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2021년 빌4장 항상 기뻐하라(서여호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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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교 여름 수양회 폐회 메시지 (남아공, 서 여호수아)
말씀: 빌립보서 4:1-23
요절(4:4) -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
[안녕하세요? 저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레토리아 지부, 서 여호수아 선교사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항상 기뻐하라”입니다. 요절은 빌립보서 4:4절 입니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온라인으로 진행된 선교사 수양회를 개회에서부터 지금까지 말씀으로 축복하시고, 아프리카, 중동, 유럽, CIS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님들이 함께 교제하고 기도하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이 시간 폐회말씀인 빌립보서 4장 말씀을 통해, 앞으로의 영적인 방향이 되는 한마디 말씀을 붙들도록 도우시고, 심령을 새롭게 해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지난 60년 동안 저희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님들을 통해 세계 선교역사와 캠퍼스 제자양성 역사를 이루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립니다. 특히 저희 선교사님들을 파송하시고, 그 분들의 개척정신, 복음정신, 희생과 섬김을 통해 아프리카, 중동, 유럽, CIS에서 제자들을 세우시고, 계승역사를 이루어 가시고 계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하나님께서 저희를 통해 앞으로도 더욱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빌립보서 4장은 사도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결론적으로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특히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합니다. 본문 말씀이 선교지에서 물질자립을 위해, 제자양성을 위해, 믿음의 경주를 하느라 애를 쓰고 계시는 우리 선교사님들을 위로하고, 항상 기뻐하는 기쁨의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도우시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성도들을 부르는 호칭이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쉬운성경은 좀더 생생하게 번역했습니다. “내가 사랑하고 또 보고 싶어하는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내게 기쁨이며 자랑입니다” 저는 사도 바울의 이 말에서 선교지에서 사랑과 헌신으로 섬겼던 양들을 너무나 보고 싶어하는 그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한 때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었던 양들이 복음전도와 제자양성을 통해 변화되어 목자요 선교사로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은 진정 선교사로서의 기쁨이며 자랑입니다.
이렇게 너무나 사랑스러웠고 또 사모하는 그들에게 바울은 무슨 권면을 하고 있습니까? 첫째로, 주님 안에서 굳게 서라고 합니다. 특별히 1절에서 시작하는 “그러므로”는 3장 마지막 부분의 내용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동시에 빌립보서 전체 내용을 받고 있습니다. 즉 빌립보 성도들에게 흔들리지 않은 신앙생활, 믿음 안에서 굳게 서는 것이 절대 쉽지 않기 때문에, 사랑하고 사모하는 그들에게 결론적으로 “주안에서 굳게 서라”고 권면합니다.
사실 선교사로 사는 삶은 끊임없는 도전과, 크고 작은 어려움, 장애물, 시험들의 연속입니다. 언어 정복은 파송 초기부터 끝이 없이 배워야 합니다. 자비량 선교사로서 물질자립을 위해 직장 생활이나 사업을 해야 가족 부양을 할 수 있습니다. 몇 가정 없거나 한 가정이 사역하는 경우 외롭거나 우울하여 떠나고 싶을 정도의 영적인 위기를 맞이할 때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이유로, 저희와 빌립보 성도들에게 “주안에서 굳게 서라”라고 합니다. 소극적으로 단순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전투적으로 임하라고 합니다.
영적인 전투의 최전방에서 싸우는 저희 선교사들은 늘 사탄의 최우선 공격의 대상입니다. 사탄은 저희의 믿음의 진지를 흔들어 놓기 위해 끊임없이 또 맹렬히 공격을 합니다. 이런 영적인 현실 가운데 있기 때문에, 저희는 선교지에서 믿음의 전신갑주를 입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늘 싸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굳게 붙들고 믿음의 진지를 사수해야 합니다. 저희가 주님의 은혜 안에 굳게 서는 가운데 믿음으로 선교역사를 감당해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주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우리가 선교 역사를 섬길 때에 가장 힘든 것 중에 하나가 동역자들 간의 갈등의 문제입니다. 빌립보 교회에는 이 문제가 좀 심각했던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이 공개적으로 이름을 거론하는 것을 보면 두 여인은 빌립보 교회 안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고, 이들의 갈등과 불화가 교회의 위기를 가져올 만큼 심각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을 책망하기 보다는 깊은 사랑과 애정으로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3절을 보면, 유오디아와 순두게를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여인들’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빌립보 교회 개척역사에서 가장 많은 헌신을 하고 섬겼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비록 이들이 서로 충돌을 일으킨다 해도 생명책에 기록된 택하신 백성으로 그들을 존중하라고 권면합니다.
