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020년 마36강(24:1-51)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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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태복음 제 36 강
말씀 | 마태복음 24:1-51
요절 | 마태복음 24:30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오늘 말씀은 다가올 종말(1-31)과 종말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32-51)라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금방 사라집니다. 우리가 이 세상 것들에 소망을 두기보다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영원합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그의 통치가 시작되었습니다. 그의 다스림을 받으며 살지만 세상에는 여전히 불의와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주님 교제하며 그 나라를 충만히 누리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나라를 위해서 우리가 이 땅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첫째, 성전 파괴에 대한 예언(1-3).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걸어가시는데 제자들이 다가와서, 성전 건물을 그에게 가리켜 보였습니다. 그들은 성전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예수님께 참 대단하지 않느냐고 묻고 싶었습니다. 제자들은 성전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습니다. 하나님이 여기에 거하신다고 생각했고, 이제 예수님이 메시아 대관식을 갖고 여기서 새로운 일을 행하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예수님이 성전 청소도 하시고, 바리새인들을 저주하고 나서 이제 새로운 나라를 만들려고 하는구나 속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일하실 왕궁으로 이 성전을 택하는 것이 어떤가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기들도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역사를 시작할 건물로 “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성전 내부는 대부분 금으로 되어 있고 성전 뜰은 대리석으로 깔려 있습니다. 성전 앞에는 축구장 30개 규모의 널찍한 광장이 있습니다. 좌우에 웅장한 기둥을 가진 주랑 162개의 기둥들이 서 있었습니다. 그 기둥 하나하나가 여러 개의 돌을 쌓아올린 것이 아니라 본래 하나의 돌이었습니다. 이 기둥을 손을 뻗어 안으려면 세 사람이 함께 둘러서야 할 만큼 굵고 높이 16미터의 큰 기둥이었습니다. 그 주랑을 기둥의 숲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광장의 중앙부에 성전 건물 본체가 있습니다. 그 성전건물을 나와서 뒤를 돌아보면 성전의 지붕과 건물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 성전은 에돔 사람인 헤롯 대왕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BC 19년부터 짓기 시작해서 AD 63년에 완공했기 때문에 예수님 당시에도 한창 건축 중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성전의 모습에 압도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이 모든 것을 보고 있지 않느냐?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 이 무슨 충격적인 말씀입니까! 예수님의 예언은 성전이 완공된 지 7년 후인 AD 70년에 로마 군대에 의해서 성취되었습니다. 로마 군대는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성전과 예루살렘 성을 철저하게 파괴했습니다. 현재에는 예루살렘 성벽 가운데 서쪽 일부, 53미터만 남아 있는데, 이곳을 통곡의 벽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상을 보는 예수님의 눈과 제자들의 눈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건물의 외적인 화려함만을 보았지만 예수님은 내면의 타락한 모습을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인류가 이룩한 과학문명을 보면서 감탄합니다. 우주탐사와 유전자 연구를 통한 질병의 퇴치 노력, 스마트 폰과 무인 자동차의 운행, 유튜브 영상과 세상 문화의 화려함에 도취되어서 살아갑니다. 정말 세상에는 재미있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세상의 화려함보다도 갈수록 죄악이 깊어가는 이 시대를 보고 역사가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유럽에서는 동성간 결혼을 넘어서 수간 등이 학교에서 정당하다고 교육을 하고, 우리나라에도 차별 금지법을 만들고자 국회에서 논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죄악이 가득하면 하나님이 오래 참으실 수가 없습니다. 죄악이 하늘에 사무치면 하나님이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여기에는 성전도 예외가 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는 어떤 모습으로 임할까요? 공의와 인애의 나라입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 건물 중심이 아니라 예수님 중심입니다. 오늘날은 예수님께서 교회를 중심으로 일을 하십니다. 코로나 19 이후로는 가정교회가 중심이 되어 일을 하고 계십니다. 바로 여러분 속에 계시는 성령께서 여러분의 가정을 친히 인도하시고 여러분의 섬김을 통해서 일을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말없이 성전 앞에 있는 감람산으로 올라가서 성전을 바라보고 앉았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당시 유대인들에게 성전 파괴는 세상의 종말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언제 세상의 종말이 오고 그 징조는 무엇인지 묻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왜’에 관심을 두셨지만, 제자들은 ‘언제’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먼저 세상 종말의 징조와 재난의 이유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나중에 때에 대해서 대답하십니다.
