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회 2007년 초평여름수양회 개회메시지-보기를 원하니이다.(막10:4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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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여름수양회 개회메시지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말씀/막10:46-52
요절/막10: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오늘 말씀에는 맹인거지 바디매오가 나옵니다. 앞 못 보는 것도 기가 막힌 일인데 길바닥에 나앉아 구걸하며 살아야 하는 바디매오는 참으로 불쌍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믿고 있었고 그의 곁을 지나가시는 예수님께 나아가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바디매오의 믿음에 감동하셨고 그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바디매오는 그 길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번 수양회에서 예수님을 만나길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 문제와 인생문제를 해결 받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바디매오와 같이 우리에게도 믿음이 필요합니다. 본문말씀을 통해 바디매오의 믿음을 배우면서 우리 각자에 필요한 믿음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영적인 방향을 잡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1.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10:46-48)
46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여리고는 예루살렘에서 20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절기 때마다 수많은 순례객들이 여리고를 거쳐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갔습니다. 때는 유대인의 최대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 때라 여리고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객들로 가득하였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나가는 길에는 걸인들이 앉아 순례객들을 대상으로 구걸하는 하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들 중에 맹인거지 바디매오가 있었습니다.
47절을 보십시오.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맹인인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고백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예수님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듣는 것뿐입니다. 백번 듣는 것이 한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속담이 있듯이 듣는 것만으로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고 고백한 것은 참으로 큰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고백한 바디매오의 믿음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바가 무엇입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입니다.(롬10장10절) 바디매오의 믿음을 통해 볼 때 믿음이란 보느냐 보지 못하느냐의 문제보다는 듣느냐 듣지 못하냐의 문제라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번 수양회에 열 개의 말씀강의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평소 일주일에 한 강의씩 공부하고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나 이번 수양회는 거의 3개월치 말씀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듣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은혜로운 인생소감, 경배와 찬양, 연극, 특송, 오케스트라 등과 같은 특별한 프로그램들이 알차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지 못하면 이 모든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수양회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한 말씀도 받지 못하고 거저 가는 사람입니다. 수양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 말씀이라도 제대로 듣고 받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아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인생문제도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함께 따라해 보겠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한 말씀이라도 제대로 듣게 하여 주옵소서.”
바디매오는 예수님께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바디매오는 앞을 못보는 데다 가족들의 돌봄을 받지 못하고 구걸하며 살아야 하니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헬렌컬러 여사는 집안 형편이 좋아서 가정교사인 설레반 여사의 도움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아무도 책임지고 돌봐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어떠한 가능성도 없었습니다. 길바닥에서 살다 죽으면 가마니에 쌓여 아무렇게나 버려질 인생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그의 인생을 불쌍히 여겨 동전을 던져주는 덕분에 그는 그럭저럭 살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동정심과 던져주는 동전 몇 푼은 그의 인생을 근본적으로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윗의 자손이라면 자신의 인생문제를 온전히 해결하실 수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그의 곁을 지나가시는 분이 ‘나사렛 예수시다.’ 라는 말을 듣자마자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외치며 예수님을 만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바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과의 만남과 구원의 역사는 저 높은 곳이 아니라 믿음만 있으며 가장 낮고 비참한 곳에도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맹인 목사로 유명하신 분인데 안 요한 목사님이라고 들어보셨나요? 그의 아버지는 목사님이시고 그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이 없다고 부인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그는 나이 37살에 그만 두 눈의 시력을 잃고 한쪽 귀의 청력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사랑하던 아내에게 버림을 받습니다. 그대 자신의 인생은 아무런 가능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하였습니다. 한번은 목을 매달았고 한 번은 칼로 사용코자 했습니다. 그러나 죽는 것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그는 인생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을 여호수아서 1:5절 말씀을 가지고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그는 이 말씀을 받고 비로소 영적인 눈을 뜨게 됐습니다. 낮은대로 임하여 그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만난 후 신학을 공부하고 맹인교회를 섬기는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가장 운명적이고 낮은 곳에 임하시는 소망의 주님이십니다.
