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022년민5강(9,10장) 광야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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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민수기 제 5 강
말씀 | 민수기 9:1-10:36
요절 | 민수기 10:11,12
광야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둘째 해 둘째 달 스무날에 구름이 증거의 성막에서 떠오르매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 광야에서 출발하여 자기 길을 가더니 바란 광야에 구름이 머무니라.”
이스라엘은 이제까지 인구조사, 진 편성, 성막 봉헌을 하고 유월절을 지키고 광야를 향하여, 최종적으로 가나안을 향하여 행군하기 시작합니다. 광야는 사람이 살기 힘든 곳입니다. 낮에는 더위로, 밤에는 추위로 고생을 하고, 물이 없기 때문에 갈증으로, 독사와 전갈과 적군들의 예상치 못한 공격을 마주해야 합니다. 인생은 광야를 걷는 것과 같습니다. 이 세상은 견디기 힘든 고난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새로운 도전과 장애물에 부딪쳐야 하고, 산을 넘으면 또 산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우리가 이 시대의 광야 길을 어떻게 행군해 나가야 하는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나가야 합니다(9:1-14). 하나님은 유월절을 그 정한 기일에 지키게 하라고 그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곧 이집트에서 나온 지 일 년이 지나고 그 달 14일 저녁부터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유월절은 바로의 압제와 추격, 장자의 죽음을 대신하여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름으로 구원을 받은 날입니다. 이 날에 노예상태에서 해방이 되어 자유를 얻었습니다. 유월절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세례와 성만찬을 하면서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립니다. 그 때까지 힘써 복음을 전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주님이 명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행진 전에 유월절을 지키는 것에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가지 아는 은혜를 알 때 시험의 때, 고난의 때를 잘 이길 수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과 그 은혜를 간직해야 기쁨으로 신앙생활을 해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명인으로 부르심을 받아서 살지만 주님의 한량없는 사랑에 기초한 것입니다. 애를 낳기 위해서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살다보니 애가 생기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기를 힘쓸 때 양도 생기는 것입니다. 죄사함을 받은 것이 많을수록 많이 사랑합니다. 주님과 사랑의 관계가 깊을수록 사명에 따르는 어려움도 잘 견디고 감당해 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가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수고한 것에 비해서 열매가 없거나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할 때 힘들어 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적은 일에 충성하는가를 보시고 인정하십니다. 적은 일에 충성할 때 큰일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는 사람의 인정보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상급을 주실 분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우리의 인생을 걸어야 합니다. 우리가 현재 받는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유월절을 지켜야 하는데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되어서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되든지 먼 여행 중에 있다 할지라도 다 여호와 앞에 마땅히 유월절을 지키되 다음 달 14일부터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로 말하면 수양회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보강 수양회를 열어서 은혜를 받게 하고, 주일예배를 제 시간에 못 드린 사람은 다음 날 “유튜브”로라도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는 은혜를 마음에 새기기 위해서입니다. 예배를 빼먹으면 믿음이 식기가 쉽습니다. 예배를 한두 번 빼먹기 시작하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시험에 들기 쉽습니다.
사람이 정결하기도 하고 여행 중에도 있지 아니하면서 유월절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이런 사람은 그 정한 기일에 여호와께 헌물을 드리지 아니하였은즉 그의 죄를 담당해야 합니다. 만일 타국인이 이스라엘 백성 중에 거류하여 여호와 앞에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면 유월절 율례대로 그 규례를 따라서 행할지니 거류민에게나 본토인에게나 그 율례는 동일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민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 땅끝 까지 나아가서 말씀을 가르치고 세례를 주고 말씀을 지키게 해야 합니다.
