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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2024년 여름 수양회2강(3:7-35) 열둘을 세우셨으니-김아브라함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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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86회 작성일 24-07-29 17:30

본문

2024 동교 화랑 여름수양회 주제 2강

열둘을 세우셨으니

말씀 마가복음 3:7~35
요절 마가복음 3:14,15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이번 주제 2강 말씀은 예수님께서 열두제자를 세우시는 말씀입니다. 지난 주제 1강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과 영생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주제 2강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실까요? 예수님의 제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또한 동시에 제자 양성가가 되라는 것입니다. 처음 참석한 학생들이나 젊은 청년들은 ‘아직 제자라는 인식도 없는데 무슨 제자 양성가냐’ 생각할지 모르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런 소망을 두고 계십니다. 그리고 제자와 동시에 제자 양성가로 사는 삶이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삶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왜 이 시대에 예수님이 우리를 제자로 부르셨는지, 예수님의 제자로 사는 삶이 왜 가치있는 삶인지 깨달아 아는 은혜가 우리 안에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7절부터 12절까지는 예수님께서 열두제자를 세우실 때의 시대 상황을 볼 수 있습니다. 7,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숫가로 가시자 예수님께서 계신 곳으로 갈릴리 지방의 많은 사람들이 몰려갔습니다. 유대와 예루살렘, 이두매, 요단 강 건너편, 두로와 시돈에서도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남부에 위치하여 갈릴리와는 꽤 멀리 떨어져있습니다. 이두매는 에돔을 의미하며, 이스라엘 남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요단 강 건너편은 가나안 동쪽을 의미합니다. 두로와 시돈은 갈릴리 북서쪽에 있습니다. 이처럼 동서남북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하신 이적을 듣고 예수님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신 것을 알고 예수님을 만져 자신의 병을 고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귀신들은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소리를 질러 댔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몰려든 무리들을 목자없는 양과 같이 불쌍히 여기시고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백성들을 사랑하시어 그들이 죄사함과 구원을 받고 영생에 이르기까지 원하신, 그래서 십자가에서 목숨까지 버리신 선한 목자이시자 참 목자이십니다.
  사실 말씀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는 예수님처럼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며 옳은데로 인도하는 역할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 등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갈릴리 촌구석에서 막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예수님께 몰려든 것은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역할을 잘 해내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본문 말씀 앞부분인 마가복음 3장 1절부터 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한쪽 손 마른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이 하루하루 고통 가운데 죽어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시고 안식일에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십니다. 반면 바리새인들은 이 사람의 고통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율법과 규례로 사람들을 통제하고 정죄하는데에만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율법의 근본 정신인 사랑을 알지 못하였고, 고르반과 같은 규례를 악용하여 사익을 취하는 등의 외식을 하였습니다. 이들은 사람들의 목자가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자신들이 만든 안식일 규례를 무시한다며 예수님을 죽일 궁리만 꾀하는 영적으로 어두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로 가득하여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이어나가기 위해서 제자를 세우려 하셨습니다.
