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회 2005년 봄수양회 둘째날 저녁강의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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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봄수양회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말씀/창14:1-15:21
요절/창15: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문제에 눌러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아브람을 심방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어두운 방에서 데리고 나가 그에게 두신 하나님의 원대한 비젼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도 우리 각자에게 두신 그리고 우리 공동체에 두신 하나님의 원대한 비젼을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어려운 현실과 자기 문제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비젼을 이루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아브람에게 승리를 주신 하나님 (14장)
14장에 나오는 정치적 상황은 아브람 당시 국제 정세가 얼마나 복잡하고 불안했는가 보여줍니다.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엘람 왕 그돌라오멜이 패권을 잡고 맹주 노릇을 하고 있었고 다른 나라들은 그에게 조공을 바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제 13년에 기근으로 인한 어려움 때문인지 소돔과 고모라를 비롯한 사해 연안 5개 동맹국들이 그돌라오멜을 배반하였습니다. 그러자 제 십사 년에 그돌라오멜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동맹국들을 이끌고 소돔 지역 5개 동맹국들을 치고자 내려왔습니다. 그돌라오멜 동맹군들은 먼저 가나안 북부 지역의 여러 가나안 족속들을 친 후 계속 남진하여 마침내 싯딤 골짜기에서 소돔 지역 5개 동맹국들과 일전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이 전쟁에서 소돔 지역 5개 동맹국들이 패하였고 그돌라오멜은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다 빼앗아 갔습니다. 이 때 소돔에 거하던 롯도 사로잡히고 재물도 약탈당했습니다. 물질만 좇아 갔던 롯은 자신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하루 아침에 모든 재산을 잃고 비참한 노예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도망 나온 한 사람을 통해서 아브람은 이 모든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때 아브람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아브람은 롯 때문에 마음 고생했던 것을 생각하며 자기 욕심 대로만 행하더니 꼴 좋네. 고생 좀 해 봐라 하며 그냥 내버려 두었습니까? 아닙니다. 14,15절을 보십시오.(화랑) “아브람이 그 조카의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삼백 십 팔 인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아브람은 조카 롯이 사로잡혔음을 듣자 마자 집에서 길렸던 목동 318명을 이끌고 단까지 쫓아가 야간기습작전을 통해 그돌라오멜 동맹군을 물리쳤습니다. 그리고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부녀와 인민을 다 찾아 왔습니다. // 아브람은 본래 목축을 하는 목자요 싸움에 연단된 용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작은 한 부족의 족장에 불과하고 상대는 거대한 4개국 연합군이었습니다. 한 부족이 큰 연합군에 대항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롯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과 가족의 생명과 부족의 모든 것을 걸고 이 전쟁에 참전하였습니다. 아브람이 어떻게 자기 자식도 아닌, 이기적인 롯을 위해서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이는 그에게 아버지를 일찍 여윈 조카 롯에 대한 아비의 심정, 목자의 심정이 충만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을 보호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는 애굽 왕에게서 자신을 보호하시고 지켜주신 하나님이 지금도 함께 하셔서 막강한 연합군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주시리라 믿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롯에 대한 상한 목자의 심정 때문에 아브람은 무모한 전쟁을 감행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믿음과 목자의 심정을 받으시고 막강한 그돌라오멜 연합군을 그의 손에 붙이사 승리케 하셨습니다. 그의 믿음과 목자의 심정이 전쟁사에 길이 남을 기적을 낳았습니다. 아브람이 조금만 실리를 생각하였다면, 또 합리적으로 생각했다면 그는 이 전쟁에 참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단에게 물려가는 양들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가 교훈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합리적인 생각 가운데 어쩔 수 없지 않는가 생각하고 포기한다면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지도 못하고 또 생명구원역사에 쓰임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합리적인 생각으로 역사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비합리적일지라도 믿음의 생각으로 역사를 섬기는 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아브람과 같은 절대적인 믿음과 상한 목자의 심정을 충만히 허락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저희를 통해 사단에게 물려가는 양들의 생명을 구원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8-20절을 보십시오. 아브람이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이 나아와 전쟁의 승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음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이를 통해 승리의 때에 교만하여 자기 영광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도록 도왔습니다. 아브람은 멜기세덱에게 그 얻은 것의 십분 일을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승리임을 인정하고 감사드렸습니다. 소돔 왕은 아브람에게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 하였습니다. 아브람은 전쟁에서 소비한 물질을 보충하기 위해 얼마든지 전리품을 취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믿었기에 이를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
