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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2013년 빌립보서 1강(1:1-18)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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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708회 작성일 13-08-04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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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빌립보서 제 1 강
말씀 | 빌립보서 1:1-18                                      
요절 | 빌립보서 1:6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빌립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일치와 기쁨,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고 사는 자의 성숙한 믿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시고 사는 자는 그리스도를 본 받아 겸손과 사랑과 기쁨이 넘칩니다. 빌립보서는 네 장 밖에 되지 않지만 기쁨 이란 단어가 16번이나 나옵니다. 학자들은 빌립보서를 기쁨의 서신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여러 모양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 세상을 살지만 어떻게 예수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는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하나님이 친히 내 안에서 일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며 20여 년간 아시아와 유럽에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의 나이 60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습기 차고 차갑고 어두운 로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의 몸은 쇠약하고 병도 있습니다. 디모데가 그와 함께 하면서 돌보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그의 형편은 슬프고 절망적입니다.

  그러나 그는 기쁨과 감사가 충만한 가운데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합니다. 그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도록 문안 인사를 드립니다. 3,4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이 말씀을 보면 바울과 빌립보 성도들 간의 관계가 얼마나 진한지 알 수 있습니다. 빌립보는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환상을 본 후에 건너가서 개척한 유럽의 첫 교회입니다. 그는 거기서 자주 장사 루디아를 만났습니다. 또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주자 그 주인이 더 이상 돈을 벌지 못하게 되었다고 고소하였습니다. 그는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밤에 실라와 함께 기도하고 찬송할 때에 옥 터가 흔들리고 옥문이 열리며 죄수들을 묶고 있던 쇠사슬이 풀어졌습니다. 간수가 두려워 자결하려던 것을 바울이 말리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고난 가운데서 형성된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을 매우 사랑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도록 지원하고 그가 데살로니가를 개척할 때, 또 고린도를 개척할 때, 두 번이나 물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돈이 많아서 지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극한 가난 가운데서도 넘치는 물질을 헌금하여 바울을 도왔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현재에도 에바브로디도 편에 그의 쓸 것을 한 보따리 싸서 보냈습니다. 바울과 빌립보 성도들은 서로를 사랑하고 신뢰했습니다. 물질뿐만 아니라 사랑과 이해와 기도로 복음역사를 동역했습니다. 그들은 주와 복음을 위한 사도 바울의 고난에 동참함으로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바울이 당하는 고난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바울에게 동역자 의식을 가지고 함께 복음 역사를 섬겼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뒷짐을 지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해서는 안 됩니다. 동역자 의식을 가지고 함께 일을 할 때 서로 힘이 나고 성장하게 됩니다. 특히 어려운 일을 감당할 때 이런 동역자 의식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세속적인 복을 받고자 하는 단계를 넘어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에 동참하는 특권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은 이런 빌립보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그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기쁨으로 항상 간구했습니다. 복음 안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한 형제자매가 되었습니다. 영적인 가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복음 안에서 우리는 이 세상의 어떤 관계보다 더 진실 되게 서로를 알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가정 교회 내에서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이 관계가 더 깊어지고 발전되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은 그들 가운데 시작된 복음 역사에 대해서 어떤 확신을 갖고 있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양들의 장래와 교회의 미래를 염려하기 쉬웠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복음 역사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염려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을 기억했습니다. 착한 일이란 그들이 복음을 믿어 구원을 받고 서로 사랑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힘쓰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에 의해서가 개척되었지만 이를 시작하시고 인도하시고 성취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은 아시아를 개척하고자 힘썼는데 환상 중에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순종하여 유럽으로 선교의 방향을 전환하였습니다. 이렇게 빌립보로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처음부터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루디아를 만나게 하시고 그의 마음을 열어 복음을 믿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간수와 그의 가족들을 믿게 하여 빌립보 교회를 이루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이 어린 그들이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고 목자가 감옥에 갇혔는데도 실망하지 않고 지금까지 동역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이처럼 빌립보 교회의 복음 역사가 하나님의 역사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바울은 감옥에서 염려하는 대신에 확신에 차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복음 역사는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선한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이 역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연단하시고 복을 주사 완성하십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날이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 곧 세상의 끝 날을 말합니다. 그 날은 우리 성도들의 구원이 완성되는 날입니다.

