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022년 민6강(11,12장) 탐욕스런 백성을 벌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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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민수기 제 6 강
말씀 | 민수기 11:1-12:16
요절 | 민수기 11:33
탐욕스런 백성을 벌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광야 행군을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철저하게 준비시키셨습니다. 출애굽기 15-18장에 보면 홍해를 마른 땅 같이 건넌 이스라엘은 기쁨이 충만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런데 광야로 들어온 지 사흘 동안 마실 물이 없자 원망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마라의 쓴 물을 단 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들이 먹을 것이 없자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습니다. 르비딤에서 마실 물이 없자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여 마시게 하였습니다. 아말렉과의 싸움에서도 모세와 아론과 훌이 기도하고 여호수아와 군사들이 나가서 싸울 때 승리를 얻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의 사랑과 능력이 어떠하신지 보여 주시고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들을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민수기 11-20장에도 시내 광야 길을 걸은 지 삼일 만에 그들은 고기를 먹고 싶다고 불평하고 원망을 합니다. 물이 없다고 원망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때는 강하게 징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충분히 보여주셨는데도 변함없이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을 보고 징계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구원을 받았지만 변화되지 않은 옛 본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강하게 징계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으로 변화시키십니다. 여호와의 군대로 빚어가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내 속에 잘 변화되지 않는 한 가지 문제를 깊이 발견하여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고 변화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탐욕의 무덤(11장). 여호와께서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는 것을 들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셨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하니 불이 꺼졌습니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었습니다. 다른 인종은 좀 질이 떨어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이나 구원의 은혜가 약한 다른 인종이었습니다. 그들의 불평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까지 퍼졌습니다. 불평은 약한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지만 곧 온 회중에게 퍼져나갔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라며 불평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적을 수없이 체험하고 지금도 광야에서 만나를 내려 주어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같은 음식을 먹다보니 질렸습니다. 그들은 광야 한복판에서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을 먹고 싶었습니다. 그들의 이런 불평을 우리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똑 같은 음식을 일주일만 먹어도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문제는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라고 말하며 하나님께 대한 불신을 드러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먹는 것이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먹는 것이 하나님보다 더 위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먹을 것도 필요하고, 돈도 필요하고, 좋은 학점도 필요하고, 성공하는 것도 필요하고, 양도 필요한 것을 아십니다. 문제는 이런 것들이 마음의 첫째 자리를 차지하여 그것만 얻으면 행복하고 생명의 풍성함을 얻을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매이게 되면 눈에는 그것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보다 그런 것들이 더 중요하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상숭배입니다. 탐욕은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 아십니다. 그러므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때 나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사람과 사물과의 영적 질서입니다.
지금 광야에서 가나안 땅을 향하여 행군을 하고 있습니다. 광야 생활은 일시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생활에 필요한 비상식량으로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만나로 인해서 자족하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마땅합니다. 만나만으로는 입맛이 안 나기에 하나님께 고기를 주시도록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제한을 두지 말고 무엇이든지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불신하고 원망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죄악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자신들이 모든 것을 다 해낸 것처럼 생각하는 자기 의에 빠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덧입고 다양한 요리를 개발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들도 만나를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습니다.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습니다. 그들이 수고하지 아니했는데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그들에게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그것으로 신제품을 개발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창조성을 발휘하는 대신에 한계에 갇혀서 원망하고 불평하였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사막에 물을 대고 농사를 짓습니다. 이스라엘이 사막에서 튜울립과 농작물을 재배하여 수출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이 어떠하든지 이를 개발하여 옥토로 만들고 있습니다. 최근에 우리나라는 바닷물을 담수로 바꾸고, 중동의 사막에서 벼농사를 짓는 기술을 개발하여 전수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사막에서 물고기를 양식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창조성과 지혜를 가꾸어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은 그들의 소망을 가나안 땅에 두고 현재의 어려움을 인내해야 합니다. 광야 생활은 지나가는 나그네 길입니다. 그들이 영원히 살 곳은 가나안 땅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잠시 머물다가 가는 여관과 같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집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갈 때에 내가 어디를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몸이 바라보는 곳으로 움직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가 우리가 진정 소망해야 할 곳입니다. 이 세상이 영원한 것처럼 이 세상만을 바라보게 되면 세상 사람들처럼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엣 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백성의 온 종족들이 각기 자기 장막 문에서 우는 것을 모세가 들었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왔습니다.