II.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15장)
15:1절을 보십시오.(동교)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하신 것을 볼 때, 아브람은 지금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아브람은 전쟁에서 막상 이겨 놓고 보니 자신이 그 막강한 연합군을 어떻게 이겼는지 어리벙벙하였습니다. 시간이 가면서 현실감을 갖게 되자 점점 겁이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만약 그돌라오멜의 귀에 아브람이란 자가 전쟁의 '전'자도 모르는 늙은이고 목동 촌놈 318명만 데리고 있다는 사실이 들어간다면 그돌라오멜 왕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당장 쳐들어 올 것입니다. 언제 복수의 칼날을 들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브람은 깊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전쟁을 치르느라 물질적 손해도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으로 전리품을 다 거절했을 때는 자신이 생각해도 멋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그의 형편은 상처 뿐인 영광이었습니다. 쪼들리게 되자, 소돔 왕이 준다 할 때 슬쩍 받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고 믿음으로 거절한 것이 후회가 되었습니다. //또한 목숨 바쳐 구해준 롯은 인사만 까딱하고는 소돔으로 돌아 가버렸습니다. 318명의 목동들은 전쟁 후 아프다, 다쳤다, 쉬겠다 하며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고 이제껏 조용히 옆에서 격려 하던 사래도 몸살이 나서 누워버렸습니다. 오직 다메섹 엘리에셀만 변함없이 아침 저녁 문안 인사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보니 열심히 믿음으로 살았는데, 해결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상황은 더 어려워 졌고 마침내 아브람도 누워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람을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하나님은 지금까지는 아브람의 실제적인 문제에 개입하셔서 구체적으로 해결해 주셨습니다. 애굽 왕에게 사래를 빼앗겼을 때는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셔서 바로에게 재앙을 내리셔서 지켜주셨을 뿐만 아니라 육축과 은금도 풍부하게 더 해 주셨습니다. 또한 그돌라오멜 연합군과의 무모한 전쟁에서도 큰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구체적으로 보이는 것을 주시지 않으시고 말씀만 주셨습니다. 사실 현실 문제만 계속 도와준다면 이는 끝이 없습니다. 일생 쫓아다니며 뒤치닥거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가 하나님을 바라보므로 어떤 현실문제 앞에서도 요동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제 방법을 바꾸십니다. 하나님은 현실문제를 바로 해결해주기 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도록 도우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얻을 때, 문제가 있을지라도 요동하지 않고 삶에 여유가 생기게 되며 또한 모든 것을 얻게 됩니다.
1절을 다시 보십시오.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은 아무 것도 주시지 않으시고 그저 '내가 방패요 내가 상급이라'고 말씀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방패가 되어 적들을 다 막아 주시고 하나님께서 상급이 되셔서 하나님 자신을 주시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방패요 상급되신 하나님을 바라보므로 다시 믿음을 회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2절을 보십시오.(화랑)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말씀으로 돕고자 하셨지만,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상급이라 말씀하시자, 아브람은 즉시 상속자 문제로 하나님께 따졌습니다. 아브람의 진짜 문제는 바로 상속자 문제였습니다. 이 문제는 아브람에게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인생문제였습니다. 아브람이 지금까지 친구 하나 없는 이방 땅에서 외로운 믿음의 투쟁을 한 것도 상속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람은 지금까지 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하면서 사라의 배를 힐끗힐끗 곁눈질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징후가 없었습니다. 아기가 생기면 밥맛이 없다 던데 사라는 밥만 잘 먹었습니다. 하루는 사라가 '억-, 억-'해서 기쁜 소식이 있는지 알았는데 너무 많이 먹어서 배탈이 난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씨를 안 주시니 현실성 없어 보이는 약속만 붙들고 살 수 없고 차선책으로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정할 수 밖에 없다고 통고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람을 계속해서 말씀으로 도우셨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동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너의 후사가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아브람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이 그의 후사가 될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좁고 어두운 장막에서 한숨 쉬고 있는 아브람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나님은 아브람이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서울 밤하늘은 공해가 심해서 별을 보기가 어렵지만, 아브람 당시는 완전 무공해 시대여서 아브람이 본 하늘은 오늘날과 훨씬 달랐습니다. 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그 하늘에는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 아브람은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별들을 하나 하나 세어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뭇별들을 지으신 무한하신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뭇 별들이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과 지혜를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현실문제에 빠져서 아브람이 잊고 지냈던 세계였습니다. 세상과 현실을 초월한 세계요,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능력의 세계였습니다. 아브람이 뭇별을 보며 '와!' 하며 탄성을 지를 때, 하나님의 음성이 속삭이듯 들려 왔습니다.