둘째, 재난 중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4-1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에게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말하기를 ‘내가 그리스도이다’ 하면서, 많은 사람을 속일 것이다.” 재난이 닥치면 사람들이 두려워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됩니다. 이때 거짓 그리스도에게 미혹되기 쉽습니다. 과거뿐만 아니라 오늘날도 자기가 그리스도라고 말하면서 속이는 이단의 교주들이 많습니다. “또 너희는 여기저기서 전쟁이 일어난 소식과 전쟁이 일어나리라는 소문을 들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당황하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이런 일이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아직 끝은 아니다. 민족이 민족을 거슬러 일어나고 나라가 나라를 거슬러 일어날 것이며, 여기저기서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일은 진통의 시작이다.” 이 세계는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근과 지진도 빈도수가 많아지고 강도가 세지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끔찍한 재앙들이 여기저기서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은 코로나 19라는 감염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죄와 비슷합니다. 바이러스에 걸리면 거리두기를 해야 합니다. 죄도 짓게 되면 사람과 거리를 두게 됩니다. 바이러스는 보이지 않듯이 죄도 보이지 않습니다. 바이러스가 오래 지속되니 사람들이 무감각해지면서 감염자가 많아지듯이, 죄도 오래 지속되면 무감각해집니다. 바이러스에 백신과 치료제가 필요하듯이 죄도 십자가 복음의 백신을 맞아야 나음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모든 일이 진통의 시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재난 후에 새 생명이 태어납니다. 재난은 하나님의 싸이렌입니다. 전쟁과 고난 후에 영적 부흥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이런 때를 위해서 이 겨울에 기도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장차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갈등과 고난과 재난이 많아지면 망한다고 생각하는데 예수님은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000년 기독교 역사에서 재난은 반복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재난으로 가난해진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신자들은 환난과 핍박을 받고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습니다. 신자들끼리 서로 잡아 주고 미워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불법이 성함으로 사랑이 식어집니다. 불법은 법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다 법이 됩니다. 무법천지가 되니 사는 것이 힘겹습니다. 이런 때에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고통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랑이 필요합니다. 이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가운데 복음을 전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도와야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핍박을 통해서 소아시아와 로마로 흩어졌습니다. 이를 통해서 로마제국 곳곳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환난을 겪을 때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견딜 수 있는 힘을 북돋아주십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물 붓듯이 부어주십니다. 이로 인해서 우리는 양들을 사랑하고 동역자들을 사랑하며 천국복음을 전파할 수 있습니다.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세상의 끝이 올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천 이후부터 재림 때까지를 말세라고 부릅니다. 이 기간은 하나님 나라를 완성할 준비기간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차야 재림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지상명령을 주셨습니다(마28:19). 하나님은 지금도 쉬지 않고 복음의 일꾼들을 세우시고 그들을 통해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계십니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줌과 유튜브로 말씀을 공부하고, 팀모임을 하고, 주일 예배를 드리고, 수양회를 하고 세미나를 하고 있습니다. 세계에 흩어진 선교사님들과 시공간을 넘어 교제를 나누고 말씀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가정예배가 활성화되고 가정교회 사역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복음전파의 영역이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성전 파괴와 예수님의 재림(15-31). 15-28절은 종말에 가까운 시기에 일어날 사건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차적으로는 성전 파괴와 예루살렘 멸망이라는 큰 환난에 대해 언급하고 있고, 2차적으로 이 시대의 종말을 언급하는 이중적 해석으로 보기도 합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성전에 선 것을 보거든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고,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예언하신 후 30년 뒤에 성취되었습니다. 로마 군대는 예루살렘을 정복하기 위해서 AD 66년부터 70년까지 성을 포위했습니다. 68년에 네로 황제가 자살하면서 로마군이 혼란에 빠졌고 잠시 로마 군대의 포위가 느슨해졌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은 몰래 성을 빠져나가서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과 성전에 남아 있다가 학살을 당하거나 굶주려서 죽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굶주림 때문에 자식들까지 잡아먹었습니다. 이때 학살과 굶주림으로 죽은 유대인이 110만 명이었고,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은 10만 명에 달했습니다. 예루살렘 멸망은 역사상 가장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예언하신 그대로 성전과 예루살렘이 멸망된 것은, 장차 예수님이 예언하신 대로 인류가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분명한 증표가 됩니다.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실 것입니다.
