경에는 윌리엄 월버포스라고 하는 하원의원 한 사람의 포기치 않는 거룩한 투쟁이 있었습니다. 18세기 영국의 귀족들은 노예를 아프리카에서 영국으로 옮기기 위해 ‘노예선’을 태웠습니다. 그런데 500명가량의 노예를 태우고 영국에 도착하면 살아남은 사람이 단지 200명도 채 안됐다고 합니다. 이는 노예들은 아프리카에서 영국으로 이동할 때까지 목과 팔, 다리에 쇠사슬이 채워졌고 아무 음식도 먹지 못하고 배설물도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월버포스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비인격적 대우를 당하며 노예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임을 깨닫고 노예제도폐지와 사회의 악습을 개혁하는데 일생을 바쳤습니다. 그 결과 영국은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노예무역과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위대한 역사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월버포스는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내게 영향을 준 것은 징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나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을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무시해 온 것에 대한 커다란 죄의식이다.” 이처럼 거룩한 백성은 하나님의 공의와 양심에 비추어 불의와 싸우며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소금은 맛을 내고 부패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 뿐 아니라 소금은 또 한가지 역할을 하는데 그것은 소금은 먹으면 먹을수록 갈증을 나게 합니다. 아무리 갈증이 나도 바닷물을 먹지 않는 이유는 그 안에 소금끼가 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것은 소금처럼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영적인 갈증이 나게 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가수 “션”이라고 아시죠, 저는 그에게 영향을 주었던 어떤 목사님 가정의 이야기를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 목사님 가정과 식사를 할 기회를 가졌는데 식사를 하고 난 후에 그의 아내인 정혜영 씨가 교회를 다니기 전인데도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아서 우리도 저 목사님 내외분과 같은 나이가 되면 저분들과 같이 젊은이들에게 감명을 줄 수 있는 삶을 살자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목사님 가정의 인품과 그분들의 말씀에서 큰 감명을 받은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도 그렇게 살고 싶은 갈증을 갖게 됐고 목사님 가정은 그들의 역할모델이 되어 주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것은 말씀만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삶으로 가르치는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거룩한 백성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 앞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하고 하나님께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 충신 우리아를 교살한 범죄를 범한 후에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어 고통하며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51:11)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와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백성과 함께 하십니다. 거룩한 백성을 축복하십니다.
여기 금그룻과 은그릇, 나무그릇과 질그릇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그릇을 쓰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어떤 그릇을 쓰실까요? 하나님은 깨끗한 그릇을 쓰십니다. 그것이 금그릇이든 은그릇이든, 나무그릇으든 질그릇이든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깨끗한 그릇을 쓰십니다. 디모데후서2:20,21절은 말씀합니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우리가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과 함께 하시며 거룩한 백성을 당신의 역사에 귀히 들어 쓰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거룩에 대한 열망을 주사 하나님을 닮아가게 하시며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되어 하나님의 역사에 귀히 쓰임받게 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노예백성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이는 그들을 부르신 하나님의 소망이요 비전이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우리를 복음의 제사장들이요, 이시대 거룩한 백성들로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비록 허물진 백성들이지만 하나님은 이 소망을 향해 우리를 독수리 날개 업음과 같이 우리의 인생길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위대한 사명, 위대한 변화는 아주 작은데서부터 시작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소망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내게 맡기신 한 사람을 깊이 사랑하고 말씀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한 영혼은 천하보다 귀합니다. 그가 변화되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용하실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한 영혼은 하나가 아니라 한 나라와도 같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서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한 영혼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에 도전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말씀 출애굽기 19:1-9
