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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서 벧후3강(3:1-18) 하나님의 날을 사모하라(김아브라함 선교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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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06회 작성일 16-12-04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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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신년 메시지

하나님의 날을 사모하라

베드로후서 3:1-18
요절: 3:11하-12상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신년 메시지의 제목은 “하나님의 날을 사모하라” 입니다. 우리 모두는 새 해에 소망하는 좋은 일들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봅니다. 지난 미국 대선 후 미국 뿐만 아니라 온 세계에서 그 결과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얘기들은 사람들이 세상에 두고 있는 소망들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 세상에 소망을 둡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소망이 어디에 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마라나타”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이는 “주여, 오시옵소서”라는 아람어로서 초대교회 신자들의 인사였습니다 (고전 16:22). (고린도전서는 이 인사로 끝을 맺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면서, 그들은 세상과 핍박을 이기고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우리는 급속히 세속화되고 있는 지구촌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세상은 크리스쳔들이 소수로 살았던 로마세계와 같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위기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어떤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까? 사도 베드로는 우리의 진정한 소망과 이 소망을 가진 신자들의 바른 삶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사 분명한 삶의 목표를 갖도록 도우시기를 기도합니다.

I. 주의 날이 오리라 (1-7, 10)

1절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우려고 두 편지를 썼습니다. 왜 진실한 마음이 중요합니까?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생각 또는 마음은 우리의 삶의 양식과 방향을 결정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진실한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까? 2절을 보십시오.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베드로 사도는 구약과 신약성서의 말씀을 상기시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실 구원과 심판, 창조질서의 회복에 관한 하나님의 웅대한 계획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밝혀 바른 세계관과 미래관을 갖게 합니다.

3-4절은 진실한 마음을 갖지 못하게 하는 방해자들에 대해 경고합니다; “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기롱하여…”  (3). 기롱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주 되심과 그의 재림을 부정하는 이들입니다 (2:1, 4). 그들은 자신들이 종교인, 또는 회의론자, 또는 무신론자라고 하는데, 공통적인 것은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18세기의 계몽주의는 인간의 이성과 과학을 높였습니다. 세속적 인본주의가 팽배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자연만이 실재하고 하나님과 같은 초자연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성경의 초자연적인 기사들을 비이성적이고 비과학적인 것으로 부정하는 많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온갖 논리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3절 말씀은 그들의 진정한 이유가 자기의 정욕을 따라 살고자 하는 것임을 지적합니다. 우리의 생활이 하나님의 말씀과 상충된다면 우리는 회개하든지 말씀을 부정하게 됩니다. 기롱하는 자들은 후자를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과 역사에 간섭하심을 부정합니다. 그들은 “만물이 자연법칙에 따라 항상 그냥 있었고 또 있을 것이다”고 말합니다 (4).
         
5절은 기롱하는 자들이 부러 잊으려 하는 두 진리를 말씀합니다. 5절을 보십시요.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첫째는 하나님이 그의 말씀으로 무에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제가 해양공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물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창세기 1장 2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는 한 지구보다 더 풍부한 물을 가지고 있는 행성은 없습니다. 지구 표면의 71%는 바다와 호수들로 덮여 있습니다. 물은 공기 중에, 지표면 위와 지하에, 모든 생물 속에 존재합니다. 우리 몸의 약 2/3가 물인 것 알고 계시지요? 바다에서 가장 깊은 태평양의 마라아나 해구의 수심은 11 킬로미터나 됩니다. 지구 표면이 평평하다면 지구 전체는 2.7 킬로미터 깊이의 물로 덮여지게 될 것입니다. 실로 땅은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되었습니다. 이 물 과학이 흥미롭습니까? 과학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대한 탐구입니다. 이삭 뉴튼 경이 고백했듯이 진정한 과학은 우리를 창조주 하나님께로 인도하며, 하나님을 부인하게 하지 않습니다. 둘째는 과거에 초자연적인 홍수로 하나님의 심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6절은“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말씀합니다. 노아 홍수에 대해서는 한가지만 상기해 드리겠습니다—지구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물의 양입니다. 지구는 곳곳에서 노아 때 있었던 초대형 홍수의 흔적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동일한 말씀으로 하나님은 세상을 보존해 오셨습니다. 히브리서 1장 3절은 바로 성자 예수께서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심을 말씀합니다. 기롱하는 자들이 말하는 것과 달리, 현재의 하늘과 땅에 또 다른 심판이 올 것입니다. 경건치 아니한 모든 사람들에 대한 마지막 심판과 멸망은 불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자연에 간섭하신 것 같이, 다시 한 번 간섭하실 때 이 세상의 종말이 올 것입니다.