그 때에 누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계시오.’ 혹은 ‘아니, 여기 계시오’하더라도 믿지 말아야 합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선택받은 사람들까지도 홀릴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는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모든 사람이 알게 될 것입니다. 시체들이 있는 곳에 독수리들이 홀연히 모이듯이 예수님의 재림도 홀연히 임할 것입니다.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릴 것입니다. 이것은 전쟁과 심판의 화염으로 해와 달이 가리어져 보이지 않을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별들은 타락한 천사들을 가리킵니다. 하늘의 권능들도 악한 영들입니다. 이것은 우주적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악인들과 악령들에 대한 심판 이후에 지구를 포함한 우주를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30,31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데살로니가전서 4:16,17은 말씀합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주님은 만물을 새롭게 하시고 변화된 우리도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고난이 많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재림과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을 생각함으로 피차 위로를 받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정말로 소망하십니까? 그러면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삶은 일장춘몽처럼 지나갑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지만 동시에 천국 시민권자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충만함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희생적인 사랑과 그 능력을 덧입고 사명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풍성하게 이해하고 경험하며 사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홀연히 변화시키시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할까요?
넷째, 종말에 대한 합당한 자세(32-51). 예수님은 종말의 징조와 자신의 재림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나서 그 때에 대해서 답변을 주십니다. 무화과나무에서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이 돋으면, 우리는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압니다. 이와 같이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질지라도 주님의 말씀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십니다. 여러 징조들을 통해서 종말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그 정확한 날짜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도둑같이 모든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때에 임하게 됩니다. 노아의 때에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며 지냈습니다.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임함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어느 날에 주님이 임할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하며 이 시대를 살아야 할까요? 45, 46절을 보십시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은 말씀을 잘 활용하고 준비하여 때마다 양들에게 공급합니다. 그러면 양들은 생명의 꼴을 먹고 은혜의 살이 통통하게 찌게 될 것입니다. 충성되고 지혜로운 목자로 인해서 양들은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섬기다가 주님이 오시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실 것입니다.
반대로 주님이 더디오리라 생각하여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맡은 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충성’과 ‘지혜’입니다. ‘충성’은 약속한 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충성은 신실하고 믿음직스러운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에도 맡은 일을 저버리지 않고 우직하게 감당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종은 지혜로워야 합니다. 지혜가 있어야 하나님의 말씀을 잘 활용하여 양떼들에게 먹이고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루하루를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한 주에 한 번씩 배운 말씀을 나누면 됩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의 목자가 되셔서 인도하시니 그가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면 됩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짐을 지고 가시니 내가 지고 가는 짐은 가볍습니다. 주님께서 내게 소원을 주시는 만큼, 내게 능력을 주시는 만큼만 일하면 됩니다. 너무 주님을 사랑하며 욕심을 내어 일하기 때문에 지치고 탈이 나게 됩니다. 제가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하루하루를 살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힘써 서로를 사랑할 때 주님은 자기의 모습을 잠깐 잠깐 비추어 주십니다. 그 힘으로 우리는 양들을 사랑합니다. 한 명에게라도 더 복음을 전하여 그 영혼을 구원하고 제자로 삼기 위해서 우리는 합심해서 사랑의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힘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으니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지혜와 사랑과 능력을 주셔서 맡겨주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마태복음 24:1-51