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 어찌 주께서 내게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이르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 모세는 목자로서 백성들에 대한 책임감이 무거웠습니다. 목자는 양을 치는 사람입니다. 마치 아버지, 어머니가 자녀들을 양육하듯이 돌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백성들이 사막에서 생선을 달라고 하고 고기를 달라고 하니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하나님께 하소연을 합니다. 사실 우리가 목양을 할 때 끊임없이 한계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앞에 엎드려 감당할 힘과 지혜를 달라고 부르짖어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역사는 혼자서 다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짐을 나누어 질 동역자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백성의 장로와 지도자가 될 만한 자 70명을 모아 회막 앞에 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고자 하십니다. 그들이 모세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모세 혼자 담당하지 않게 하십니다. 그런데 택함 받은 70명의 장로 가운데 엘닷과 메닷이 모세가 있는 장막에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그들을 불렀는데도 나가지 않은 것은 모세의 권위를 무시하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들은 모세를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다른 장로들처럼 예언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왜 모세의 권위에 도전하는 엘닷과 메닷에게도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셨을까요? 엘닷과 메닷에게도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장로들이 마음을 같이해서 양떼들을 책임지고 돌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엘닷과 메닷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셔서 어그러진 그들의 마음을 바꾸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한 후에 엘닷과 메닷은 마음을 바꾸어서 모세와 한 마음 한 뜻을 이루어서 동역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하나가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갈등과 반목이 사라지고 한 마음이 되어서 서로 용납하고 사랑합니다. 한 공동체에 있으면서 한 마음 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갈등하고 반목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탄이 역사할 때 관계성이 파괴되고 갈등과 오해가 생기고 모임이 분열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섬길 때 짐을 나누어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가 맡은 일이 아무리 작더라도 충성스럽게 감당할 때 동역자들에게 큰 힘이 됩니다. 목자님들이 각자 맡은 자리에서 충성하는 모습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서로 짐을 나누어 질 때 공동체에 사랑이 흐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직임과 여러 가지 은사를 주셔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한 마음으로 주님의 역사를 동역하려면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셔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기게 하신 은혜를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에게 너희 몸을 거룩히 하여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고기를 주시되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스무날이 아니라 한 달 동안 먹게 하고자 하십니다. 그들의 코에서 고기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먹게 하십니다. 이는 그들이 우리 중에 계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가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한 달 동안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그들을 위하여 양 떼와 소 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라고 의문을 표시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여호와의 손이 짧아지기라도 했느냐고 반문하십니다.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고 격려하십니다. 이사야 59:1,2은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우리의 불신과 교만과 탐욕이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자기를 찾는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도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백성들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서 먼저 모세가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지도자가 믿음을 갖지 못하면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불신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지도자는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소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31,32절을 보십시오. “바람이 여호와에게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 곁 이쪽 저쪽 곧 진영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한지라. 백성이 일어나 그 날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진영 사면에 펴 두었더라.”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은 바람으로, 때로는 생수로, 때로는 불로 자기를 나타내십니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바람을 보내사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 곁에 내리게 하셨습니다. 고대에 하룻길은 25-35km정도입니다. 서울 면적만한 공간에 메추라기가 90cm정도 쌓이게 하셨습니다. 먹을 고기가 없다고 불평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득 쌓인 메추라기를 보면서 얼마나 신이 났겠습니까? 그들은 이틀 동안 메추라기를 잡아서 진영 사면에 펴두었습니다. 적게 모은 사람도 열 호멜을 모았습니다. 한 호멜은 100-200리터로서, 열 호멜은 1000-2000리터입니다. 이는 다섯 드럼통에서 10드럼통의 고기를 모은 것입니다. 그들의 욕심이 얼마나 컸는지 보여줍니다. 만나를 내려 주실 때에도 너무 많이 모아서 다 먹지 못하면 벌레가 나고 냄새가 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몇 달에서 일 년 동안 먹을 고기를 모았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광야를 행군 하겠습니까?
33,34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은 탐욕으로 자신의 미래를 담보하고자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상숭배입니다. 탐욕으로 인해서 그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탐욕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탐욕을 부리면 여기서 죽습니다. 탐욕은 과도한 욕심입니다. 하나님은 자족하고 감사하는 제사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무엇이 부족하면 언제든지 더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누리며 감사하는 삶을 살 때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2장 15절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잠시 사는 이 세상에서 탐욕을 부리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것에 감사하고 나누어 주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이 돌게 됩니다. 사랑과 섬김 속에 구원이 있습니다.