선교지에서 서로 같은 마음을 품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희가 모든 세부 사항에 대해 전부 동의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복음과 선교역사를 위해서 함께 헌신하고 있다는 데는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존중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는 데 동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동의하지 않으면 갈등으로 인한 괴로움, 상처, 스트레스, 불편함 등이 있게 됩니다. 교회가 나뉠 때 사탄이 역사하고, 주님 안에서 굳게 설 수 없게 됩니다. 저도 한 마음을 품지 못하고 갈등하고 싸우고 미워했던 적이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사소한 의견충돌로 서로를 불편하게 하였던 것 같습니다. 1부와 2부로 나누어 계승역사를 위해 지도자를 양성하고자 했지만, 서로 격려하지 못하고 자기 역사만 섬겼을 때, 저희 모임의 숫자는 절반으로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서로 동의하는 데 좋은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것으로 아버지 하나님과 동의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어야 했을 때 많은 기도와 투쟁 끝에 아버지 하나님과 한마음이 되셨습니다. 이를 통해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마태 복음 18:19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강력하게 섬기는 방법을 제자에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는데 있어서 서로 동의할 때 더욱 강력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자기 중심에서 그리스도의 중심으로, 내 역사나 내 이름을 위하여가 아니라 주님의 역사를 위해,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라는 자세를 가질 때, 우리는 서로를 인정하고 합심할 수 있습니다. 동역할 수 있습니다. 선교 공동체의 성장은 이 동역에 달려 있습니다. 이 동역의 시작은 내 중심이 아닌 '그리스도 중심', '복음 중심', '공동체 중심'으로 생각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저희 UBF가 60주년을 맞이하여 사람 중심이 아닌 그리스도의 중심, 복음 중심의 공동체로 거듭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립보서 전체적으로 ‘기쁨’ 또는 ‘기뻐하라’라는 단어가 16번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뻐하라’고 강조하고 있는 사도 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에 갇혀있었습니다. 고난으로 인한 고통 속에 있었지만, 그의 내면은 흔들리지 않았고, 내면에는 주님이 주신 평화와 기쁨이 있었기에 기뻐하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의 이러한 기쁨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사도바울은 그 기쁨의 원천을 “주 안에서”라고 말합니다. 이 기쁨은 보이는 세상적 기쁨이라기보다는 갈라디아서 5장에서 말하는 성령의 열매로서 임하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짐으로써 누리는 기쁨입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구속역사를 완성하시므로 하나님 안에서의 본래의 기쁨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만이 우리는 참된 기쁨, 영적인 기쁨, 하나님 안에서의 본래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기쁨은 외부의 환경과 상관없이 주님과 동행하며 누리는 참된 기쁨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우리가 주님 안에서 누리는 이러한 영적인 기쁨을 빼앗고자 지속적으로 저희를 공격합니다. 두려움, 근심, 유혹, 환란 등을 통해 기쁨의 원천이 되시는 예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도록 방해합니다. 이 때문에 선교지에서 저희는 영혼의 기쁨을 잃지 않도록 매일 매일, 4절 말씀처럼 항상 주안에서 굳게 서고자 해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의 삶을 살아가야 하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제 마음도 사탄의 공격으로 인한 근심, 걱정, 불안, 초조로 인해 영적인 기쁨이 없었습니다. 장래 방향을 두고 자녀와 갈등이 생겨 아이는 부모 탓을 하며 한 달 동안 자기 친구 집에 머물렀습니다. 이로 인해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지 못하고, 어렸을 때 자녀에게 준 상처 등을 생각할 때 정죄감과 무력감에 시달렸습니다.