요절 | 마태복음 24:30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오늘 말씀은 다가올 종말(1-31)과 종말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32-51)라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금방 사라집니다. 우리가 이 세상 것들에 소망을 두기보다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영원합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그의 통치가 시작되었습니다. 그의 다스림을 받으며 살지만 세상에는 여전히 불의와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주님 교제하며 그 나라를 충만히 누리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나라를 위해서 우리가 이 땅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첫째, 성전 파괴에 대한 예언(1-3).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걸어가시는데 제자들이 다가와서, 성전 건물을 그에게 가리켜 보였습니다. 그들은 성전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예수님께 참 대단하지 않느냐고 묻고 싶었습니다. 제자들은 성전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습니다. 하나님이 여기에 거하신다고 생각했고, 이제 예수님이 메시아 대관식을 갖고 여기서 새로운 일을 행하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예수님이 성전 청소도 하시고, 바리새인들을 저주하고 나서 이제 새로운 나라를 만들려고 하는구나 속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일하실 왕궁으로 이 성전을 택하는 것이 어떤가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기들도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역사를 시작할 건물로 “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성전 내부는 대부분 금으로 되어 있고 성전 뜰은 대리석으로 깔려 있습니다. 성전 앞에는 축구장 30개 규모의 널찍한 광장이 있습니다. 좌우에 웅장한 기둥을 가진 주랑 162개의 기둥들이 서 있었습니다. 그 기둥 하나하나가 여러 개의 돌을 쌓아올린 것이 아니라 본래 하나의 돌이었습니다. 이 기둥을 손을 뻗어 안으려면 세 사람이 함께 둘러서야 할 만큼 굵고 높이 16미터의 큰 기둥이었습니다. 그 주랑을 기둥의 숲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광장의 중앙부에 성전 건물 본체가 있습니다. 그 성전건물을 나와서 뒤를 돌아보면 성전의 지붕과 건물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 성전은 에돔 사람인 헤롯 대왕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BC 19년부터 짓기 시작해서 AD 63년에 완공했기 때문에 예수님 당시에도 한창 건축 중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성전의 모습에 압도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이 모든 것을 보고 있지 않느냐?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 이 무슨 충격적인 말씀입니까! 예수님의 예언은 성전이 완공된 지 7년 후인 AD 70년에 로마 군대에 의해서 성취되었습니다. 로마 군대는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성전과 예루살렘 성을 철저하게 파괴했습니다. 현재에는 예루살렘 성벽 가운데 서쪽 일부, 53미터만 남아 있는데, 이곳을 통곡의 벽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상을 보는 예수님의 눈과 제자들의 눈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건물의 외적인 화려함만을 보았지만 예수님은 내면의 타락한 모습을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인류가 이룩한 과학문명을 보면서 감탄합니다. 우주탐사와 유전자 연구를 통한 질병의 퇴치 노력, 스마트 폰과 무인 자동차의 운행, 유튜브 영상과 세상 문화의 화려함에 도취되어서 살아갑니다. 정말 세상에는 재미있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세상의 화려함보다도 갈수록 죄악이 깊어가는 이 시대를 보고 역사가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유럽에서는 동성간 결혼을 넘어서 수간 등이 학교에서 정당하다고 교육을 하고, 우리나라에도 차별 금지법을 만들고자 국회에서 논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죄악이 가득하면 하나님이 오래 참으실 수가 없습니다. 죄악이 하늘에 사무치면 하나님이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여기에는 성전도 예외가 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는 어떤 모습으로 임할까요? 공의와 인애의 나라입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 건물 중심이 아니라 예수님 중심입니다. 오늘날은 예수님께서 교회를 중심으로 일을 하십니다. 코로나 19 이후로는 가정교회가 중심이 되어 일을 하고 계십니다. 바로 여러분 속에 계시는 성령께서 여러분의 가정을 친히 인도하시고 여러분의 섬김을 통해서 일을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말없이 성전 앞에 있는 감람산으로 올라가서 성전을 바라보고 앉았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당시 유대인들에게 성전 파괴는 세상의 종말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언제 세상의 종말이 오고 그 징조는 무엇인지 묻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왜’에 관심을 두셨지만, 제자들은 ‘언제’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먼저 세상 종말의 징조와 재난의 이유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나중에 때에 대해서 대답하십니다.