언제 이 일이 있게 됩니까? 10상절은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말씀합니다. “주의 날”은 이사야, 에스겔, 요엘, 아모스, 오바댜, 스가랴, 말라기 같은 선지자들의 주요 메시지 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나라와 백성들을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며 그의 통치를 회복하실 것을 선포했습니다. 이 예언들은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성취되기 시작했고 그의 재림으로 온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왜 그 날을 “주의 날 (또는, 하나님의 날)”이라고 했을까요? 이는 그 날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온전히 만유의 주요 주권적 통치자로 나타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경건한 사람들은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 않습니다 (롬 1:21). 그들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자신들을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을 멸시합니다 (롬 2:4). 하나님께서 그의 의로우신 심판으로 자신을 신원하시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날 온 세상에 큰 애곡이 있을 것입니다.

그날에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10하절을 읽겠습니다.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그 날에 온 우주가 해체되며 큰 소리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세계를 이루고 있는 원소들이 불에 녹아 분해될 것입니다. 그 두려운 날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어떤 과학자들은 지구의 종말이 태양 폭발이나 소행성의 지구 충돌, 또는 핵전쟁으로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핵무기 비확산 조약 5개국이 가진 핵무기는 지구를 10번 이상 파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지구의 내부에 고열로 융해된 엄청난 양의 용암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행성의 지구 충돌은 내부 물질의 분출로 인한 불과 열로 인해 지구의 멸망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종말은 이들 재난과 비교할 수 없는 우주적 파국에 의해 올 것입니다. 1945년 원자폭탄이 터진 후에 잔재가 남았습니다. 그러나 그 날에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녹아 불타 없어질 것입니다. 사람들이 귀히 여기는 집, 고급차, 보석, 수퍼컴퓨터, 스마트폰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주의 날은 도적같이 예기치 않게 옵니다. 도둑은 약속 없이 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도둑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깨어 문단속을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마 24:44).  노아 시대 사람들은 노아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경고를 기롱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홍수가 왔고 불경건한 모든 사람들이 멸망 당했습니다. 주의 날은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올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예비하고 있을 수 있습니까? 
 
II.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합니까? (8-9, 11-18)

사도 베드로는 묻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11상) 사도는 우리가 어떻게 예비하고 있어야 하는 가에 대해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첫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12-13) 

12-14절에서 “바라보다”는 단어가 세번 반복됩니다. 우리는 무엇을 바라봅니까? 우리의 젊은이들은 졸업, 결혼, 성공 등을 바라봅니다. 선교사, 목자님들은 자녀들을 포함하여 많은 영적 제자들을 세우고 은퇴하기를 바라봅니다. 이는 모두 아름다운 소망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망들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우리는 낙심하게 됩니다. 12-13절은 우리로 비교할 수 없이 크고 확실한 소망, 곧 하나님의 날과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하나님의 날은 불경건한 시람들에게는 심판의 날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 날은 지극한 영광의 날입니다. 그 때 큰 승리와 기쁨의 외침이 있을 것입니다. 그 날에 우리가 보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은 어떤 곳입니까?
 