유월절은 해방 기념일이면서 축제 기간입니다. 느헤미야와 에스라도 절기를 지켰습니다. 그들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깨닫자 다 울었습니다. 이때 느헤미야와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인들이 우는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라 하고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 8:9,10).” 우리도 좋은 학점이나 돈이나 성공이나 다른 무엇보다 여호와로 인해서 기뻐할 때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일 예배를 하나님 안에서 축제처럼 드릴 때 큰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기쁨으로 찬양해야 합니다. 기타와 드럼과 피아노와 함께 노래를 마음을 바쳐 큰 소리로 해야 합니다. 찬양 인도자들도 힘써 기도하고 노래를 잘 준비하여 스피릿있게 찬양을 인도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바랍니다. 이 때 회중이 큰 위로를 얻고, 찬양 중에 치료를 경험하게 됩니다. 유월절 음식은 양고기와 무교병과 쓴 나물과 함께 두 세 가족이 함께 먹었습니다. 그들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를 생각하면서 쓴 나물을 먹었지만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축복과 자유가 얼마나 큰가, 지금 일상적인 삶을 누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되새기게 됩니다.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여 나눔으로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음식을 준비하기가 어려우면 반찬을 각자 집에서 싸와서 나누어도 좋습니다. 이렇게 함께 예배를 축제로 즐기며 드릴 때 공동체는 결속력을 갖게 됩니다.
둘째, 낮에는 구름, 밤에는 불 모양으로 성막에 임재하여 인도하신 하나님(15-23).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 곧 증거의 성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이르렀습니다. 항상 그러하여 낮에는 구름이 그것을 덮었고 밤이면 불 모양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 가운데 항상 함께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곧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진을 쳤습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진영에 머물렀고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행진하지 아니하였습니다. 혹시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적을 때에도 그들이 다만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영에 머물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습니다. 혹시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있다가 아침에 그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불평하지 않고 그들이 행진하였습니다. 구름이 밤낮 있다가 떠오르면 곧 행진하였습니다.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진영에 머물고 행진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기다려야 할 때는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며칠 쉬고 싶은데 구름이 움직이면 따라가야 하는 것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순종했습니다. “여호와의 명령”이라는 말씀이 9장 15-23절에 여덟 번이 나옵니다. 군대가 상관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듯이 하나님의 군대인 이스라엘 자손은 여호와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며 행군을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명령이 불규칙했지만 단순하게 순종했습니다. 200만 명의 사람들이 이와 같이 일사분란하게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일 때 그들은 천하무적이 되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인생의 시련을 만났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 고난 가운데서 달콤한 위로를 맛보았다는 간증을 자주 듣습니다. 다윗도 시편 23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 23:4,5).”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살게 하는 율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매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유를 누립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기보다 자기 생각대로, 자기 욕심대로 행할 때 도리어 속박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훈련이든지 훈련을 잘 받아 익히게 되면 자유를 얻습니다. 그러나 훈련이 부족하면 버벅 되는 것을 느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 전체를 살피고 알고 계시기 때문에 때로는 지름길을 놔두고 삥 돌려서 인도하시고 때로는 한 곳에 머물게 하십니다. 그때 우리는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답답해합니다. 조급한 마음 때문에 인내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보다 앞서서 가고자 합니다. 특히 한국 사람은 빨리 빨리 가야 잘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체되고 돌아서갈지라도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생의 “네비게이션”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고 순종할 때 광야 길에서도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믿음이 있을 때 어떤 상황이 닥쳐도 놀라지 않고 평안 속에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55장 8,9절은 말씀합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에 구름 기둥과 불기둥은 사라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길이 잘 보이지 않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할 때 엎드려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인도하심을 구할 때, 하나님은 그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시고 나아갈 길을 알려주십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승리하는 인생을 살려면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매일 아침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면서 속이 꽉 찬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나팔 신호를 따라 행군하게 하십니다(10:1-10). 하나님은 모세에게 은 나팔 둘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나팔소리는 크기 때문에 200만 명에게 신호를 전달하는데 효과적이었습니다. 나팔 두 개를 불 때에는 온 회중이 회막 문 앞에 모여서 하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하나만 불 때에는 이스라엘의 천부장 된 지휘관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나아왔습니다. 나팔을 크게 불 때에는 동쪽 진영들이 행진할 것이며 두 번째로 크게 불 때에는 남쪽 진영들이 행진할 것입니다. 떠나려 할 때에는 나팔 소리를 크게 불 것이며 또 회중을 모을 때에도 나팔을 불 것이나 소리를 울려 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전쟁을 하러 나갈 때에 부르는 나팔 소리가 있고 절기, 희락의 날, 초하루에 부는 찬양의 나팔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기쁘고 경쾌하게 불어서 춤을 추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 나팔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불어야 했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이 불게 되면 소리가 일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듣는 회중에게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습니다. 회중에게 선명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게 했습니다. 나팔을 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연습을 해야 합니다. 목자들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하나님의 뜻을 양들에게 명확하게 전달해주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팔소리가 나면 그 소리가 무슨 뜻인지 분별하고 그 뜻에 일사분란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의 군대로서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목자가 전해주는 말씀을 잘 듣고 힘써 순종해야 합니다.