둘째, 재난 중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4-1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에게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말하기를 ‘내가 그리스도이다’ 하면서, 많은 사람을 속일 것이다.” 재난이 닥치면 사람들이 두려워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됩니다. 이때 거짓 그리스도에게 미혹되기 쉽습니다. 과거뿐만 아니라 오늘날도 자기가 그리스도라고 말하면서 속이는 이단의 교주들이 많습니다. “또 너희는 여기저기서 전쟁이 일어난 소식과 전쟁이 일어나리라는 소문을 들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당황하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이런 일이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아직 끝은 아니다. 민족이 민족을 거슬러 일어나고 나라가 나라를 거슬러 일어날 것이며, 여기저기서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일은 진통의 시작이다.” 이 세계는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근과 지진도 빈도수가 많아지고 강도가 세지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끔찍한 재앙들이 여기저기서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은 코로나 19라는 감염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죄와 비슷합니다. 바이러스에 걸리면 거리두기를 해야 합니다. 죄도 짓게 되면 사람과 거리를 두게 됩니다. 바이러스는 보이지 않듯이 죄도 보이지 않습니다. 바이러스가 오래 지속되니 사람들이 무감각해지면서 감염자가 많아지듯이, 죄도 오래 지속되면 무감각해집니다. 바이러스에 백신과 치료제가 필요하듯이 죄도 십자가 복음의 백신을 맞아야 나음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모든 일이 진통의 시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재난 후에 새 생명이 태어납니다. 재난은 하나님의 싸이렌입니다. 전쟁과 고난 후에 영적 부흥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이런 때를 위해서 이 겨울에 기도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장차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갈등과 고난과 재난이 많아지면 망한다고 생각하는데 예수님은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000년 기독교 역사에서 재난은 반복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재난으로 가난해진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신자들은 환난과 핍박을 받고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습니다. 신자들끼리 서로 잡아 주고 미워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불법이 성함으로 사랑이 식어집니다. 불법은 법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다 법이 됩니다. 무법천지가 되니 사는 것이 힘겹습니다. 이런 때에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고통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랑이 필요합니다. 이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가운데 복음을 전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도와야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핍박을 통해서 소아시아와 로마로 흩어졌습니다. 이를 통해서 로마제국 곳곳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환난을 겪을 때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견딜 수 있는 힘을 북돋아주십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물 붓듯이 부어주십니다. 이로 인해서 우리는 양들을 사랑하고 동역자들을 사랑하며 천국복음을 전파할 수 있습니다.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세상의 끝이 올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천 이후부터 재림 때까지를 말세라고 부릅니다. 이 기간은 하나님 나라를 완성할 준비기간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차야 재림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지상명령을 주셨습니다(마28:19). 하나님은 지금도 쉬지 않고 복음의 일꾼들을 세우시고 그들을 통해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계십니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줌과 유튜브로 말씀을 공부하고, 팀모임을 하고, 주일 예배를 드리고, 수양회를 하고 세미나를 하고 있습니다. 세계에 흩어진 선교사님들과 시공간을 넘어 교제를 나누고 말씀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가정예배가 활성화되고 가정교회 사역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복음전파의 영역이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성전 파괴와 예수님의 재림(15-31). 15-28절은 종말에 가까운 시기에 일어날 사건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차적으로는 성전 파괴와 예루살렘 멸망이라는 큰 환난에 대해 언급하고 있고, 2차적으로 이 시대의 종말을 언급하는 이중적 해석으로 보기도 합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성전에 선 것을 보거든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고,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예언하신 후 30년 뒤에 성취되었습니다. 로마 군대는 예루살렘을 정복하기 위해서 AD 66년부터 70년까지 성을 포위했습니다. 68년에 네로 황제가 자살하면서 로마군이 혼란에 빠졌고 잠시 로마 군대의 포위가 느슨해졌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은 몰래 성을 빠져나가서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과 성전에 남아 있다가 학살을 당하거나 굶주려서 죽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굶주림 때문에 자식들까지 잡아먹었습니다. 이때 학살과 굶주림으로 죽은 유대인이 110만 명이었고,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은 10만 명에 달했습니다. 예루살렘 멸망은 역사상 가장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예언하신 그대로 성전과 예루살렘이 멸망된 것은, 장차 예수님이 예언하신 대로 인류가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분명한 증표가 됩니다.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실 것입니다.
