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022년 민10강(18,19장) 붉은 암송아지의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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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민수기 제 10 강
말씀 | 민수기 18,19장
요절 | 민수기 19:9
붉은 암송아지의 재
“이에 정결한 자가 암송아지의 재를 거두어 진영 밖 정한 곳에 둘지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 회중을 위하여 간직하였다가 부정을 씻는 물을 위해 간직할지니 그것은 속죄제니라.”
고라의 반역 사건으로 성막 운영의 질서가 깨지고 마비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 운영을 위해서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무와 역할을 언급하시며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들의 생활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하십니다. 민수기 19장은 시체로 부정하게 된 자를 정결하게 하는 규례입니다. 붉은 암송아지를 태워 재를 만들고 그 재를 물에 섞어서 부정하게 된 자에게 뿌려 정결하게 하는 속죄제사에 관한 규례입니다.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규례요, 제사제도에서 놀라운 혁신입니다. 신랑 되신 하나님은 신부된 이스라엘과의 깨어진 관계를 어떻게 회복하고자 하십니까? 신부의 끊임없는 반역과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할까요?
1. 제사장과 레위인의 기업이신 하나님(18장)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조상의 가문은 성소에 대한 죄를 함께 담당할 것이요 너와 네 아들들은 너희의 제사장 직분에 대한 죄를 함께 담당할 것이니라.” 성소에 대한 죄와 제사장 직분에 대한 죄가 무엇일까요? 성소 일이 잘 돌아가지 않으면 제사장과 레위인의 죄요 책임입니다. 제사장은 제사를 드리고 성소에서 일하는 레위인을 지휘감독하고 성소 내부에 있는 거룩한 기물들을 외부 사람들이 함부로 접근하는 것을 막는 일을 하였습니다. 이런 일들을 제사장이 아닌 다른 사람이 하면 죄가 되어서 벌을 받게 됩니다. 레위인은 회막 안의 기구들을 운반하고 배치하고 청소하고 제사를 준비하는 것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또 제사장은 이런 레위인들을 동역자로 세워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들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합심 동역하여 백성들을 위한 속죄와 섬기는 일들이 효과적으로 드려지게 해야 합니다. 우리도 공동체를 잘 섬기고자 요회개편을 하였습니다. 요회목자님들과 요회구성원들의 합심 동역, 부장님들이 합심동역하여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잘 섬길 때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히 임하게 될 것입니다.
6,7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너희의 형제 레위인을 택하여 내게 돌리고 너희에게 선물로 주어 회막의 일을 하게 하였나니 너와 네 아들들은 제단과 휘장 안의 모든 일에 대하여 제사장의 직분을 지켜 섬기라 내가 제사장의 직분을 너희에게 선물로 주었은즉 거기 가까이 하는 외인은 죽임을 당할지니라.” 하나님께서 레위인과 제사장의 직분을 선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물은 값없이 공짜로 주는 것입니다. 댓가를 바라고 주는 것은 뇌물입니다. 노동의 댓가로 받는 것은 임금입니다. 우리에게 직분을 주신 것은 무슨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은혜로 값없이 주어 하나님을 섬기게 하신 것입니다. 장관이나 도지사, 구청장에 뽑혀서 대통령과 함께 국사를 섬기는 것이 특권인 것처럼 우리도 각자 받은 직분을 통해서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는 것을 선심을 쓰듯이 할 것이 아니라 선물을 받은 것이기에 기쁨으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8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거제물 곧 이스라엘 자손이 거룩하게 한 모든 헌물을 네가 주관하게 하고 네가 기름 부음을 받았으므로 말미암아 그것을 너와 네 아들들에게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주노라” 제사장과 레위인에게는 기업으로 토지가 분배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직분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활을 보장해 주십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린 헌물 중에 불사르지 않는 것은 다 제사장의 음식이 됩니다. 소제, 속죄제, 속건제물의 성물은 제사장에게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첫 소산, 곧 제일 좋은 기름과 제일 좋은 포도주와 곡식도 제사장에게 주어야 했습니다. 백성들이 특별히 헌물로 드린 것도 제사장의 몫이 됩니다. 이로서 하나님은 제사장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영원한 소금 언약입니다. 소금은 가장 뛰어난 방부제입니다. 