나팔을 부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9,10절을 보십시오.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크게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의 대적에게서 구원하시리라 또 너희의 희락의 날과 너희가 정한 절기와 초하루에는 번제물을 드리고 화목제물을 드리며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시리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나팔을 부는 것은 하나님께서 분명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 주시는 것입니다. 한편 제사장이 나팔을 붊으로써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기억하신다고 했습니다. 즉 나팔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와 같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떠난 지 일년 일개월 5일이 지난 후 구름이 증거의 성막에서 떠오르자 시내 광야에서 출발하여 행군하기 시작했습니다. 행군을 시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개무량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행군하여 바란 광야에 이르자 구름이 머물렀습니다. 이대로 곧장 행군하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시내 산에서 가나안 땅까지는 열하루 정도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그러나 출애굽한지 1년 1개월밖에 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갈 만한 믿음과 내면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시내 광야와 바란 광야를 비교함으로 그들의 미래에 대한 어두운 여운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유다, 잇사갈, 스불론 진영이 선두에 서고, 다음에 성막을 걷고 게르손 자손과 므라리 자손이 성막을 메고 출발하였습니다. 다음으로 르우벤, 시므온, 갓 자손이 행군하였습니다. 고핫인은 성물을 메고 행진하였습니다. 그들이 이르기 전에 성막을 세웠습니다. 다음으로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진영이 따랐습니다. 맨 후미에 단, 아셀, 납달리 진영이 행군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중심에 계시면서 언약궤가 맨 앞에 감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늘 함께 계시면서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하십니다.
넷째, 모세의 기도(29-36). 모세는 처남인 호밥에게 자신들과 동행하자고 부탁을 합니다. 호밥이 모세에게 “나는 가지 아니하고 내 고향 내 친족에게로 가리라”고 거절합니다. 그러나 모세가 다시 간청을 합니다. “우리를 떠나지 마소서 당신은 우리가 광야에서 어떻게 진 칠지를 아나니 우리의 눈이 되리이다. 우리와 동행하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는 대로 우리도 당신에게 행하리이다.” 사사기 1:16, 4:11에 보면 호밥의 자손이 이스라엘과 함께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지만 그 지역의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는 전문가를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일할 수 있습니다.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과 전문가의 도움이 상반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일반은총을 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법률전문가와 의사, 상담가, 컴퓨터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광풍 속에서 사공들의 전문성을 살려서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을 다 구원하였습니다(행27:31).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갈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 가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그들이 진영을 떠날 때에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그 위에 덮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갑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는 삶입니다.