요절 출애굽기 19:6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여러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시는 역사를 보면 드라마틱 하고 스택타클하고 환타스틱 합니다. 찰슨 헤스톤이 모세역을 맡고, 율브리너가 바로 역을 맡아 만든 영화, “십계” 그 영화보셨나요? 워낙 오래된 영화(1956년)라 요즘 학생들은 잘 모르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영화가 당시에는 특수효과기술이 대단한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특수효과기술이 워낙 발달해서 요즘에 이 영화를 다시 만들면 정말 멋지게 만들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이집트에 내리신 열 가지 재앙, 그리고 홍해가 갈라지는 장면,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시는 장면, 반석을 쳐서 물이 나오는 장면 등 정말 대단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더 놀라운 사실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신 하나님은 그들을 제사장나라요 거룩한 백성 삼고자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시 노예백성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 있으나 마나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있다나 쓸모없어지면 버려지는 소모품과 같은 인생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그들을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삼고자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 별로 안놀라시네요? 누군가 우리에게 와서 “당신은 세계적인 사람이 될 것입니다. 위대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시다. 이게 믿어지냐고요? 물론 이 말이 듣기는 싫지 않지만 왠지 믿어지지 않습니다. 안믿어지는데 놀랄 일도 아니죠? 여러분들이 안놀라시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누가 했느냐를 생각해 보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이 말을 그저 그런 사람이 말했다면 우린 아마도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겁니다. “니가 뭔데 니가 날 알어” ‘니가 뭔데’라는 반응은 뭡니까? 내게 그런 말 할 자격이 되느냐?는 것이죠. 곧 권위의 문제죠. 그리고 “니가 날 알어”는 뭡니까? “너 그 말 책임질 수 있어?” 곧 능력의 문제입니다. 그러면 이 말을 제일 높은 분, 영향력 있는 분이 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런 분이 누굽니까? 오바마 대통령이라고 생각해 보십시다. 이 분이 나에게 와서 이 말을 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래도 놀라지 않으시겠습니까? 나와는 상관이 없는 말이라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그렇습니다. 오늘 여러분들 말씀공부 다 잘 하셨죠. 이미 다 배워서 사실 제가 더 가르칠게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말씀을 어떻게 들어야 되겠습니까? 이 말씀을 하나님이 내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때 이 말씀이 그저 스쳐지나가는 말씀이 아니라 나의 마음에 부딪히는 말씀, 내 인생을 하나님 앞에 무릎끓게 하는 말씀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말씀을 통해 우리 각 사람을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소망을 영접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 독수리 날개로 엎어 인도하신 하나님(1-4)
1,2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이스라엘이 거기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할 때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홍해를 마른 땅 같이 건너게 하신 하나님, 애굽의 군대를 홍해 바다에 수장시키시는 하나님을 노래하고 춤추며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광야의 길을 들어서자 마자 그들의 환호는 원망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물이 없다, 양식이 없다, 우리를 이 광야에서 죽이려 하느냐?” 그들의 불평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광야의 길을 행하고 있는 그들에게는 출애굽의 환희와 감격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 속담에 “물에서 건져 놨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꼭 그런 것 같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과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였으나 광야의 길이 험하고 힘들자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불신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백성들, "노예 백성이 그렇지 뭐" 이렇게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다를까요? 제가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다가 어떤 목사님이 시내산을 다녀오신 후에 올린 후기를 보게 됐습니다. 그 목사님은 막상 광야의 길을 걸어보고 시내산을 올라가보니 어찌나 힘든지 배은망덕한 백성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이 이해가 되더라는 고백을 하시더군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온 광야의 길은 정말로 힘든 길이었습니다. 그들은 광야의 길에서 죽을 고생을 하면서 시내산에 다다르게 된 것입니다. 저는 그 분의 글을 읽으며 "우리 자신에 대해서 좀더 진실해질 필요가 있겠구나!"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의 모습, 우리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했고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우리의 심장은 뜨거웠고 예수님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직도 그 심장이 뛰시나요? 아직도 그 열정이 식지 않으셨나요? 네, 우리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구원받은 이후에 행복할 일만 있으며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는 일마다 잘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제자양성도 잘되고 시험을 보면 보는대로 합격하고 취업도 잘 되고, 직장에서 인정받고 사업도 승승장구하고, 언제나 건강하고 아이들도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공부도 잘하고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 모임이 제자양성이 잘되고 인간갈등이 없고 사랑이 넘치고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는 행복하고 싶은데요, 승리하고 싶은데요, 잘해보고 싶은데요 그런데 이런 우리의 바람과 현실은 다소 다릅니다. 그로인해 우리는 실망합니다. 우리는 의심합니다. 우리의 발걸음은 무거워지고 원망과 불평이라는 쓴뿌리들이 우리의 마음을 힘들게 합니다. 이제 뭐하라고 하면 힘든 생각부터 듭니다. 