소금은 언약이나 동맹을 맺을 때 변치 않는 다짐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의 생활을 책임지실 것을 다짐하셨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제사장이요(롬15:16), 왕같은 제사장(벧전2:9)으로서 택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때로 먹고 사는 문제가 마음에 걸립니다. 갈수록 이기적이고 치열한 세상에서 소중한 시간과 물질을 헌신해서 주님께 드리는 것이 어리석게 생각이 됩니다. 헌신을 해도 남은 양이 없을 때 억울하고 손해의식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를 친히 해결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33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망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복음의 제사장인 우리가 잘 못되면 하나님께도 큰 손해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책임져 주십니다. 물질문제, 자녀교육문제, 건강문제, 노후문제를 반드시 책임져 주십니다. 또 수고하고 이 땅에서 보상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에서 상급이 클 것입니다. 그러니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를 절대적으로 믿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하겠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 분깃은 물려받은 것, 기업은 물려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레위인들의 기업이 되십니다. 그들의 삶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겠다는 것이요 또 그들은 하나님만을 의지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오직 소망을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으로 직분을 맡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에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21절을 보면 백성들이 내는 십일조는 레위인에게 주어서 레위인들의 생활을 보장해 주셨습니다. 레위인들에게도 땅은 분배되지 않지만 십일조를 통해 생활에 부족함이 없게 하셨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십일조를 절대적으로 드리는 것은 가장 기본입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이 나의 생명의 주관자요, 물질의 주관자이심을 배우게 됩니다. 사사기나 느헤미야서에 보면 백성들이 십일조를 잘 드리지 않자 레위인들이 먹고 살 것이 없어서 일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레위인들이 백성들의 영적인 생활을 도와주지 않자 백성들도 타락하고 무질서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일조를 드릴 때 물질적으로 우리를 축복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 우리가 하나님께 자신의 믿음을 표현하는 방법 중에 시간과 섬김과 사역으로 하지만 물질을 드림으로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헌금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가난한 중에 구별하여 드리는 헌신의 표현이 헌금이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과부가 드린 헌금을 보고 생활비 전부를 넣어 부자가 드린 것보다 더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녀에게 생활비는 생명이었습니다. 이는 제자도에 연결됩니다. 우리가 죽도록 충성할 때 생명의 풍성함을 얻고 생명의 면류관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교회 운영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영적 질서 가운데 협력하여 교회 운영이 잘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목자님들의 헌신된 삶을 소중히 여기고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동역해야 합니다.
2. 붉은 암송아지 재로 속죄제를 드리라(19장)
19장은 간편한 속죄제에 대한 내용입니다. 온전하여 흠이 없고 아직 멍에 메지 아니한 붉은 암송아지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어서 잡고 불사르라고 하십니다. 보통 속죄를 위한 제물은 제단 앞에서 잡았는데 이것은 진영 밖에서 잡습니다. 그 가죽과 고기와 피와 똥을 불사르게 하고 동시에 제사장은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 실을 가져다가 암송아지를 사르는 불 가운데에 던지라고 하십니다. 백향목은 향기로운 나무로서 방부제 역할을 합니다. 우슬초는 정화(purification)시키는 매개체입니다. 홍색실은 부정한 것들을 내쫓는 기능을 합니다. 최대한 정결케 하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재료를 다 사용합니다. 그렇게 해서 만든 재를 물에 타서 시체로 부정해진 자를 정결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붉은 암 송아지는 흰 털이 하나도 없는 완전히 붉은 색을 띤 소입니다. 붉은 색은 피를 상징하는 색깔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이에 정결한 자가 암송아지의 재를 거두어 진영 밖 정한 곳에 둘지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 회중을 위하여 간직하였다가 부정을 씻는 물을 위해 간직할지니 그것은 속죄제니라.”
