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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023행 15강(15:36-16:40)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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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66회 작성일 23-10-04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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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사도행전 15 강           
말씀 | 사도행전 15:36-16:40
요절 | 사도행전 16:25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오늘 말씀은 성령께서 선교의 방향을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바꾸신 내용이 나옵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이 선교의 주체가 되신다는 것을 배웁니다. 유럽 선교의 시작으로 빌립보 교회가 개척이 되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루디아와 간수장 가족이 구원을 받음으로 견고한 교회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점치는 귀신을 여종에게서 쫓아내자 채찍에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감옥에 갇혀서도 기도와 찬송을 부른 바울과 실라를 통해서 영적 전쟁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배우기를 원합니다.
 
  첫째, 바울과 바나바의 결별(15:36-41).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그들은 1차 전도 여행 후에 할례와 율법을 준수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문제로 예루살렘 공회의에 다녀왔습니다. 바울은 유대 율법주의자들이 믿음이 어린 교회를 혼란하게 만들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이들을 믿음에 굳게 세우기 위해 돌아볼 필요를 느꼈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였습니다.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섰습니다. 두 지도자의 다른 의견으로 인해서 서로 격하게 다투고 갈라서는 모습을 볼 때 마음이 아프지만 이것이 현실입니다. 사실 이것은 신념과 성격 차이로 인한 것인데 미성숙한 모습입니다. 나중에 이들은 서로 화해하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위해서 하나가 되었습니다(고전9:6). 마가는 바울과 함께 로마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골 4:10). 그리고 디모데에게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다고 말하였습니다(딤후 4:11). 마가는 마가복음의 저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의 강한 성격으로 인해서 훈련을 받은 마가는 나중에 바울의 감옥 생활에 함께 할 정도로 충성스럽고 강한 제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위로의 아들 바나바의 품어주는 사랑으로 인해서 마가는 자신을 추스릴 수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였습니다. 다툼 후에 두 팀으로 나뉘어 한 팀은 바다를 건너 바나바의 고향으로, 한 팀은 육지로 선교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성격과 신념이 다른 지체들을 통해서 구원 역사를 다양하게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사도행전에는 사도 바울의 사역을 중심으로 기록이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 사도 바울의 사역이 더욱 효과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강한 제자도를 가지고 복음 역사를 이루어가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둘째,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16:1-10).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 이르자 거기서 디모데라 하는 제자를 얻게 되었습니다. 루스드라는 1차 전도 여행 때에 사도 바울이 돌에 맞아 죽은 줄로 알고 성 밖으로 내 던져진 곳입니다. 바울은 죽도록 고생을 하고 돌아왔는데 몇 년 뒤에 가보니 디모데라는 충성된 제자가 세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디모데의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었습니다. 그는 외할머니와 어머니를 통해 신앙교육을 잘 받고 자랐습니다. 그는 몸이 약했지만 충성된 사람이었습니다.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였습니다.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행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는데 왜 여기서는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였을까요? 그가 선교여행을 할 때에 유대인들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교제를 하지 않았습니다. 디모데가 선교 여행을 할 때 할례를 행하지 않았다고 하면 유대인들이 만나주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의 본질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선교를 위해서 특히 유대인들을 얻기 위해서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나중에 갈라디아서 2장 3절에서 바나바와 함께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유대인들이 헬라인 디도에게 억지로 할례를 행하도록 요구하자 바울이 적극적으로 막았습니다. 이때는 복음 진리의 본질이 훼손될 수 있었기 때문에 반대했습니다. 바울은 복음 안에서 자유인이었습니다. 그는 율법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영혼들을 돕고 구원하기 위해서 때로는 유대인처럼 행동했고 때로는 헬라인처럼 행동했습니다. 제자는 강하기도 해야 하지만 유하기도 해야 합니다. 일방적으로 원칙만 강조하며 타협하지 않는 사람들은 공동체를 성숙하게 이끌어 갈 수 없습니다. 복음의 본질을 위협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고 강하게 나가야 하지만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즉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양보하여 사람을 얻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강하게 하는 것과 유하게 하는 것에 균형이 있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중요한 원칙을 위해서는 강하게 자기주장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양보하여 가족들이 하나가 되고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때마다 경우마다 성령의 지혜를 구하며 따르는 가운데 공동체를 건강하게 세우며 사람을 얻는 일에 진보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도 바울의 사역의 결과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갔습니다(5). 

