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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서 2016년 벧전 1강(1:1-12) 산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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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12회 작성일 16-10-23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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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베드로전서 제 1 강
말씀 | 베드로전서 1:1-12                                       
요절 | 베드로전서 1:3
산 소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지난 주까지 우리는 사도행전을 공부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인하여 쇠사슬에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소망은 메시야의 오심입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베드로전서 말씀은 산 소망, 고난, 선한 행실이라는 주제로 진행될 것입니다. 산소망은 살아 있는 소망이요 우리를 살게 하는 소망입니다. 사람이 이런 산 소망이 있을 때 고난 가운데서도 인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살아야 하는 산 소망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첫째, 산 소망(1-5). 이 서신은 사도 베드로가 소아시아에 흩어진 성도들에게 쓴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성도들을 ‘흩어진 나그네’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는 본래 이방 땅으로 흩어진 유대인들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인데 이방인 크리스천들을 포함해서 모든 흩어진 성도들에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본향은 천국입니다. 이 세상은 영원한 정착지가 아닙니다. 잠시 있다가 떠나야 하는 곳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나그네라고 무책임하게, 절제하지 않고, 함부로 살라는 것은 아닙니다. 보통 나그네들은 히피와 같은 삶을 사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그네들이기 때문에 사람들과 깊이 사귈 수도 없습니다. 역전 앞에 있는 식당은 가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뜨네기들을 섬기는 식당은 단골에게 해 주는 것 같이 잘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그네들은 곧 있다가 갈 사람들이기 때문에 정착민들이 대하는 것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까? 2절을 보십시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우리 신자는 나그네이지만 성삼위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택하시고 거룩하게 하신 자들입니다. 신자들이 세상과의 관계에서는 나그네이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선택받은 영광스러운 자들이요, 보배로운 자들입니다. 우리가 옛 생활로 돌아갈 속성이 있는 것을 아시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은 일방적이요 주권적입니다. 우리가 잘 나서가 아니라 오직 은혜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셨고 택하신 사람들을 책임을 지고 거룩하게 살도록 훈련하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죄로 더러워질 때마다 피뿌림을 받아서 죄를 씻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거룩하게 사는 것이 어렵지만 하나님께 특별히 선택되어서 총애를 받는 자들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잘 알아야 그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조선 25대 왕 철종은 농사꾼과 행상으로 강화도에서 살다가 왕이 되었기 때문에 왕으로서의 정체성이 없었습니다. 신하들이 ‘전하 그러시면 안 됩니다’라는 말을 간섭으로 여기고 죽지 못해 사는 것 같았습니다. 반대로 알렉산더는 왕으로써 정체성이 있었기 때문에 20대에 외국 사절이 와서도 그 앞에서 함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신자는 성령께서 새로운 영을 부어 주셔서 정결케 하시고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되게 하셨습니다. 내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어렵지만 성령께서 도우셔서 우리를 거룩한 주님의 자녀들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자신이 예수님의 피로 깨끗하게 된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있을 때 함부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제는 본성대로 살지 말고 예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에 순종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선택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사실을 알 때 은혜와 평강이 더욱 넘치게 됩니다. 구원을 받은 자에게 주어지는 평강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는 다른 것입니다. 환난과 시련 속에서도 누릴 수 있는 평화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가장 먼저 무엇을 합니까? 3절을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합니다. 사실 흩어진 성도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비통하고 두렵고 힘든데 오히려 베드로는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합니다. 베드로가 적극적으로 기뻐하고 찬송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써 거듭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피 뿌림으로 거듭났기에 우리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신자들이 흩어진 나그네로서 천덕꾸러기와 같이 세상에서 취급을 받을 수 있지만 현재 성도들의 존재 가치가 어떠한지를 깨우쳐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은 천하보다 귀한 존재입니다. 거듭난 신자는 영생을 소유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상속권자입니다. 장차 이 세상을 심판할 사람들입니다. 왕 노릇 할 사람들입니다. 거듭난 우리는 이제 예수님의 부활 생명으로 충만합니다. 우리는 세상이 속한 죽은 소망을 붙들고 살지 않습니다. 