  목자는 양들의 영적인 성장에 온 힘을 쏟습니다. 그러다보니 양의 형편을 살피느라 항상 마음이 가 있게 됩니다. 양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양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지 염려가 됩니다. 양의 얼굴이 보이지 않으면 은근히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사 우리에게 보내시고 친히 키우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양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내가 시험에 들어 믿음에서 떠나지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시험을 넉넉히 이기게 하십니다. 이 교회를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시고 경영하십니다. 우리는 양들과 교회의 장래를 하나님을 맡겨야 합니다.

  둘째, 사랑에 지식과 통찰력이 함께 하도록 기도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을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그들이 바울의 마음에 있음이며 바울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그들이 다 바울과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입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빌립보 성도들을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증인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그가 얼마나 양들을 진실되게 그리고 뜨겁게 사랑했는지 보여줍니다. 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 양들을 그리워했습니다. 사랑과 신뢰가 깊은 관계 속에서 양들의 얼굴 하나 하나를 떠올릴 때 무한한 위로와 힘을 얻었습니다. 바울이 양들을 이렇게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자연스러운 본성이 아닙니다. 그가 쉬지 않고 양들을 위해서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양들을 위해서 쉬지 않고 기도한다는 것은 그의 마음에 양들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빌립보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기도제목은 무엇이었습니까? 9-11절을 보십시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사도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의 사랑에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사랑은 좋은 것이지만 지식이 없는 사랑은 사람을 병들이기 쉽습니다. 반대로 사랑이 없는 지식은 사람을 바리새인과 같이 차갑고 율법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지식으로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게 됩니다. 사랑에 지식과 통찰력이 있어야 사람을 치료하고 건강하게 만들고 살릴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영적 지식을 말하고, 총명이란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영적 통찰력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런 지식과 통찰력을 얻을 수 있습니까? 성경을 공부하고 묵상함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합당한 지식을 제공해 줍니다.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 이상으로 지혜롭게 사람을 도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미워하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하며 하나님이 쓰실만한 사람으로 훈련을 시킵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풍성히 받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도록 기도합니다. 단순히 선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도록 기도합니다. 이 세상에는 좋은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사람들은 나쁘지만 않으면 모두 좋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게 좋다고 생각하다보면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세상과 타협하게 됩니다. 우리가 의의 열매를 맺으려면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포도나무의 가지된 우리가 열매를 많이 맺도록 하기 위해서 농부되신 하나님께서는 전정 작업을 하십니다. 이 세상에는 좋게 보이는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분별력을 가지고 가지치기를 하지 아니하면 시간과 에너지를 분산시키게 됩니다. 우리가 배운 지식을 통합하고 통찰하여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그래야 의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의의 열매란 무엇입니까? 율법을 지킴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재하시고 역사하심으로 맺는 성령의 열매를 말씀합니다. 하나님과 관계없이 우리 스스로의 힘과 노력만으로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그 안에, 그의 사랑 안에, 그의 말씀 안에 거할 때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서 우리를 구속하셨고 성령을 보내셔서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의의 근원이십니다. 우리가 양들을 위해서 이런 기도를 드릴 뿐만 아니라 그런 사람들로 자라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고난 가운데서 복음 전파에 진전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정말 알기를 원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바울이 감옥에 갇힘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이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습니다. 바울은 가이사 황제에게 상소했으므로 황제의 군대인 시위대의 감시를 받았습니다. 감옥에는 바울과 그를 지키는 시위대 병사와 단 둘 뿐일 때가 많았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일대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병사가 당장 복음을 영접하지 않아도 실망치 않았습니다. 근무시간이 되면 또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바울에게는 시간 맞춰서 찾아오는 12명의 고정적인 양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시위대 안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4:22). 네로 황제의 박해 때에는 네로의 측근과 삼촌이 다 예수님을 믿고 있었다고 합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는 그 어머니와 딸들이 예수님을 믿었고, 고관들 가운데서도 신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빌립보서 4:22절에 보면 바울이 가이사의 집 사람들의 안부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바울의 갇힘을 통해서 시위대와 황실에 복음이 전파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위대의 병사들은 세계 각국으로 파견되었기 때문에 복음을 영접한 군인들은 자비량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들에 의해서 복음은 전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또한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편지를 써서 각 교회들을 도왔습니다. 그가 쓴 편지가 성경이 되었습니다. ‘진전’이란 군사 용어로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뚫어 전진하는 것을 뜻합니다. 복음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복음을 인하여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딤후 2:9).” 복음은 반드시 진전합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도전할 때, 이전보다 더 복음의 진보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은 어떤 상황에서도 전진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교회사를 보더라도 복음은 어려운 상황에서 도리어 전진하고 꽃을 피웠습니다. 지금은 교회에 치장된 껍데기들이 벗겨지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들을 통해서 알곡만이 남게 될 것입니다. 또 복음이 무엇인가, 복음적인 삶이 무엇인가 진지하게 고민하는 가운데 영성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교회사를 보면 교회의 탄생과 부흥, 영적 성장,  부패와 쇠퇴, 회개와 회복이 반복되어 일어남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상황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무슨 방도든지 복음의 진보를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일어나 복음 역사를 섬겨야 합니다.  

