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020년 마37(25:1-30) 착하고 충성된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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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태복음 제 37 강
말씀 | 마태복음 25:1-30
요절 | 마태복음 25:21
착하고 충성된 종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은 임박한 인류의 종말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과 그 때는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도둑처럼 갑자기 임하기 때문에 깨어서 그 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오늘은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해서 재림을 준비하는 마음 자세(1-13)와 달란트 비유를 통해서 재림을 준비하는 자의 구체적인 삶의 열매(14-30)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말세를 어떻게 준비하며 살아야 하는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열 처녀의 비유(1-13).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결혼식은 먼저 신랑 부모와 신부 부모가 만나서 약속을 하고 약혼식을 합니다. 약혼식을 하면 정식으로 부부관계가 됩니다. 일 년 후에 결혼식을 하는데 신부는 수놓은 옷을 입고, 보석 등으로 몸치장을 하고, 면사포를 썼습니다. 신랑도 최상의 옷을 입고, 머리에 사모 즉 관을 썼습니다. 그리고 친구, 친척들과 함께 신부의 집으로 향하는데, 악기를 연주하는 자, 노래하는 자가 이에 동반하고, 만약 밤이 되면, 등불을 든 사람이 이에 가담했습니다. 신부의 집에 도착하면, 신부는 부모의 축복을 받고, 신랑에게 인도됩니다. 결혼식은 신랑의 집에서 열리는데, 신랑이 먼 곳에 살고 있는 경우에는 신부의 집에서 열리고, 그 비용은 신랑의 집에서든가, 혹은 양가에서 지불했습니다. 축하 잔치는 다음날 재개되고, 길게는 1주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축하 잔치에 초대되는 것은 명예로 생각되고, 이것을 거절하는 것은 아주 무례한 일이었습니다. 축하연은 축사, 음악, 무용 등이 행해져 오락이 적은 시대에 큰 기쁨이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를 혼인 잔치에 비유하셨습니다. 이런 배경 가운데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다섯 명은 미련하고 다섯 명은 슬기로웠습니다. ‘미련하다’ 말의 사전적 정의는 ‘터무니없이 고집을 부릴 정도로 어리석고 둔하다’입니다. 어리석다는 말로도 번역이 되는데 이것은 정신이 섞여서 맑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얼빠졌다는 말로도 쓰입니다. 반면에 ‘슬기롭다’는 것은 ‘신중한’이란 뜻입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불은 가졌으나, 기름은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자기들의 등불과 함께 통에 기름도 마련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신랑이 오는 시간을 자기들 마음대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이 언제 올지 알 수 없으니 준비를 철저히 했습니다. 신랑이 늦어지니,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다 연약합니다. 신랑이 오는 것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늦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습니다. ‘보아라, 신랑이다. 나와서 맞이하여라.’ 그 때에 그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서 제 등불을 손질하였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슬기야, 우리 등불이 꺼져 가니, 너희의 기름을 좀 나누어 다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이 대답을 하였습니다. ‘미련아! 그렇게 하면, 우리에게나 너희에게나 다 모자랄 터이니, 안 돼. 차라리 기름 장수에게 가서, 사서 써라.’ 슬기로운 처녀들은 이기적인 것이 아닙니다.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신랑을 중심으로 자신들이 해야 할 본분에 충실하였던 것입니다.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습니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습니다. 한 번 닫힌 천국 문은 다시 열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름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그 날이 오기전까지만 가능합니다. 그 뒤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님,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하고 애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신랑이 대답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 날과 그 시각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은 기름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기름이 무엇일까요? 성령충만, 믿음, 은혜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을 영접할 때 한 번 받으면 되지만, 성령 충만은 반복적으로 계속해서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신의 본분에 합당한 행동을 함으로써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흑암의 권세에서 옮겨져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성품을 닮아가고 한 사람에게라도 복음을 전해서 영혼을 구원하고 제자를 삼는 일을 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살려면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수단이 말씀과 성례입니다. 