선교지에서의 삶도 갈수록 어려워졌습니다. 20년 넘게 동역했던 한 선교사 가정은 2년 전 다른 선교지로 옮겨갔습니다. 자립문제로, 비자문제로 선교사 3가정이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Silver missionary로 늘 든든하게 기도 지원해 주시고 사랑해 주셨던 이 다니엘, 미소 선교사님들도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작년 한국으로 복귀하셨습니다. 저는 직장생활을 하며, 남아공 지부 책임자로, 아프리카 코디네이터라는 중책까지 맡으며, 힘겹고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작년 크리스마스 기간 선교 센터에 도둑이 들어, 값나가는 것들을 훔쳐갈 뿐만 아니라 수도꼭지 등 쇠붙이들도 떼어 갔습니다. 또, 저희 가정에도 도둑이 들고 대낮에 총기를 소지한 3인조 무장강도가 침입하였습니다. 이런 사건을 경험하자 무슨 소리만 들어도 민감해졌고, 불안하여 깊은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워, 남아공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사건들을 직면하는 가운데 선교사 수양회 메시지를 섬기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말씀을 섬기고자 결단하고 준비했을 때 말씀의 은혜가 제게 임하였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제가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견고히 서지 못하고, 참된 기쁨이 없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제가 기도하지 않은 죄, 동역하지 못한 죄 등을 생각나게 하셨고 회개하도록 도우셨습니다. 여러 가지 사건들로 저를 훈련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예수님 안에 견고히 서는 가운데 참된 기쁨을 잃지 않고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예수님을 믿는다고 어려움, 고민, 고통, 질병 등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죄로 인해 이 세상은 언제나 이러한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 선교사님들이 어떤 형편 가운데서도 주님을 깊이 신뢰하고 영적인 기쁨을 유지할 수 있다면, 저희는 하나님께서 원래 계획하신 본래의 모습대로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 중동, 유럽, CIS에서 각자 다른 모습으로 선교 사명을 감당하고 계시는 우리 선교사들께서 어떤 형편가운데서도, 예수님 때문에 기뻐하는 영적인 기쁨, 말씀을 통한 신령한 기쁨, 기도를 통한 성령이 주시는 기쁨 등을 충만이 누리고, 끝까지 믿음의 경주, 선교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매일 매일, 항상, 힘주시고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넷째로, 기도에 힘쓰라고 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여기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은 우리가 염려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선교지에서 걱정할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물질 자립을 위해, 언어 정복을 위해, 역사를 위해, 자녀 교육을 위해, 노후 대책을 위해, 잠시 스쳐 가는 걱정거리들로부터 밤잠을 설칠 만큼 심각한 걱정을 할 때도 있습니다. 더욱이 한 가정이 선교하는 경우 이러한 염려스러운 일들을 의논할 대상이 없어 혼자 외롭게 전전긍긍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걱정과 염려가 계속되면 몸과 마음, 영혼이 지치게 됩니다. 또 실상은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근심하고 염려하고 사는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합니다. 염려하는 대신 주님 앞에 무릎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나를 괴롭히는 모든 짐들을 하나님께 털어놓고 맡겨야 합니다. 때로는 침묵의 기도로, 때로는 울음의 기도로, 때로는 울부짖는 기도로 우리의 고민, 슬픔과 아픔, 물질 문제, 자녀 문제, 제자양성문제 등을 주님께 아뢰고 맡겨야 합니다.