  본문 말씀이 드러내는 시대적 상황과 오늘날의 상황을 비교해볼까요? 어떻습니까? 저는 별로 다른게 없어보입니다. 사람 사는 것은 어느 때나, 또 어느 곳이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오늘날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을 보면 시대적 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누구를 스승으로 모시는지 보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에는 3대 스승이 있다고 합니다. 자녀 양육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오은영 선생님, 장사가 안되서 힘들어하는 자영업자에게는 백종원 선생님, 반려견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는 강형욱 선생님이 있습니다. 수험생들에게는 일타강사들이 있습니다. 부동산, 주식, 코인계의 수많은 선생님들이 자기 강의를 들으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은 물질에 많이 포커스가 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이 최고다’, ‘돈이면 다 된다’라는 생각으로 어떻게 하면 쉽게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폐해가 발생하고 있는지는 외면합니다. ‘1년 동안 감옥에 다녀오면 10억을 준다고 했을 때, 감옥에 다녀올 것인가’라고 묻는 질문에 고등학생의 60%가 다녀오겠다고 답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반면에 사람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사람보다 돈이 먼저이고, 사람과의 사이에서 스트레스를 받느니 사람과의 관계성을 맺지 않겠다고 생각합니다. 내 감정에는 충실하지만 다른 사람의 감정에는 무감각하며, 내 말과 행동에 대해 다른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까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적 세계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습니다.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는 것도 여전합니다. 다수의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를 그다지 반기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의 가치관과 세상의 가치관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이라 밝히는 순간부터 불편한 시선과 조롱, 비난이 시작됩니다. 때로는 실제적인 해를 입기도 합니다. 중국과 인도에서는 외국인이 현지인을 전도하거나 현지인과 같이 예배를 드리면 추방을 당합니다. 중동에서의 박해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리더가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리더들은 세상의 가치를 최고라고 말하고, 사리사욕을 채우기 바쁩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성육신하셨을 때와 똑같이 영적으로 어두운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제자를 세우고자 하십니다.

  그러면 누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1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제자로서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예수님은 당신께서 원하신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내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다고 해서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원하시고 부르실 때 그 부르심에 순종해야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수양회를 참석하기 위해 충북 충주시까지 오셨고,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10만원이 넘는 수양회비를 지출하고 말이죠. 10만원이면 4명에서 마라탕 4인분을 먹고 후식으로 탕후루를 먹고 코인노래방에 가서 목이 찢어질 때까지 노래를 불러도 남는 돈입니다. 또는 피시방에서 친구들과 하루종일 게임을 하며 피시방 직원이 만들어주는 음식으로 아침, 점심, 저녁 삼시 세끼를 떼우고 커피까지 먹어도 남는 돈입니다. 그런데 그 돈을 수양회에 참석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무엇이 여러분들을 수양회에 오도록 이끄셨나요? 여러분의 의지였나요? 아니면 누군가 여러분들을 강제로 끌고 왔나요? 여러분과는 달리 수양회에 초청 받았지만 오지 않은 분들도 많고, 아예 영적 세계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들과 여러분이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저는 예수님께서 우리들 마음에 수양회에 가고자하는 마음을 심어주셨다고 믿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를 제자요, 제자 양성가로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창조주이자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수많은 피조물 중에서 특별히 우리를 원하신다니!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이제 우리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은혜로 알고 응답할 차례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대로 행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3가지로 이루어져있습니다. 14,1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첫 번째 목적은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생각과 행동 모든 것을 보고 배워 따라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치 부모가 어린 자녀를 가르칠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직접 보여주는 것처럼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라하며 예수님을 닮아가고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하는 사람이 제자인 것입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을 수는 없지만 성경을 통해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 또는 영감으로 되어있습니다(디모데후서 3장 16절). 영어로는 ‘God-breathed’ 즉, 하나님의 숨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성경 기자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영감으로 성경을 기록하였고, 하나님께서 숨결로 인증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갤 수 있을 정도로 예리하게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어 생각과 뜻을 판단합니다(히브리서 4장 12절). 예수님의 말씀으로 우리가 깨끗해집니다(요한복음 15장 3절). 말씀을 통해 마음의 악한 가지들을 쳐내고 하나님의 부르신 뜻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또한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할 때 많은 열매를 맺고, 무엇이든 원하는대로 구하여 받을 수 있습니다(요한복음 15장 8절). 또한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여 다른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긴다고 하였습니다(빌립보서 3장 8절). 예수님을 얻는 것이 다른 모든 것을 얻는 것보다 더 값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목적은 전도를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내 양을 먹이라(요한복음 21장 17절)”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제자이자 제자 양성가로 세워진 베드로 사도는 우리 또한 예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도록 택하여진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예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 하였습니다(베드로전서 2장 9절).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복음영접을 통한 영혼 구원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위해 육신을 입고 오셨지만 언젠간 부활 승천하시어 하늘 나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이후에 복음 전파 사역을 감당할 사람들이 필요하셨습니다. 그런 목적 가운데 열두 제자들을 부르셨고, 오늘날에는 우리를 제자이자 제자 양성가로 부르십니다. 강의실에서 말로만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보고 배운 것을 실습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말로 전도하고, 거룩하고 경건한 삶으로 전도할 수 있습니다. 제자가 제자를 양성하고 또 그 제자가 제자를 양성하면서 하나님의 영혼 구원 역사가 이어질 것입니다.