이렇게 만들어진 재를 잘 보관해 두었다가 정결한 물에 타서 뿌립니다. 이것은 ‘부정을 씻는 물’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로부터 성결케 하기 위해서 특별히 준비시킨 속죄제입니다. 붉은 암송아지 재는 단지 죄를 씻고 대속하는 것을 넘어서 사람을 성화시키는 기능까지 합니다. 구원과 성화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준비하신 것입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부정하고도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힘이니 그러므로 회중 가운데에서 끊어질 것이니라. 그는 정결하게 하는 물로 뿌림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부정하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집트에서 빠져나왔지만 아직도 변화되지 못한 모습들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 본 것처럼 시내산에서 피의 언약을 맺고 하나님의 신부가 된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음행을 하고, 가데스 바네아에서 열 두령의 부정적인 보고를 듣고 하나님을 반역하고, 고라를 중심으로 한 반역으로 250명의 지휘관이 죽고 14700명이 전염병으로 죽었습니다. 원망과 불평, 탐욕과 이기심, 노예근성의 죄의 물이 빠지지 않아서 거룩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부부관계는 6단계가 있다고 합니다. 서로 눈이 먼 사랑의 첫 단계, 서로를 고치고자 애를 쓰는 두 번째 단계, 고치고자 하다가 포기하는 세 번째 단계, 열이 받쳐서 각자 따로 사는 네 번째 단계, 그 단계를 지나면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다섯째 단계, 마지막으로 영원한 친구가 되는 여섯째 단계가 있다고 합니다. 고린도 전서 13장에 보면 사랑에 대한 정의가 나옵니다. 처음은 사랑은 ‘오래 참고’, … 끝은 ‘견디고’입니다. 즉 사랑은 오래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부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완악하다고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래 참고 견디시며 거룩한 신부로 만들고자 간편한 속죄제를 만드셨습니다. 이들의 부정한 죄를 씻고 정결케 하기 위해서 특별 제작한 속죄제를 만드셨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붉은 암송아지의 재는 죄인들을 저주로부터 구원하는 역할을 합니다. 성화시켜서 새 사람되게 하는 효력이 있습니다.
붉은 암송아지의 재를 통한 속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의 그림자입니다. 히브리서 9:9,10에 보면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붉은 암송아지의 재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모형입니다. 하나님은 붉은 암송아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완전한 대속제물을 준비하셨는데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점도 없고 흠도 없습니다(벧전1:19). 죄의 멍에를 멘 적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죄없는 분으로서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시고 온몸이 채찍을 맞아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붉은 암송아지는 죽은 뒤에 태워져서 재가 되었지만 예수님은 산 채로 십자가에 못 박혀서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인간이 당할 수 있는 극한의 고통, 극한의 수치를 다 당하셨습니다. 이로서 모든 인생들의 죄값을 다 치루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보혈은 어떤 흉악한 자의 죄도 다 씻고, 완벽하게 지울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너희의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사1:18).” 히브리서 9:13,1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아무리 붉은 암송아지의 재를 깨끗한 물에 타서 뿌려도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할 뿐입니다. 그러나 흠 없는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린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양심까지도 깨끗하게 합니다. 우리의 영혼 깊은 곳, 무의식의 세계까지 깨끗케 할 수 있는 권능이 있습니다. 이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감사 찬송 드립니다. 이제 예수님을 통해서 그의 사랑받는 신부가 된 우리는 죄를 지어 부정하게 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책하지 말고 자백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죄를 지을 때마다 자백함으로 깨끗하게 되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그의 사랑받는 신부로 자라기를 기도합니다.
시체를 접촉하면 7일 동안 부정하게 됩니다. 간음이나 도둑질이나 살인 같은 죄를 범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심각하게 부정하게 되는 것일까요? 죽음과 생명, 부정과 거룩함은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에 조금의 부정도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생명 자체이시기 때문에 조금의 죽음의 그림자도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죽음은 죄의 결과이며 가장 부정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백성에게는 부정이 있을 수 없고 죽음의 그림자라도 있으면 안 됩니다. 정결해야 하고 생명력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죽음을 가장 부정한 것으로 여기시고 정결예식을 통해서 부정을 씻도록 하셨습니다. 부정하게 된 사람을 정결하게 하는 의식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정결한 사람이 붉은 암송아지의 재를 물과 함께 섞은 다음 우슬초 가지를 그 물 속에 담갔다가 불결하게 된 사람에게 뿌리기만 하면 됩니다.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는 부활로 연결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는 죽음의 권세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생명이 충만한 인생을 살게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죄와 죽음을 완전히 정복하셨습니다. 로마서 5장 17절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은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고,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도 살리셨고, 죽은 지 사흘이나 되는 나사로도 살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부정과 죽음의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는 생명이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죽음의 세력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를 덧입고 모든 죽음의 세력에서 벗어나서 생명이 충만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공동체가 생명이 충만한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민수기 18,19장
요절 | 민수기 19:9
붉은 암송아지의 재
“이에 정결한 자가 암송아지의 재를 거두어 진영 밖 정한 곳에 둘지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 회중을 위하여 간직하였다가 부정을 씻는 물을 위해 간직할지니 그것은 속죄제니라.”