일용할 양식과 주일 말씀 공부와 주일 예배와 소감을 써서 나누는 가운데 삶을 나누는 것이 은혜 안에 사는 좋은 방법입니다. 내 안에 은혜가 충만하면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람들을 사랑하고 맡기신 일에 충성을 다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살면서 악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고,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다 보면 자기 한 몸 건사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하는 일에 실패하고 낙담하고 넘어지고 쓰러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어려움을 이기고 다시 일어서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려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사실적이고, 개인적이고, 실제적인 관계를 맺어야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성령님에 의해 성경, 기도, 교회, 환경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그 음성을 듣고 순종할 때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며 사랑의 관계가 자라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위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참여할 때 그의 인도하심과 능력과 사랑을 경험하며 은혜가 자라납니다. 열매를 맺습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미래를 생각하고 신중하게 준비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알면서도 준비하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당장 필요한 것만 준비하며 살아갑니다. 코앞에 닥친 문제에 매여 살아갑니다.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집을 사고 애 낳고 키우고, 집을 넓히는 것에만 마음이 가 있습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사람은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생각하며 준비합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는 어둠이 깊어집니다. 불법이 성하고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외면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사람 중심인 시대가 될 것입니다. 불경스럽고, 무정하며, 원한을 풀지 아니하며, 절제가 없으며, 난폭합니다. 선을 좋아하지 아니하고, 배신하며, 무모합니다.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합니다(딤후 3:2,-5).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합니다. 기도와 예배가 금지될 것입니다. 사랑이 식어지게 되고 서로를 돌아볼 여유가 없어집니다. 그 때는 성경공부를 하고 싶어도 가르쳐 주는 목자가 없을 것입니다. 아니 북한과 같이 성경을 구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이런 때에 믿음을 지키며 거룩한 삶을 살면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린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때가 오더라도 우리가 믿음을 잃지 않고 주님의 은혜 안에서 생활하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자립적으로 공부하고, 개인기도가 깊어져야 할 것입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모이기를 힘쓰고 사랑 안에서 연합해야 합니다. 혼자서 어려운 시대를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나중에 어리석은 처녀들이 왔을 때 주님은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소에 주님과 사랑의 관계가 깊어져야 합니다. 주님과 사랑의 관계를 가꾸어 가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공동체이신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가정 교회를 세우고, 요회를 성장시키고 분가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제자를 양성하는 법을 배우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나의 믿음을 지키고 은혜를 간직하는 비결입니다.
둘째, 달란트 비유(14-30).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서 자기의 재산을 그들에게 맡겼습니다. 그는 각 사람의 능력을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고, 또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주고, 또 다른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습니다. 한 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으로서 노동자의 20년치 연봉에 해당이 됩니다. 월급을 150만원으로 치면 한 달란트는 3억6천만원입니다. 두 달란트는 7억2천만원, 다섯 달란트는 18억원입니다. 주님께서 종들에게 맡긴 돈은 사업을 하기에 충분한 액수입니다. 종들에게 맡겨진 달란트는 하나님의 종들에게 주어진 재능과 기회와 은사입니다. 제자들에게 주어진 달란트는 다 다릅니다. 우리에게 주어지고 열려 있는 기회들은 그 특성과 크기가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주인이 돌아오기 전에 그 기회들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입니다. 주어진 기회를 통해 어떤 자세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릴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직도 나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기회 타령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기회라고 생각하기보다 부담스럽게 여깁니다. 어떤 사람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고 최선을 다해서 충성하고 헌신을 합니다.
