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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서 2025년 벧2강(2:4-10) 왕 같은 제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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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97회 작성일 25-02-16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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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베드로전서 2강
말씀 | 베드로전서 2:4 - 10
요절 | 베드로전서 2:9

왕 같은 제사장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내가 누구인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 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자신의 정체성이 분명할수록 세상에서 부딪치는 어려움을 잘 이겨낼 수 있고 확신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 깨닫지 못할 때 우리는 방황하게 되고 존재 의미를 못 찾고 어둠 가운데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는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자신들이 누구인지 깨우쳐 줍니다. 자신의 신분이 어떠한지를 알 때에 그에 맞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내가 누구인지 분명한 깨달음을 주시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산 돌로 지어지는 성전, 교회(4-8). 사도 베드로는 흩어진 나그네들이 당하는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성도들을 도와줍니까? 4,5절을 보십시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제자들에게도 버림을 받았습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도 그를 버렸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에게 마저도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버림을 받으심으로 버림받은 자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을 받는 것보다 더 마음 아픈 것은 없습니다. 버림을 받을 때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로 여기고, 깊은 우울과 무기력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자신이 비참하게 여겨집니다. 왕따를 당한 경험으로 인해서 정신적으로 상처를 받고 오랫동안 고통을 받으며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사람은 관계가 풍성할 때 행복한 법인데 관계가 깨져버리니 삶의 즐거움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때 우리는 누구에게 나아가야 합니까?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도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으셨습니다. 그는 아무 죄가 없지만 버림받은 죄인들을 영접하고 치료하고 회복하기 위해서 버림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의 택하심을 입었기 때문에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버림받으심으로 죽으셨지만 삼일 후에 그는 다시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자요 만유의 주가 되셨습니다. 그는 보배로운 산 돌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갈 때에 진정한 이해와 위로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는 죄로 병든 죄인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오신 의사이시오 상담자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갈 때에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집니다. 신령한 집은 성전을 말합니다. 산 돌로 세워지는 성전은 교회를 뜻합니다. 교회를 상징하는 것 중에 몸의 비유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요 우리는 그 지체입니다. 또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 건물 비유입니다. 우리는 산 돌들입니다. 이것이 건물을 세우는데 쓰임을 받으려면 모난 부분을 다듬고 돌과 돌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 사이에 석회나 시멘트로 접착을 해야 합니다. 성도들을 하나로 묶는 접착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난 부분들을 다듬기 위해서 성도 사이의 갈등을 사용하십니다. 우리는 교회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과 부딪칩니다. 자기중심적이고 교만한 부분들이 깨지면서 성숙해지고 성도들과 하나가 되어 건물의 한 부분으로 세워집니다. 강한 자아가 깨지면서 부드럽고 온유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덧입게 됩니다. 나의 강한 자아, 모난 부분이 있으면 어디를 가든지 부딪치게 되어 있습니다. 집에서든, 직장에서든, 교회에서든,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이런 갈등과 깨어짐이 있습니다. 사람이 혼자서 살면 자기의 모습을 발견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관계를 맺으면서 자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1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가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자신을 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영적 예배입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이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가정주부는 집안 일을 하면서 경건한 예배를 드립니다. 직장인들은 자신이 속한 업무를 감당하면서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영적 예배를 드립니다. 학생들은 공부를 하면서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가 일상적인 삶을 살다가 주일에 모여 하나님을 예배함으로 힘을 얻고 위로를 받습니다. 충만해진 힘으로 또 한 주를 살아갑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한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 거하심으로 내가 성전이 되었습니다. 성도들이 모여서 신령한 집, 교회를 이루어갑니다. 주님께서는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이 교회 안에 거하시고 교회를 주관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통해서 자신의 일을 행하십니다. 특히 우리의 요회들 속에서 일하십니다. 우리는 요회 모임을 이루면서 하나님께서 한 주 동안 자신의 삶에 행하신 일들을 나눕니다. 기도가 어떻게 응답되었는지 나눕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서로 듣고 보게 됩니다. 새 양들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 마음이 열리고 믿음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6-8절을 보십시오.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예수님은 믿는 자들에게는 보배이십니다. 그는 구원과 심판의 기준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십니다. 모퉁잇돌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건물의 기초가 됩니다. 네 개의 기둥을 받쳐주는 받침돌이 됩니다. 이 모퉁잇돌 위에 기둥을 세우고 집을 짓습니다. 우리도 산 돌이 되어 그 건물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랑과 선행을 서로 격려하고 함께 이웃을 섬깁니다. 예수님 안에서 원수도 용서하고 화목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던 장막을 걷으셨습니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의 장벽도 허무셨습니다. 이제 그 안에서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둘째, 왕 같은 제사장(9,10). 흩어진 나그네들은 당시 사회에서 밑바닥 생활을 했습니다. 삶은 불안정했습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회에서 비주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진정한 신분이 무엇입니까? 9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신자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택하심을 받은 족속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란 무슨 뜻일까요? 왕과 같은 권세를 지닌 제사장이란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정교분리의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왕은 제사장직을 겸할 수 없습니다. 왕은 유다 지파에서, 제사장은 레위 지파에서 세워집니다. 레위 지파 중에서도 오직 아론과 그 자손들에게만 제사장 직분이 주어집니다. 따라서 왕 같은 제사장이란 말은 왕인 동시에 제사장을 겸하는 말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사 44:6). 왕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 같은 이라고 할 때 이는 하나님 같은 이라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하신 성도들에게 “왕 같은”이라고 할 때, 이는 “하나님 같은”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서 하나님의 왕권을 위임받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지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대리적 통치자로 지음 받았습니다. 인간은 땅에서 하나님의 왕권을 대변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 신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구원하신 성도들은 이 세상에 속해 있지만 이 세상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왕과 같은 존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피로 구원하신 성도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러면 제사장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을 세우셔서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고 이스라엘 회중 앞에서 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제사장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차에 따라서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사해주십니다(민 15:2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이러한 중재 역할을 감당하는 제사장 나라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 가운데 있는 열방의 구원을 위한 중재자로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우리에게 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제사장이 하는 일 중에 또 하나는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민 6:27).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구원하신 것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로서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사명과 동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부르셔서 그에게 복을 주실 뿐만 아니라 “너는 복이 되라”고 명하셨습니다(창 12:1-3).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려고 부르셨습니다.