모세는 궤가 떠날 때에는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궤가 쉴 때에는 말하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 기도하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행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동행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인도하실 뿐만 아니라 앞서서 우리 앞길을 예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의 임재를 구하며,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순종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도우심과 축복을 경험하며 형통한 나그네 인생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말씀 | 민수기 9:1-10:36
요절 | 민수기 10:11,12
광야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둘째 해 둘째 달 스무날에 구름이 증거의 성막에서 떠오르매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 광야에서 출발하여 자기 길을 가더니 바란 광야에 구름이 머무니라.”
이스라엘은 이제까지 인구조사, 진 편성, 성막 봉헌을 하고 유월절을 지키고 광야를 향하여, 최종적으로 가나안을 향하여 행군하기 시작합니다. 광야는 사람이 살기 힘든 곳입니다. 낮에는 더위로, 밤에는 추위로 고생을 하고, 물이 없기 때문에 갈증으로, 독사와 전갈과 적군들의 예상치 못한 공격을 마주해야 합니다. 인생은 광야를 걷는 것과 같습니다. 이 세상은 견디기 힘든 고난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새로운 도전과 장애물에 부딪쳐야 하고, 산을 넘으면 또 산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우리가 이 시대의 광야 길을 어떻게 행군해 나가야 하는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나가야 합니다(9:1-14). 하나님은 유월절을 그 정한 기일에 지키게 하라고 그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곧 이집트에서 나온 지 일 년이 지나고 그 달 14일 저녁부터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유월절은 바로의 압제와 추격, 장자의 죽음을 대신하여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름으로 구원을 받은 날입니다. 이 날에 노예상태에서 해방이 되어 자유를 얻었습니다. 유월절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세례와 성만찬을 하면서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립니다. 그 때까지 힘써 복음을 전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주님이 명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행진 전에 유월절을 지키는 것에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가지 아는 은혜를 알 때 시험의 때, 고난의 때를 잘 이길 수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과 그 은혜를 간직해야 기쁨으로 신앙생활을 해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명인으로 부르심을 받아서 살지만 주님의 한량없는 사랑에 기초한 것입니다. 애를 낳기 위해서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살다보니 애가 생기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기를 힘쓸 때 양도 생기는 것입니다. 죄사함을 받은 것이 많을수록 많이 사랑합니다. 주님과 사랑의 관계가 깊을수록 사명에 따르는 어려움도 잘 견디고 감당해 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가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수고한 것에 비해서 열매가 없거나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할 때 힘들어 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적은 일에 충성하는가를 보시고 인정하십니다. 적은 일에 충성할 때 큰일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는 사람의 인정보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상급을 주실 분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우리의 인생을 걸어야 합니다. 우리가 현재 받는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유월절을 지켜야 하는데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되어서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되든지 먼 여행 중에 있다 할지라도 다 여호와 앞에 마땅히 유월절을 지키되 다음 달 14일부터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로 말하면 수양회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보강 수양회를 열어서 은혜를 받게 하고, 주일예배를 제 시간에 못 드린 사람은 다음 날 “유튜브”로라도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는 은혜를 마음에 새기기 위해서입니다. 예배를 빼먹으면 믿음이 식기가 쉽습니다. 예배를 한두 번 빼먹기 시작하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시험에 들기 쉽습니다.
사람이 정결하기도 하고 여행 중에도 있지 아니하면서 유월절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이런 사람은 그 정한 기일에 여호와께 헌물을 드리지 아니하였은즉 그의 죄를 담당해야 합니다. 만일 타국인이 이스라엘 백성 중에 거류하여 여호와 앞에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면 유월절 율례대로 그 규례를 따라서 행할지니 거류민에게나 본토인에게나 그 율례는 동일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민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 땅끝 까지 나아가서 말씀을 가르치고 세례를 주고 말씀을 지키게 해야 합니다.
