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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020년성탄2강(눅2:1-20)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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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86회 작성일 20-12-2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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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성탄 제 2 강
말씀 | 누가복음 2:1-20
요절 | 누가복음 2:10,11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이번 성탄절은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믿은 후로 가장 조용하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말구유에 누이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지만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한 채 탄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계의 완성자이시지만 힘없는 연약한 한 아기로, 마구간에서 태어나서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왜 인류의 구원자가 이렇게 탄생하셨을까요? 전 세계가 코로나 19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에 예수님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으로 우리 각자에게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그 때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천하로 다 호적하라는 칙령을 내렸습니다. 그 칙령의 목적은 인구조사를 하고 세금을 거두어 쓰기 위해서입니다. 호적을 하기 위해서 각자 자기 고향으로 내려가야 했습니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갔습니다. 이때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습니다. 잉태한 마리아는 베들레헴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헤아리고 같이 갔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미가서 5:2에 분명히 계시되어 있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는 148Km로서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거리입니다. 건장한 사람이 걸어도 삼일 길입니다. 그러니 임산부가 걸어가기에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닙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함께 이 길을 걸어갔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임무에 맞추어 행동했습니다. 앞에서도 하나님께서 마리아에게 처녀로써 잉태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바로 그 때 그녀는 즉시 순종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언제 어느 때라도 원하시는 때에 나의 인생에 들어오실 수 있는 권리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연하게 탄생하신 분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하시고 오랜 기간 준비하셔서 세상에 보내신 메시아이심 분명히 알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황제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그의 절대 권력을 사용하셨습니다. 황제의 호적 명령은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세상 역사 속에서 권세자들을 사용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환경을 통해서, 교회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름으로 그의 인도하심을 받고 구원 역사에 귀히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마리아는 ‘떡집’이라는 뜻의 베들레헴에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 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습니다. 구유는 짐승의 먹이를 담는 곳입니다. 여기에 아기 예수님을 뉘였습니다. 아이를 마구간에서 낳는 것은 부모 입장에서 매우 난감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요셉과 마리아가 여관에 있을 곳이 없었습니다(6,7). 여관은 손님이 묵는 곳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땅에 손님으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땅에 왕으로 오셨습니다. 왕이신 예수님은 이 땅에 죄인들을 섬기러 오셨습니다.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여 구원하고 생명을 풍성하게 얻도록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자기 자신을 주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 온 생명의 떡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요 6:51).” 예수님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그를 믿고 그와 교제하며 연합하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믿는 자에게 영생과 진정한 만족을 주십니다.

  우리가 어디서 생명을 얻고 어디서 만족을 얻을 수 있을까요?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해볼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해보았습니다. 수많은 재산을 모았습니다. 천 명의 아내를 얻었습니다. 식물과 동물을 연구했습니다. 노래도 만들고 미치도록 들었습니다. 사업도 크게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다고 탄식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젊은이여, 젊을 때에, 젊은 날을 즐겨라. 네 마음과 눈이 원하는 길을 따라라. 다만, 네가 하는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만은 알아라(전11:9).” “젊을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고생스러운 날들이 오고, 사는 것이 즐겁지 않다고 할 나이가 되기 전에, 해와 달과 별들이 어두워지기 전에, 먹구름이 곧 비를 몰고 오기 전에, 그렇게 하여라(전12:1).” “육체가 원래 왔던 흙으로 돌아가고 숨이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네 창조주를 기억하여라(전12:7).” 예수님은 창조주요 구원자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심으로 모든 사람들이 부담없이 다가오도록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여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자기에게 나아오는 사람들을 외면하거나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이 말 구유에 누이심으로 비천한 사람들, 가난하고 배척당하는 사람들,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고후8:9은 말씀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버림을 받으심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성탄의 복음이 누구에게 가장 먼저 전해졌습니까?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성탄의 복음이 가장 먼저 전해졌습니다. 주의 사자가 양을 돌보는 목자들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었습니다. 목자들은 크게 무서워했습니다. 천사들이 그들에게 어떤 소식을 전해주었습니까? 10,11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무엇일까요? 코로나 19로 인해서 죽는 사람도 많고 경제적인 어려움, 정신적인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코로나 19 백신이 나왔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소망을 갖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선진국에서 벌써 다 차지해 버리고 우리나라는 내년 3월에 접종을 시작하지만 평범한 우리들은 하반기나 돼야 백신을 맞을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전세계의 25%는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천사가 전해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여기 앉아 있는 분들뿐만 아니라 각 가정에서 예배를 보는 분들, 군대에 있는 분들, 가난한 자, 소외된 자, 슬픈 자, 원통한 자, 남녀노소, 빈부귀천에 차별이 없습니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우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는 것입니다. 곧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가 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주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까?