  제사장이 하는 일 중에 또 하나는 재판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제사장을 재판관으로 세우시고 공정한 재판을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장 나라가 되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지식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힘쓰기를 원하십니다.
   
 신자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왕 되신 주님과 함께 은혜 안에서 왕 노릇합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지만 무력이 아니라 섬김을 통해서 왕 노릇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왕이셨습니다. 그는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고 실천하심으로 왕 노릇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실행하며 가르치는 삶,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삶, 섬기는 삶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께 돌이켜 그를 경배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자를 거룩한 나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십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보배가 되고, 열방의 구원을 위한 중재자로서,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는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거룩한 백성은 다른 나라와 구별되어 하나님께 속한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이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한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열방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구원 사역을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구원이 끝이 아닙니다.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 즉 내 보배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하신 목적이며 우리가 일생 하나님 앞에서 감당해야 할 사명입니다.
 
  9b를 보십시오.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본래 죄와 사탄의 노예들이었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하고, 죄악되고 사탄의 종노릇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어둠의 세계에서 그의 기이한 빛의 세계, 생명의 세계로 옮겨졌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그런 삶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출애굽기 19:5,6은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루는 방법까지 알려주십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하나님의 언약을 지켜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나의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증표가 바로 하나님께서 명하신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그 계명의 핵심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내게 두지 말아야 합니다. 곧 오직 하나님만 경배하고 모든 형태의 우상을 타파하고,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를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은혜가 분명할 때에 전도하고자 하는 소원에 불타게 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행하신 일들, 나의 변화, 성령의 열매를 주위 사람들에게 드러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내 주위 사람들은 나의 변화를 감지하고 그런 변화를 이루신 하나님께 대한 관심을 갖게 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자답게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동기가 죄인들에 대한 긍휼입니다. 인간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불쌍히 여기사 오래 참으시고 결국은 구원하고 변화시켜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의 형상을 회복하도록 하십니다. 우리가 나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보아 주시는 주님의 마음을 알고 이 안에 거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죄와 사탄의 다스림 가운데 고통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나에게 행하신 일들을 증거하는 가운데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십계명과 율례들은 구원받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이미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십계명과 율례들을 알아야 하고 또 지켜 행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신약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과 능력 주심을 따라서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과 그 능력으로 우리를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것이 왕 같은 제사장이 할 일입니다.

  이사무엘 목자님은 68세에 은퇴를 하시고 짐바브웨에 시니어 선교사로 나가셨습니다. 짐바브웨 국립대학교에서 한국어학과를 개설하고 많은 학생들과 일대일을 하며 제자양성을 하셨습니다. 그는 “길을 떠나니 길이 보였다”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짐바브웨에서 겪은 선교 사역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짐바브웨의 백년 앞을 내다보며 학생들을 제자로 양성하고 그 나라의 지도자가 되도록 비전을 심었습니다. 그의 삶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좋은 본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 번뿐인 이 세상을 복된 사명인으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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