특별히 기도할 때 '감사함으로 아뢰라'라고 합니다. 현실의 상황이 힘들고 어려우면 감사로 아뢰기보다, 불평과 원망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선교지에서 함께 하신 하나님, 지난 날 어려울 때마다 올린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신 주님을 생각할 때, 우리는 감사함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선교지에서 저희가 하나님,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이외 누구를 의지할 수 있습니까? 선교지에서 저희를 돌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 모든 염려와 근심, 걱정을 믿음으로 맡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모든 일에 저희를 친히 돌보심을 체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기도할 때 어떻게 됩니까? 7절을 보십시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라는 뜻은 ‘모든 이해와 이성과 상식을 초월한 하늘의 평강’을 의미합니다. 이 평강은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없습니다. 말로써 설명이 안 됩니다. 이 평강은 직접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하늘의 축복이요, 영적인 비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평강으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때 더 이상 근심, 걱정, 염려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의 평강을 얻는 것은 당장의 현실 문제 해결이나 원하는 바를 얻는 것보다도 더 중요합니다. 바울은 한시라도 빨리 감옥에서 나가는 것보다, 먼저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얻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감옥에서라도 순간순간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고자 하였던 것 같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선교사로서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나가고자 하였습니다. 저희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평강을 얻고, 선교사로서 저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섯째, 자족함을 배우라고 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많은 선교사님들이 초창기에 비천에 처한 경험도 있고 배고픔과 궁핍을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역사가 10년, 20년, 30년 흘러가면서 제자들도 세워지고, 센터도 갖게 되고 부유함과 여유가 생겼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 적응되면 자칫 초창기 스피릿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비천과 고난과 핍박 중에도 기뻐하고, 풍부와 성공과 평화의 때에도 자만하거나 안일에 빠지지 않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합니다. 영어성경에 보면 'I have learned' 계속해서 배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 어떤 경우에서도 만족할 줄 아는 비결을 현재도 배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배운다는 것은 자기 훈련(self-discipline)을 의미합니다. 백전노장 사도 바울도 감옥에서조차 스스로 훈련하고 반복하고, 또 죽을 때까지 훈련하면서 이를 배웠습니다.
그러면, 그 비결의 핵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13절을 보십시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뭐든 이룰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깊이 신뢰하고, 예수님 때문에 모든 상황에도 자족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어떤 형편가운데서도 기뻐하고 감사하고 찬송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깊이 신뢰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자기를 신뢰하는 자에게 어떤 형편이나 상황 가운데서도 참고 견디고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비천에도 처할 수 있는 능력, 풍부에도 처할 수 있는 능력, 배부름에도 처할 수 있는 능력, 배고픔에도 처할 수 있는 능력, 성공에도 처할 수 있는 능력, 실패에도 처할 수 있는 능력 등 이러한 능력을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저의 선교 생활을 돌아보면, 선교 초기에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씀 그대로 믿고, 언어 정복, 물질 자립 등에 도전했던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을 외우고 반복적으로 외치면 힘이 나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도전했을 때 한번에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여 남아공 최초 한인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이 말씀이 무엇을 이루고 성취하는 능력이라기보다는 아프리카와 같은 환경도 적응하고, 중동, 중앙 아시아, 유럽, CIS등 다양한 선교지역의 다양한 환경에 우리 선교사님들을 적응하도록 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환경이나 상황이 이해되지 않지만, 저희 선교사님들이 각자의 상황에서 주님을 깊이 신뢰할 때 넉넉히 이기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결론적으로, 저희 모임도 6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많이 정형화되고 시스템이 마련되었습니다. 선교현장에 있는 대부분의 선교사님들이 선교지에서 최소 10년에서 많게는 30년 이상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선교지에 많이 적응되어 선교 일상에 익숙해져서 초창기의 선교의 기쁨, 개척하고 도전하는 선교 스피릿을 잃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희 모든 선교사님들이 주님 안에서 늘 굳게 서고자 하고, 항상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기쁨을 누리고자 하고, 매일 매일 주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체험코자 새롭게 투쟁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각자 형편과 상황을 극복하고, 다시금 제자양성 역사, 세계 선교역사를 아프리카, 중동, 유럽, CIS에서 새롭게, 그리고 힘있게 섬길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선교사 수양회를 마치면서 ‘항상 기뻐하라’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아프리카, 중동, 유럽, CIS에서 사역하고 있는 우리 선교사님들이 늘 주안에 굳게 서도록 도우시고, 매일 매일 말씀을 통한 영적인 기쁨, 신령한 기쁨을 누리도록 축복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선교사님들이 선교지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는 종들이 되게 하시고, 제자양성 역사, 세계 선교역사를 힘있게, 새롭게 그리고 끝까지 섬기도록 도와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말씀: 빌립보서 4:1-23