고라의 반역 사건으로 성막 운영의 질서가 깨지고 마비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 운영을 위해서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무와 역할을 언급하시며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들의 생활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하십니다. 민수기 19장은 시체로 부정하게 된 자를 정결하게 하는 규례입니다. 붉은 암송아지를 태워 재를 만들고 그 재를 물에 섞어서 부정하게 된 자에게 뿌려 정결하게 하는 속죄제사에 관한 규례입니다.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규례요, 제사제도에서 놀라운 혁신입니다. 신랑 되신 하나님은 신부된 이스라엘과의 깨어진 관계를 어떻게 회복하고자 하십니까? 신부의 끊임없는 반역과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할까요?
1. 제사장과 레위인의 기업이신 하나님(18장)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조상의 가문은 성소에 대한 죄를 함께 담당할 것이요 너와 네 아들들은 너희의 제사장 직분에 대한 죄를 함께 담당할 것이니라.” 성소에 대한 죄와 제사장 직분에 대한 죄가 무엇일까요? 성소 일이 잘 돌아가지 않으면 제사장과 레위인의 죄요 책임입니다. 제사장은 제사를 드리고 성소에서 일하는 레위인을 지휘감독하고 성소 내부에 있는 거룩한 기물들을 외부 사람들이 함부로 접근하는 것을 막는 일을 하였습니다. 이런 일들을 제사장이 아닌 다른 사람이 하면 죄가 되어서 벌을 받게 됩니다. 레위인은 회막 안의 기구들을 운반하고 배치하고 청소하고 제사를 준비하는 것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또 제사장은 이런 레위인들을 동역자로 세워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들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합심 동역하여 백성들을 위한 속죄와 섬기는 일들이 효과적으로 드려지게 해야 합니다. 우리도 공동체를 잘 섬기고자 요회개편을 하였습니다. 요회목자님들과 요회구성원들의 합심 동역, 부장님들이 합심동역하여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잘 섬길 때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히 임하게 될 것입니다.
6,7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너희의 형제 레위인을 택하여 내게 돌리고 너희에게 선물로 주어 회막의 일을 하게 하였나니 너와 네 아들들은 제단과 휘장 안의 모든 일에 대하여 제사장의 직분을 지켜 섬기라 내가 제사장의 직분을 너희에게 선물로 주었은즉 거기 가까이 하는 외인은 죽임을 당할지니라.” 하나님께서 레위인과 제사장의 직분을 선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물은 값없이 공짜로 주는 것입니다. 댓가를 바라고 주는 것은 뇌물입니다. 노동의 댓가로 받는 것은 임금입니다. 우리에게 직분을 주신 것은 무슨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은혜로 값없이 주어 하나님을 섬기게 하신 것입니다. 장관이나 도지사, 구청장에 뽑혀서 대통령과 함께 국사를 섬기는 것이 특권인 것처럼 우리도 각자 받은 직분을 통해서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는 것을 선심을 쓰듯이 할 것이 아니라 선물을 받은 것이기에 기쁨으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8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거제물 곧 이스라엘 자손이 거룩하게 한 모든 헌물을 네가 주관하게 하고 네가 기름 부음을 받았으므로 말미암아 그것을 너와 네 아들들에게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주노라” 제사장과 레위인에게는 기업으로 토지가 분배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직분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활을 보장해 주십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린 헌물 중에 불사르지 않는 것은 다 제사장의 음식이 됩니다. 소제, 속죄제, 속건제물의 성물은 제사장에게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첫 소산, 곧 제일 좋은 기름과 제일 좋은 포도주와 곡식도 제사장에게 주어야 했습니다. 백성들이 특별히 헌물로 드린 것도 제사장의 몫이 됩니다. 이로서 하나님은 제사장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영원한 소금 언약입니다. 소금은 가장 뛰어난 방부제입니다. 소금은 언약이나 동맹을 맺을 때 변치 않는 다짐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의 생활을 책임지실 것을 다짐하셨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제사장이요(롬15:16), 왕같은 제사장(벧전2:9)으로서 택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때로 먹고 사는 문제가 마음에 걸립니다. 갈수록 이기적이고 치열한 세상에서 소중한 시간과 물질을 헌신해서 주님께 드리는 것이 어리석게 생각이 됩니다. 