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멘! 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아브람은 믿음을 잃고 집에서 키운 종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생각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아브람을 통해 저 밤하늘의 반짝이는 뭇별 같은 후손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내가 내 인생의 장래를 위하여 생각하고 계획하고 준비하고 있는 것이 겨우 엘리에셀 정도라면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생각하시고 계획하시고 준비하고 계신 것은 하늘의 뭇별 수준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55:8,9은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자 아브람의 반응이 무엇이었습니까? 6a절을 보십시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꽉 막혀 있던 그가 이제야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아브람은 286 컴퓨터 같은 머리로 하나님의 권능을 불신하고 자기 계획을 고집하며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뭇별들을 헤아리는 가운데 창조주 하나님, 권능과 지혜의 하나님, 지금도 창조하신 세계를 운행하고 계신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 때, 자신의 문제가 하나님께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압도되어 하나님을 믿었을 때 현실적인 그의 문제가 당장 변한 것은 없지만, 그를 지배하던 두려움과 염려, 손해의식, 불평과 원망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현실 때문에 어두웠던 아브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약속은 다시 별빛 처럼 반짝거렸습니다.
6절을 다시 보십시오.(화랑)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은 이제껏 반발하던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을 단순히 영접하자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의로 여기셨다'는 것은 의롭지 못한 자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신다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은 아브람에게서 현실을 무시한 채 열광적으로 믿는 광신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맹목적으로 믿는 맹신을 원한 것도 아닙니다. 이 믿음은 또 이렇게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확률도 아닙니다. // 하나님은 아브람이 지금까지 그와 함께 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가운데, 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깊이 인식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믿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믿음은 현실을 못 본채 하거나 과소평가하지 않고 현실을 하나님의 약속에 비추어서 곰곰히 생각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그냥 믿어 봐, 일단 믿어 봐’ 하지 않으셨습니다. 처음에는 그의 현실 문제를 직접 도우시므로,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뭇 별들을 보여 주시므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인식시키셨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 가운데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약속하신 말씀을 신실히 이루실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믿음을 기초로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셨습니다. 아브람은 많은 일을 하거나 업적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아브람 역시 허물이 많은 사람이었고 행위로 한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직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 인정하시고 복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도 우리가 큰 업적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아브람과 같이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믿음을 심는 것으로 끝나지 않으시고 먼 훗날에 있을 일들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그에게 주어 업을 삼게 하시려고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내셨다고 하심으로 땅에 대한 약속을 다시 하셨습니다. 18-21절에서는 하나님은 장차 주실 땅을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주시므로 아브람이 구체적인 믿음을 가지도록 도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증표를 요구하는 아브람과 땅에 대한 계약을 체결하셨습니다. 9,10절에 나오는 장면들은 고대 계약을 체결하는 형식으로서 그 짐승의 중간을 쪼개는 것은 만약 계약을 어기는 경우 이와 같이 쪼갬을 당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과 땅에 대한 계약을 체결하시면서 먼 훗날에 있을 일을 알려 주시므로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을 말씀하셨습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동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400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찌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아브람의 관심은 자신의 당대에 상속자 하나를 얻고, 기업의 땅을 얻어서 자신의 노후나 마음 편히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아브람에게 이삭과 야곱, 요셉 그리고 애굽 생활 400년을 거쳐 약속의 땅으로 나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식 하나 붙잡고 있는 아브람에게 뭇별과 같은 자식을 보도록 하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모두 625년이나 되는 먼 후대의 역사까지 바라보게 하심으로 그의 좁은 마음을 넓히셨고 역사의식을 심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좁은 마음을 버리고 우주와 같은 넓은 마음을 가지기 원하셨습니다. 코 앞에 현실을 넘어 600년을 내다 보는 큰 꿈을 가지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몇 백 년 후의 일을 생각하며 나 한 사람을 훈련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를 생각하고 역사의식을 가질 때 우리는 어려운 현실문제에 매여 현세적인 유익만 좇지 않게 됩니다. 