  6,7절을 보십시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바울 일행은 소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기를 원했습니다. 동쪽에서 중부로 와서 서쪽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서쪽은 유럽과 소아시아의 무역이 활발하고 소아시아 7개 교회가 위치한 곳으로서 정치 경제 무역 등이 활발한 지역이었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그들이 그곳으로 가고자 애를 썼지만 막혔습니다. 기도를 해도 기도가 잘 되지 않고 바울이 안질에 걸려서 고생을 하고 여러 가지 장애로 인해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북부인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비두니아로 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볼 때 선교역사의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의 영이신 성령께서 친히 그의 몸된 지체들을 이끄셔서 선교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아시아로 가는 길을 막으셨을까요? 당시 아시아와 비두니아 지역은 로마의 통치 구역을 제외하고는 문명화되지 않았습니다. 언어와 문화가 통일되지 않았고 야만적이었습니다. 길도 험악해서 복음을 전파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곳일지라도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만일 바울이 자기 고집대로 이런 곳에서 사역했다면 평생 동안 소아시아 지역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습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그에게 청하여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간청하였습니다.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에 바울 일행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썼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그들을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었습니다.

  마게도냐는 헬라 문명의 중심지입니다. 마게도냐 사람들은 지혜를 사랑했습니다. 빌립보, 아덴, 고린도에는 수많은 철학자들이 있었습니다. 물질적으로도 풍요롭고 호화로운 생활을 했습니다. 문화인이요 지성인이며 선진국 백성들이라서 오히려 아시아 사람들이 도움을 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환상 속에서 마게도냐 사람이 바울에게 건너와서 도와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들은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즉 그들은 물질적인 도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했습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 8:11).”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할 때 그들은 어둠 속에 있었습니다. 내면이 불안하기 때문에 점을 많이 봤습니다. 점쟁이들이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또한 곳곳에는 수많은 신전들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신전에는 매춘부들이 있었는데 아프로디테 신전에는 전성기 때 1000명이 넘는 매춘부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마음의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서 제사를 드린 후에 매춘부들과 성적쾌락을 즐겼습니다. 육체의 쾌락은 결코 영혼의 곤고함을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습니다(딤전 5:6).” 요한복음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은 다섯 번이나 결혼하고 한 남자와 동거하고 있지만 영적 목마름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생수의 근원되신 예수님을 만나고 참된 예배를 드리면서 여인의 영적 목마름이 해결되었습니다.

  대학생들의 겉모습은 세련되고 화려합니다. 자기 생활을 즐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내면을 살펴보면 장래에 대한 염려와 근심으로 불안해합니다. 20대 때는 모든 것이 불안정합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복음을 영접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캠퍼스와 군대와 병원은 복음의 3대 황금어장입니다. 우리는 “캠퍼스에 와서 우리를 도와주세요!” 소리치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1800여명의 선교사를 파송했는데 53%가 북미와 선진국에 파송되어 있습니다. 이는 선진국에 대학교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미국이 강력한 파워를 가지고 세계에 대해서 영향력을 끼치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 많은 선교사가 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로마를 복음화 시키기 위해서 바울을 마게도냐로 인도하셨던 것처럼 오늘날도 미국 선교는 중요합니다. 우리가 1970년대에 동남아 선교사를 파송하고자 기도하고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파송한 선교사가 다른 길로 가버렸습니다. 그런데 독일 간호사의 길이 열려서 많은 분들이 독일로 나아갔습니다. 그들을 따라서 유럽 선교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분들이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나아가자 미국 선교의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지금은 전세계 98개국에 선교사가 파송되었습니다. 지금은 모든 곳이 선교지입니다. 한국도 선교지입니다. 특히 우리는 캠퍼스와 가정이 복음화 되도록 힘을 쓰고 있습니다. 캠퍼스 선교와 가족기도모임에 힘을 쓰는 가운데 제자 양성이 활발히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있고 가족이 해체되고 있는 때에 가족복음화를 통해서 복음이 자녀들에게 전달되고 가정을 통한 제자양성이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우리가 추석 연휴에 가족들과 친지들을 사랑으로 섬겨서 이들이 복음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감옥에서 찬송과 기도에 힘쓴 바울(11-40). 바울 일행은 빌립보에 도착하여 수일을 유하다가 안식일에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갔습니다.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셨습니다.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바울 일행을 청하여 그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루디아의 집이 유럽 최초의 가정교회가 되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유럽 선교를 할 때 물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빌1:5; 4:15).