산 소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있는 산 소망은 무엇입니까? 산 소망(living hope)은 항상 생명력이 넘치고 없어지지 않는 소망입니다. 산 소망은 살아 있는 소망이고 우리를 살리는 소망입니다. 죽은 소망과 대비가 됩니다. 사람들은 뭔가를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이 세상에서 더 잘 먹고 잘 살고 더 유명하게 되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할 소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이 땅의 것이 전부인 줄 알고 거기에 목매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런 세상 소망이 정말 참된 소망일까요? 좋은 집을 사서 들어가도 10년만 지나면 낡아져서 수리를 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차도 시간이 지나면서 녹슬고 여기저기 고장이 납니다. 맛있고 좋은 음식이 있어도 배가 부르고 나면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이 세상의 소망은 성취하고 나면 허무하고 무의미해집니다. 한 목자님은 취업을 하고 나서 30분 정도를 기뻐하고 그 이후는 피곤하고 힘들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서울대학교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국립동경대학을 졸업하고 자신이 소망하는 직장에 취업한 한 여자가 초과근무에 지쳐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이 세상 소망은 언젠가는 썩어지고 더럽혀지고 쇠하여질 소망입니다. 죽음과 부패로 인해서 사라질 것들입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것도 시간이 가면 부패하고 썩고 죽고 없어집니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는 불변의 법칙입니다. 또한 인간사의 수많은 일들이 겉으로는 그럴싸하게 포장되어 있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온갖 부정부패로 말미암아 더럽고 추합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를 위한 텔레비전 토론은 음란한 것과 어린애 같은 유치함으로 도배를 하고 있습니다. 인간 본성이 더럽고 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또한 세상의 것들은 쇠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운동경기에서 영원한 승자는 없습니다. 왕조와 제국들도 붕괴하고 흥망성쇠를 거듭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것들은 우리의 진정한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썩고 쇠하고 더러운 소망은 성취되었다 해도 곧 허무를 느끼고 결국 사람을 죽게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추구하는 산 소망은 무엇입니까? 4절을 보십시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유업이 있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소유요 재산입니다. 그것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합니다. 누가 빼앗아 갈 수도 없습니다. 항상 우리에게 기대와 기쁨과 감격을 줍니다. 산소망의 실제는 천국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로서 건설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롬8:11절을 보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는 거듭났고, 장차 부활할 것입니다. 신령한 몸, 거룩한 몸, 강한 몸으로 다시 살아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새로운 차원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무슨 소망을 붙들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부활을 믿으면서도 물질적인 풍요, 자녀들의 성공, 역사의 부흥 등등, 현실적인 소망에 매여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주님의 긍휼로 십자가 부활의 복음으로 거듭난 자들이라면 소망도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영적으로 거듭났는데 소망은 바뀌지 않고 세상 사람과 같다면 죽은 소망에 매여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썩어질 소망을 붙들고 울고불고하던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산 소망 가운데 살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현실이 어렵더라도, 아니 어떤 분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현실에서 잘 먹고 잘 살게 되었다고 해도 이 세상 소망의 한계를 알고 하나님 나라 산 소망을 붙잡고 살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가 현실의 문제를 초월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줄 믿습니다. 우리가 영원한 소망, 산 소망을 붙잡고 살 때 우리가 살아나고 풍성하며 강건해질 것입니다. 우리가 노후 걱정을 하지만 사후 걱정을 하지 않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말아야겠습니다. 노후는 길어야 30년이지만 사후는 영원한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고 그 나라에 재물을 쌓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주와 복음을 위해서 물질을 쓰고 선한 사업에 힘쓰기를 기도합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창고에 재물을 가득 쌓아 놓고 먹고 마시고 즐기자고 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오늘밤 그를 데려가시면 그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하루 하루 영원한 삶을 준비하면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간직해 놓으신 영원한 하나님 나라 유업을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5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미래적 구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순간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보호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연약하기 때문에,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실족할 수가 있습니다. 핍박으로 인한 두려움 때문에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먹고 살기가 너무나 어려워 그것에 매달리다가 믿음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때로는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택하신 사람들을 영원히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우리의 구원을 철통같이 보호하십니다.