조금만 누가 요구하며 ‘울컥’ 반발심마저 생깁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형편없는 백성들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배은망덕한 사람들이라고 정죄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죽을 고생을 하며 광야의 길을 지나 시내산에 다다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3,4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하나님은 애굽의 바로와 그의 백성들을 열가지 재앙으로 심판하셨습니다. 그제서야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시고 마른 땅 같이 건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광야의 길에서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보호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습니다.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셔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의 길을 지나오는 동안 힘들다고 입이 이만큼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너희를 어떻게 인도했는지 좀 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치 독수리가 제 새끼를 날개에 업어 나는 법을 가르치듯이 그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독수리는 하늘의 제왕입니다. 이런 독수리는 새끼독수리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는데 독수리만의 특별한 방법이 있습니다. 독수리는 때가 되면 새끼 독수리를 발톱으로 잡아 올라갈 수 있는데까지 높이 올라갑니다. 그리고 새끼 독수리를 떨어뜨립니다. 그러면 새끼 독수리는 어떻게 될까요? 속절없이 추락합니다. 살아보겠다고 아무리 날개짓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직은 날개에 힘이 없고 나는 법을 알지 못하는 새끼독수리는 그냥 추락하는 것입니다. 그때 새끼 독수리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구나." 혹은 "엄마가 나를 죽이려나보다. 엄마가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새끼 독수리의 생각이 맞습니까? 어미 독수리가 정말로 새끼를 죽이려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미 독수리는 새끼 독수리를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가 이제 죽었구나 싶을 무렵 쏟살같이 날아가 새끼를 날개에 업고 다시 올라갑니다. 그리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 다시 떨어뜨립니다. 이렇게 하기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비로소 새끼 독수리는 날개에 힘을 얻고 공기의 흐름을 타고 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독수리는 이렇게 혹독한 훈련의 과정을 통해 하늘의 제왕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새끼 독수리를 하늘의 왕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 어미 독수리의 사랑입니다.
카프만 부인의 '광야의 샘'이라는 책에는 이런 경험담이 실려 있습니다. 그녀는 어느 날 누에고치를 보다가 나비가 2mm 정도 밖에 않되는 작은 구멍으로 몸부림을 치며 나오려는 것을 봤습니다. 그녀는 그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 가위로 잘라서 구멍을 넓혀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나비는 다 날아오르는데 그렇게 편안하게 나온 나비는 날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죽더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나비는 그 좁은 구멍으로 나오려고 몸부림을 치는 동안에 비로소 그 영양이 온 날개로 뻗치고 온 몸에 근육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강한 마찰과 함께 전체 체력이 강해지고서야 살아남을 수 있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를 통해 순간적으로 편한 것이 진정한 도움이 아니며 힘들고 어려워도 스스로 해야 할 일은 스스로의 힘으로 해야 함을 깨달았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박사과정을 밟던 한 분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공부하는 것을 무척이나 힘들어 했습니다. 역시나 제대로 공부 안하신 이 분은 박사논문발표를 위해 거쳐야 하는 중간보고에서 교수님들에게 개망신을 당하며 두 번이나 떨어졌습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두 번이나 혹독하게 훈련을 받으며 중간보고를 준비하면서 연구방법과 논문쓰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로인해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에도 계속하여 연구실적을 낼 수 있었고 박사과정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들을 훈련하십니다. 하나님은 훈련을 통해서 우리가 스스로의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시고 상황에 지배받지 않는 자유함을 주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독수리 날개 업음같이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죽을 것 같이 힘든 상황일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며 구원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40:31) 우리 모두가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말씀과 기도의 두 날개를 힘껏 펼쳐 하나님이 소망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 노예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소망(5-6)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하심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광야의 길을 지나온 이스라엘 백성에 그들을 택하여 부르신 목적이 무엇인지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5,6절을 보십시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첫째 그들을 제사장 나라 삼고자 하셨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중보자입니다. 제사장은 중보자로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또한 백성들의 문제를 들고 나가 중보기도를 감당합니다. 백성들은 제사장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으며 죄문제를 해결받을 수 없습니다.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그들을 통해 만백성의 구원역사를 이루시겠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그들을 만백성의 영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목자의 나라요, 성경선생의 나라로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제사장 나라가 필요한 것입니까?
