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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021마 40강(26:31-75)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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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08회 작성일 21-02-14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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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마태복음 제 40 강 
말씀 | 마태복음 26:31-75
요절 | 마태복음 26:39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설 연휴를 보내고 새롭게 한 해를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로서 마태복음을 마칩니다. 이 시간 마태복음 전체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마태복음 전체의 주제인 하나님 나라와 제자도에 대해 배우게 하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의 임재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역사 속에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생애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실현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 나라는 제자를 통해서 계승되고 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제자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세상으로 나아가서 예수님이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사람입니다. 제자 사역의 핵심은 작은 자에게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라는 제자 공동체는 작은 자를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작은 자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지켜 나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면서도 자기를 부인하고 버리는 제자들을 잃어버리지 않고자 기도하십니다. 또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애를 쓰십니다.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모든 사람의 죄를 사하십니다. 오늘은 특히 시험을 당해 자기를 부인하는 베드로 한 사람을 도우시는 예수님을 깊이 만날 수 있습니다. 목자 생활을 할 때 우리 힘으로 어찌 해볼 도리가 없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어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본 받아 기도의 깊은 세계로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연약한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기도를 배우기를 원합니다. 

  유월절 이틀 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31,32)”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시험의 때를 준비하도록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꿈이 예수님이 당하시는 고난을 통해서 깨어지는 것을 보고 그를 버릴 것입니다. 제자들이 삼년 동안 예수님을 따른 것은 하나님 나라를 가져오신 것 때문입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말씀 앞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면서 세상의 소망이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꿈이 생긴 것입니다. 그들의 세상 꿈이 물거품으로 돌아가자 예수님을 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시험에 들더라도 살아난 후에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고 말씀하심으로 회복의 소망을 심어주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 교만했습니다.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자기는 다른 제자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는 근거 없는 자기 확신에 차 있습니다. 모든 교만이 사실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인간을 교만하게 함으로써 시험에 빠지게 합니다. 이렇게 사람이 시험에 들면 말씀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시험에 들면 기도도 하기가 어렵습니다. 마귀가 노리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말씀을 붙들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대신에 자기 생각, 자기 확신에 차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자기 확신에 찬 베드로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래 내가 네 진심을 안다, 고맙다”라고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34)” 담담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더욱 강경하게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자기 의지로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은혜가 있을 때는 무엇이든지 할 것 같지만 시험에 들면 한 없이 연약해집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를 수 있는 것도 은혜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베드로가 자기 확신에 차 있지만 기도하지 않을 때 시험을 이길 힘이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다가 자신에게 닥친 예기치 못한 환난을 경험할 때 놀라서 넘어집니다.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은 29세에 상원의원이 되자마자 교통사고로 그의 아내와 딸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의 아들도 중상을 입었습니다. 이때 그는 왜 하필 자신에게 이런 불행이 닥쳤는지 거듭 물으면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하나님을 원망하며 믿음을 잃어가는 것을 보고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를 돕고자 딕 브라운이 그린 ‘공포의 헤이가르’의 만화 두 컷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처음 컷에는 “Why me?”(왜 하필 저인가요?)라고 쓰여 있었고, 다음 컷에는 하나님께서 “Why not”(왜 너라고 예외냐?)이라고 대답하는 내용이 쓰여 있었습니다. 누구나 환난을 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조 바이든은 그 그림을 보고 자신에게도 그런 환난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믿음을 지켰다고 합니다.

  우리가 겸손하게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안다면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게 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시련이 닥칠 때 믿음이 흔들리고 넘어지기 쉽습니다. 우리가 시험의 때에 어떻게 이를 극복해야 하는지 예수님에게서 본을 보고 배울 수 있습니다.