고 정주영 회장은 장사를 잘 했습니다. 그는 시장을 보면 어디에 돈이 있는지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곧 가서, 그것으로 장사를 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그와 같이 하여, 두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우리가 장사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하나님이 어디서 일하시는 지를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요 5:19).” 예수님은 아무 것도 스스로 하지 않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주시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는 환상을 보고 유럽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핍박을 받고 흩어진 성도들이 안디옥에 이르러 그리스 사람들에게도 말을 하여 주 예수님을 전하였습니다. 그때 주님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니 수많은 사람이 믿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행 11:21).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 ‘바로 가서’ 장사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활용하는 것이 장사를 잘 하는 비결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열린 문을 주십니다. 주님이 열면 닫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닫으시면 열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도의 문이 열렸을 때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지 않으면 나도 가만히 있으면서 때를 기다리며 준비를 해야 합니다. 주도권은 하나님이 쥐고 계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순종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장사를 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였습니다. 두 달란트를 받았던 자도 다가와서 ‘주인님, 주인님께서 두 달란트를 내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 주인은 그들이 적은 일에 충성을 한 점을 높이 샀습니다. 주인의 의도를 파악하고 적은 일에 충성했을 때 그들은 장사를 하여 유익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들이 크든 적든 충성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충성이란 무엇입니까? 시종일관 변함이 없이 신실하다는 뜻입니다. ‘충성’이란 말에는 진실성과 지속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만 열심히 한 것이 아니라 끝까지 한결 같은 모습으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힘들다고 요령을 피우지 않고 힘들다고 포기하지 않고 자신들이 맡은 일을 책임성 있게 감당했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2절은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2장 2절에서 디모데에게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라고 권면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은 충성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충성된 사람들을 찾으시고 충성된 사람들에게 더 많은 하나님의 일을 맡기십니다.
테레사 수녀는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그가 이 상을 받게 되었을 때 한 기자가 놀리듯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은 세계 노벨 평화상을 받았는데 당신이 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테레사 수녀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갖다 버린 애 200~300명을 데려다가 키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공하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충성하라고 부르셨습니다.” 한 사람을 주님 앞으로 인도한 사람들이 받을 상이 클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지금 있는 자리에서 충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하루 나에게 맡기신 일에 충성하는 것이죠. 또 과거를 돌아보고 후회하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고 결코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오늘 나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주신 하나님의 역사를 잘 섬기고 자녀들뿐만 아니라 양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지혜인 줄 믿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가와서 말하였습니다. ‘주인님, 나는 주인이 굳은 분이시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줄로 알고, 무서워하여 물러가서, 그 달란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에 그 돈이 있으니, 받으십시오.’ 그러자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는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알았다. 그렇다면, 너는 내 돈을 돈놀이 하는 사람에게 맡겼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내가 와서, 내 손에 이자를 붙여 받았을 것이다.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서,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가진 사람에게는 더 주어서 넘치게 하고, 갖지 못한 사람에게는 있는 것마저도 빼앗을 것이다. 이 쓸모 없는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아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일이 있을 것이다.’ 셋째 종의 실수는 게으름에 있었다기보다는 주인에 대한 오해에 있었습니다. 그는 주인과 사랑의 관계성이 없었습니다. 셋째 종은 주인에 대해서 관용이 없는 분으로, 요구가 많은 분이요, 타협이 없는 분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주인은 절대 손해 보지 않는 사람, 심지어 심지 않고서도 거두는 사람, 그래서 손해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 사람으로 오해를 했습니다. 주인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두려움에 사로 잡혀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게으름은 사랑의 결핍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게 됩니다. 주인은 종들이 열심히 장사해서 남긴 달란트를 그들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주인을 위해서 일한 것이 결국에는 자신을 위해서 일한 것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인에 대한 착하고 충성된 마음으로 인해서 칭찬을 받고 주인의 기쁨과 즐거움에 참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시고 열매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서 아낌없는 지원을 해 주십니다.