현실이 어려울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섬기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원대한 비젼 가운데 아브람을 부르셨던 하나님은 이 시대 우리들도 놀라운 뜻 가운데 믿음의 세계로 부르셨습니다. 특별히 우리들을 죄와 허무 가운데 고통하는 캠퍼스 영혼들을 구원하는, 가장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을 살도록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 무수히 많은 영혼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역사를 이루고자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실 놀라운 역사를 기대하며 우리는 시간과 물질을 드려가며 영혼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비젼과 현실은 너무나 다름을 봅니다. 캠퍼스 문화는 점점 더 세속화, 개인주의화, 다원화되어 가고 대학생들은 취업 문제 등 눈앞의 어려운 현실문제에만 매여 영적인 것에는 무관심합니다. 청년 실업자가 100만명을 넘어서는 현실속에서 학생들은 비젼을 잃고 이 땅에서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여 있습니다. 현실이 어렵다 보니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보다 현실에 안주하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동아리도 재테크, 부자 만들기 동아리 같은 실용적인 동아리에는 새내기들이 넘쳐나지만, 봉사 활동을 하는 동아리들은 사람이 없어 문을 닫을 지경이라는 것이 이런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가장 가치 있는 삶,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도록 열심히 말씀을 전해도 예전과는 달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영혼들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힘써 영혼들을 말씀으로 섬겼는데도, 하나님께 돌아오는 이들이 별로 없을 때, 우리의 모든 수고가 헛된 것처럼 생각됩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살았는데도, 취업이 잘 안되고 승진에서 누락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면 믿음에 회의가 듭니다. 아브람과 같이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하며 하나님을 불신하고 원망하며 이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뒤로 하고 세상 사람들과 같이 자기 계획대로 살고자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 말씀에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생각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무 것도 없는 빈 하늘에 셀 수 없이 많은 뭇 별들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에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한 명의 신실한 양을 얻는 것만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뭇 별과 같은 많은 영적인 자손을 생각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자신의 현실문제, 인생문제 해결만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과 모든 것을 주시고자 생각하고 계십니다. 우리 학생들은 어려운 현실로 인해 내 코가 석자다 하며 자신만 생각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우리 학생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나누어 주는 복의 근원이 되는 것을 생각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어려운 현실과 부족한 자신만 볼 때, 이를 기대할 수 없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이를 꿈꿀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을 때, 자신의 여러 문제 앞에서 조급해 지지 않고 조용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가운데, 성급한 생각,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100년 500년 앞을 내다보며 하나님께 기대하고 기도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비젼을 능히 이루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조용히 기다릴 때,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 인정하시고 친히 우리를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제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새롭게 인식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셀 수 없는 무수히 많은 별들을 만드시고 공중에 매달아 놓고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게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또 몇 백년 후의 일까지 생각하시며 죄인을 훈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이 하나님을 생각할 때 조급하지 않고 조용히 기도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마음을 들여 섬기던 영혼들이 다 떠나버린 상태에서도 하나님께 새 역사를 기대하며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또 말씀을 묵상하며 뭇 별에 대한 비젼은 아브람에게 준 것이지 나에게 준 것이 아니지 않는가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두신 비젼이 무엇인지 묻고 기도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제가 하나님을 믿고 조용히 기도하는 삶을 살 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보여주셨습니다. 요14:2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막11:22-24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을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저와 우리 각 사람을 통해서 놀라운 일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비젼을 품고 말씀을 믿는 가운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간절히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제가 하나님의 비젼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현재적으로 제게 주신 십자가를 충성스럽게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현실문제에 매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비젼을 꿈꾸며 이루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말씀/창14:1-15:21