요절(4:4) -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
[안녕하세요? 저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레토리아 지부, 서 여호수아 선교사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항상 기뻐하라”입니다. 요절은 빌립보서 4:4절 입니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온라인으로 진행된 선교사 수양회를 개회에서부터 지금까지 말씀으로 축복하시고, 아프리카, 중동, 유럽, CIS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님들이 함께 교제하고 기도하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이 시간 폐회말씀인 빌립보서 4장 말씀을 통해, 앞으로의 영적인 방향이 되는 한마디 말씀을 붙들도록 도우시고, 심령을 새롭게 해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지난 60년 동안 저희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님들을 통해 세계 선교역사와 캠퍼스 제자양성 역사를 이루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립니다. 특히 저희 선교사님들을 파송하시고, 그 분들의 개척정신, 복음정신, 희생과 섬김을 통해 아프리카, 중동, 유럽, CIS에서 제자들을 세우시고, 계승역사를 이루어 가시고 계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하나님께서 저희를 통해 앞으로도 더욱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빌립보서 4장은 사도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결론적으로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특히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합니다. 본문 말씀이 선교지에서 물질자립을 위해, 제자양성을 위해, 믿음의 경주를 하느라 애를 쓰고 계시는 우리 선교사님들을 위로하고, 항상 기뻐하는 기쁨의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도우시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성도들을 부르는 호칭이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쉬운성경은 좀더 생생하게 번역했습니다. “내가 사랑하고 또 보고 싶어하는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내게 기쁨이며 자랑입니다” 저는 사도 바울의 이 말에서 선교지에서 사랑과 헌신으로 섬겼던 양들을 너무나 보고 싶어하는 그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한 때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었던 양들이 복음전도와 제자양성을 통해 변화되어 목자요 선교사로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은 진정 선교사로서의 기쁨이며 자랑입니다.
이렇게 너무나 사랑스러웠고 또 사모하는 그들에게 바울은 무슨 권면을 하고 있습니까? 첫째로, 주님 안에서 굳게 서라고 합니다. 특별히 1절에서 시작하는 “그러므로”는 3장 마지막 부분의 내용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동시에 빌립보서 전체 내용을 받고 있습니다. 즉 빌립보 성도들에게 흔들리지 않은 신앙생활, 믿음 안에서 굳게 서는 것이 절대 쉽지 않기 때문에, 사랑하고 사모하는 그들에게 결론적으로 “주안에서 굳게 서라”고 권면합니다.
사실 선교사로 사는 삶은 끊임없는 도전과, 크고 작은 어려움, 장애물, 시험들의 연속입니다. 언어 정복은 파송 초기부터 끝이 없이 배워야 합니다. 자비량 선교사로서 물질자립을 위해 직장 생활이나 사업을 해야 가족 부양을 할 수 있습니다. 몇 가정 없거나 한 가정이 사역하는 경우 외롭거나 우울하여 떠나고 싶을 정도의 영적인 위기를 맞이할 때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이유로, 저희와 빌립보 성도들에게 “주안에서 굳게 서라”라고 합니다. 소극적으로 단순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전투적으로 임하라고 합니다.
영적인 전투의 최전방에서 싸우는 저희 선교사들은 늘 사탄의 최우선 공격의 대상입니다. 사탄은 저희의 믿음의 진지를 흔들어 놓기 위해 끊임없이 또 맹렬히 공격을 합니다. 이런 영적인 현실 가운데 있기 때문에, 저희는 선교지에서 믿음의 전신갑주를 입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늘 싸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굳게 붙들고 믿음의 진지를 사수해야 합니다. 저희가 주님의 은혜 안에 굳게 서는 가운데 믿음으로 선교역사를 감당해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주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우리가 선교 역사를 섬길 때에 가장 힘든 것 중에 하나가 동역자들 간의 갈등의 문제입니다. 빌립보 교회에는 이 문제가 좀 심각했던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이 공개적으로 이름을 거론하는 것을 보면 두 여인은 빌립보 교회 안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고, 이들의 갈등과 불화가 교회의 위기를 가져올 만큼 심각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을 책망하기 보다는 깊은 사랑과 애정으로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3절을 보면, 유오디아와 순두게를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여인들’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빌립보 교회 개척역사에서 가장 많은 헌신을 하고 섬겼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비록 이들이 서로 충돌을 일으킨다 해도 생명책에 기록된 택하신 백성으로 그들을 존중하라고 권면합니다.