충성은 언제나 희생이라는 대가를 요구합니다. 그런데 게으른 사람은 그 대가를 지불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결산해보면 남는 열매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이 자기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활용할 때 손해 볼 때가 없을 수 있습니까? 실패할 때가 없습니까? 일을 하다 보면 실패를 합니다. 손해도 봅니다. 사람을 잃기도 합니다. 그런 것이 두려우면 주어진 달란트를 활용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으로 일을 해야 합니다. 고난을 견디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재능과 은사, 물질과 시간과 기회들을 복음 역사를 위해서 잘 활용해서 유익을 남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일수록 한 번뿐인 인생을 주와 복음을 위해서 헌신합니다. 주님을 위해서 일할 때 우리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또한 장차 주님이 오실 때에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받은 고난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영광으로 바뀌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성공이 아니라 충성스럽게 섬기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를 위해 새 하늘과 새 땅을 예비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말씀 | 마태복음 25:1-30
요절 | 마태복음 25:21
착하고 충성된 종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은 임박한 인류의 종말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과 그 때는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도둑처럼 갑자기 임하기 때문에 깨어서 그 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오늘은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해서 재림을 준비하는 마음 자세(1-13)와 달란트 비유를 통해서 재림을 준비하는 자의 구체적인 삶의 열매(14-30)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말세를 어떻게 준비하며 살아야 하는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열 처녀의 비유(1-13).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결혼식은 먼저 신랑 부모와 신부 부모가 만나서 약속을 하고 약혼식을 합니다. 약혼식을 하면 정식으로 부부관계가 됩니다. 일 년 후에 결혼식을 하는데 신부는 수놓은 옷을 입고, 보석 등으로 몸치장을 하고, 면사포를 썼습니다. 신랑도 최상의 옷을 입고, 머리에 사모 즉 관을 썼습니다. 그리고 친구, 친척들과 함께 신부의 집으로 향하는데, 악기를 연주하는 자, 노래하는 자가 이에 동반하고, 만약 밤이 되면, 등불을 든 사람이 이에 가담했습니다. 신부의 집에 도착하면, 신부는 부모의 축복을 받고, 신랑에게 인도됩니다. 결혼식은 신랑의 집에서 열리는데, 신랑이 먼 곳에 살고 있는 경우에는 신부의 집에서 열리고, 그 비용은 신랑의 집에서든가, 혹은 양가에서 지불했습니다. 축하 잔치는 다음날 재개되고, 길게는 1주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축하 잔치에 초대되는 것은 명예로 생각되고, 이것을 거절하는 것은 아주 무례한 일이었습니다. 축하연은 축사, 음악, 무용 등이 행해져 오락이 적은 시대에 큰 기쁨이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를 혼인 잔치에 비유하셨습니다. 이런 배경 가운데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다섯 명은 미련하고 다섯 명은 슬기로웠습니다. ‘미련하다’ 말의 사전적 정의는 ‘터무니없이 고집을 부릴 정도로 어리석고 둔하다’입니다. 어리석다는 말로도 번역이 되는데 이것은 정신이 섞여서 맑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얼빠졌다는 말로도 쓰입니다. 반면에 ‘슬기롭다’는 것은 ‘신중한’이란 뜻입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불은 가졌으나, 기름은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자기들의 등불과 함께 통에 기름도 마련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신랑이 오는 시간을 자기들 마음대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이 언제 올지 알 수 없으니 준비를 철저히 했습니다. 신랑이 늦어지니,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다 연약합니다. 신랑이 오는 것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늦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습니다. ‘보아라, 신랑이다. 나와서 맞이하여라.’ 그 때에 그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서 제 등불을 손질하였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슬기야, 우리 등불이 꺼져 가니, 너희의 기름을 좀 나누어 다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이 대답을 하였습니다. ‘미련아! 그렇게 하면, 우리에게나 너희에게나 다 모자랄 터이니, 안 돼. 차라리 기름 장수에게 가서, 사서 써라.’ 슬기로운 처녀들은 이기적인 것이 아닙니다.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신랑을 중심으로 자신들이 해야 할 본분에 충실하였던 것입니다.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습니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습니다. 한 번 닫힌 천국 문은 다시 열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름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그 날이 오기전까지만 가능합니다. 그 뒤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님,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하고 애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신랑이 대답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 날과 그 시각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은 기름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기름이 무엇일까요? 