둘째, 자리에 대한 탐욕(12장). 모세가 아내 십보라가 죽자 구스 여자를 취하였습니다. 구스는 에디오피아입니다. 미리암과 아론이 이 일로 모세를 비방하였습니다. 인종적으로 유대인과 같은 혈통에서 취하지 않은 것을 비방한 것입니다. 그러나 갈렙도 이스라엘 혈통이 아니고, 우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에 다른 족속도 섞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한 것에 대해 뭐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론은 대제사장이고 모세의 친형입니다. 미리암은 여선지자이고 모세의 친누나입니다. 이들은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하며 모세와 같은 권위와 인정을 갖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너만 잘났냐, 우리도 잘 났다는 생각을 갖고 야망을 분출했습니다. 비방했다는 히브리어 동사가 여성임을 볼 때 미리암이 주동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들의 비방에 대해서 한 마디도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듣고 계셨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모세는 아론과 미리암에 대해서 무시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대제사장이요 선지자로서 하나님께 귀히 쓰임을 받고 있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메닷과 엘닷이 그의 말에 불순종하고도 하나님의 영을 받고 예언을 한 것을 보고 기뻐하였습니다. 심지어 모든 백성이 다 하나님의 영을 받아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섬기기를 바랬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에 충성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론과 미리암의 모세에 대한 비방을 듣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세 사람은 회막으로 나아오라.” 그들이 나오자 하나님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로부터 강림하사 장막 문에 서시고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셨습니다. 그 두 사람이 나아가매 이르셨습니다.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에게 영적 질서를 지키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의 리더십의 권위는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데서 나왔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입니다. 아론과 미리암은 모세에게 집중된 지도력이 자신들에게도 분배되어야 한다고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미리암과 아론은 그 자리를 탐내고 있었습니다. 그들 역시 자리에 대한 탐욕, 명예에 대한 욕심이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사 미리암이 나병에 걸리게 하셨습니다. 아론은 모세에게 “슬프도다 내 주여 우리가 어리석은 일을 하여 죄를 지었으나 청하건대 그 벌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 그가 살이 반이나 썩어 모태로부터 죽어서 나온 자 같이 되지 않게 하소서” 간구하였습니다. 모세가 부르짖어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미리암을 진영 밖으로 보내 이레 동안 가두고 그 후에 들어오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미리암이 진영 밖에 이레 동안 갇혀 있었고 백성은 그를 다시 들어오게 하기까지 행진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영적 질서 가운데 지도자를 중심으로 합심동역 할 때 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이룰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해야겠습니다. 자족하는 것이 경건에 큰 유익이 됩니다. 우리가 겸손하게 맡은 바 임무에 충성을 다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민수기 11:1-12:16
요절 | 민수기 11:33
탐욕스런 백성을 벌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광야 행군을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철저하게 준비시키셨습니다. 출애굽기 15-18장에 보면 홍해를 마른 땅 같이 건넌 이스라엘은 기쁨이 충만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런데 광야로 들어온 지 사흘 동안 마실 물이 없자 원망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마라의 쓴 물을 단 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들이 먹을 것이 없자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습니다. 르비딤에서 마실 물이 없자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여 마시게 하였습니다. 아말렉과의 싸움에서도 모세와 아론과 훌이 기도하고 여호수아와 군사들이 나가서 싸울 때 승리를 얻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의 사랑과 능력이 어떠하신지 보여 주시고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들을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민수기 11-20장에도 시내 광야 길을 걸은 지 삼일 만에 그들은 고기를 먹고 싶다고 불평하고 원망을 합니다. 물이 없다고 원망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때는 강하게 징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충분히 보여주셨는데도 변함없이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을 보고 징계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구원을 받았지만 변화되지 않은 옛 본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강하게 징계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으로 변화시키십니다. 여호와의 군대로 빚어가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내 속에 잘 변화되지 않는 한 가지 문제를 깊이 발견하여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고 변화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탐욕의 무덤(11장). 여호와께서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는 것을 들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셨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하니 불이 꺼졌습니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었습니다. 다른 인종은 좀 질이 떨어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이나 구원의 은혜가 약한 다른 인종이었습니다. 그들의 불평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까지 퍼졌습니다. 불평은 약한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지만 곧 온 회중에게 퍼져나갔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라며 불평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적을 수없이 체험하고 지금도 광야에서 만나를 내려 주어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같은 음식을 먹다보니 질렸습니다. 그들은 광야 한복판에서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을 먹고 싶었습니다. 그들의 이런 불평을 우리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똑 같은 음식을 일주일만 먹어도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문제는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라고 말하며 하나님께 대한 불신을 드러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먹는 것이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먹는 것이 하나님보다 더 위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먹을 것도 필요하고, 돈도 필요하고, 좋은 학점도 필요하고, 성공하는 것도 필요하고, 양도 필요한 것을 아십니다. 문제는 이런 것들이 마음의 첫째 자리를 차지하여 그것만 얻으면 행복하고 생명의 풍성함을 얻을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매이게 되면 눈에는 그것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보다 그런 것들이 더 중요하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상숭배입니다. 탐욕은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 아십니다. 그러므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때 나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사람과 사물과의 영적 질서입니다.