  첫째,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구원자”란 무엇입니까? 구원이란 스스로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사람을 구원해내는 것을 말합니다. 물에 빠졌는데, 자기 힘으로는 거기서 나올 수 없는 사람을 구원해 냅니다. 불이 나서 불 속에 갇혔는데, 스스로는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는 사람을 찾아서 구원해 줍니다.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었는데, 스스로는 길을 찾아 나올 수 없는 사람을 찾아 길이 되어 주십니다. 적군에게 잡혀 있는데, 자기 힘으로는 풀고 나올 수 없는 사람을 구원합니다. 죄와 사탄의 세력에 잡혀 있는데 거기서 사람을 건져내는 것이 구원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경제문제, 불평등, 정치적인 갈등, 부동산 문제, 질병, 전쟁, 정신적인 문제 등등. 이 세상에 문제가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이고 큰 것은 죄 문제입니다. 성경은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아무에게나 자기를 종으로 내맡겨서 복종하게 하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복종하는 그 사람의 종이 되는 것임을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죄의 종이 되어 죽음에 이르거나, 아니면 순종의 종이 되어 의에 이르거나, 하는 것입니다(롬 6:16).” 모든 사람은 무언가에, 어딘가에 얽매여 있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은 죄에 얽매여 있습니다. 자기 생각을 못 벗어나는 사람은 자기 생각에 얽매여 있습니다. 성소수자들은 그들의 삶의 방식, 생각에 얽매여 있어서 다른 삶을 살고 싶어도 살지 못합니다. 자기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작은 것에 얽매여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얽매인 사람은 마음에 슬픔이 있습니다. 얽매여서 자기 의지를 쓸 수 없고, 자기 뜻을 펼칠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아무리 요구한다고 해도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얽매인 데서 왜 벗어나지 못하느냐고 아무리 말해도 벗어나지 못합니다.

  아담 이래 인류는 이렇게 무언가에 얽매이고, 죄와 사탄의 종이 되어 살다가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죄와 사탄이 주관하는 어둠의 세계에서 우리를 구원할 자가 없었습니다. 죄는 사람들을 매우 병들게 합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을 못 쓰게 만듭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눈부신 과학문명의 발달과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해 겉모습은 살기가 매우 편리해졌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더 불안하고 행복하지 못합니다. 두려움과 절망에 시달립니다. 사람들은 죄를 가볍게 생각하고 부담 없이 죄를 짓곤 합니다. 그러나 죄는 결코 가볍게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죄는 반드시 그 흔적을 남기고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죄는 사람들에게 죄의 열매, 곧 죽음의 고통을 당하게 합니다. 로마서 6:23은 말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그러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히9:7). 죄를 범한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던져져 영원한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둘째 사망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을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 주이십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죄의식으로 인해 고통을 했습니다. 이 죄는 내가 죽어야 끝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하는데, 뭐’ 하며 애써 죄의식을 떨쳐 버리고자 발버둥을 쳤습니다. 그러나 죄를 반복하고 죄의 권세는 나를 더욱 옭아매었습니다. 죄와 죽음의 권세로 인해서 허무의식에 사로잡혀 삶의 의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적당히 살면서 죄의 쾌락이나 실컷 즐기다가 일찍 생을 끝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구원자로 오셔서 이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름 수양회에서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가 나의 온갖 추하고 더러운 죄를 회개했을 때 죄사함을 주셨습니다. 저는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목자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주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운명주의의 고통으로부터 구원하십니다. 운명주의의 죄는 사람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듭니까? 한 목자님은 목 뒤에 점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맞아 죽을 운명이라는 생각으로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게 되었을 때 운명주의로부터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선교사로 나가서 여러 번 강도를 만나고 고생을 했지만 오뚜기처럼 일어나 사람들을 구원하고 제자로 세웠습니다.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둘째,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천사는 그리스도의 표적이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라고 말합니다. 그 당시에 아무리 가난한 백성들도 해산한 아이를 구유에 누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기 예수님만이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세상의 구주가 구유에 오셨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자기를 낮추고 비우셔서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또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겸손과 섬김과 자기희생의 역사임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 겸손히 낮아지고 섬기고 희생적인 사랑을 먼저 하셨습니다. 그 사랑을 받은 사람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일생 이 예수님을 배울 때 우리는 참 기쁨과 만족과 성숙을 이루게 됩니다. 예수님을 닮을 때 가장 인간다운 인간이 됩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영광과 권세와 특권을 버리고 마구간에 오셨습니다. 일생동안 귀신을 내어쫓고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죄인들의 친구로서 함께 집에서 먹고 마셨습니다. 그는 모든 것에서 본이 되어 주시고 따라오라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세상 죄를 위한 대속제물로서 살을 찢기고, 많은 피를 쏟으셨습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십자가 아래에 있는 그의 모친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이 끝없이 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로마의 한 군병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많은 피가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고 있는 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은 삼 일만에 부활하사 왕의 왕이 되시고, 주의 주가 되셨습니다. 만왕의 왕 예수님은 그를 믿는 자들에게 희생적인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의 희생으로 우리와 하나님과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게 하셨습니다. 만왕의 왕 예수님은 그를 믿는 자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시고 기업으로 주십니다.

  셋째, 예수님이 오심으로 하나님께 영광, 사람들에게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왜 예수님의 탄생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까? 주님이 탄생하심으로 수천 년 동안 계획하셨던 하나님의 구속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고 죄인들을 용서하시는 구속역사를 완성하셨습니다. 이를 위하여 주님은 죽기까지 순종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왜 예수님의 탄생이 사람들에게 평화가 됩니까?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불화를 제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고 기뻐하는 자들의 내면에는 하나님의 평화가 임합니다. 마음에 하나님의 평화를 얻은 사람들은 천국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고 다스리는 가정에 하나님의 평화가 임합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다스릴 때에 사람들 안에 있는 모든 미움과 갈등이 사라질 것입니다. 구유에 오심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이요, 사람들에게 평화가 되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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