성령충만, 믿음, 은혜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을 영접할 때 한 번 받으면 되지만, 성령 충만은 반복적으로 계속해서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신의 본분에 합당한 행동을 함으로써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흑암의 권세에서 옮겨져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성품을 닮아가고 한 사람에게라도 복음을 전해서 영혼을 구원하고 제자를 삼는 일을 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살려면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수단이 말씀과 성례입니다. 일용할 양식과 주일 말씀 공부와 주일 예배와 소감을 써서 나누는 가운데 삶을 나누는 것이 은혜 안에 사는 좋은 방법입니다. 내 안에 은혜가 충만하면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람들을 사랑하고 맡기신 일에 충성을 다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살면서 악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고,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다 보면 자기 한 몸 건사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하는 일에 실패하고 낙담하고 넘어지고 쓰러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어려움을 이기고 다시 일어서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려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사실적이고, 개인적이고, 실제적인 관계를 맺어야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성령님에 의해 성경, 기도, 교회, 환경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그 음성을 듣고 순종할 때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며 사랑의 관계가 자라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위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참여할 때 그의 인도하심과 능력과 사랑을 경험하며 은혜가 자라납니다. 열매를 맺습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미래를 생각하고 신중하게 준비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알면서도 준비하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당장 필요한 것만 준비하며 살아갑니다. 코앞에 닥친 문제에 매여 살아갑니다.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집을 사고 애 낳고 키우고, 집을 넓히는 것에만 마음이 가 있습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사람은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생각하며 준비합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는 어둠이 깊어집니다. 불법이 성하고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외면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사람 중심인 시대가 될 것입니다. 불경스럽고, 무정하며, 원한을 풀지 아니하며, 절제가 없으며, 난폭합니다. 선을 좋아하지 아니하고, 배신하며, 무모합니다.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합니다(딤후 3:2,-5).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합니다. 기도와 예배가 금지될 것입니다. 사랑이 식어지게 되고 서로를 돌아볼 여유가 없어집니다. 그 때는 성경공부를 하고 싶어도 가르쳐 주는 목자가 없을 것입니다. 아니 북한과 같이 성경을 구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이런 때에 믿음을 지키며 거룩한 삶을 살면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린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때가 오더라도 우리가 믿음을 잃지 않고 주님의 은혜 안에서 생활하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자립적으로 공부하고, 개인기도가 깊어져야 할 것입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모이기를 힘쓰고 사랑 안에서 연합해야 합니다. 혼자서 어려운 시대를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나중에 어리석은 처녀들이 왔을 때 주님은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소에 주님과 사랑의 관계가 깊어져야 합니다. 주님과 사랑의 관계를 가꾸어 가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공동체이신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가정 교회를 세우고, 요회를 성장시키고 분가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제자를 양성하는 법을 배우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나의 믿음을 지키고 은혜를 간직하는 비결입니다.
둘째, 달란트 비유(14-30).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서 자기의 재산을 그들에게 맡겼습니다. 그는 각 사람의 능력을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고, 또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주고, 또 다른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습니다. 한 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으로서 노동자의 20년치 연봉에 해당이 됩니다. 월급을 150만원으로 치면 한 달란트는 3억6천만원입니다. 두 달란트는 7억2천만원, 다섯 달란트는 18억원입니다. 주님께서 종들에게 맡긴 돈은 사업을 하기에 충분한 액수입니다. 종들에게 맡겨진 달란트는 하나님의 종들에게 주어진 재능과 기회와 은사입니다. 제자들에게 주어진 달란트는 다 다릅니다. 우리에게 주어지고 열려 있는 기회들은 그 특성과 크기가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주인이 돌아오기 전에 그 기회들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입니다. 주어진 기회를 통해 어떤 자세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릴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직도 나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기회 타령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기회라고 생각하기보다 부담스럽게 여깁니다. 어떤 사람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고 최선을 다해서 충성하고 헌신을 합니다.