지금 광야에서 가나안 땅을 향하여 행군을 하고 있습니다. 광야 생활은 일시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생활에 필요한 비상식량으로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만나로 인해서 자족하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마땅합니다. 만나만으로는 입맛이 안 나기에 하나님께 고기를 주시도록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제한을 두지 말고 무엇이든지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불신하고 원망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죄악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자신들이 모든 것을 다 해낸 것처럼 생각하는 자기 의에 빠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덧입고 다양한 요리를 개발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들도 만나를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습니다.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습니다. 그들이 수고하지 아니했는데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그들에게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그것으로 신제품을 개발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창조성을 발휘하는 대신에 한계에 갇혀서 원망하고 불평하였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사막에 물을 대고 농사를 짓습니다. 이스라엘이 사막에서 튜울립과 농작물을 재배하여 수출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이 어떠하든지 이를 개발하여 옥토로 만들고 있습니다. 최근에 우리나라는 바닷물을 담수로 바꾸고, 중동의 사막에서 벼농사를 짓는 기술을 개발하여 전수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사막에서 물고기를 양식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창조성과 지혜를 가꾸어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은 그들의 소망을 가나안 땅에 두고 현재의 어려움을 인내해야 합니다. 광야 생활은 지나가는 나그네 길입니다. 그들이 영원히 살 곳은 가나안 땅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잠시 머물다가 가는 여관과 같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집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갈 때에 내가 어디를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몸이 바라보는 곳으로 움직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가 우리가 진정 소망해야 할 곳입니다. 이 세상이 영원한 것처럼 이 세상만을 바라보게 되면 세상 사람들처럼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엣 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백성의 온 종족들이 각기 자기 장막 문에서 우는 것을 모세가 들었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왔습니다.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 어찌 주께서 내게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이르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 모세는 목자로서 백성들에 대한 책임감이 무거웠습니다. 목자는 양을 치는 사람입니다. 마치 아버지, 어머니가 자녀들을 양육하듯이 돌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백성들이 사막에서 생선을 달라고 하고 고기를 달라고 하니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하나님께 하소연을 합니다. 사실 우리가 목양을 할 때 끊임없이 한계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앞에 엎드려 감당할 힘과 지혜를 달라고 부르짖어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역사는 혼자서 다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짐을 나누어 질 동역자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백성의 장로와 지도자가 될 만한 자 70명을 모아 회막 앞에 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고자 하십니다. 그들이 모세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모세 혼자 담당하지 않게 하십니다. 그런데 택함 받은 70명의 장로 가운데 엘닷과 메닷이 모세가 있는 장막에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그들을 불렀는데도 나가지 않은 것은 모세의 권위를 무시하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들은 모세를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다른 장로들처럼 예언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왜 모세의 권위에 도전하는 엘닷과 메닷에게도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셨을까요? 엘닷과 메닷에게도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장로들이 마음을 같이해서 양떼들을 책임지고 돌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엘닷과 메닷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셔서 어그러진 그들의 마음을 바꾸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한 후에 엘닷과 메닷은 마음을 바꾸어서 모세와 한 마음 한 뜻을 이루어서 동역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하나가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갈등과 반목이 사라지고 한 마음이 되어서 서로 용납하고 사랑합니다. 한 공동체에 있으면서 한 마음 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갈등하고 반목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탄이 역사할 때 관계성이 파괴되고 갈등과 오해가 생기고 모임이 분열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섬길 때 짐을 나누어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가 맡은 일이 아무리 작더라도 충성스럽게 감당할 때 동역자들에게 큰 힘이 됩니다. 목자님들이 각자 맡은 자리에서 충성하는 모습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서로 짐을 나누어 질 때 공동체에 사랑이 흐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직임과 여러 가지 은사를 주셔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한 마음으로 주님의 역사를 동역하려면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셔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기게 하신 은혜를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에게 너희 몸을 거룩히 하여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고기를 주시되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스무날이 아니라 한 달 동안 먹게 하고자 하십니다. 그들의 코에서 고기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먹게 하십니다. 이는 그들이 우리 중에 계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가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한 달 동안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그들을 위하여 양 떼와 소 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라고 의문을 표시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여호와의 손이 짧아지기라도 했느냐고 반문하십니다.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고 격려하십니다. 이사야 59:1,2은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우리의 불신과 교만과 탐욕이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자기를 찾는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도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백성들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서 먼저 모세가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지도자가 믿음을 갖지 못하면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불신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지도자는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소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31,32절을 보십시오. “바람이 여호와에게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 곁 이쪽 저쪽 곧 진영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한지라. 백성이 일어나 그 날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진영 사면에 펴 두었더라.”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은 바람으로, 때로는 생수로, 때로는 불로 자기를 나타내십니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바람을 보내사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 곁에 내리게 하셨습니다. 고대에 하룻길은 25-35km정도입니다. 서울 면적만한 공간에 메추라기가 90cm정도 쌓이게 하셨습니다. 먹을 고기가 없다고 불평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득 쌓인 메추라기를 보면서 얼마나 신이 났겠습니까? 그들은 이틀 동안 메추라기를 잡아서 진영 사면에 펴두었습니다. 적게 모은 사람도 열 호멜을 모았습니다. 한 호멜은 100-200리터로서, 열 호멜은 1000-2000리터입니다. 이는 다섯 드럼통에서 10드럼통의 고기를 모은 것입니다. 그들의 욕심이 얼마나 컸는지 보여줍니다. 만나를 내려 주실 때에도 너무 많이 모아서 다 먹지 못하면 벌레가 나고 냄새가 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몇 달에서 일 년 동안 먹을 고기를 모았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광야를 행군 하겠습니까?
