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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020년 마32(21:23-46)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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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98회 작성일 20-11-0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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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태복음 제 32 강
말씀 | 마태복음 21:23-46
요절 | 마태복음 21:43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열매는 무엇일까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바리새인들은 성경을 잘 아는 박사들입니다. 그들이 성경을 아는 만큼 삶이 변화되면 좋았겠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성경이 오리라 예언하신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셨지만 그들은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알지만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세 가지 비유를 통해 그들이 자기를 발견하도록 도우십니다. 예수님의 오래 참으시는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목자 예수님의 끝없는 사랑을 배웁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할 것이 아니라 순종하여 열매 맺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논쟁(23-27)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님께 따져 물었습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시오?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고 성전을 청결하게 하자 이런 질문을 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치는 것을 보고 안식일 율법을 무시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밥을 먹기 전에 손도 씻지 않음으로 장로들의 정결예식을 거스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제사장은 성전에서 제사를 드림으로 사죄권이 있었고, 장로들은 전통을 수호하고,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율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신들의 허락도 없이 성전에서 가르치고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일들이 그들의 권위에 대한 영역 침범이요, 기득권에 대한 침해라고 여긴 것입니다. 권위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참으로 겸손하시고 지혜로우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권위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세례 요한의 예를 들어 증언하십니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를 물어 보겠다.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말하겠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왔느냐? 하늘에서냐? 사람에게서냐?” 그러자 그들은 자기들끼리 의논하며 말하였습니다. “‘하늘에서 왔다’고 말하면, ‘어째서 그를 믿지 않았느냐’고 할 것이요, 또 ‘사람에게서 왔다’고 하자니, 무리가 무섭소. 그들은 모두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니 말이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모르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참 예수님은 유우머가 있으십니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의 권위를 물으신 것은 그와의 관계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이 증거한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선구자 세례 요한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권위를 가지고 일을 했다면 예수님도 하나님으로부터 온 권위를 가지고 일을 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권위 문제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복음의 일꾼은 근본적으로 사람이 세운 조직이나 기관에서 주는 권위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적인 권세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인격적인 부르심을 받아서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적인 권세를 덧입고 일하는 것입니다. 그 부르심 때문에 누가 뭐라고 해도 흔들림 없이 담대하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인정되어집니다. 뿐만 아니라 영적 권위는 따르는 사람들에 의해서 인정을 받습니다. 목자의 권위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섬김에서 옵니다.

 둘째, 두 아들의 비유(28-32)

  예수님은 그들에게 진정한 권위가 어디서 오는지 두 아들의 비유를 통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맏아들에게 가서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하였습니다. 맏아들은 “아버지 가겠나이다”라고 말을 했지만 가지 아니했습니다.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습니다.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한 것입니까? 둘째 아들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야고보 선생은 우리에게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가 되지 말고 실천하는 자가 되라고 권면합니다.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저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얼굴을 거울 속으로 들여다보기만 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모습을 보고 떠나가서 그것이 어떠한지를 곧 잊어버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율법 곧 자유를 주는 율법을 잘 살피고 끊임없이 그대로 사는 사람은, 율법을 듣고서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가 e행한 일에 복을 받을 것입니다.(e '행한 일로'로 번역할 수도 있음)(약 1:22-25).”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고 많은 정보를 안다고 해서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내가 말로 가르친다고 해서 다 행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말로 가르치기보다 본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사람은 듣는 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대로 행합니다. 아는 것을 실천하도록 돕기 위해서 반복해서 가르치고 본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많이 공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화하고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제자 양성은 본을 보임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섬김이 처음에는 어렵지만 반복해서 연습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됩니다. 훈련의 목적은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완전한 율법 곧 자유를 주는 율법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합니다. 내 마음대로 산다고 해서 자유로운 것이 아닙니다. 죄와 사탄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결과는 죄의 종이요 사탄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알면서도 자기 마음대로 살면 변화와 성장이 없습니다. 영적인 어린 아이의 상태로 머물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를 부인하고 말씀에 순종할 때 영적인 눈이 열리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며, 그의 성품을 닮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때 사람다운 사람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성장해 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은 그가 행한 일에, 또는 그가 행한 일로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면 기쁨이 있습니다. 생명이 살아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있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때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넘치게 공급해 주십니다. 돈이 없어서 염려하고 근심하기보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돈을 많이 번 다음에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는 사람치고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을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악순환만 반복합니다. 우리는 우선순위를 바꾸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어려워도 먼저 주와 복음을 위해서 헌신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기가 막힌 방법으로 나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바쁘십니까?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고 그가 주시는 소원을 따라, 그가 주시는 능력대로 헌신하십시오. 많은 유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도 반복해서 연습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계속해서 연습하다보면 그 사람을 얻고 관계가 풍성해질 것입니다.