여러분, 그러면 우리의 인생은 어떻습니까? 내일 일을 모르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자신에 대해 실망하고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힘들어 합니다.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치고 사람들의 도움에 기대고,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을 구걸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람들로는 우리의 비참한 인생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도 참으로 불쌍한 인생입니다. 그러나 더욱더 불쌍한 인생이 있으니 이는 자신의 비참한 실존을 알지 못하고 “나는 본다. 나는 부족한 것이 없다. 나는 행복하다.‘는 착각에 빠져 사는 인생입니다. 요한복음9장에는 예수님께서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를 고치신 사건이 나옵니다. 9장의 끝부분에 가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영적으로 소경된 사람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왜냐면 죄가 그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바디매오와 같이 영적으로 비참한 자신의 실존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바디매오와 같이 우리의 곁을 지나가시는 예수님께 간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이 메시야시라면 나를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예레미야서 33장3절을 말씀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를 전심으로 찾고 부르짖는 우리를 반드시 만나주시고 크고 비밀한 일을 보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2. 보기를 원하나이다.(10:48-52)
저는 바디매오의 믿음을 묵상하며 그의 믿음이 참으로 귀하고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디매오의 믿음을 좀더 상세히 배우는 가운데 이번 수양회에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과 영적인 방향이 무엇인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장애를 극복하는 믿음. 48절을 보십시오.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바디매오가 소리 지르자 사람들은 그가 동냥을 얻으려는 속셈으로 저런다고 오해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달려들어 “조용히 해, 맹인거지 주제에 어디서 소란이야”라고 말하며 핀잔을 주었습니다. 바디매오는 빌어먹는 형편에 이렇게 소란을 피우다가 그 동네에서 찍히면 빌어먹기도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비난과 오해를 받으면서까지 예수님을 만나야하나, 사람들이 이렇게 반대를 하니 단념해야하지 않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도리어 더욱 소리를 크게 소리를 지르며 예수님께 간청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 ‘예수님 나를 좀 만나주세요?’ 바디매오가 왜 이렇게 했을까요? 이는 바로 지금이 아니면 예수님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그의 절박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맹인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나중에 만나고 싶어도 찾아 나설 능력이 없습니다. 실상은 그에게 나중이라 없었습니다. 그에게 오직 지금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오직 지금뿐이라는 믿음, 그 절박함 때문에 바디매오는 사람들의 비난과 오해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수양회에 참석한 우리의 형편은 어떠합니까? 우리가 수양관에는 와 있지만 우리에게도 예수님께 나아가고자 할 때 극복해야할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수양회는 다음에도 있으니 올해는 시험에만 매진해야되지 않는가?하는 부담감이 있지만 이를 극복하고 수양회에 참석하신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분들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고 싶습니다. 우리 다 함께 격려의 박수를 보내줍시다. 어떤 분들의 건강의 문제로 힘든 분들이 있습니다. 몸이 힘들다보면 말씀에 집중하는 것도 쉽지 않은 법입니다. 수양회를 준비하시는 목자님들 중에는 준비가 부족한 것으로 마음이 눌리고 힘든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도 예수님을 만나는데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목자님들도 역사에 대한 걱정, 분주한 마음들 극복하여 온전히 말씀의 은혜를 누리실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장애물들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이는 이번 수양회가 아니면 안된다는 절박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수양회는 매년 있잖아, 이번에 말씀 못받으면 내년에 받지, 학생수양회에서 받지, 우리에게 내년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사는 것은 내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 바로 오늘입니다. 바로 지금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바로 오늘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바로 이번수양회에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절박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옆 사람과 이렇게 인사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이번 수양회에서 꼭 말씀 받읍시다. 예수님 만납시다. 아멘”
둘째, 벗어던지는 믿음. 49,5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부르신다는 말을 듣자마자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바디매오의 겉옷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겉옷은 그의 신분을 나타냅니다. 그의 겉옷은 누추하고 더러운 거지들의 옷이었습니다. 그것을 입고 있으면 단번에 그가 거지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겉옷을 뒤집어쓰고 있으면 사람들이 그를 동정하여 동전을 던져줍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그에게는 겉옷은 전 재산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겉옷을 벗어던졌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과거의 삶을 미련없이 던져 버렸음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전 인생을 던졌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미련없이 던졌다는 것은 다시 겉옷을 입지 않겠다는 결단이며 새로운 삶에 대한 열망인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만나려면 자신의 과거, 자신에게 유익하던 것들을 벗어던지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바디매오는 겉옷을 벗어던지면서 예수님이 그에게 광명을 주시고 변화되어 새 인생을 살게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바디매오를 부르신 예수님이 우리도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러 나가는데 어떻게 나아가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겉옷을 벗어 던지고 달려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벗어 던져야할 겉옷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12:1,2절은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우리가 벗어 던져야 할 겉옷은 무엇보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 문제들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는 가운데 나의 죄문제, 인생문제를 벗어버리고 나를 부르시는 주님을 향해 달려 나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되 내 인생을 던져 의탁하는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셋째, 문제를 해결받는 믿음. 5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은 바디매오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이에 바디매오는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맹인이라고 반드시 보는 것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돈도 필요하고 잘 집도 필요하고 직장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다른 무엇이 아닌 보는 것을 구했습니다. 