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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2024년 막21강(13:1-37) 깨어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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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60회 작성일 24-08-1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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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마가복음 21강
말씀 | 마가복음 13:1-37
요절 | 마가복음 13:37

깨어 있으라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그 날 성전을 둘러보시고 다음 날 다시 방문해서 성전을 청소하셨습니다. 세 번째 성전을 방문하시고 성전 지도자들과 논쟁을 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 성전을 나가시면서 성전 파괴를 예고하십니다. 이로 인해 예수님은 공회에 고발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사람들에게 희롱을 받게 됩니다. 성전 파괴는 예수님의 수난과 연결이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성소의 휘장이 찢어집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건물 성전의 종말을 의미하는 동시에 새 성전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성전 파괴와 멸망에 대한 예고가 수난을 앞둔 제자들과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1,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성전에서 나가십니다. ‘나가실 때’라는 말에는 저자의 의도가 있어 보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계속 성전에 머무셨는데, 이제 성전에서 나가시면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성전을 떠나십니다. 이는 에스겔서에서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는 장면을 연상하게 합니다(겔10:18,19;11:22,23).

  이때 제자 중 하나가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당시 성전은 현관(porches), 행각(colonnades), 몇 개의 부속건물들, 성전 지대 주변의 뜰이 어우러진 장엄한 복합건물이었습니다. 고대 예루살렘 도시 전체 면적의 1/6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면적이 14만㎡(축구장 12개 넓이), 성전의 기둥은 대리석으로 15m정도였습니다. 성전 벽의 돌도 300톤이 넘을 만큼 큰 돌이 많았고, 성벽 중 가장 높은 곳은 53m에 달했습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성전 외벽에 금이 입혀져 있어서 해가 돋을 때 ‘불타는 화려함’에 눈이 부실 정도였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이 건물이 영원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는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그냥 무너지는 정도가 아니라 철저히 파괴되어 다시는 재건될 수 없는 영원한 멸망을 선언하십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입니다. 성전의 파괴는 더 이상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전의 외관에 속지 않도록 경고하십니다. 제자들은 성전의 겉만 보고 속은 것입니다. 외관의 화려함에 넘어간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성전에서 종교지도자들과 논쟁하시는 것을 보면서도, 성전의 영적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마음을 살피십니다. 우리도 이 세상 문명의 화려함보다 그 속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탐욕과 음란과 폭력, 교만으로 점철된 내용들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감람 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조용히 물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제자들은 때와 징조에 대해서 물었는데 예수님은 먼저 징조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후에 때에 대해서 대답을 해 주십니다. 그러면 말세의 징조는 무엇입니까?

  첫째, 미혹. 5,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많은 사람들이 ‘내가 그라’(ἐγώ εἰμι,에고 에이미) 하면서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선언하는 거짓 그리스도들이 많이 출현합니다.(참조.6:50) 예수님은 그들에게 ‘미혹받지 않게’ 주의하라고 하십니다. 사도 요한은 미혹의 영을 주의하라고 하였습니다(요일4:6). 이단이라고 할 때는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신성이나 인성을 부인하는 것,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것, 구원의 방법, 성경의 무오성과 권위를 부인하는 것, 지도자를 무오하거나 신적인 존재로 숭배하는 것, 외부 세계와 단절 등을 근거로 판단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자의로 거짓 그리스도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배후에 사탄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의하라’(see)고 하십니다.

  둘째, 난리, 전쟁, 지진과 기근. 7,8절을 보십시오.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성전 파괴와 멸망을 예고하시며 그 징조가 전쟁과 지진과 기근을 언급하시는 게 다소 의외입니다. 성전의 부패와 타락이 세상에 닥치는 재앙의 근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보통 지진이 일어나면 최초의 발생지인 진원을 찾아냅니다. 그런데 모든 지진의 진짜 진원은 성전의 부패입니다. 종교의 부패가 모든 재앙의 근원입니다. 종교는 모든 문명과 문화의 근원이요 핵심입니다.