선교지에서 서로 같은 마음을 품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희가 모든 세부 사항에 대해 전부 동의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복음과 선교역사를 위해서 함께 헌신하고 있다는 데는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존중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는 데 동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동의하지 않으면 갈등으로 인한 괴로움, 상처, 스트레스, 불편함 등이 있게 됩니다. 교회가 나뉠 때 사탄이 역사하고, 주님 안에서 굳게 설 수 없게 됩니다. 저도 한 마음을 품지 못하고 갈등하고 싸우고 미워했던 적이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사소한 의견충돌로 서로를 불편하게 하였던 것 같습니다. 1부와 2부로 나누어 계승역사를 위해 지도자를 양성하고자 했지만, 서로 격려하지 못하고 자기 역사만 섬겼을 때, 저희 모임의 숫자는 절반으로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서로 동의하는 데 좋은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것으로 아버지 하나님과 동의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어야 했을 때 많은 기도와 투쟁 끝에 아버지 하나님과 한마음이 되셨습니다. 이를 통해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마태 복음 18:19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강력하게 섬기는 방법을 제자에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는데 있어서 서로 동의할 때 더욱 강력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자기 중심에서 그리스도의 중심으로, 내 역사나 내 이름을 위하여가 아니라 주님의 역사를 위해,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라는 자세를 가질 때, 우리는 서로를 인정하고 합심할 수 있습니다. 동역할 수 있습니다. 선교 공동체의 성장은 이 동역에 달려 있습니다. 이 동역의 시작은 내 중심이 아닌 '그리스도 중심', '복음 중심', '공동체 중심'으로 생각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저희 UBF가 60주년을 맞이하여 사람 중심이 아닌 그리스도의 중심, 복음 중심의 공동체로 거듭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립보서 전체적으로 ‘기쁨’ 또는 ‘기뻐하라’라는 단어가 16번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뻐하라’고 강조하고 있는 사도 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에 갇혀있었습니다. 고난으로 인한 고통 속에 있었지만, 그의 내면은 흔들리지 않았고, 내면에는 주님이 주신 평화와 기쁨이 있었기에 기뻐하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의 이러한 기쁨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사도바울은 그 기쁨의 원천을 “주 안에서”라고 말합니다. 이 기쁨은 보이는 세상적 기쁨이라기보다는 갈라디아서 5장에서 말하는 성령의 열매로서 임하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짐으로써 누리는 기쁨입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구속역사를 완성하시므로 하나님 안에서의 본래의 기쁨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만이 우리는 참된 기쁨, 영적인 기쁨, 하나님 안에서의 본래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기쁨은 외부의 환경과 상관없이 주님과 동행하며 누리는 참된 기쁨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우리가 주님 안에서 누리는 이러한 영적인 기쁨을 빼앗고자 지속적으로 저희를 공격합니다. 두려움, 근심, 유혹, 환란 등을 통해 기쁨의 원천이 되시는 예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도록 방해합니다. 이 때문에 선교지에서 저희는 영혼의 기쁨을 잃지 않도록 매일 매일, 4절 말씀처럼 항상 주안에서 굳게 서고자 해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의 삶을 살아가야 하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제 마음도 사탄의 공격으로 인한 근심, 걱정, 불안, 초조로 인해 영적인 기쁨이 없었습니다. 장래 방향을 두고 자녀와 갈등이 생겨 아이는 부모 탓을 하며 한 달 동안 자기 친구 집에 머물렀습니다. 이로 인해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지 못하고, 어렸을 때 자녀에게 준 상처 등을 생각할 때 정죄감과 무력감에 시달렸습니다.