바디매오에게는 보지 못하는 문제가 근본문제였습니다. 그는 보지 못하므로 능력을 잃어버리고 구걸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직장도 얻지 못하고 결혼도 하지 못하고 가족들과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길바닥에 나 앉은 인생이 되었습니다. 이런 그의 운명적인 인생의 문제는 보면 다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보게 되면 직장도 구할 수 있고 결혼도 하고 행복한 가정도 꾸려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디매오는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는 예수님의 물음에 자신의 근본문제의 해결을 구한 것입니다.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신 예수님은 어떤 문제든 해결해주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이 예수님은 수양회에 참석한 우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묻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 나의 근본문제가 무엇인지를 고백해야 합니다. 혹시 지금 나의 근본문제가 무엇인지 모르시는 분들은 앞으로 말씀을 공부하고 남은 강의를 들으면서 자신의 근본문제를 발견하게 될 것을 믿으시고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암환자가 병을 모르고 지내다가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하면서 병을 발견하게 되지 않습니까? 이와같이 이번 수양회를 통해 우리 모두 우리의 근본문제를 발견하고 치유되고 회복되는 은혜를 체험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넷째,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 5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바디매오의 신앙은 눈을 고침 받는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눈을 뜨자마자 주님의 길을 따라갔습니다. 바디매오의 신앙은 눈을 뜨면서부터 시작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번 수양회를 통해 반드시 우리의 근본문제를 발견하고 해결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본질은 문제만 해결받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삶의 변화가 따라가야 합니다. 따라서 이번 수양회가 예수님을 만나고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뿐 아니라 새롭게 주님의 길을 따르고자 결단하는 시간들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바디매오에게 ‘무엇하여 주시를 원하느냐?’물으셨습니다. 수양회에 참석한우리에게도 예수님은 동일한 질문을 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각자 답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믿음대로 우리가 답한 대로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바디매오에게 ‘내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번 수양회를 통해 믿음의 눈을 열어 이 땅에 나 같은 죄인을 섬기로 오신 왕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Amazing Grace의 가사와 같이 우리 모두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고백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할 렐 루 야 아 멘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51)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말씀/막10:46-52
요절/막10: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오늘 말씀에는 맹인거지 바디매오가 나옵니다. 앞 못 보는 것도 기가 막힌 일인데 길바닥에 나앉아 구걸하며 살아야 하는 바디매오는 참으로 불쌍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믿고 있었고 그의 곁을 지나가시는 예수님께 나아가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바디매오의 믿음에 감동하셨고 그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바디매오는 그 길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번 수양회에서 예수님을 만나길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 문제와 인생문제를 해결 받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바디매오와 같이 우리에게도 믿음이 필요합니다. 본문말씀을 통해 바디매오의 믿음을 배우면서 우리 각자에 필요한 믿음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영적인 방향을 잡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1.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10:46-48)
46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여리고는 예루살렘에서 20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절기 때마다 수많은 순례객들이 여리고를 거쳐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갔습니다. 때는 유대인의 최대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 때라 여리고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객들로 가득하였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나가는 길에는 걸인들이 앉아 순례객들을 대상으로 구걸하는 하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들 중에 맹인거지 바디매오가 있었습니다.
47절을 보십시오.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맹인인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고백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예수님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듣는 것뿐입니다. 백번 듣는 것이 한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속담이 있듯이 듣는 것만으로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고 고백한 것은 참으로 큰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고백한 바디매오의 믿음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바가 무엇입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입니다.(롬10장10절) 바디매오의 믿음을 통해 볼 때 믿음이란 보느냐 보지 못하느냐의 문제보다는 듣느냐 듣지 못하냐의 문제라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번 수양회에 열 개의 말씀강의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평소 일주일에 한 강의씩 공부하고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나 이번 수양회는 거의 3개월치 말씀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듣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은혜로운 인생소감, 경배와 찬양, 연극, 특송, 오케스트라 등과 같은 특별한 프로그램들이 알차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지 못하면 이 모든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수양회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한 말씀도 받지 못하고 거저 가는 사람입니다. 수양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 말씀이라도 제대로 듣고 받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아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인생문제도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함께 따라해 보겠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한 말씀이라도 제대로 듣게 하여 주옵소서.”