헌신을 해도 남은 양이 없을 때 억울하고 손해의식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를 친히 해결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33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망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복음의 제사장인 우리가 잘 못되면 하나님께도 큰 손해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책임져 주십니다. 물질문제, 자녀교육문제, 건강문제, 노후문제를 반드시 책임져 주십니다. 또 수고하고 이 땅에서 보상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에서 상급이 클 것입니다. 그러니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를 절대적으로 믿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하겠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 분깃은 물려받은 것, 기업은 물려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레위인들의 기업이 되십니다. 그들의 삶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겠다는 것이요 또 그들은 하나님만을 의지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오직 소망을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으로 직분을 맡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에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21절을 보면 백성들이 내는 십일조는 레위인에게 주어서 레위인들의 생활을 보장해 주셨습니다. 레위인들에게도 땅은 분배되지 않지만 십일조를 통해 생활에 부족함이 없게 하셨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십일조를 절대적으로 드리는 것은 가장 기본입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이 나의 생명의 주관자요, 물질의 주관자이심을 배우게 됩니다. 사사기나 느헤미야서에 보면 백성들이 십일조를 잘 드리지 않자 레위인들이 먹고 살 것이 없어서 일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레위인들이 백성들의 영적인 생활을 도와주지 않자 백성들도 타락하고 무질서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일조를 드릴 때 물질적으로 우리를 축복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 우리가 하나님께 자신의 믿음을 표현하는 방법 중에 시간과 섬김과 사역으로 하지만 물질을 드림으로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헌금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가난한 중에 구별하여 드리는 헌신의 표현이 헌금이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과부가 드린 헌금을 보고 생활비 전부를 넣어 부자가 드린 것보다 더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녀에게 생활비는 생명이었습니다. 이는 제자도에 연결됩니다. 우리가 죽도록 충성할 때 생명의 풍성함을 얻고 생명의 면류관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교회 운영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영적 질서 가운데 협력하여 교회 운영이 잘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목자님들의 헌신된 삶을 소중히 여기고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동역해야 합니다.
2. 붉은 암송아지 재로 속죄제를 드리라(19장)
19장은 간편한 속죄제에 대한 내용입니다. 온전하여 흠이 없고 아직 멍에 메지 아니한 붉은 암송아지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어서 잡고 불사르라고 하십니다. 보통 속죄를 위한 제물은 제단 앞에서 잡았는데 이것은 진영 밖에서 잡습니다. 그 가죽과 고기와 피와 똥을 불사르게 하고 동시에 제사장은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 실을 가져다가 암송아지를 사르는 불 가운데에 던지라고 하십니다. 백향목은 향기로운 나무로서 방부제 역할을 합니다. 우슬초는 정화(purification)시키는 매개체입니다. 홍색실은 부정한 것들을 내쫓는 기능을 합니다. 최대한 정결케 하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재료를 다 사용합니다. 그렇게 해서 만든 재를 물에 타서 시체로 부정해진 자를 정결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붉은 암 송아지는 흰 털이 하나도 없는 완전히 붉은 색을 띤 소입니다. 붉은 색은 피를 상징하는 색깔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이에 정결한 자가 암송아지의 재를 거두어 진영 밖 정한 곳에 둘지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 회중을 위하여 간직하였다가 부정을 씻는 물을 위해 간직할지니 그것은 속죄제니라.”