  희대의 탈옥수요, 살인범인 신창원은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그에게 술심부름을 시켰습니다. 돈도 안주면서 술을 사오라고 하니 절도를 했습니다. 그가 범죄자가 된 결정적 계기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겪은 일이었습니다. 등록금을 기한 내에 내지 못한 그에게 담임선생님이 내뱉은 말 한마디가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이 새끼야, 등록금 안 가져왔는데 뭐하러 학교 와. 빨리 꺼져.” 그 말을 듣는 순간 창원이는 마음 속에서 악마가 태어나고 있음을 느꼈고 어둠을 품게 됐다고 고백했습니다. 그가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승려를 만났습니다. 승려는 다짜고짜 집으로 안내하라고 했습니다. 창원이는 이유도 모른 채 승려를 데리고 집으로 갔습니다. 창원이의 아버지를 만난 승려는 대뜸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아이를 내게 맡기시오. 그러면 커서 덕이 많은 큰스님이 될 것이오. 그러지 않고 당신이 이 아이를 키우면 우리나라에서 최고가는 도둑놈이 될 것이오.” 세월이 흘러 창원이는 결과적으로 그 승려가 예언한 대로 됐습니다. 훗날 김신웅 장로님이 창원이 아버지를 만나 물었습니다. “그때 왜 창원이를 승려한테 맡기지 않으셨나요.” 창원이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자식들 가운데 창원이가 제일 마음이 착해서지요. 그놈은 길을 가다가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아낙네가 있으면 30리 먼 거리라도 대신 들고 갖다 줄 정도로 인정이 많은 놈이에요.” 만일 그가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훌륭한 부모님 밑에서 양육 받았다면 ‘지금 어떤 모습으로 선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자주 상상해보았다고 합니다. 그가 청송 교소도에서 김신웅 장로님을 만나 사랑을 받으며 거듭나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세리와 창기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를 믿었습니다. 그의 말씀대로 회개했습니다. 그들이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았을 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의롭다 함을 얻고 평강과 기쁨을 누리며 서로 사랑하며 살았습니다.

  셋째, 포도원 농부의 비유(33-46)

  예수님은 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를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습니다. 사실 이런 준비 작업에 많은 돈과 힘이 들어갑니다. 집을 짓는 것이 어렵습니까? 세를 주고 그 집에 들어가 사는 것이 어렵습니까? 당연히 집을 짓는 것이 어렵지요. 이 주인이 농부들을 사랑하고 신뢰했기 때문에 좋은 포도원을 만들고 거기서 주인의 눈치를 살피지 말고 마음껏 일하도록, 포도원을 맡기고 타국으로 갔습니다. 당시 소작농들은 포도 수확의 절반 이상을 주인에게 세로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포도원 주인은 소득의 10분의 1만을 내도록 했습니다. 주인이 농부들에게 세를 거두는 목적은 소득 자체보다도 그들과 바른 관계를 맺기 위함입니다. 또한 감사하는 마음의 표현으로 받고자 한 것입니다. 농부들은 주인의 포도원에서 은혜로 일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감사해야 마땅합니다. 그가 준 일터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아름다운 포도원이었습니다. 포도원 주인의 사랑이 어떠한지 알 수 있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크고 은혜로운 분이십니다. 그에게는 부족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는 샘솟는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는 모두 그의 충만함에서 선물을 받되,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 받았습니다(요 1:14). 농부들은 포도원에서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크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열매를 거두어들일 철이 가까이 왔을 때에, 그는 그 소출을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농부들은 그 종들을 붙잡아서, 하나는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또 하나는 돌로 쳤습니다. 주인은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더 많이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농부들은 그들에게도 똑같이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기 아들을 보내며 말하기를 ‘그들이 내 아들이야 존중하겠지’하였습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그 아들을 보고 그들끼리 말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상속자다. 그를 죽이고, 그의 유산을 우리가 차지하자.’ 그러면서 그들은 그를 잡아서 포도원 밖으로 내쫓아 죽였습니다.