33,34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은 탐욕으로 자신의 미래를 담보하고자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상숭배입니다. 탐욕으로 인해서 그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탐욕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탐욕을 부리면 여기서 죽습니다. 탐욕은 과도한 욕심입니다. 하나님은 자족하고 감사하는 제사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무엇이 부족하면 언제든지 더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누리며 감사하는 삶을 살 때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2장 15절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잠시 사는 이 세상에서 탐욕을 부리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것에 감사하고 나누어 주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이 돌게 됩니다. 사랑과 섬김 속에 구원이 있습니다.
둘째, 자리에 대한 탐욕(12장). 모세가 아내 십보라가 죽자 구스 여자를 취하였습니다. 구스는 에디오피아입니다. 미리암과 아론이 이 일로 모세를 비방하였습니다. 인종적으로 유대인과 같은 혈통에서 취하지 않은 것을 비방한 것입니다. 그러나 갈렙도 이스라엘 혈통이 아니고, 우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에 다른 족속도 섞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한 것에 대해 뭐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론은 대제사장이고 모세의 친형입니다. 미리암은 여선지자이고 모세의 친누나입니다. 이들은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하며 모세와 같은 권위와 인정을 갖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너만 잘났냐, 우리도 잘 났다는 생각을 갖고 야망을 분출했습니다. 비방했다는 히브리어 동사가 여성임을 볼 때 미리암이 주동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들의 비방에 대해서 한 마디도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듣고 계셨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모세는 아론과 미리암에 대해서 무시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대제사장이요 선지자로서 하나님께 귀히 쓰임을 받고 있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메닷과 엘닷이 그의 말에 불순종하고도 하나님의 영을 받고 예언을 한 것을 보고 기뻐하였습니다. 심지어 모든 백성이 다 하나님의 영을 받아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섬기기를 바랬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에 충성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론과 미리암의 모세에 대한 비방을 듣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세 사람은 회막으로 나아오라.” 그들이 나오자 하나님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로부터 강림하사 장막 문에 서시고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셨습니다. 그 두 사람이 나아가매 이르셨습니다.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에게 영적 질서를 지키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의 리더십의 권위는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데서 나왔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입니다. 아론과 미리암은 모세에게 집중된 지도력이 자신들에게도 분배되어야 한다고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미리암과 아론은 그 자리를 탐내고 있었습니다. 그들 역시 자리에 대한 탐욕, 명예에 대한 욕심이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사 미리암이 나병에 걸리게 하셨습니다. 아론은 모세에게 “슬프도다 내 주여 우리가 어리석은 일을 하여 죄를 지었으나 청하건대 그 벌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 그가 살이 반이나 썩어 모태로부터 죽어서 나온 자 같이 되지 않게 하소서” 간구하였습니다. 모세가 부르짖어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미리암을 진영 밖으로 보내 이레 동안 가두고 그 후에 들어오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미리암이 진영 밖에 이레 동안 갇혀 있었고 백성은 그를 다시 들어오게 하기까지 행진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영적 질서 가운데 지도자를 중심으로 합심동역 할 때 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이룰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해야겠습니다. 자족하는 것이 경건에 큰 유익이 됩니다. 우리가 겸손하게 맡은 바 임무에 충성을 다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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