이렇게 만들어진 재를 잘 보관해 두었다가 정결한 물에 타서 뿌립니다. 이것은 ‘부정을 씻는 물’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로부터 성결케 하기 위해서 특별히 준비시킨 속죄제입니다. 붉은 암송아지 재는 단지 죄를 씻고 대속하는 것을 넘어서 사람을 성화시키는 기능까지 합니다. 구원과 성화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준비하신 것입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부정하고도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힘이니 그러므로 회중 가운데에서 끊어질 것이니라. 그는 정결하게 하는 물로 뿌림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부정하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집트에서 빠져나왔지만 아직도 변화되지 못한 모습들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 본 것처럼 시내산에서 피의 언약을 맺고 하나님의 신부가 된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음행을 하고, 가데스 바네아에서 열 두령의 부정적인 보고를 듣고 하나님을 반역하고, 고라를 중심으로 한 반역으로 250명의 지휘관이 죽고 14700명이 전염병으로 죽었습니다. 원망과 불평, 탐욕과 이기심, 노예근성의 죄의 물이 빠지지 않아서 거룩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부부관계는 6단계가 있다고 합니다. 서로 눈이 먼 사랑의 첫 단계, 서로를 고치고자 애를 쓰는 두 번째 단계, 고치고자 하다가 포기하는 세 번째 단계, 열이 받쳐서 각자 따로 사는 네 번째 단계, 그 단계를 지나면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다섯째 단계, 마지막으로 영원한 친구가 되는 여섯째 단계가 있다고 합니다. 고린도 전서 13장에 보면 사랑에 대한 정의가 나옵니다. 처음은 사랑은 ‘오래 참고’, … 끝은 ‘견디고’입니다. 즉 사랑은 오래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부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완악하다고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래 참고 견디시며 거룩한 신부로 만들고자 간편한 속죄제를 만드셨습니다. 이들의 부정한 죄를 씻고 정결케 하기 위해서 특별 제작한 속죄제를 만드셨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붉은 암송아지의 재는 죄인들을 저주로부터 구원하는 역할을 합니다. 성화시켜서 새 사람되게 하는 효력이 있습니다.
붉은 암송아지의 재를 통한 속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의 그림자입니다. 히브리서 9:9,10에 보면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붉은 암송아지의 재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모형입니다. 하나님은 붉은 암송아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완전한 대속제물을 준비하셨는데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점도 없고 흠도 없습니다(벧전1:19). 죄의 멍에를 멘 적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죄없는 분으로서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시고 온몸이 채찍을 맞아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붉은 암송아지는 죽은 뒤에 태워져서 재가 되었지만 예수님은 산 채로 십자가에 못 박혀서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인간이 당할 수 있는 극한의 고통, 극한의 수치를 다 당하셨습니다. 이로서 모든 인생들의 죄값을 다 치루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보혈은 어떤 흉악한 자의 죄도 다 씻고, 완벽하게 지울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너희의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사1:18).” 히브리서 9:13,1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아무리 붉은 암송아지의 재를 깨끗한 물에 타서 뿌려도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할 뿐입니다. 그러나 흠 없는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린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양심까지도 깨끗하게 합니다. 우리의 영혼 깊은 곳, 무의식의 세계까지 깨끗케 할 수 있는 권능이 있습니다. 이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감사 찬송 드립니다. 이제 예수님을 통해서 그의 사랑받는 신부가 된 우리는 죄를 지어 부정하게 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책하지 말고 자백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죄를 지을 때마다 자백함으로 깨끗하게 되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그의 사랑받는 신부로 자라기를 기도합니다.
시체를 접촉하면 7일 동안 부정하게 됩니다. 간음이나 도둑질이나 살인 같은 죄를 범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심각하게 부정하게 되는 것일까요? 죽음과 생명, 부정과 거룩함은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에 조금의 부정도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생명 자체이시기 때문에 조금의 죽음의 그림자도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죽음은 죄의 결과이며 가장 부정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백성에게는 부정이 있을 수 없고 죽음의 그림자라도 있으면 안 됩니다. 정결해야 하고 생명력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죽음을 가장 부정한 것으로 여기시고 정결예식을 통해서 부정을 씻도록 하셨습니다. 부정하게 된 사람을 정결하게 하는 의식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정결한 사람이 붉은 암송아지의 재를 물과 함께 섞은 다음 우슬초 가지를 그 물 속에 담갔다가 불결하게 된 사람에게 뿌리기만 하면 됩니다.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는 부활로 연결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는 죽음의 권세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생명이 충만한 인생을 살게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죄와 죽음을 완전히 정복하셨습니다. 로마서 5장 17절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은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고,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도 살리셨고, 죽은 지 사흘이나 되는 나사로도 살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부정과 죽음의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는 생명이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죽음의 세력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를 덧입고 모든 죽음의 세력에서 벗어나서 생명이 충만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공동체가 생명이 충만한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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