바디매오는 예수님께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바디매오는 앞을 못보는 데다 가족들의 돌봄을 받지 못하고 구걸하며 살아야 하니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헬렌컬러 여사는 집안 형편이 좋아서 가정교사인 설레반 여사의 도움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아무도 책임지고 돌봐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어떠한 가능성도 없었습니다. 길바닥에서 살다 죽으면 가마니에 쌓여 아무렇게나 버려질 인생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그의 인생을 불쌍히 여겨 동전을 던져주는 덕분에 그는 그럭저럭 살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동정심과 던져주는 동전 몇 푼은 그의 인생을 근본적으로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윗의 자손이라면 자신의 인생문제를 온전히 해결하실 수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그의 곁을 지나가시는 분이 ‘나사렛 예수시다.’ 라는 말을 듣자마자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외치며 예수님을 만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바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과의 만남과 구원의 역사는 저 높은 곳이 아니라 믿음만 있으며 가장 낮고 비참한 곳에도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맹인 목사로 유명하신 분인데 안 요한 목사님이라고 들어보셨나요? 그의 아버지는 목사님이시고 그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이 없다고 부인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그는 나이 37살에 그만 두 눈의 시력을 잃고 한쪽 귀의 청력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사랑하던 아내에게 버림을 받습니다. 그대 자신의 인생은 아무런 가능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하였습니다. 한번은 목을 매달았고 한 번은 칼로 사용코자 했습니다. 그러나 죽는 것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그는 인생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을 여호수아서 1:5절 말씀을 가지고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그는 이 말씀을 받고 비로소 영적인 눈을 뜨게 됐습니다. 낮은대로 임하여 그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만난 후 신학을 공부하고 맹인교회를 섬기는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가장 운명적이고 낮은 곳에 임하시는 소망의 주님이십니다.
여러분, 그러면 우리의 인생은 어떻습니까? 내일 일을 모르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자신에 대해 실망하고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힘들어 합니다.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치고 사람들의 도움에 기대고,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을 구걸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람들로는 우리의 비참한 인생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도 참으로 불쌍한 인생입니다. 그러나 더욱더 불쌍한 인생이 있으니 이는 자신의 비참한 실존을 알지 못하고 “나는 본다. 나는 부족한 것이 없다. 나는 행복하다.‘는 착각에 빠져 사는 인생입니다. 요한복음9장에는 예수님께서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를 고치신 사건이 나옵니다. 9장의 끝부분에 가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영적으로 소경된 사람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왜냐면 죄가 그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바디매오와 같이 영적으로 비참한 자신의 실존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바디매오와 같이 우리의 곁을 지나가시는 예수님께 간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이 메시야시라면 나를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예레미야서 33장3절을 말씀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를 전심으로 찾고 부르짖는 우리를 반드시 만나주시고 크고 비밀한 일을 보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2. 보기를 원하나이다.(10:48-52)
저는 바디매오의 믿음을 묵상하며 그의 믿음이 참으로 귀하고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디매오의 믿음을 좀더 상세히 배우는 가운데 이번 수양회에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과 영적인 방향이 무엇인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장애를 극복하는 믿음. 48절을 보십시오.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바디매오가 소리 지르자 사람들은 그가 동냥을 얻으려는 속셈으로 저런다고 오해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달려들어 “조용히 해, 맹인거지 주제에 어디서 소란이야”라고 말하며 핀잔을 주었습니다. 바디매오는 빌어먹는 형편에 이렇게 소란을 피우다가 그 동네에서 찍히면 빌어먹기도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비난과 오해를 받으면서까지 예수님을 만나야하나, 사람들이 이렇게 반대를 하니 단념해야하지 않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도리어 더욱 소리를 크게 소리를 지르며 예수님께 간청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 ‘예수님 나를 좀 만나주세요?’ 바디매오가 왜 이렇게 했을까요? 이는 바로 지금이 아니면 예수님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그의 절박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맹인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나중에 만나고 싶어도 찾아 나설 능력이 없습니다. 실상은 그에게 나중이라 없었습니다. 그에게 오직 지금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오직 지금뿐이라는 믿음, 그 절박함 때문에 바디매오는 사람들의 비난과 오해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수양회에 참석한 우리의 형편은 어떠합니까? 우리가 수양관에는 와 있지만 우리에게도 예수님께 나아가고자 할 때 극복해야할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수양회는 다음에도 있으니 올해는 시험에만 매진해야되지 않는가?하는 부담감이 있지만 이를 극복하고 수양회에 참석하신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분들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고 싶습니다. 우리 다 함께 격려의 박수를 보내줍시다. 어떤 분들의 건강의 문제로 힘든 분들이 있습니다. 몸이 힘들다보면 말씀에 집중하는 것도 쉽지 않은 법입니다. 수양회를 준비하시는 목자님들 중에는 준비가 부족한 것으로 마음이 눌리고 힘든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도 예수님을 만나는데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목자님들도 역사에 대한 걱정, 분주한 마음들 극복하여 온전히 말씀의 은혜를 누리실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장애물들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이는 이번 수양회가 아니면 안된다는 절박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수양회는 매년 있잖아, 이번에 말씀 못받으면 내년에 받지, 학생수양회에서 받지, 우리에게 내년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사는 것은 내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 바로 오늘입니다. 바로 지금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바로 오늘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바로 이번수양회에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절박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옆 사람과 이렇게 인사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이번 수양회에서 꼭 말씀 받읍시다. 예수님 만납시다. 아멘”