  바울 일행이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났습니다. 이 여종은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었습니다. 그가 바울 일행을 따라와 소리 질렀습니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이 같이 여러 날을 하는데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귀신이 나가자 이 여종은 더 이상 점을 칠 수 없었습니다.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관리들에게 끌어갔습니다. 이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요란하게 하여 자신들이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고 무리가 고발하였습니다. 상관들이 바울과 실라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명하였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바울과 실라는 채찍에 맞고 손과 발에 수갑을 찼기 때문에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선교를 하러 왔는데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냐며 하나님께 원망을 하고 슬픈 얼굴을 하기 쉬웠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그가 기뻐하시는 유럽 선교를 위해서 빌립보에 왔는데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느냐며 불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기뻐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다가 고난을 당할 때 예수님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상급이 크기 때문이라고 격려하셨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데 왜 이런 핍박이 따르는 것일까요? 복음 전도는 영적 전쟁입니다. 사탄 편에서 보면 바울은 배신자입니다. 죄인들이 자기의 통제 아래 있다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자유하게 되고 자기들을 떠나가니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더구나 자기의 통제 하에 있는 사람들을 부추겨서 떠나게 하니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그러니 사탄은 믿음의 사람들, 앞장서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교사님들과 목회자 그리고 목자님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사탄의 공격의 표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렵고 힘들면 사실 기도가 잘 나오지 않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상처로 인해서 끙끙 거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가운데 기도했습니다. 악을 쓰며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에 악을 쓰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전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탄의 공격을 이길 수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며 찬송을 하였습니다. 찬송을 했다는 것은 감사했다는 말입니다. 이런 가운데 감사가 나올까요? 인간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귀신들린 여종을 구원하신 것을 인해서 감사하였습니다. 루디아와 그 가정을 구원하신 것을 인해서 감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쓰신 것을 인해서 감사했습니다. 그들이 감사하고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을 누가 듣고 있었습니까? “죄수들이 듣더라.” 한 밤중에 죄수들이 그들의 기도와 찬송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니 이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채찍에 맞고 깊은 감옥에 갇혔는데 찬송을 하고 기도를 할 수 있을까? 그들의 기도와 찬송은 죄수들에게 복음의 메시지였습니다. 자신들을 생각하게 하고, 자신들과 무언가 다른 바울과 실라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들이 찬송하는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 바울과 실라의 감사와 찬송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지금 역사하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주와 복음을 위해서 일을 하다가 채찍에 맞고 감옥에 갇혔는데 도리어 감사를 하니 하나님도 체면이 있지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의 기도와 찬송을 들으시고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하셨습니까?

  26절을 보십시오.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 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살아계심을 즉시 나타내셨습니다. 큰 지진이 나자 그 밤에 빌립보 시내가 다 놀라게 되었을 것입니다. 옥문이 다 열리고 모든 사람의 수갑이 풀어졌습니다. 하나님이 기적을 베푸신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를 통해서 간수와 그 온 가족이 다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간수는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때 바울이 크게 소리 질렀습니다.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들을 데리고 나가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물었습니다. 바울은 이때 자기 안위를 생각하여 빨리 상처를 씻기고 좀 쉴만한 데로 데려가 달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간수의 구원을 위해서 말씀을 전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그는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였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이들을 구원하는 일에 전념하였습니다.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고 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로 인해서 빌립보 교회는 견고한 교회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어려움을 당할 때 위축되기보다 도리어 악을 쓰고 기도하고 찬송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간수의 집안을 구원하셨습니다.

  한 사업가는 IMF 때 망하게 되어 한강에 가서 죽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들에게 감사나 하고 죽자고 생각했습니다. 사원들에게 찾아가 감사하였습니다. 다음에는 자기 제품을 받아준 판매처를 찾아다니며 감사하였습니다. 다음 날에는 은행에 가서 돈을 빌려 주어서 감사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이제 감사를 끝내고 죽으러 가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사원들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고, 판매처에서 다시 제품을 보내달라고 하고 은행에서는 돈을 더 빌려 줄테니 사업에 힘을 내라고 하였습니다. 감사는 이렇게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 사업가는 크게 성공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에 도리어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기를 기도합니다.

  다음 날 치안 판사들이 부하들을 보내 바울과 실라를 석방하라고 했습니다. 그때 바울과 실라는 자신들이 로마 시민이라고 당당히 밝힙니다. 로마법은 정당한 재판절차를 통해 형이 확정되지 않은 로마 시민에게는 체벌을 가하거나 옥에 가둘 수 없었습니다. 치안판사들이 불법을 행하였기 때문에 책임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 바울이 말합니다.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이렇게 하여 바울의 무죄함이 공개적으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또한 빌립보 교회가 해를 당하지 않도록 이런 조치를 한 것입니다. 로마 사회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치안 판사는 부하들의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였습니다.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갔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자 할 때 평탄하지만은 않습니다. 때로는 예기치 않는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이때 불평하고 원망하기보다 악을 쓰며 기도하고 감사 찬송하기를 원합니다. 눈물의 기도, 사랑의 수고, 믿음의 역사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질 때 교회가 세워지고 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여러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도록 하십니다. 또한 복음 정신으로 무장하도록 도우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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