  세 번째 목적은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갖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승천 이후 이 땅에 남은 제자들이 장차 감당해야할 복음 전파의 사역은 영적인 싸움입니다. 육의 세력이나 정치 세력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붙들고 있는 악한 영의 세력과 싸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영적 싸움을 위해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는 권능도 주셨습니다. 앞에서 시대 상황을 이야기할 때, ‘돈이 최고다’라는 생각이 많은 폐해를 발생시킨다고 했는데 영적 타락에 의한 폐해 또한 극심합니다. 아무리 큰 잘못을 하더라도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 ‘돈으로 무마하면 된다’, ‘시대가 이런데 이를 이용하지 않으면 바보다’라고 생각하는, 도덕적 기준이 완전히 잘못 세워진 경우를 많이 봅니다. 분노를 참지 못하는 사람,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사람, 우울증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성범죄, 동성애와 같은 성적 타락은 또 어떻습니까? 이러한 영적 타락은 악한 영들이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악한 영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항상 깨어 영적 싸움을 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악한 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악한 영에게서 벗어나도록 도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귀신 쫓는 권능을 주시는 것은 이런 사람들을 도울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제자가 될 때, 우리가 받는 축복과 은혜는 무엇입니까?
첫 번째로, 영혼의 참된 만족이라는 축복과 은혜를 받습니다. 예수님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돈이나 권력, 사람들의 인정을 구하기보다 예수님을 통한 영혼의 만족을 구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을 때, 죽음이 주는 공포와 허무함으로부터 벗어나 영생의 기쁨과 만족을 얻습니다. 뿐만 아니라 만물을 창조하시고 운영하시는 창조주이시자 진리 그 자체이신 예수님을 통해 세상이 주는 거짓 지혜가 아닌 인생의 참된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지혜는 교만과 비교의식, 열등감을 주지만 예수님의 지혜는 영혼의 만족을 줍니다. 또한 기묘자요 모사, 영어로는 ‘Wonderful Counselor’이신 예수님(이사야서 9장 6절)께서 우리 인생 문제와 그로 인한 고통을 깊이 이해하시고 위로하시며 가장 좋은 방법을 제시하심으로 영혼을 따뜻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두 번째로, 영원한 영광이라는 축복과 은혜를 받습니다. 먼저 열두 제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16~19절을 같이 읽으면서 보겠습니다.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나인 시몬이며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은 어부였고, 마태는 세리였습니다. 그 말인즉슨 체계적인 종교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적으로도 우둔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군병들에게 잡히시자 모두 도망가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 같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서 직접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붙이실 정도로 화가 많았고, 베드로처럼 성질이 급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제자들의 면면을 보니 어떻습니까? 크고 높으신 예수님의 제자답게 훌륭한 사람들인가요? 오히려 예수님 망신이나 시키지 않으면 다행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제자로 부르시지 않으셨다면 이름없이 평범하게 살다 죽고 잊혀질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들을 원하시어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을 버리고 부인하고 심지어는 배반할 것을 아심에도 부르셨습니다. 그들의 현재 상태를 보신 것이 아니라 앞으로 복음 역사의 주역이 될 것을 소망하고 키우셨습니다. 결국 가룟 유다를 제외한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의 사도가 되어 세계 각지로 흩어져 복음을 전하며 제자 양성가로 살았습니다. 이를 통해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는 성경책에 이름을 올려 사람들이 영원히 그 이름을 기억하도록 하는 영광을 받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우리의 거처가 있는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며 살 것입니다(요한복음 14장 2절). 제가 2월에 학생수양회에 갔을 때, 수양회 장소였던 오륜 빌리지의 책임 목사님이신 김효태 목사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목사님은 불신자 가정에서 나셨지만 약 40년전 대학 후배이셨던 김느헤미야 목자님의 권유로 UBF에서 성경공부를 하시며 예수님을 영접하셨습니다. 