요절/창15: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문제에 눌러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아브람을 심방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어두운 방에서 데리고 나가 그에게 두신 하나님의 원대한 비젼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도 우리 각자에게 두신 그리고 우리 공동체에 두신 하나님의 원대한 비젼을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어려운 현실과 자기 문제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비젼을 이루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아브람에게 승리를 주신 하나님 (14장)
14장에 나오는 정치적 상황은 아브람 당시 국제 정세가 얼마나 복잡하고 불안했는가 보여줍니다.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엘람 왕 그돌라오멜이 패권을 잡고 맹주 노릇을 하고 있었고 다른 나라들은 그에게 조공을 바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제 13년에 기근으로 인한 어려움 때문인지 소돔과 고모라를 비롯한 사해 연안 5개 동맹국들이 그돌라오멜을 배반하였습니다. 그러자 제 십사 년에 그돌라오멜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동맹국들을 이끌고 소돔 지역 5개 동맹국들을 치고자 내려왔습니다. 그돌라오멜 동맹군들은 먼저 가나안 북부 지역의 여러 가나안 족속들을 친 후 계속 남진하여 마침내 싯딤 골짜기에서 소돔 지역 5개 동맹국들과 일전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이 전쟁에서 소돔 지역 5개 동맹국들이 패하였고 그돌라오멜은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다 빼앗아 갔습니다. 이 때 소돔에 거하던 롯도 사로잡히고 재물도 약탈당했습니다. 물질만 좇아 갔던 롯은 자신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하루 아침에 모든 재산을 잃고 비참한 노예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도망 나온 한 사람을 통해서 아브람은 이 모든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때 아브람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아브람은 롯 때문에 마음 고생했던 것을 생각하며 자기 욕심 대로만 행하더니 꼴 좋네. 고생 좀 해 봐라 하며 그냥 내버려 두었습니까? 아닙니다. 14,15절을 보십시오.(화랑) “아브람이 그 조카의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삼백 십 팔 인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아브람은 조카 롯이 사로잡혔음을 듣자 마자 집에서 길렸던 목동 318명을 이끌고 단까지 쫓아가 야간기습작전을 통해 그돌라오멜 동맹군을 물리쳤습니다. 그리고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부녀와 인민을 다 찾아 왔습니다. // 아브람은 본래 목축을 하는 목자요 싸움에 연단된 용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작은 한 부족의 족장에 불과하고 상대는 거대한 4개국 연합군이었습니다. 한 부족이 큰 연합군에 대항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롯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과 가족의 생명과 부족의 모든 것을 걸고 이 전쟁에 참전하였습니다. 아브람이 어떻게 자기 자식도 아닌, 이기적인 롯을 위해서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이는 그에게 아버지를 일찍 여윈 조카 롯에 대한 아비의 심정, 목자의 심정이 충만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을 보호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는 애굽 왕에게서 자신을 보호하시고 지켜주신 하나님이 지금도 함께 하셔서 막강한 연합군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주시리라 믿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롯에 대한 상한 목자의 심정 때문에 아브람은 무모한 전쟁을 감행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믿음과 목자의 심정을 받으시고 막강한 그돌라오멜 연합군을 그의 손에 붙이사 승리케 하셨습니다. 그의 믿음과 목자의 심정이 전쟁사에 길이 남을 기적을 낳았습니다. 아브람이 조금만 실리를 생각하였다면, 또 합리적으로 생각했다면 그는 이 전쟁에 참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단에게 물려가는 양들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가 교훈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합리적인 생각 가운데 어쩔 수 없지 않는가 생각하고 포기한다면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지도 못하고 또 생명구원역사에 쓰임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합리적인 생각으로 역사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비합리적일지라도 믿음의 생각으로 역사를 섬기는 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아브람과 같은 절대적인 믿음과 상한 목자의 심정을 충만히 허락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저희를 통해 사단에게 물려가는 양들의 생명을 구원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8-20절을 보십시오. 아브람이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이 나아와 전쟁의 승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음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이를 통해 승리의 때에 교만하여 자기 영광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도록 도왔습니다. 아브람은 멜기세덱에게 그 얻은 것의 십분 일을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승리임을 인정하고 감사드렸습니다. 소돔 왕은 아브람에게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 하였습니다. 아브람은 전쟁에서 소비한 물질을 보충하기 위해 얼마든지 전리품을 취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믿었기에 이를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
II.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15장)