5절 전반절을 다시 보십시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세계가 다 하나님의 속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만유의 주인이십니다. 이 세상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어떠합니까? 이 세상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알되 영화롭게도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이 세상은 죄악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로인해 마음에 상처를 받고 상실감에 고통하며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하기도 합니다. 저희 요회에서 성경공부를 하던 한 홍대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키도 크고 멋진 젊은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아버지로부터 충격적인 문자가 날아왔습니다. '그가 자살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가 한 자매님에게 실연을 당한 후 괴로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알았다면 그래서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그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소망이 얼마나 큰지를 알았더라면 그는 자매님에게 실연당했다고 그렇게 자신의 삶을 끝낼 수 있었을까요? 이것은 하나님을 아는 못하는 세상의 비극입니다. 이러한 비극이 이 세상에는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체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 하나님을 알게 하고 그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제사장의 직분이야 말로 아름답고 영화로운 직분인 것입니다. 한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불문학을 전공한 키 크고 멋진 젊은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많은 마음의 상처와 상실감으로 고통하며 프랑스에 가서 멋지게 자살하리라는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가 한 목자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일용할 양식을 같이 먹고 성경공부를 하는 가운데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후로 자신의 존재의미와 사명을 발견하고 변화되어 캠퍼스와 직장에서 양들을 먹이는 훌륭한 목자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은 마음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잃어버린한 영혼, 바로 그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는 것입니다. 어제 저녁에 배운 말씀인데요,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하셨습니다.(마24:14) 하나님은 이 천국의 복음, 구원의 복음이 온 세상 구석구석 전파되길 원하시며 그래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길 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시대에 복음의 제사장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이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내게 보내 주신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며 그들에게 최선을 다해 말씀을 가르치고 그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특권이며 축복입니다. 왜냐면 제사장 나라로 쓰임받는다는 것은 세계 역사의 주역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세계사를 보며 제사장 나라의 직분을 감당한 나라가 축복을 받고 세계사의 흐름을 주도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복음은 로마를 통해 세계화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하나님은 독일, 영국, 미국을 제사장 나라로 사용하셨고 지금은 동방의 작은 나라 코리아를 제사장 나라로 사용하고 계십니다. 아멘 우리나라는 과거 울밑에선 봉선화와 같이 한많고 가난하던 은둔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나라는 2008년말 통계로 미국 다음으로 많은 1만7천여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세계선교의 15%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나라를 축복하사 6.25전쟁으로 잿더미가 되었던 이 나라를 세계13위의 경제강국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임이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영접했을 때 78개국에 1,500여명의 선교사님들을 파송케 하셨습니다. 특히 올해는 유럽개척 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를 기념하는 유럽 국제수양회가 준비되고 있습니다. 한때 복음의 꽃을 피웠던 유럽대륙이 지금은 영적으로는 검은 대륙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교회 건물들이 술집으로, 모슬림 사원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유럽국제수양회를 통해 유럽대륙을 다시한번 제사장 나라로 세워주시도록 중보기도를 해야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럽수양회를 축복하사 충만한 말씀의 은혜를 주시고 유럽이 제사장 나라로 변화될 소망과 비전을 보여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소망은 우리를 제사장 나라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제사장 나라로서 우리의 사명에 대해 네비게이토 선교회 창시자인 도슨 트로트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를 알고 그를 알게 하라." 이는 제사장 나라로서 우리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제사장 나라로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그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알고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만큼 가르칠 수 있고 하나님을 아는 만큼 쓰임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제사장 나라로서 힘써 하나님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힘써 하나님을 알게 해야 되겠습니다. 우리 모두 온 세상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우리가 비록 부족하지만 나를 제사장 나라로 부르신 하나님의 소망을 영접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이 시대 하나님 구속역사의 동역자요 세계역사의 주역들로 모두 쓰임받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둘째 그들을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거룩한 백성이 되길 원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니라."(레11:45) 그 이유는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부모님들은 자녀를 보면서 기뻐합니다. 너무나 이뻐서 어쩔 줄 모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아이들이 자신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단점일지라도 닮으면 무조건 좋은 것이 부모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제 둘째 아들 노아가 요즘 유치를 갈고 있는데 유치는 가지런 했는데 아랫이빨이 빠지면서 영구치가 나오는데 삐뜷게 나왔습니다. 아내는 이것을 보고 "이상하다"고 "속상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제 아랫이빨이 삐뚫어진 것입니다. 노아가 저를 닮아서 이빨이 삐뚫게 난 것이죠. 별도 좋은 건 아니잖아요 그래도 노아가 나를 닮은 구석이 있다니 반가웠더라구요 삐뚫어진 이빨도 기뻤습니다. 그렇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거룩한 백성이 될 때 너무나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사랑하시는데 거룩한 백성이 되면 얼마나 사랑하시겠습니까? 