대학 동기들 중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도 은퇴를 앞두고 나니 꺼져가는 등불처럼 초라해졌지만 목사님은 지금까지 하나님 역사에 쓰임받으며 밝게 빛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것을 누리는 시간은 짧은 인생 중에서도 더 짧은 순간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은 영원히 누릴 것입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께서 우리와 영적인 가족이 되는 축복과 은혜를 받습니다. 22절에 등장하는 서기관들은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으시는 역사에 대해 바알세불이 지폈다,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폄하합니다(22). 사탄을 위시한 귀신의 세력이 똘똘 뭉쳐 하나님을 대적해도 모자랄 판에 귀신이 귀신을 쫓아낸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예수님은 마태복음 12장 28절을 통해 하나님의 성령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내셨음을 밝히셨습니다.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며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영원한 죄가 됩니다(29).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으시는 역사는 강한 자 사탄을 결박하시고 사탄의 종 되었던 사람들을 구하시는 역사입니다(27). 예수님께서 이 역사를 행하시는 이유는 예수님이 우리를 영적인 가족으로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가족이 누군가에게 사로잡혀 위험에 빠져있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해내려 하는 것처럼 귀신에 사로잡힌 영적인 가족을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구하신 것입니다. 누가 예수님의 영적인 가족입니까? 3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가족입니다. 행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가족인 것입니다. 작게는 밥을 같이 먹는 요회 ‘식구’가 우리의 영적 가족이고, 크게는 예수님을 주요 그리스도로 고백한 모든 사람이 우리의 영적 가족입니다. 육신의 가족은 때와 상황에 따라 끊어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맺어진 영적인 가족은 절대 끊어지지 않습니다. 반면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여 가르치겠다 다짐했던 에스라의 후예인 서기관들은 눈 앞에 보이는 상황을 옳게 해석할 영적인 분별력을 상실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기에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과 영적인 가족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수양회를 통해 많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통해 들은대로 행해야 합니다. 행할 때 예수님의 영적인 가족이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써 이 시대에 예수님의 영적인 가족으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위와 같은 것들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진정 가치있는 삶은 물질적인 풍요나 시간적인 여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께 배우고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또한 이를 통해 영혼의 만족을 얻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영광을 받으며, 예수님과 영적인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며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을 누리는 삶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삶임을 영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앞에서 여러분들에게 무엇이 수양회를 오게 하였는가 여쭤봤습니다. 저에게는 무엇이 말씀강사를 하게 했을까요? 저는 지난 1학기를 마지막으로 2년 반의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쳤습니다. 휴학 2년까지 하면 4년 반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종강하고 나면 집에서 소파와 한몸이 되어 스마트폰과 친구가 되고 싶었지만 그렇게 못했습니다. 게다가 교사들이 제일 바쁜 시기인 학기말에 저는 생기부를 쓰고 성적과 출결 처리를 마무리하는 동시에 저녁에는 말씀을 묵상하고 메시지를 써왔습니다. 동료 선생님들은 방학이면 해외여행을 나가시는데 저는 이 곳 충주 한마음 연수원으로 왔습니다. 4주라는 피같은 여름방학 중에 1주일은 수양회를 준비하고, 1주일은 이레 어린이집 방학이라 이레를 돌보는데 사용해야합니다. 방학의 무려 절반을 방학답게 쓰지 못합니다. 방학 생각하니까 좀 슬픕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수양회에 참석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예수님께서 수양회에 가고자 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이듯이 저도 예수님께서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의 은혜를 받으라고 말씀 강사의 직분을 주신 것임을 믿습니다.