15:1절을 보십시오.(동교)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하신 것을 볼 때, 아브람은 지금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아브람은 전쟁에서 막상 이겨 놓고 보니 자신이 그 막강한 연합군을 어떻게 이겼는지 어리벙벙하였습니다. 시간이 가면서 현실감을 갖게 되자 점점 겁이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만약 그돌라오멜의 귀에 아브람이란 자가 전쟁의 '전'자도 모르는 늙은이고 목동 촌놈 318명만 데리고 있다는 사실이 들어간다면 그돌라오멜 왕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당장 쳐들어 올 것입니다. 언제 복수의 칼날을 들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브람은 깊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전쟁을 치르느라 물질적 손해도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으로 전리품을 다 거절했을 때는 자신이 생각해도 멋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그의 형편은 상처 뿐인 영광이었습니다. 쪼들리게 되자, 소돔 왕이 준다 할 때 슬쩍 받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고 믿음으로 거절한 것이 후회가 되었습니다. //또한 목숨 바쳐 구해준 롯은 인사만 까딱하고는 소돔으로 돌아 가버렸습니다. 318명의 목동들은 전쟁 후 아프다, 다쳤다, 쉬겠다 하며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고 이제껏 조용히 옆에서 격려 하던 사래도 몸살이 나서 누워버렸습니다. 오직 다메섹 엘리에셀만 변함없이 아침 저녁 문안 인사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보니 열심히 믿음으로 살았는데, 해결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상황은 더 어려워 졌고 마침내 아브람도 누워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람을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하나님은 지금까지는 아브람의 실제적인 문제에 개입하셔서 구체적으로 해결해 주셨습니다. 애굽 왕에게 사래를 빼앗겼을 때는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셔서 바로에게 재앙을 내리셔서 지켜주셨을 뿐만 아니라 육축과 은금도 풍부하게 더 해 주셨습니다. 또한 그돌라오멜 연합군과의 무모한 전쟁에서도 큰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구체적으로 보이는 것을 주시지 않으시고 말씀만 주셨습니다. 사실 현실 문제만 계속 도와준다면 이는 끝이 없습니다. 일생 쫓아다니며 뒤치닥거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가 하나님을 바라보므로 어떤 현실문제 앞에서도 요동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제 방법을 바꾸십니다. 하나님은 현실문제를 바로 해결해주기 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도록 도우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얻을 때, 문제가 있을지라도 요동하지 않고 삶에 여유가 생기게 되며 또한 모든 것을 얻게 됩니다.
1절을 다시 보십시오.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은 아무 것도 주시지 않으시고 그저 '내가 방패요 내가 상급이라'고 말씀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방패가 되어 적들을 다 막아 주시고 하나님께서 상급이 되셔서 하나님 자신을 주시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방패요 상급되신 하나님을 바라보므로 다시 믿음을 회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2절을 보십시오.(화랑)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말씀으로 돕고자 하셨지만,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상급이라 말씀하시자, 아브람은 즉시 상속자 문제로 하나님께 따졌습니다. 아브람의 진짜 문제는 바로 상속자 문제였습니다. 이 문제는 아브람에게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인생문제였습니다. 아브람이 지금까지 친구 하나 없는 이방 땅에서 외로운 믿음의 투쟁을 한 것도 상속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람은 지금까지 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하면서 사라의 배를 힐끗힐끗 곁눈질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징후가 없었습니다. 아기가 생기면 밥맛이 없다 던데 사라는 밥만 잘 먹었습니다. 하루는 사라가 '억-, 억-'해서 기쁜 소식이 있는지 알았는데 너무 많이 먹어서 배탈이 난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씨를 안 주시니 현실성 없어 보이는 약속만 붙들고 살 수 없고 차선책으로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정할 수 밖에 없다고 통고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람을 계속해서 말씀으로 도우셨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동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너의 후사가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아브람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이 그의 후사가 될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좁고 어두운 장막에서 한숨 쉬고 있는 아브람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나님은 아브람이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서울 밤하늘은 공해가 심해서 별을 보기가 어렵지만, 아브람 당시는 완전 무공해 시대여서 아브람이 본 하늘은 오늘날과 훨씬 달랐습니다. 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그 하늘에는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 아브람은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별들을 하나 하나 세어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뭇별들을 지으신 무한하신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뭇 별들이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과 지혜를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현실문제에 빠져서 아브람이 잊고 지냈던 세계였습니다. 세상과 현실을 초월한 세계요,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능력의 세계였습니다. 아브람이 뭇별을 보며 '와!' 하며 탄성을 지를 때, 하나님의 음성이 속삭이듯 들려 왔습니다.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멘! 