유월절은 해방 기념일이면서 축제 기간입니다. 느헤미야와 에스라도 절기를 지켰습니다. 그들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깨닫자 다 울었습니다. 이때 느헤미야와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인들이 우는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라 하고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 8:9,10).” 우리도 좋은 학점이나 돈이나 성공이나 다른 무엇보다 여호와로 인해서 기뻐할 때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일 예배를 하나님 안에서 축제처럼 드릴 때 큰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기쁨으로 찬양해야 합니다. 기타와 드럼과 피아노와 함께 노래를 마음을 바쳐 큰 소리로 해야 합니다. 찬양 인도자들도 힘써 기도하고 노래를 잘 준비하여 스피릿있게 찬양을 인도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바랍니다. 이 때 회중이 큰 위로를 얻고, 찬양 중에 치료를 경험하게 됩니다. 유월절 음식은 양고기와 무교병과 쓴 나물과 함께 두 세 가족이 함께 먹었습니다. 그들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를 생각하면서 쓴 나물을 먹었지만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축복과 자유가 얼마나 큰가, 지금 일상적인 삶을 누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되새기게 됩니다.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여 나눔으로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음식을 준비하기가 어려우면 반찬을 각자 집에서 싸와서 나누어도 좋습니다. 이렇게 함께 예배를 축제로 즐기며 드릴 때 공동체는 결속력을 갖게 됩니다.
둘째, 낮에는 구름, 밤에는 불 모양으로 성막에 임재하여 인도하신 하나님(15-23).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 곧 증거의 성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이르렀습니다. 항상 그러하여 낮에는 구름이 그것을 덮었고 밤이면 불 모양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 가운데 항상 함께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곧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진을 쳤습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진영에 머물렀고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행진하지 아니하였습니다. 혹시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적을 때에도 그들이 다만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영에 머물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습니다. 혹시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있다가 아침에 그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불평하지 않고 그들이 행진하였습니다. 구름이 밤낮 있다가 떠오르면 곧 행진하였습니다.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진영에 머물고 행진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기다려야 할 때는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며칠 쉬고 싶은데 구름이 움직이면 따라가야 하는 것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순종했습니다. “여호와의 명령”이라는 말씀이 9장 15-23절에 여덟 번이 나옵니다. 군대가 상관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듯이 하나님의 군대인 이스라엘 자손은 여호와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며 행군을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명령이 불규칙했지만 단순하게 순종했습니다. 200만 명의 사람들이 이와 같이 일사분란하게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일 때 그들은 천하무적이 되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인생의 시련을 만났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 고난 가운데서 달콤한 위로를 맛보았다는 간증을 자주 듣습니다. 다윗도 시편 23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 23:4,5).”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살게 하는 율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매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유를 누립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기보다 자기 생각대로, 자기 욕심대로 행할 때 도리어 속박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훈련이든지 훈련을 잘 받아 익히게 되면 자유를 얻습니다. 그러나 훈련이 부족하면 버벅 되는 것을 느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 전체를 살피고 알고 계시기 때문에 때로는 지름길을 놔두고 삥 돌려서 인도하시고 때로는 한 곳에 머물게 하십니다. 그때 우리는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답답해합니다. 조급한 마음 때문에 인내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보다 앞서서 가고자 합니다. 특히 한국 사람은 빨리 빨리 가야 잘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체되고 돌아서갈지라도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생의 “네비게이션”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고 순종할 때 광야 길에서도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믿음이 있을 때 어떤 상황이 닥쳐도 놀라지 않고 평안 속에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55장 8,9절은 말씀합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에 구름 기둥과 불기둥은 사라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길이 잘 보이지 않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할 때 엎드려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인도하심을 구할 때, 하나님은 그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시고 나아갈 길을 알려주십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승리하는 인생을 살려면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매일 아침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면서 속이 꽉 찬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나팔 신호를 따라 행군하게 하십니다(10:1-10). 하나님은 모세에게 은 나팔 둘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나팔소리는 크기 때문에 200만 명에게 신호를 전달하는데 효과적이었습니다. 나팔 두 개를 불 때에는 온 회중이 회막 문 앞에 모여서 하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하나만 불 때에는 이스라엘의 천부장 된 지휘관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나아왔습니다. 나팔을 크게 불 때에는 동쪽 진영들이 행진할 것이며 두 번째로 크게 불 때에는 남쪽 진영들이 행진할 것입니다. 떠나려 할 때에는 나팔 소리를 크게 불 것이며 또 회중을 모을 때에도 나팔을 불 것이나 소리를 울려 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전쟁을 하러 나갈 때에 부르는 나팔 소리가 있고 절기, 희락의 날, 초하루에 부는 찬양의 나팔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기쁘고 경쾌하게 불어서 춤을 추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 나팔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불어야 했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이 불게 되면 소리가 일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듣는 회중에게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습니다. 회중에게 선명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게 했습니다. 나팔을 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연습을 해야 합니다. 목자들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하나님의 뜻을 양들에게 명확하게 전달해주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팔소리가 나면 그 소리가 무슨 뜻인지 분별하고 그 뜻에 일사분란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의 군대로서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목자가 전해주는 말씀을 잘 듣고 힘써 순종해야 합니다.