이처럼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닮은 백성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한 백성이 될 때 심히 기뻐하시며 영광을 받으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거룩한 백성이 될 때에 비로소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신부님이 장터에 차를 세워 놓고 어린이들과 쉬는 농부들을 모아 영화를 보여주거나 간단한 마술을 하며 복음을 전하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힌두교인인 한 노인이 신부님에게 말했습니다. "신부님, 우리는 그리스도를 좋아합니다. 그를 인간적으로 또 신으로서 존경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 신자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신부님 본당 신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옥신각신 반목질시하고, 술 퍼먹고 주정 부리고 거짓말하고 그런 일이 좀 많습니까? 우리보단 낫게 살고 있달 것도 없지요."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말보다 우리의 삶에 더 큰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말씀을 잘 가르쳐도 우리의 삶이 거룩하지 못하면 우리는 그들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끼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밝힐 뿐이니라"(마5:13)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하지 못하면 이는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쓸모없는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쪽정이 같은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거룩한 백성이 제사장 나라로 쓰임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것은 소금과 같이 세상의 부패를 막고 불의와 싸워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미국은 노예제도 폐지에 찬반으로 남북이 나뉘어 발생한 남북전쟁(1861~1865)으로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 나서 노예제도를 폐지하였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남북전쟁 이전에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노예제도를 폐지하였습니다.(1807) 그 배경에는 윌리엄 월버포스라고 하는 하원의원 한 사람의 포기치 않는 거룩한 투쟁이 있었습니다. 18세기 영국의 귀족들은 노예를 아프리카에서 영국으로 옮기기 위해 ‘노예선’을 태웠습니다. 그런데 500명가량의 노예를 태우고 영국에 도착하면 살아남은 사람이 단지 200명도 채 안됐다고 합니다. 이는 노예들은 아프리카에서 영국으로 이동할 때까지 목과 팔, 다리에 쇠사슬이 채워졌고 아무 음식도 먹지 못하고 배설물도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월버포스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비인격적 대우를 당하며 노예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임을 깨닫고 노예제도폐지와 사회의 악습을 개혁하는데 일생을 바쳤습니다. 그 결과 영국은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노예무역과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위대한 역사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월버포스는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내게 영향을 준 것은 징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나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을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무시해 온 것에 대한 커다란 죄의식이다.” 이처럼 거룩한 백성은 하나님의 공의와 양심에 비추어 불의와 싸우며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소금은 맛을 내고 부패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 뿐 아니라 소금은 또 한가지 역할을 하는데 그것은 소금은 먹으면 먹을수록 갈증을 나게 합니다. 아무리 갈증이 나도 바닷물을 먹지 않는 이유는 그 안에 소금끼가 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것은 소금처럼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영적인 갈증이 나게 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가수 “션”이라고 아시죠, 저는 그에게 영향을 주었던 어떤 목사님 가정의 이야기를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 목사님 가정과 식사를 할 기회를 가졌는데 식사를 하고 난 후에 그의 아내인 정혜영 씨가 교회를 다니기 전인데도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아서 우리도 저 목사님 내외분과 같은 나이가 되면 저분들과 같이 젊은이들에게 감명을 줄 수 있는 삶을 살자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목사님 가정의 인품과 그분들의 말씀에서 큰 감명을 받은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도 그렇게 살고 싶은 갈증을 갖게 됐고 목사님 가정은 그들의 역할모델이 되어 주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것은 말씀만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삶으로 가르치는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거룩한 백성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 앞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하고 하나님께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 충신 우리아를 교살한 범죄를 범한 후에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어 고통하며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51:11)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와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백성과 함께 하십니다. 거룩한 백성을 축복하십니다.
여기 금그룻과 은그릇, 나무그릇과 질그릇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그릇을 쓰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어떤 그릇을 쓰실까요? 하나님은 깨끗한 그릇을 쓰십니다. 그것이 금그릇이든 은그릇이든, 나무그릇으든 질그릇이든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깨끗한 그릇을 쓰십니다. 디모데후서2:20,21절은 말씀합니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우리가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과 함께 하시며 거룩한 백성을 당신의 역사에 귀히 들어 쓰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거룩에 대한 열망을 주사 하나님을 닮아가게 하시며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되어 하나님의 역사에 귀히 쓰임받게 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노예백성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이는 그들을 부르신 하나님의 소망이요 비전이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우리를 복음의 제사장들이요, 이시대 거룩한 백성들로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비록 허물진 백성들이지만 하나님은 이 소망을 향해 우리를 독수리 날개 업음과 같이 우리의 인생길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위대한 사명, 위대한 변화는 아주 작은데서부터 시작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소망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내게 맡기신 한 사람을 깊이 사랑하고 말씀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한 영혼은 천하보다 귀합니다. 그가 변화되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용하실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한 영혼은 하나가 아니라 한 나라와도 같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서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한 영혼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에 도전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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