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또 시험을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예비해 놓으십니다. 그러므로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피로 세운 새 언약으로 인해서 우리의 최종적인 구원을 준비해놓고 보호하고 계십니다. 지난 날을 돌아볼 때 하나님은 놀라운 능력으로 우리 각자를 보호하시고 인도해 오셨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연약한 존재들입니까? 인간은 자율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도록 지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굳게 붙잡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의심하거나 불신하거나 회의에 빠지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과 그 말씀을 믿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둘째, 고난이 주는 유익(6-12).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시험을 당하지만 오히려 기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6,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고 해서 고난과 시련에서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살기 때문에 더 높은 도덕적 수준을 요구하기에 절제하고 희생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가족과 친척, 친구들에게 신앙 생활을 이해받지 못하고 도리어 핍박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오늘날 우리보다 더 심한 오해와 핍박과 가난과 질병 등으로 시련을 받았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잠깐입니다. 시련과 핍박이 영원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잠깐일 뿐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도 크게 기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시험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연단을 받기 때문입니다. 연단을 받은 믿음은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기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통과해야 그 믿음이 진짜인지 증명이 됩니다. 가짜 믿음은 곧 드러나고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진짜 믿음은 금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욥기 23:10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현재 우리가 당하는 시련의 의미들을 다 알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순금같이 나오게 하시고자 시련을 허락하십니다.
  시련의 때에 진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지 못하나 사랑합니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합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입니다(8,9). 시련도 없고, 고난도 없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버린 것이 최상은 아닙니다. 고난 속에서 주님을 향한 사랑이 더 뜨거워지고 믿음이 순수해지고 소망이 간절해집니다. 

  이 구원에 대해서 선지자들이 얼마나 열심히 상고했습니까? 10,11절을 보십시오.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앞에서 구원의 기쁨을 이야기하던 베드로가 이제는 구원의 배경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구원은 성도들에게 오직 은혜로 임했습니다. 구원, 즉 은혜의 복음에 대해서 선지자들은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폈습니다. 선지자들은 메시야가 오실 때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부지런히 성경을 연구하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이 선지자들 속에 계셔서 예수님이 받으실 고난과 영광에 대해서 미리 증언해 주셨습니다(시16:10,11, 사42장, 53장). 선지자들은 고난과 영광의 실체되시는 메시야 보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은혜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신약의 성도들은 지금 은혜를 체험하고 있으니 얼마나 복을 받은 것입니까? 예수님이 받으신 고난을 통해서 부활의 영광에 이르셨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교회도 고난을 통한 영광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12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신약의 성도들은 구원의 진리를 오직 은혜로 직접 체험하고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구원은 거룩한 천사들조차도 살펴보기를 원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구원의 은혜는 실로 말할 수 없이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베드로는 성도들이 지금 핍박 때문에 흩어진 자들이지만 하나님께는 선택받은 자들이라는 자부심을 심어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산 소망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 소망은 세상 소망과 달리 하늘에 간직 된 것으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 있고 또 장차 이루어질 완전한 구원을 소망 가운데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지막 날에 주님 앞에서 확실한 믿음으로 증명되기 위해서 우리는 고난이라는 풀무불 속에서 연단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고난을 회피하거나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도리어 산 소망을 붙들고 고난을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소망하는 것이며 소망이 있는 자에게 현재 없는 것들이 현실로 나타납니다. 소망은 어둠 속에서 빛을 보고, 작은 것 속에서 큰 것을 보고, 절망 속에서 구원을 보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하나님 나라,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며 고난 속에서 끝까지 믿음으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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