선교지에서의 삶도 갈수록 어려워졌습니다. 20년 넘게 동역했던 한 선교사 가정은 2년 전 다른 선교지로 옮겨갔습니다. 자립문제로, 비자문제로 선교사 3가정이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Silver missionary로 늘 든든하게 기도 지원해 주시고 사랑해 주셨던 이 다니엘, 미소 선교사님들도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작년 한국으로 복귀하셨습니다. 저는 직장생활을 하며, 남아공 지부 책임자로, 아프리카 코디네이터라는 중책까지 맡으며, 힘겹고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작년 크리스마스 기간 선교 센터에 도둑이 들어, 값나가는 것들을 훔쳐갈 뿐만 아니라 수도꼭지 등 쇠붙이들도 떼어 갔습니다. 또, 저희 가정에도 도둑이 들고 대낮에 총기를 소지한 3인조 무장강도가 침입하였습니다. 이런 사건을 경험하자 무슨 소리만 들어도 민감해졌고, 불안하여 깊은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워, 남아공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사건들을 직면하는 가운데 선교사 수양회 메시지를 섬기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말씀을 섬기고자 결단하고 준비했을 때 말씀의 은혜가 제게 임하였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제가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견고히 서지 못하고, 참된 기쁨이 없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제가 기도하지 않은 죄, 동역하지 못한 죄 등을 생각나게 하셨고 회개하도록 도우셨습니다. 여러 가지 사건들로 저를 훈련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예수님 안에 견고히 서는 가운데 참된 기쁨을 잃지 않고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예수님을 믿는다고 어려움, 고민, 고통, 질병 등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죄로 인해 이 세상은 언제나 이러한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 선교사님들이 어떤 형편 가운데서도 주님을 깊이 신뢰하고 영적인 기쁨을 유지할 수 있다면, 저희는 하나님께서 원래 계획하신 본래의 모습대로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 중동, 유럽, CIS에서 각자 다른 모습으로 선교 사명을 감당하고 계시는 우리 선교사들께서 어떤 형편가운데서도, 예수님 때문에 기뻐하는 영적인 기쁨, 말씀을 통한 신령한 기쁨, 기도를 통한 성령이 주시는 기쁨 등을 충만이 누리고, 끝까지 믿음의 경주, 선교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매일 매일, 항상, 힘주시고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넷째로, 기도에 힘쓰라고 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여기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은 우리가 염려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선교지에서 걱정할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물질 자립을 위해, 언어 정복을 위해, 역사를 위해, 자녀 교육을 위해, 노후 대책을 위해, 잠시 스쳐 가는 걱정거리들로부터 밤잠을 설칠 만큼 심각한 걱정을 할 때도 있습니다. 더욱이 한 가정이 선교하는 경우 이러한 염려스러운 일들을 의논할 대상이 없어 혼자 외롭게 전전긍긍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걱정과 염려가 계속되면 몸과 마음, 영혼이 지치게 됩니다. 또 실상은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근심하고 염려하고 사는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합니다. 염려하는 대신 주님 앞에 무릎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나를 괴롭히는 모든 짐들을 하나님께 털어놓고 맡겨야 합니다. 때로는 침묵의 기도로, 때로는 울음의 기도로, 때로는 울부짖는 기도로 우리의 고민, 슬픔과 아픔, 물질 문제, 자녀 문제, 제자양성문제 등을 주님께 아뢰고 맡겨야 합니다.