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아브람은 믿음을 잃고 집에서 키운 종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생각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아브람을 통해 저 밤하늘의 반짝이는 뭇별 같은 후손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내가 내 인생의 장래를 위하여 생각하고 계획하고 준비하고 있는 것이 겨우 엘리에셀 정도라면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생각하시고 계획하시고 준비하고 계신 것은 하늘의 뭇별 수준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55:8,9은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자 아브람의 반응이 무엇이었습니까? 6a절을 보십시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꽉 막혀 있던 그가 이제야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아브람은 286 컴퓨터 같은 머리로 하나님의 권능을 불신하고 자기 계획을 고집하며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뭇별들을 헤아리는 가운데 창조주 하나님, 권능과 지혜의 하나님, 지금도 창조하신 세계를 운행하고 계신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 때, 자신의 문제가 하나님께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압도되어 하나님을 믿었을 때 현실적인 그의 문제가 당장 변한 것은 없지만, 그를 지배하던 두려움과 염려, 손해의식, 불평과 원망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현실 때문에 어두웠던 아브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약속은 다시 별빛 처럼 반짝거렸습니다.
6절을 다시 보십시오.(화랑)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은 이제껏 반발하던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을 단순히 영접하자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의로 여기셨다'는 것은 의롭지 못한 자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신다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은 아브람에게서 현실을 무시한 채 열광적으로 믿는 광신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맹목적으로 믿는 맹신을 원한 것도 아닙니다. 이 믿음은 또 이렇게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확률도 아닙니다. // 하나님은 아브람이 지금까지 그와 함께 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가운데, 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깊이 인식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믿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믿음은 현실을 못 본채 하거나 과소평가하지 않고 현실을 하나님의 약속에 비추어서 곰곰히 생각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그냥 믿어 봐, 일단 믿어 봐’ 하지 않으셨습니다. 처음에는 그의 현실 문제를 직접 도우시므로,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뭇 별들을 보여 주시므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인식시키셨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 가운데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약속하신 말씀을 신실히 이루실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믿음을 기초로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셨습니다. 아브람은 많은 일을 하거나 업적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아브람 역시 허물이 많은 사람이었고 행위로 한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직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 인정하시고 복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도 우리가 큰 업적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아브람과 같이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믿음을 심는 것으로 끝나지 않으시고 먼 훗날에 있을 일들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그에게 주어 업을 삼게 하시려고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내셨다고 하심으로 땅에 대한 약속을 다시 하셨습니다. 18-21절에서는 하나님은 장차 주실 땅을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주시므로 아브람이 구체적인 믿음을 가지도록 도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증표를 요구하는 아브람과 땅에 대한 계약을 체결하셨습니다. 9,10절에 나오는 장면들은 고대 계약을 체결하는 형식으로서 그 짐승의 중간을 쪼개는 것은 만약 계약을 어기는 경우 이와 같이 쪼갬을 당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과 땅에 대한 계약을 체결하시면서 먼 훗날에 있을 일을 알려 주시므로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을 말씀하셨습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동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400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찌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아브람의 관심은 자신의 당대에 상속자 하나를 얻고, 기업의 땅을 얻어서 자신의 노후나 마음 편히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아브람에게 이삭과 야곱, 요셉 그리고 애굽 생활 400년을 거쳐 약속의 땅으로 나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식 하나 붙잡고 있는 아브람에게 뭇별과 같은 자식을 보도록 하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모두 625년이나 되는 먼 후대의 역사까지 바라보게 하심으로 그의 좁은 마음을 넓히셨고 역사의식을 심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좁은 마음을 버리고 우주와 같은 넓은 마음을 가지기 원하셨습니다. 코 앞에 현실을 넘어 600년을 내다 보는 큰 꿈을 가지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몇 백 년 후의 일을 생각하며 나 한 사람을 훈련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를 생각하고 역사의식을 가질 때 우리는 어려운 현실문제에 매여 현세적인 유익만 좇지 않게 됩니다. 현실이 어려울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섬기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원대한 비젼 가운데 아브람을 부르셨던 하나님은 이 시대 우리들도 놀라운 뜻 가운데 믿음의 세계로 부르셨습니다. 