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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2020년 롬15강)12:1-21)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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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97회 작성일 20-03-15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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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로마서 제 15 강
말씀 | 로마서 12:1-21
요절 | 로마서 12:1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는 로마서 1장부터 11장에 걸쳐서 기독교 교리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교리는 신앙의 뼈대가 되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장부터는 우리가 배운 교리를 실제 삶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즉 실천에 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첫째, 하나님을 향해서 가져야 할 자세(1-2), 둘째, 성도들 상호간에 가져야 할 자세(3-13), 셋째, 세상 사람들에 대해서 가져야 할 자세(14-21)에 대해서 잘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향해서 가져야 할 자세(1,2). 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는 과거에 죄로 인해서 사탄의 종노릇하고 어둠의 자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거절하고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살았습니다. 모든 것이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빛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를 주인으로 모시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일은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긍휼로 새 생명을 얻은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합니까?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 여기서 몸은 전인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본래 제물은 죽여서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이는 우리 몸이 살아 있지만 마치 죽어서 하나님께 바쳐진 짐승처럼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거룩한 산 제물’이란 죄를 끊어버리고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께 바쳐서 섬기는 삶을 뜻합니다. 즉 헌신된 삶을 가리킵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세상과 구별되다는 뜻입니다. 자기 영광이나 이 세상의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구별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만이 아니라 한 주일 내내 하나님을 중심으로,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드려야 할 영적 예배입니다.

  우리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 예배로 드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절을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본 받지 말아야 할 이 세대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요한일서 2:16은 말씀합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3:2-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렘 17:9)”고 했습니다. 이 세대는 이기주의, 물질주의, 쾌락주의, 육신주의로 부패하고 타락하였습니다. 안목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서 온갖 죄를 서슴지 않는 세대입니다. 우리는 이런 세상을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중심으로 살라고 하는 사탄과 세상의 소리를 따르지 말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그분이 기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놓는 것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세상의 소리와 하나님의 소리를 분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음이 변화를 받으려면 자기중심적이고 세상적인 가치관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과 성령의 충만하심을 덧입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때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는 영적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분별하는 삶에 대해서 이번 주 일용할 양식을 먹으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갔을 때 마르다는 이것저것 음식을 준비하느라 마음이 분주했습니다.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동생 마리아는 주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마르다는 바쁜 데 돕지도 않는 동생으로 인해서 화가 났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 나아가 마리아에게 명하여 자기를 돕도록 해 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마르다에게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주님께서 지금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를 분별하고 말씀을 듣는 한 가지를 택하였습니다. 말씀을 듣고 생명을 얻는 것은 뒤로 하고 이것저것 여러 가지 해야 할 일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일로 근심하고 염려하기보다 한 가지만 선택해도 족한 줄로 알고 좋은 편을 택하는 분별력을 가지기를 기도합니다. 주일도 해야 할 일이 많지만 한 가지, 예배를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서 은혜의 강물이 내 안에 흘러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말씀과 성령을 통한 은혜가 우리 안에 또 가정 안에 넘칠 때 열매를 풍성히 맺히게 될 줄 믿습니다. 