나팔을 부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9,10절을 보십시오.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크게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의 대적에게서 구원하시리라 또 너희의 희락의 날과 너희가 정한 절기와 초하루에는 번제물을 드리고 화목제물을 드리며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시리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나팔을 부는 것은 하나님께서 분명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 주시는 것입니다. 한편 제사장이 나팔을 붊으로써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기억하신다고 했습니다. 즉 나팔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와 같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떠난 지 일년 일개월 5일이 지난 후 구름이 증거의 성막에서 떠오르자 시내 광야에서 출발하여 행군하기 시작했습니다. 행군을 시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개무량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행군하여 바란 광야에 이르자 구름이 머물렀습니다. 이대로 곧장 행군하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시내 산에서 가나안 땅까지는 열하루 정도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그러나 출애굽한지 1년 1개월밖에 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갈 만한 믿음과 내면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시내 광야와 바란 광야를 비교함으로 그들의 미래에 대한 어두운 여운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유다, 잇사갈, 스불론 진영이 선두에 서고, 다음에 성막을 걷고 게르손 자손과 므라리 자손이 성막을 메고 출발하였습니다. 다음으로 르우벤, 시므온, 갓 자손이 행군하였습니다. 고핫인은 성물을 메고 행진하였습니다. 그들이 이르기 전에 성막을 세웠습니다. 다음으로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진영이 따랐습니다. 맨 후미에 단, 아셀, 납달리 진영이 행군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중심에 계시면서 언약궤가 맨 앞에 감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늘 함께 계시면서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하십니다.
넷째, 모세의 기도(29-36). 모세는 처남인 호밥에게 자신들과 동행하자고 부탁을 합니다. 호밥이 모세에게 “나는 가지 아니하고 내 고향 내 친족에게로 가리라”고 거절합니다. 그러나 모세가 다시 간청을 합니다. “우리를 떠나지 마소서 당신은 우리가 광야에서 어떻게 진 칠지를 아나니 우리의 눈이 되리이다. 우리와 동행하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는 대로 우리도 당신에게 행하리이다.” 사사기 1:16, 4:11에 보면 호밥의 자손이 이스라엘과 함께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지만 그 지역의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는 전문가를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일할 수 있습니다.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과 전문가의 도움이 상반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일반은총을 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법률전문가와 의사, 상담가, 컴퓨터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광풍 속에서 사공들의 전문성을 살려서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을 다 구원하였습니다(행27:31).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갈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 가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그들이 진영을 떠날 때에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그 위에 덮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갑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는 삶입니다.
모세는 궤가 떠날 때에는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궤가 쉴 때에는 말하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 기도하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행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동행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인도하실 뿐만 아니라 앞서서 우리 앞길을 예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의 임재를 구하며,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순종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도우심과 축복을 경험하며 형통한 나그네 인생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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