  36-38절을 보십시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예수님은 고민하고 슬퍼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숨김없이 보여주시며 기도를 요청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겸손한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한 인간의 연약한 모습을 제자들에게 모두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초청하십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는가를 보여줌으로 배우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힘들고 어려울 때에 조금 더 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무서운지 잘 아셨습니다.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지나가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친밀하게 부르십니다. 자신을 버리고 죽음에 이르도록 저주와 고난을 부으시지만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사랑과 신뢰가 변함이 없습니다. 내 아버지여!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심과 그 사랑을 신뢰하고 그에게 나아갑니다. 그는 자신도 힘들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한지 헤아리십니다. 그는 아버지 하나님께 자신의 속마음을 진실되게 아뢰었습니다. 그는 십자가의 잔이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운 잔인가 아셨기 때문에 하실 수 있으면 그 잔을 지나가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자녀가 사랑하는 아버지 앞에 할 수 있는 특권은 자신의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토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 마음의 고뇌와 번민을 아십니다. 그 자녀의 한숨 소리, 신음소리에 민감하게 귀를 기울이십니다. 사랑하는 자녀의 부르짖음을 듣고 응답하십니다. 힘드십니까? 주님 앞에 나아가 부르짖고 통곡하며 기도하십시오. 기도가 되지 않습니까? 그래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엎드리십시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너무나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십시오. 답답하면 답답한 대로 주님께 아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의 고뇌와 투쟁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소원을 아뢰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인간적인 생각을 내려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결단하셨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우리 안에는 항상 두 가지 소원하는 바가 갈등하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인간적인 자아는 내 육신이 원하는 대로 하고 싶습니다. 얼른 생각해 보면 내가 원하는 바가 더 좋아 보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보기도 싫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사람은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자기중심적으로 계산을 합니다. 이게 좋은가? 저게 좋은가? 이렇게 하는 것이 내게 유익한가? 저렇게 하는 것이 내게 유익인가?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계산하기보다 기도를 합니다. 내 뜻인가, 하나님의 뜻인가?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기도의 씨름을 합니다. 예수님도 갈등하신 것을 보면 이 싸움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기도는 자기를 부인하고자 몸부림치는 기도였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영접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기도였습니다. 내 뜻이 분명이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더 앞세우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은 어쩔 수 없어서 운명적으로 십자가를 받아들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아버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에 순종하십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인류의 죄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 사실 주의 종된 우리에게도 이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나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고 나는 그의 종이라면 주인의 유익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종은 주인이 시키는 일을 해야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종은 주인이 원하는 장소에서, 주인이 원하는 방법으로 일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같은 내용의 기도를 세 번씩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감당할 능력을 주시고 확신을 주시기까지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노동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어 떨어졌습니다. 히브리서에서는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을 때 십자가를 질 힘을 얻으셨습니다.

  우리가 목자 생활을 하는 것도 내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내 힘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에 늘 한계를 느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우리가 목자생활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런 한계를 느낄 때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도의 불을 내려 주시고 기도의 불이 타오르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40,41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기도해야 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악한 영들과 사탄과의 영적인 싸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에서도 우리로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악에서 구하옵소서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시험에 들 때가 언제일까요? 하나님께 감사를 잃어버릴 때입니다. 또 하나님을 섬기다가 정욕의 시험, 동역으로 인한 시험, 관계로 인한 시험, 물질로 인한 시험 등 여러 가지 시험을 받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 고린도전서 10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적인 교훈을 언급하였습니다. 그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멸망을 당하였기 때문에 그들과 같이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자고 합니다. 또한 그들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당한 것을 상기시킵니다.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자고 권면합니다. 그러면서 지금 당하는 시험은 능히 이길 수 있다고 권면합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 감사할 일들을 찾고 감사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실 시험을 당할 때에는 모든 것이 원망거리로 보입니다. 영적인 눈이 가려져서 감사제목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하고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도 그렇게 많은 복을 받고 복된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시험에 들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감사할 것들을 찾고 감사하는 것이 시험을 이기는 길입니다.