요한계시록 21절 4하절은 말씀합니다: “그곳에는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이생에서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과 타락한 심성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습니다. D. L. Moody 에게 “사람들로 인해 문제는 없나요”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제가 만난 어떤 사람 보다 D. L. Moody와 문제가 많습니다. 제가 그 사람을 제대로 고쳐놓을 수만 있다면 저는 다른 사람들과 아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신령한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아름답고 멋진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시니어 선교사님들은 영원한 젊은이들이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주님을 희미하게 봅니다 (고전 13:12). 그 때에 우리는 구주 예수님을 대면하여 뵙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뵙고 그 분과 인격적으로 대화할 때 우리의 기쁨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가 주와 북음을 위해 흘린 모든 눈물을 우리의 눈에서 씻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을 위해 행한 일들에 대해 우리 각 자에게 상을 주실 것입니다 (마 25:21). 모든 피조물들도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스러운 자유에 동참하게 된 것을 기뻐할 것입니다 (롬 8:21). 사자와 송아지,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아프리카의 노래, “맘보 사와 사와 (모든 것이 벌써 좋아지고 있네)”를 부르며 춤을 출 것입니다 (사 11:6-7).
 
무엇보다도 그곳은 의가 강물같이 흐를 것입니다. 이 세상은 악한 시스템과 탐욕스러운 사람들에 의한 불의 때문에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줄 정치 지도자들을 찾지만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바로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될 뿐입니다. 그러나 새 세상에서는 다시 죄나, 잔혹함이나 불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의의 왕 예수님이 빛이 되십니다. 그 곳에서 우리는 주님과 함께 세세토록 왕노릇 할 것입니다 (계 22:5). 와! 이 모든 것이 정말 올까요? 예! 예! 주님께서 재판 받으실 때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막 14:62). 요한계시록에서 주님께서 오늘 말씀의 약속들을 확증하신 후에 세번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 (계 22:7, 12, 20)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이 우리의 주의를 끕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전정한 소망은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 산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둘째,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살라 (11하, 14)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질문에 대한 즉각적인 답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11하).  거룩하고 경건한 삶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입니다 (벧후 1:4,10). 요한일서 3장 3절에 주의 강림의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14절은“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는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벧전 1:19). 사도는 우리에게 모든 부정한 것과 죄를 떠나 그리스도와 연합하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우리에게 매우 높은 목표입니다. 그러나 이는 신의 성품에 참여하기 위해 투쟁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날을 바라볼 때,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은 말씀합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지난 미국 대선 때, 대통령 후보들이 행했던 추한 일들이 드러나 대중에게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는 우리가 행한 모든 일들, 심지어 마음 속 깊은 동기 까지도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우리가 주님 앞에 평강 가운데 나타날 수 있도록 거룩하기를 힘쓰라고 권면합니다.

연약한 우리가 어떻게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살 수 있습니까? 베드로전서 1장 18-19절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오직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금이나 다이어몬드 같은 세상의 어떤 값진 것들도 우리를 죄에서 구속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가장 값진 하나님의 아들의 피, 곧 성육신하신 그의 생명으로 우리가 구속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는 권능이 있습니다 (히 9:14).  우리는 날마다 그의 피뿌림을 받기 위하여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또한 베드로전서 4장 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거룩하고 경건한 삶은 성경 지식으로만 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고난과 죽으심, 부활의 길을 가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에서 옵니다. 사도 베드로는 누구든 육체의 고난을 받는 자는 죄를 그쳤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베드로는 고난을 싫어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그는 고난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가 자진하여 주님의 고난에 동참했을 때 그는 죄로부터 자유함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주와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고난이 영광이 될 것이기 때문에 기뻐합니다. 주님께서 그와 복음을 위해 살면 “자신의 목숨을 잃을 것이다,” 곧 고난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막 8:35).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지금 내가 주와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받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을 잃은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치열한 전투에서 승리를 얻은 후에 그는 자신이 휴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군대가 싸우는 동안 그는 궁궐에 남아 아침 늦게까지 잠을 즐겼습니다. 그의 마음이 무장해제 되었을 때 그는 영적 힘을 잃고 큰 죄악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성공적인 선교사, 목자가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끝까지 충성하는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2절은 말씀합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면서, 충성스럽게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함으로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세월을 아껴 복음을 전하라 (8-9, 15)