  셋째, 신자들에 대한 박해. 9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 사람들이 신자들을 공회에 넘길 것입니다. 신자들은 회당에서 매질 당하고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게 됩니다. 이번 유럽 수양회 메시지와 인생소감을 들어보니 한결같이 유럽에서 크리스천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크리스천을 어리석은 사람들로 매도하고 왕따를 시킵니다. 앞으로 이런 일들은 점점 더 심해질 수 있습니다. 기독교가 쇠퇴하고 무신론의 나라가 되었기 때문에 악한 자에게 속한 사람들이 신자들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재난이나 전쟁을 보면서 우울해하고 두려워합니다. 오늘날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 자연재앙, 생태계 혼란을 보면서 지구 멸망의 날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런 환난과 재앙들은 반드시, 필연적으로 일어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끝’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재난의 시작’이라고 하십니다. ‘재난’이란 단어는 해산할 때 동반하는 고통을 의미합니다. 신자들은 전쟁, 지진, 기근과 같은 현상을 잘 봐야 합니다. 이것들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생명의 탄생과 같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아픔입니다. 그러므로 환난의 때에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산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소망이 있을 때 우리는 환난을 견딜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적극적으로 무엇을 해야 합니까? 10절을 보십시오.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예수님은 이런 박해가 복음의 증거를 위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환난이 심해지면 어떤 사람들은 더욱 완악해지지만, 어떤 사람들은 두려움으로 인해서 마음이 연약해지고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환난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때 어려운 사람들을 사랑하고 돌보면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8장을 보면,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서 신자들이 유대와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파하고(행8:1),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복음을 전파합니다(11:19). 바울은 유대인들의 박해 때문에 총독 서기오 바울(행13:12), 벨릭스(행24:24,25), 베스도(행25장,26장) 앞에 서고, 아그립바 왕 앞에 서서(행25:23-26:32)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최후로 로마 황제 앞에 서게 됩니다(행27:24). 전쟁 후에 복음 전파는 가속됩니다. 우리나라도 6.25 전쟁 이후에 영적인 부흥이 왔습니다. 지금 우크라이나는 전쟁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마음이 가난해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선교사님들은 우크라이나가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 거듭나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복음 전파는 하나님이 모든 일 중에서 가장 우선권을 가지고 이루어 가시는 역사입니다.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위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일이 만국 복음전파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끌어다가 공회에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성령께서 주시는 그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변과 지혜를 주셔서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새 생명의 출생을 위해 반드시 진통을 겪어야 하는 것처럼, 새 시대의 도래를 위해 신자들 역시 박해를 받으면서 만국에 복음을 전파해야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지만 끝까지 견디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박해의 시기에 성령께서 맺게 하시는 열매가 인내입니다. 박해를 통해서 복음이 증거되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성령이 도와주신다는 믿음, 장차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소망 그리고 이 길이 예수님이 이미 가신 길이라는 믿음으로 견디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환난의 때를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나만 고난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주위를 둘러보고 고난당하는 동역자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성을 맺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능력을 덧입고 만국 복음 전파에 힘쓰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번에 체코에서 유럽 국제 수양회를 잘 마치게 되어 감사합니다. 43개국에서 1117명이 모여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배우고 기뻐했습니다. 67명의 새 양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복된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영광을 부여잡기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자 하는 소원을 갖고 그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에 동참하고자 방향을 잡았습니다. 유럽은 희어져 추수하게 된 밭입니다. 개척되어야 할 나라들이 많이 있고 가정교회들이 자생력을 갖도록 동역자들이 필요합니다. 이 일을 통해서 유럽이 다시 한 번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14-31절은 성전 멸망이 임박했다는 결정적인 징조가 무엇이며 그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해야 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요새로 둘러싸여 있었고, 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곳이라고 생각하여 가장 안전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서 떠나 있었기 때문에 그리로 가지 말고 산으로 도망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고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죽음 앞에 이 세상 소유물에 얽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환난이 얼마나 심한 지 그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고 하십니다.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기에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다고 하십니다. 오늘날 지구 멸망을 대비하여 돈 있는 사람들은 지구를 탈출하여 달이나 화성에 가서 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소용이 없는 이유는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주 질서가 붕괴되기 때문에 우주선을 타고 도망을 가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때에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한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실 것입니다. 주님이 오심으로 새로운 우주 질서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 날에 타락하고 부패하고 악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신자들은 완전한 자유를 얻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이 사실이 재난과 환난의 시대를 살아야 하는 제자들에게 진정한 소망이 됩니다. 우리는 재림하시는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재난과 환난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대환난조차 견디고 이길 힘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제 마지막 때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압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그렇게 어렵거나 특별한 사람만 알 수 있는 신비한 사건이 아니라 누구나 알고 인정하는 자연의 원리처럼 자명한 사건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고 하시며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그 말씀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역사적으로 한 세대는 40년입니다. 예수님이 A.D 30년에 죽으셨으니, A.D 70년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로 예수님의 말씀은 다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장차 있게 될 세상의 종말을 확실하게 보증합니다. 강조점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십니다. 우리가 그 때를 모르기 때문에 주의해야 합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세를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습니다.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알지 못함입니다. 그가 홀연히 와서 우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어떻게 사는 것이 깨어 있는 것일까요? 반대로 마음이 둔한 상태는 어떤 것일까요? 눅21:34에 보면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는 우리로 깨어 있지 못하게 만듭니다. 게으르고 안일하며 세상의 쾌락과 생활의 염려에 빠지게 되면 영적인 소원을 잃어버리고 육신의 본성을 따라 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말씀을 보는 것도 귀찮고, 기도하는 것도 힘이 듭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인이 올 걸 생각하고 주인이 맡긴 일을 한결 같고 성실한 자세로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의 태도가 일상(日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인이 ‘홀연히’ 와도 갑작스럽거나 당황스러운 일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을 하나님의 임재 연습의 시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메마르고 지루한 시간을 지날 때에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으로 채우고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 안에서 자신을 신실하게 지키고 또 하나님이 우리 앞에 계시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의 임재와 그의 눈을 의식하면서 살아가려면 기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의 무력함을 의식하고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심으로 깨어 있는 삶을 사셨습니다. 반면에 제자들은 기도해야 할 시간에 잠을 자다가 시험에 들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모든 예언은 예수님의 재림을 빼고는 다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옴으로 역사는 완성될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들이 가져야 할 역사관입니다. 신자들이 살아가는 종말은 인내가 필요할 정도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그와 비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미래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서 주의하고 깨어 있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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