그 때에 누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계시오.’ 혹은 ‘아니, 여기 계시오’하더라도 믿지 말아야 합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선택받은 사람들까지도 홀릴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는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모든 사람이 알게 될 것입니다. 시체들이 있는 곳에 독수리들이 홀연히 모이듯이 예수님의 재림도 홀연히 임할 것입니다.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릴 것입니다. 이것은 전쟁과 심판의 화염으로 해와 달이 가리어져 보이지 않을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별들은 타락한 천사들을 가리킵니다. 하늘의 권능들도 악한 영들입니다. 이것은 우주적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악인들과 악령들에 대한 심판 이후에 지구를 포함한 우주를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30,31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데살로니가전서 4:16,17은 말씀합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주님은 만물을 새롭게 하시고 변화된 우리도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고난이 많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재림과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을 생각함으로 피차 위로를 받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정말로 소망하십니까? 그러면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삶은 일장춘몽처럼 지나갑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지만 동시에 천국 시민권자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충만함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희생적인 사랑과 그 능력을 덧입고 사명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풍성하게 이해하고 경험하며 사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홀연히 변화시키시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할까요?
넷째, 종말에 대한 합당한 자세(32-51). 예수님은 종말의 징조와 자신의 재림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나서 그 때에 대해서 답변을 주십니다. 무화과나무에서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이 돋으면, 우리는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압니다. 이와 같이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질지라도 주님의 말씀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십니다. 여러 징조들을 통해서 종말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그 정확한 날짜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도둑같이 모든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때에 임하게 됩니다. 노아의 때에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며 지냈습니다.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임함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어느 날에 주님이 임할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하며 이 시대를 살아야 할까요? 45, 46절을 보십시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은 말씀을 잘 활용하고 준비하여 때마다 양들에게 공급합니다. 그러면 양들은 생명의 꼴을 먹고 은혜의 살이 통통하게 찌게 될 것입니다. 충성되고 지혜로운 목자로 인해서 양들은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섬기다가 주님이 오시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실 것입니다.
반대로 주님이 더디오리라 생각하여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맡은 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충성’과 ‘지혜’입니다. ‘충성’은 약속한 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충성은 신실하고 믿음직스러운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에도 맡은 일을 저버리지 않고 우직하게 감당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종은 지혜로워야 합니다. 지혜가 있어야 하나님의 말씀을 잘 활용하여 양떼들에게 먹이고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루하루를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한 주에 한 번씩 배운 말씀을 나누면 됩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의 목자가 되셔서 인도하시니 그가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면 됩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짐을 지고 가시니 내가 지고 가는 짐은 가볍습니다. 주님께서 내게 소원을 주시는 만큼, 내게 능력을 주시는 만큼만 일하면 됩니다. 너무 주님을 사랑하며 욕심을 내어 일하기 때문에 지치고 탈이 나게 됩니다. 제가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하루하루를 살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힘써 서로를 사랑할 때 주님은 자기의 모습을 잠깐 잠깐 비추어 주십니다. 그 힘으로 우리는 양들을 사랑합니다. 한 명에게라도 더 복음을 전하여 그 영혼을 구원하고 제자로 삼기 위해서 우리는 합심해서 사랑의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힘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으니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지혜와 사랑과 능력을 주셔서 맡겨주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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