8절은 하나님의 시간이 우리의 시간 개념과 다르다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9절은 주님께서 왜 오시기를 지체하시는지 설명합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  15절은 이 말씀을 다시 강조합니다: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는 주님이 오시기 까지 전A.D 기간이 만민을 위한 구원의 시대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막 13:10). 지난 2,000여년 동안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일하심으로 셀 수 없는 사람들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내로 기다리셨기 때문에 우리도 복음을 듣고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택하신 백성 중 한 사람이라도 잃지 않고 구원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며 일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어떤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매일 매일 지체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 가족들 가운데, 우리가 섬기는 캠퍼스 가운데 누군가일 수 있습니다.

타는 유황 불못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의 울부짖음을 상상해 보십시오 (계 21:8). 이 묘사를 통해 성경은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될 영혼들의 비참한 운명을 준엄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하심 같이 우리도 그 가공할 운명을 맞게 될 영혼들을 염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아는, 그리고 모르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실 때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날을 바라볼 뿐 아니라 “간절히 사모하라”고 했습니다. 이 단어는 “빨리 오기를 힘쓴다 (speed its coming)”는 뜻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오시는 날을 앞당기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 24:14). 우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함으로 주님께서 빨리 오시도록 준비할 수 있습니다.

Shindler’s List라는 1993년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까? 그 영화는 오스카 쉰들러 (1908-1974)라는 독일인 사업가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나지 독일의 유대인 학살 동안 그는 유대인들을 자신의 공장에서 일하게 하고 자신의 재산을 써서 그들을 나지로부터 보호함으로써 폴란드에 있던 1,200명의 유대인들을 구출했습니다. 영화는 그의 노력으로 죽음에서 벗어난 유대인들과 작별하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그들의 마음으로부터의 감사에도 불구하고 그는 말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는데….더 많은 사람들을….나는 많은 돈을 낭비했습니다.…나는 해야할 일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차와 나지 금배지를 가리키며 그것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후회합니다. 그것들을 팔았었다면 10명 이상을 더 구할 수 있었는 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흐느낍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죽음에서 구원받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선교사, 목자로서의 부르심을 따라 살아왔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제가 저의 생애를 돌아볼 때, 저의 가장 큰 기쁨과 감사제목은 제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위해 살아온 것입니다. 제가 복음을 위해 살지 않았다면 저는 저의 생애를 주의 날에 타 없어질 것들을 위해 낭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해야 할 일을 다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저는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많은 기회들을 놓쳤습니다. 우리 모두가 오스카 쉰들러와 같은 고백을 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세월을 아껴 복음 전하는 일에 우리의 남은 생애를 온전히 드리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17절은 우리에게 미혹에 이끌리지 않도록 “삼가라”고 권합니다. 그리고 18절에서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고 말씀합니다 (18). 세월이 악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의 날을 바라봄으로 깨어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자라갈수록 감사와 의로움에서 깊어지게 됩니다. 우리에게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생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얼마나 깊고 넓고 높은지요! 우리가 주 예수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갈수록 그의 크신 위엄과 영광을 알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의 오심을 더욱 간절히 사모하게 됩니다. 우리의 오직 진정한 소망이 하나님의 날에 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그 날 불에 타 없어질 것들을 위해 살지 않고 영원히 남을 것들을 위해 살아갑시다. 베드로후서의 메시지는 산 소망의 기쁨이 거룩함과 경건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확실한 참소망의 기쁨을 가지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며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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