  지난 번에 한 자매님이 자신이 매우 힘들었을 때에 모든 것이 짜증이 나고 원망스럽고 힘들어 죽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감사제목을 찾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을 때 환경은 전혀 변하지 않았는데 자신의 마음이 바뀌고 감사와 기쁨과 평안으로 충만하게 되었다고 간증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에 감사가 넘칠 때 능히 시험을 이기고 은혜 가운데 주님의 사역을 섬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마치고 오셔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45,46).” 예수님은 기도하고 힘과 확신을 얻으셨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파는 자들에게, 십자가의 죽음을 향하여 일어나 담대히 나가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에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를 끌고 왔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칼과 몽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파는 자가 그들과 군호를 짰습니다.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고 하였습니다. 입맞춤은 친밀함과 사랑과 신뢰와 경배의 표시입니다. 시편 2편은 메시아의 노래인데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무엇보다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시 2:12). 그런데 사탄은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예수님을 배반하는 통로로 사용하였습니다. 사탄은 아담으로부터 시작해서 여자를 이용해서 남자를 넘어지게 하고자 시험합니다. 사탄은 항상 가까이 있는 사람, 연약한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이용해서 시험을 합니다.

  예수님은 유다가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라고 입을 맞추자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그들이 나아와 예수님을 체포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렸습니다. 그는 베드로였고, 귀가 잘린 대제사장의 종은 말고였습니다(요18:10). 그는 싸워야 할 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혈과 육의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행동은 용감하게 보이지만 실상은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경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실 수 있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을 이룰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선지자의 글을 이루기 위해서 순순히 체포되셨습니다.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을 갔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호언장담했던 것과는 다르게 예수님이 체포당하시자 예수님을 버리고 “발아 나 살려라” 소리치며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도망갔던 베드로가 예수님이 어떻게 되는가 궁금해서 멀찍이 따라갔습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갔습니다. 거기에는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를 불법으로 연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거짓 증인들을 많이 세웠습니다. 그들에게서 증거를 얻지 못하자 두 사람이 와서 이렇게 증언하였습니다.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사실 이 성전은 예수님의 몸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예언대로 삼일 만에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성전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말씀이 이루어지기까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대제사장이 물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이에 대해 예수님은 분명하게 “네가 말하였느니라” 대답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대답을 듣고 신성 모독이라며 옷을 찢었습니다. 그리고 사형 언도를 내렸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며 조롱하였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자기가 창조한 피조물에게 이런 수모를 겪으셨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도 이런 모욕을 받으면 마음이 무너져 내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잠잠히 이 수모를 참으셨습니다. 이는 이사야 53장 고난 받는 종의 모습을 이루는 것입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공정성을 위해서 해 뜬 후부터 해질 때까지 열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밤중에 심문을 했습니다. 사형 언도를 내리고 하루가 지나서 형을 집행해야 했지만 그들은 이것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죄가 확정되기도 전에 때리고 고문하였습니다. 그들의 판결은 불법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다고 발뺌을 하였습니다. 그가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였습니다.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의 말투와 갈릴리 사람들의 말투가 달랐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의 말투는 모음이 다소 부정확했다고 합니다.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였습니다.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당께.” 듣다 듣다 참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곧 닭이 울었습니다. 75절을 보십시오.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닭이 울자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했습니다. 베드로는 죽음을 면하기 위해서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해야 했던 자신이 모습이 한없이 미웠습니다. 그는 이 사건 통해서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형편없는 존재인가를 깨달았습니다. 자기가 깨어진 베드로는 이후로 겸손하게 되어 지극히 작은 자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십자가의 고난 앞에서 예수님은 기도로서 육신의 연약함을 극복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만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힘을 얻는 통로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우쳐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성령 안에서 사랑과 능력과 절제하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만 이를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덧입기 위해서 기도에 힘쓰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할 때 예수님이 하신 사역을 할 수 있고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새 학기를 준비하며 기도에 헌신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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