둘째, 벗어던지는 믿음. 49,5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부르신다는 말을 듣자마자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바디매오의 겉옷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겉옷은 그의 신분을 나타냅니다. 그의 겉옷은 누추하고 더러운 거지들의 옷이었습니다. 그것을 입고 있으면 단번에 그가 거지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겉옷을 뒤집어쓰고 있으면 사람들이 그를 동정하여 동전을 던져줍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그에게는 겉옷은 전 재산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겉옷을 벗어던졌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과거의 삶을 미련없이 던져 버렸음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전 인생을 던졌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미련없이 던졌다는 것은 다시 겉옷을 입지 않겠다는 결단이며 새로운 삶에 대한 열망인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만나려면 자신의 과거, 자신에게 유익하던 것들을 벗어던지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바디매오는 겉옷을 벗어던지면서 예수님이 그에게 광명을 주시고 변화되어 새 인생을 살게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바디매오를 부르신 예수님이 우리도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러 나가는데 어떻게 나아가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겉옷을 벗어 던지고 달려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벗어 던져야할 겉옷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12:1,2절은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우리가 벗어 던져야 할 겉옷은 무엇보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 문제들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는 가운데 나의 죄문제, 인생문제를 벗어버리고 나를 부르시는 주님을 향해 달려 나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되 내 인생을 던져 의탁하는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셋째, 문제를 해결받는 믿음. 5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은 바디매오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이에 바디매오는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맹인이라고 반드시 보는 것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돈도 필요하고 잘 집도 필요하고 직장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다른 무엇이 아닌 보는 것을 구했습니다. 바디매오에게는 보지 못하는 문제가 근본문제였습니다. 그는 보지 못하므로 능력을 잃어버리고 구걸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직장도 얻지 못하고 결혼도 하지 못하고 가족들과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길바닥에 나 앉은 인생이 되었습니다. 이런 그의 운명적인 인생의 문제는 보면 다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보게 되면 직장도 구할 수 있고 결혼도 하고 행복한 가정도 꾸려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디매오는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는 예수님의 물음에 자신의 근본문제의 해결을 구한 것입니다.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신 예수님은 어떤 문제든 해결해주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이 예수님은 수양회에 참석한 우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묻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 나의 근본문제가 무엇인지를 고백해야 합니다. 혹시 지금 나의 근본문제가 무엇인지 모르시는 분들은 앞으로 말씀을 공부하고 남은 강의를 들으면서 자신의 근본문제를 발견하게 될 것을 믿으시고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암환자가 병을 모르고 지내다가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하면서 병을 발견하게 되지 않습니까? 이와같이 이번 수양회를 통해 우리 모두 우리의 근본문제를 발견하고 치유되고 회복되는 은혜를 체험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넷째,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 5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바디매오의 신앙은 눈을 고침 받는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눈을 뜨자마자 주님의 길을 따라갔습니다. 바디매오의 신앙은 눈을 뜨면서부터 시작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번 수양회를 통해 반드시 우리의 근본문제를 발견하고 해결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본질은 문제만 해결받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삶의 변화가 따라가야 합니다. 따라서 이번 수양회가 예수님을 만나고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뿐 아니라 새롭게 주님의 길을 따르고자 결단하는 시간들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바디매오에게 ‘무엇하여 주시를 원하느냐?’물으셨습니다. 수양회에 참석한우리에게도 예수님은 동일한 질문을 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각자 답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믿음대로 우리가 답한 대로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바디매오에게 ‘내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번 수양회를 통해 믿음의 눈을 열어 이 땅에 나 같은 죄인을 섬기로 오신 왕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Amazing Grace의 가사와 같이 우리 모두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고백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할 렐 루 야 아 멘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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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a/message1/2007년여름수양회개회메시지_보기를_원하나이다.hwp (0byte)
117회 다운로드 | DATE : 2007-07-25 14:3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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