  우리는 보통 시험에 반복해서 떨어지고, 일이 잘 안 풀리고, 시련이 계속해서 닥쳐오면 내 인생은 끝장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하나님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불의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그 사람을 연단하시고, 그 인생을 전진하게 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강함이라(고후12:10).”

  링컨 대통령은 7전 8기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신문 기자가 링컨 앞으로 다가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의 놀라운 성공과 존경 받는 삶의 비결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링컨은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야 다른 사람들보다 실패를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지요. 나는 실패할 때마다 실패에 담겨진 하나님의 뜻을 배웠고, 그것을 징검다리로 활용했습니다. 사탄은 내가 실패할 때마다 ‘이제 너는 끝장이다’라고 속삭였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실패할 때마다 ‘이번 실패를 거울 삼아 더 큰 일에 도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사탄의 속삭임보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지요.” 링컨의 생애는 ‘실패와 불행’이라는 글자가 귀찮을 정도로 따라다녔습니다. 그는 크고 작은 선거에서 무려 일곱 번이나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으며, 사업에도 두 번이나 실패하여 빚을 갚는 데 만도 무려 17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는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도 많이 잃었습니다. 10살 때는 어머니를 잃었고, 20살에는 누이 사라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또한 27살 때는 결혼을 약속했던 연인 앤 메이가 갑작스럽게 불치의 병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42살과 53살에는 각각 둘째 아들 에드워드(5살)와 셋째 아들 윌리엄(12살)을 잃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는 거듭되는 실패와 불행을 통해 겸손과 인내와 강한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잠 24:16).”(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에서 인용).  

  하나님의 복음역사도 모든 환경이 잘 구비된 가운데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되면 복음의 퇴보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교회가 부요해지고 핍박도 없어지고 형편이 좋아진 중세교회와 현재 한국 교회를 생각해 보십시오. 오히려 교회는 부패하고 전도는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핍박과 고난이 극심했던 초대교회는 복음역사가 활발하게 일어났습니다.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의 복음은 바울이 감옥에 갇히고 쇠사슬에 매인 가운데서 전진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나라도 일제 치하, 6.25 전쟁 이후, 민주화 투쟁,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부흥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친히 구원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증거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예수님의 삶도 그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하시고 침 뱉음을 당하시고 욕을 먹고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셨지만, 도리어 이를 통해서 죄인들을 구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영광스럽게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예수님을 배우고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복음을 전하는 복음의 용사들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오게 되고 믿음이 자라게 되었습니다.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역사의 비밀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의 매임으로 인하여 두 종류의 전파자들이 나타났습니다. 형제 중 다수는 바울이 매임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전할 수 없게 되자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였습니다. 이들은 바울에 대한 사랑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전에는 소극적이고 두려움이 많았지만 바울의 충성심과 감옥에 갇혀서도 복음을 증거하고 법정에서도 담대히 복음을 변호하는 것을 보면서 삶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180도 삶이 변화되어 담대한 복음 증거자들이 되었습니다.

  또 한 부류는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에 대한 경쟁심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옥에 갇힌 기회를 이용하여 자기 세력을 크게 확장시키려고 이전보다 더욱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들은 아마도 복음을 더 열심히 전하여 바울에게 심리적인 타격과 괴로움을 주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태도는 어떠합니까? 18절을 보십시오.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그는 어떤 모양으로든지 복음만 전파되면 기뻐하고 기뻐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어떤 대접을 받는가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스도가 어떻게 되는 가에는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사람들이 자신을 영접하든 안 하든, 인정을 받든 못 받든, 억울하게 옥에 갇히든, 어떻든 오직 그의 관심은 온 세상에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데 있었습니다. 그는 온전히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때 그는 모든 감정과 경쟁심과 배척과 환영을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내 안에 복음 역사를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지켜주시고 성장하게 하실 것을 믿고 여러 시험 앞에 담대해야겠습니다. 또한 어려운 시대이지만 복음 역사에 대한 비전을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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