  둘째, 신자 상호간의 자세(3-13). 우리는 대인 관계에서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3절을 보십시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우리는 생각이 행동을 낳기 때문에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해야 합니다. 형제자매에 대해서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기고 배워야 합니다. 교만한 마음은 자신이 하나님의 위치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자기 분수에 맞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각자 자기 위치를 지키고 겸손하게 행할 때 공동체는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그런 공동체를 축복하고 귀하게 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 그 뜻대로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 은사를 가지고 남과 비교하지 말고 이것으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어떻게 섬기고 풍성하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분수에 맞는 생각을 하려면 지체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신자는 예수님을 머리로 한 교회공동체의 지체들입니다. 우리 몸은 수많은 지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든 지체들은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각자의 고유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모든 신자들은 교회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할지언정,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지체로서 인정하고 동등하게,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입니다(6-8). 은사가 없는 분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저는 목자님들이나 학생들과 함께 일을 하다보면 그들의 은사와 능력에 깜짝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열심히 감당하다보면 그것이 은사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내가 받은 은사가 무엇인가를 묻기 전에 자신이 맡은 바 해야 할 일을 열심히 감당하다보면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은사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하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예언은 점쟁이처럼 사람의 미래를 맞추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나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일어난 일들을 하나님 편에서 해석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섬기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교회에는 섬겨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청소도 해야 하고, 음식을 만들기도 해야 하고 예배 때 기도하고 찬양을 인도하고 악기로 섬겨야 합니다. 메시지를 영어로 번역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섬김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르치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성경공부를 많이 하기 때문에 지혜와 지식의 은사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훌륭한 성경선생들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위로하는 은사를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구제하는 은사를 받았고, 어떤 사람은 다스리는 은사를 받았고, 어떤 사람은 긍휼을 베푸는 은사를 받았습니다. 이런 은사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잘 섬기도록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은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안 되고 자랑해서도 안 됩니다. 서로의 은사를 인정하고 잘 발휘하도록 격려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은사는 사용할수록 빛을 발휘하지만, 쓰지 않으면 은사도 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때 교회 내에서 나의 존재의미가 생깁니다. 또 나의 은사를 통해서 교회가 더욱 풍성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불 일 듯이 해서 모임이 더욱 풍성하기를 기도합니다.

  은사를 사용하는 동기는 형제에 대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 내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겸손과 더불어 사랑입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사랑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이번 코로나 19 사태를 보면서 거짓이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치는지 똑똑히 보게 되었습니다. 신천지가 거짓을 모략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행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았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진리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해야 합니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해야 합니다. 서로 먼저 사랑할 때 공동체는 생명력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가정 예배를 드리면서 느슨해지기 쉽습니다. 집에서 예배를 보니 긴장하지 않고 적당히 하기도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부지런히 열심을 품고 섬겨야 합니다. “열심을 품으라”는 말은 헬라어 원문에는 “성령으로 뜨거워져라”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져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라는 뜻입니다. 인간의 악한 본성 중에는 탐욕과 게으름이 있습니다. 게으름은 죄의 온상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를 평가하시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하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열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우리가 코로나 19로 인해서 다 어려운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또한 지나가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이후에도 가정예배를 주중에 드리며 화목하기를 힘쓰면 좋겠습니다. 또한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셋째, 신자와 세상의 관계(14-21). 14절을 보십시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 하지 말라.” 우리가 어떻게 나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할 수 있을까요? 박해하는 자 안에 악이 있지만 그도 악의 종노릇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행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도 자기 발견이 필요하고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박해하는 자를 위해서 예수님과 스데반과 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17절도 보십시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20절에서는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원수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공급하라”고 했고, 21절은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씀합니다. 선은 박해할지라도 축복하는 것이요, 악은 자신을 미워하고 박해한다고 증오하고 저주하는 것입니다. 친히 원한을 갚는 것이 악이요, 원수일지라도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공급하면서 자비를 베푸는 것이 사랑입니다. 우리는 개인적인 원수와 사회적인 원수를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시 때문에 사회에 공의가 강 같이 흘러넘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친히 악을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사법기관이 있어서 억울한 사람들을 대신해서 심판을 집행합니다. 만약 개개인이 심판을 하고 원수를 갚는다면 이 세상은 금방 무법천지가 될 것입니다. 힘이 있는 사람들이 득세하고 약자들은 쥐 죽은 듯이 있게 될 것입니다.

  복수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 우리 신자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함으로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아야 합니다. 이것은 부끄러워서 얼굴을 뜨뜻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마음에 사랑이 없다면 그 사람은 살았으나 죽은 자와 방불합니다. 특히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악은 선으로만 이길 수 있습니다. 완악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해서 부끄럽게 하는 것이 율법의 완성인 사랑입니다(13:10).

  결론적으로 우리가 지금 같이 어려운 고난의 때에 자신을 돌아보고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주일 예배를 잘 드릴 뿐만 아니라 삶이 예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풍성한 말씀과 성령의 충만함을 주셔서 은혜의 강물이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를 분별하며 사는 한 주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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