특별히 우리들을 죄와 허무 가운데 고통하는 캠퍼스 영혼들을 구원하는, 가장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을 살도록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 무수히 많은 영혼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역사를 이루고자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실 놀라운 역사를 기대하며 우리는 시간과 물질을 드려가며 영혼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비젼과 현실은 너무나 다름을 봅니다. 캠퍼스 문화는 점점 더 세속화, 개인주의화, 다원화되어 가고 대학생들은 취업 문제 등 눈앞의 어려운 현실문제에만 매여 영적인 것에는 무관심합니다. 청년 실업자가 100만명을 넘어서는 현실속에서 학생들은 비젼을 잃고 이 땅에서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여 있습니다. 현실이 어렵다 보니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보다 현실에 안주하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동아리도 재테크, 부자 만들기 동아리 같은 실용적인 동아리에는 새내기들이 넘쳐나지만, 봉사 활동을 하는 동아리들은 사람이 없어 문을 닫을 지경이라는 것이 이런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가장 가치 있는 삶,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도록 열심히 말씀을 전해도 예전과는 달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영혼들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힘써 영혼들을 말씀으로 섬겼는데도, 하나님께 돌아오는 이들이 별로 없을 때, 우리의 모든 수고가 헛된 것처럼 생각됩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살았는데도, 취업이 잘 안되고 승진에서 누락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면 믿음에 회의가 듭니다. 아브람과 같이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하며 하나님을 불신하고 원망하며 이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뒤로 하고 세상 사람들과 같이 자기 계획대로 살고자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 말씀에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생각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무 것도 없는 빈 하늘에 셀 수 없이 많은 뭇 별들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에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한 명의 신실한 양을 얻는 것만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뭇 별과 같은 많은 영적인 자손을 생각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자신의 현실문제, 인생문제 해결만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과 모든 것을 주시고자 생각하고 계십니다. 우리 학생들은 어려운 현실로 인해 내 코가 석자다 하며 자신만 생각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우리 학생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나누어 주는 복의 근원이 되는 것을 생각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어려운 현실과 부족한 자신만 볼 때, 이를 기대할 수 없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이를 꿈꿀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을 때, 자신의 여러 문제 앞에서 조급해 지지 않고 조용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가운데, 성급한 생각,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100년 500년 앞을 내다보며 하나님께 기대하고 기도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비젼을 능히 이루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조용히 기다릴 때,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 인정하시고 친히 우리를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제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새롭게 인식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셀 수 없는 무수히 많은 별들을 만드시고 공중에 매달아 놓고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게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또 몇 백년 후의 일까지 생각하시며 죄인을 훈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이 하나님을 생각할 때 조급하지 않고 조용히 기도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마음을 들여 섬기던 영혼들이 다 떠나버린 상태에서도 하나님께 새 역사를 기대하며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또 말씀을 묵상하며 뭇 별에 대한 비젼은 아브람에게 준 것이지 나에게 준 것이 아니지 않는가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두신 비젼이 무엇인지 묻고 기도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제가 하나님을 믿고 조용히 기도하는 삶을 살 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보여주셨습니다. 요14:2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막11:22-24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을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저와 우리 각 사람을 통해서 놀라운 일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비젼을 품고 말씀을 믿는 가운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간절히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제가 하나님의 비젼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현재적으로 제게 주신 십자가를 충성스럽게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현실문제에 매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비젼을 꿈꾸며 이루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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