특별히 기도할 때 '감사함으로 아뢰라'라고 합니다. 현실의 상황이 힘들고 어려우면 감사로 아뢰기보다, 불평과 원망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선교지에서 함께 하신 하나님, 지난 날 어려울 때마다 올린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신 주님을 생각할 때, 우리는 감사함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선교지에서 저희가 하나님,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이외 누구를 의지할 수 있습니까? 선교지에서 저희를 돌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 모든 염려와 근심, 걱정을 믿음으로 맡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모든 일에 저희를 친히 돌보심을 체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기도할 때 어떻게 됩니까? 7절을 보십시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라는 뜻은 ‘모든 이해와 이성과 상식을 초월한 하늘의 평강’을 의미합니다. 이 평강은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없습니다. 말로써 설명이 안 됩니다. 이 평강은 직접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하늘의 축복이요, 영적인 비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평강으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때 더 이상 근심, 걱정, 염려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의 평강을 얻는 것은 당장의 현실 문제 해결이나 원하는 바를 얻는 것보다도 더 중요합니다. 바울은 한시라도 빨리 감옥에서 나가는 것보다, 먼저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얻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감옥에서라도 순간순간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고자 하였던 것 같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선교사로서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나가고자 하였습니다. 저희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평강을 얻고, 선교사로서 저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섯째, 자족함을 배우라고 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많은 선교사님들이 초창기에 비천에 처한 경험도 있고 배고픔과 궁핍을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역사가 10년, 20년, 30년 흘러가면서 제자들도 세워지고, 센터도 갖게 되고 부유함과 여유가 생겼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 적응되면 자칫 초창기 스피릿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비천과 고난과 핍박 중에도 기뻐하고, 풍부와 성공과 평화의 때에도 자만하거나 안일에 빠지지 않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합니다. 영어성경에 보면 'I have learned' 계속해서 배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 어떤 경우에서도 만족할 줄 아는 비결을 현재도 배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배운다는 것은 자기 훈련(self-discipline)을 의미합니다. 백전노장 사도 바울도 감옥에서조차 스스로 훈련하고 반복하고, 또 죽을 때까지 훈련하면서 이를 배웠습니다.
그러면, 그 비결의 핵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13절을 보십시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뭐든 이룰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깊이 신뢰하고, 예수님 때문에 모든 상황에도 자족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어떤 형편가운데서도 기뻐하고 감사하고 찬송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깊이 신뢰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자기를 신뢰하는 자에게 어떤 형편이나 상황 가운데서도 참고 견디고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비천에도 처할 수 있는 능력, 풍부에도 처할 수 있는 능력, 배부름에도 처할 수 있는 능력, 배고픔에도 처할 수 있는 능력, 성공에도 처할 수 있는 능력, 실패에도 처할 수 있는 능력 등 이러한 능력을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저의 선교 생활을 돌아보면, 선교 초기에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씀 그대로 믿고, 언어 정복, 물질 자립 등에 도전했던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을 외우고 반복적으로 외치면 힘이 나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도전했을 때 한번에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여 남아공 최초 한인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이 말씀이 무엇을 이루고 성취하는 능력이라기보다는 아프리카와 같은 환경도 적응하고, 중동, 중앙 아시아, 유럽, CIS등 다양한 선교지역의 다양한 환경에 우리 선교사님들을 적응하도록 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환경이나 상황이 이해되지 않지만, 저희 선교사님들이 각자의 상황에서 주님을 깊이 신뢰할 때 넉넉히 이기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결론적으로, 저희 모임도 6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많이 정형화되고 시스템이 마련되었습니다. 선교현장에 있는 대부분의 선교사님들이 선교지에서 최소 10년에서 많게는 30년 이상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선교지에 많이 적응되어 선교 일상에 익숙해져서 초창기의 선교의 기쁨, 개척하고 도전하는 선교 스피릿을 잃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희 모든 선교사님들이 주님 안에서 늘 굳게 서고자 하고, 항상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기쁨을 누리고자 하고, 매일 매일 주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체험코자 새롭게 투쟁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각자 형편과 상황을 극복하고, 다시금 제자양성 역사, 세계 선교역사를 아프리카, 중동, 유럽, CIS에서 새롭게, 그리고 힘있게 섬길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선교사 수양회를 마치면서 ‘항상 기뻐하라’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아프리카, 중동, 유럽, CIS에서 사역하고 있는 우리 선교사님들이 늘 주안에 굳게 서도록 도우시고, 매일 매일 말씀을 통한 영적인 기쁨, 신령한 기쁨을 누리도록 축복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선교사님들이 선교지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는 종들이 되게 하시고, 제자양성 역사, 세계 선교역사를 힘있게, 새롭게 그리고 끝까지 섬기도록 도와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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