  사실 말씀의 은혜를 받고자 말씀 강사의 직분을 받긴 했지만 말씀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일도 바쁘고 가정도 돌봐야하고 스마트폰과 친구도 되어야 하니 ‘적당히 하자’, ‘이 정도면 되었다’, ‘배운지 얼마 안된 말씀이니 하던대로 하면 되겠지’라는 교만한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막상 메시지를 쓰면서 계속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쓰던 것을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쓰기를 여러 번 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은 조급해지고 ‘언제 소파에 앉지?’, ‘언제 스마트폰과 친구가 되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을 전하는 제가 예수님의 제자라는 인식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고 목자라는 직분을 받아 홍대 복음 역사라는 사명을 받아 살고 있지만 한번도 제가 예수님의 제자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저를 부르셨다는 것은 분명히 알겠는데 그것을 한마디로 정의하지 못한채 주어진 것을 수행하기 바빴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라는 인식이 없으니 예수님의 제자로서 받을 수 있는 말씀의 은혜도 받지 못했고, 예수님의 제자로서 사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삶인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말씀 강사가 제자라는 인식이 없는데 어떻게 제자가 되라는 메시지를 전하겠습니까? 그래서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하고자 했던 교만을 회개하고 지금 이 순간에 주시는 말씀의 은혜를 겸손하게 구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무엇인지 생각할 때, 지금까지 봐왔던 말씀이 새롭게 보이고 저는 알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지금까지 저를 제자로 부르시고 사용해오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미워하고 신자들을 비난하던 죄인 중의 괴수인 저를 홍대로 부르시고, 성경공부로 초청하시고, 군 제대 후 여름수양회로 초청하셨습니다. 특히 군 제대 후 여름수양회에 초청하시면서 제가 겉으로는 그리스도인이라 말하지만 생각과 행동은 그리스도인 답지 않은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초청에 응하도록 하셨습니다. 그 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장 28절)” 말씀을 통해 저를 향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였습니다. 이후에 인생의 고난으로 괴로울 때 가장 필요한 말씀을 주시었고, 이를 통해 제가 영적으로 회복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3명의 학생과 매주 성경공부를 하고, 예배 후에는 학생팀 요회의 리더로 쓰임을 받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욕, 교만, 물질로 인한 비교 의식 등 수시로 저의 내면을 괴롭히는 죄 문제를 붙들고 영적 싸움을 하도록 하십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첫 성경공부를 할 때 부터 구했던 참된 행복과 영혼의 만족을 주셨습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할 소망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영적 가족이 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제가 인식하지 못하였을 뿐 저는 이미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아 제자로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임을 인식하고 영접했을 때, 이것이 오직 예수님만이 제게 주실 수 있는 특권이며, 가장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지금 제 마음은 말씀을 통해 받는 은혜로 충만합니다. 말씀이 살아 역사하는 것을 느끼며 행복합니다. 진정 가치있는 삶은 물질이나 시간적으로 여유로운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예수님의 제자로 사는데서 오는 것임을 알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죄인에게 제자라는 가장 가치있는 삶을 허락하신 그리스도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누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제자로 원하시고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부르신 자의 뜻대로 예수님과 함께 하며, 전도하며, 영적 싸움을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할 일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가장 가치 있는 삶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이제 2박 3일의 수양회도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곧 각자의 사명이 있는 땅으로 가야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어두운 이 시대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영적 투쟁을 하는 제자로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또한 세계 캠퍼스에 아직 복음을 알지 못하고 죽어가는 양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제자로 삼는 제자 양성가로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망국의 포로 출신으로 바벨론과 바사의 재상의 자리까지 오른 다니엘은 말했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다니엘 12장 3절)” 저는 예수님의 제자가 그러할 것이라 믿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하는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영원토록 빛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영접하여 세계 캠퍼스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제자로 살도록 결단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면서 세상 그 무엇보다 가장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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