고 정주영 회장은 장사를 잘 했습니다. 그는 시장을 보면 어디에 돈이 있는지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곧 가서, 그것으로 장사를 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그와 같이 하여, 두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우리가 장사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하나님이 어디서 일하시는 지를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요 5:19).” 예수님은 아무 것도 스스로 하지 않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주시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는 환상을 보고 유럽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핍박을 받고 흩어진 성도들이 안디옥에 이르러 그리스 사람들에게도 말을 하여 주 예수님을 전하였습니다. 그때 주님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니 수많은 사람이 믿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행 11:21).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 ‘바로 가서’ 장사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활용하는 것이 장사를 잘 하는 비결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열린 문을 주십니다. 주님이 열면 닫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닫으시면 열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도의 문이 열렸을 때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지 않으면 나도 가만히 있으면서 때를 기다리며 준비를 해야 합니다. 주도권은 하나님이 쥐고 계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순종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장사를 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였습니다. 두 달란트를 받았던 자도 다가와서 ‘주인님, 주인님께서 두 달란트를 내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 주인은 그들이 적은 일에 충성을 한 점을 높이 샀습니다. 주인의 의도를 파악하고 적은 일에 충성했을 때 그들은 장사를 하여 유익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들이 크든 적든 충성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충성이란 무엇입니까? 시종일관 변함이 없이 신실하다는 뜻입니다. ‘충성’이란 말에는 진실성과 지속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만 열심히 한 것이 아니라 끝까지 한결 같은 모습으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힘들다고 요령을 피우지 않고 힘들다고 포기하지 않고 자신들이 맡은 일을 책임성 있게 감당했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2절은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2장 2절에서 디모데에게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라고 권면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은 충성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충성된 사람들을 찾으시고 충성된 사람들에게 더 많은 하나님의 일을 맡기십니다.
테레사 수녀는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그가 이 상을 받게 되었을 때 한 기자가 놀리듯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은 세계 노벨 평화상을 받았는데 당신이 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테레사 수녀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갖다 버린 애 200~300명을 데려다가 키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공하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충성하라고 부르셨습니다.” 한 사람을 주님 앞으로 인도한 사람들이 받을 상이 클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지금 있는 자리에서 충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하루 나에게 맡기신 일에 충성하는 것이죠. 또 과거를 돌아보고 후회하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고 결코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오늘 나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주신 하나님의 역사를 잘 섬기고 자녀들뿐만 아니라 양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지혜인 줄 믿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가와서 말하였습니다. ‘주인님, 나는 주인이 굳은 분이시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줄로 알고, 무서워하여 물러가서, 그 달란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에 그 돈이 있으니, 받으십시오.’ 그러자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는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알았다. 그렇다면, 너는 내 돈을 돈놀이 하는 사람에게 맡겼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내가 와서, 내 손에 이자를 붙여 받았을 것이다.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서,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가진 사람에게는 더 주어서 넘치게 하고, 갖지 못한 사람에게는 있는 것마저도 빼앗을 것이다. 이 쓸모 없는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아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일이 있을 것이다.’ 셋째 종의 실수는 게으름에 있었다기보다는 주인에 대한 오해에 있었습니다. 그는 주인과 사랑의 관계성이 없었습니다. 셋째 종은 주인에 대해서 관용이 없는 분으로, 요구가 많은 분이요, 타협이 없는 분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주인은 절대 손해 보지 않는 사람, 심지어 심지 않고서도 거두는 사람, 그래서 손해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 사람으로 오해를 했습니다. 주인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두려움에 사로 잡혀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게으름은 사랑의 결핍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게 됩니다. 주인은 종들이 열심히 장사해서 남긴 달란트를 그들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주인을 위해서 일한 것이 결국에는 자신을 위해서 일한 것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인에 대한 착하고 충성된 마음으로 인해서 칭찬을 받고 주인의 기쁨과 즐거움에 참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시고 열매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서 아낌없는 지원을 해 주십니다.
충성은 언제나 희생이라는 대가를 요구합니다. 그런데 게으른 사람은 그 대가를 지불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결산해보면 남는 열매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이 자기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활용할 때 손해 볼 때가 없을 수 있습니까? 실패할 때가 없습니까? 일을 하다 보면 실패를 합니다. 손해도 봅니다. 사람을 잃기도 합니다. 그런 것이 두려우면 주어진 달란트를 활용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으로 일을 해야 합니다. 고난을 견디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재능과 은사, 물질과 시간과 기회들을 복음 역사를 위해서 잘 활용해서 유익을 남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일수록 한 번뿐인 인생을 주와 복음을 위해서 헌신합니다. 주님을 위해서 일할 때 우리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또한 장차 주님이 오실 때에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받은 고난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영광으로 바뀌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성공이 아니라 충성스럽게 섬기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를 위해 새 하늘과 새 땅을 예비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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