  “그러니 포도원 주인이 돌아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들이 에수님께 말했습니다. “그 악한 자들을 가차없이 죽이고, 제 때에 소출을 바칠 다른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맡길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집 주인은 하나님을 가리키고 포도원은 하나님 나라를 나타냅니다. 농부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종들은 선지자들을, 주인의 아들은 예수님을 나타냅니다. 주인이 포도원을 빼앗아 다른 농부들에게 주는데, 다른 농부들은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보배로운 백성 삼으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젖과 꿀을 먹으면서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서 소망을 두셨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자녀들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틈만 나면 이방 백성들처럼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숭배하고 음란을 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영화롭게 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안타깝게 생각하셨습니다. 어찌하든지 그들을 돌이켜서 바른 관계성을 맺고자 선지자들을 보내고 또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온 몸에 멍이 들도록 때리고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처럼 여전히 그들을 사랑했고 소망을 두셨습니다. 하나뿐인 독생자를 보내주셔서 그들과 바른 관계성을 회복하고자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상속자로 인정하고 관계성을 회복해야 마땅합니다. 그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배척하고 마침내는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입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은혜를 받았지만, 자기 의와 탐욕과 교만 때문에 주인 되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주인 행세를 하고자 했습니다. 

  포도원 농부들은 장차 어떻게 될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런 말씀을 읽어본 일이 없느냐? “집 짓는 사람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일이요, 우리 눈에는 놀라운 일이다.” 43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사람은 부스러질 것이요, 이 돌이 어떤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놓을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비유를 듣고서 자기들을 가리켜 하시는 말씀임을 알아챘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해야 합니다. 그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잡고자 했습니다. 무리들이 무서워 그렇게 하지는 못하였습니다. 무리가 예수님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을 받고 특권만을 누렸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합당한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누구보다도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살았지만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와 같았습니다.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지만 끝까지 뉘우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특권과 영광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 특권과 영광은 열매 맺는 백성들이 받게 됩니다. 그러면 그들이 맺어야 하는 열매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고 그 분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를 믿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고 순종할 때 모든 죄를 용서받고 그 분이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 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가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내 마음의 왕좌에 모셔 들일 때 성령께서는 나를 그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이후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와 교제하며 사랑과 섬김을 받으며 성장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둘째로, 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순종의 열매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장래에 두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순종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봉사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선행을 하는 것도 그를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여쭈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대로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런 줄 믿고 따르다보면 그가 약속한 열매들을 맺게 됩니다.
 
  셋째로, 섬김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오래 참아주시고 섬겨주십니다. 그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그의 성품을 닮아갑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작은 것부터 섬김을 실천하다보면 내가 변화됩니다. 학업과 직장 일을 하면서 목자 생활을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헌신이 없는 신앙생활은 형식적이 됩니다. 양을 치면서 목자는 신앙생활의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영혼 구원의 열매, 제자 양성의 열매를 맛본 사람들은 일생 그 일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목자님들이 어려운 시대에 믿음의 중심을 지키며 살고 있는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가 주위를 돌아보면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의 사랑과 섬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찾아 섬기다보면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새 이스라엘로 선택하셨습니다. 우리가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쓰임 받는 것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열매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주님을 섬기고자 하는 소원을 주시고 양들을 섬길 능력도 부어주십니다. 우리가 그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열매 맺는 삶을 살며 기쁨이 충만한 신앙생활을 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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