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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2020롬14강(11:1-36) 하나님의 구원 계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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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05회 작성일 20-03-08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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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로마서 제 14 강
말씀 | 로마서 11:1-36
요절 | 로마서 11:25,26a
 
하나님의 구원 계획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지난 주일에 가정예배를 드리신 소감이 어떠하신가요? 어떤 분들은 오랜 만에 가족 간에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하고, 어떤 분들은 울면서 가정 예배를 드리고, 어떤 분들은 새로운 은혜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혼자 있는 분들이 가장 염려가 되어 기도하였습니다. 전화를 해 보니 어려움을 잘 감당하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분들을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지키시고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비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구원 역사의 원동력이 하나님의 긍휼임을 깨닫고 이 하나님을 배워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데서 자라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남은 자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 바울은 자기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음으로, 구원받지 못하는 것으로 너무나 고통스럽고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제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셨는가 하는 생각으로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원수 노릇했던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볼 때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또한 바울은 엘리야 시대에 7천명의 남은 자를 예비해 두신 하나님을 증거합니다. 엘리야는 850명의 바알 선지자들과 싸워 이겼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일로 인해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올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꿈쩍하지 않고 여전히 바알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멀리 했습니다.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드리는 대신에 온 가족이 바알 신전에 가서 열심히 제사를 지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실상 앞에서 엘리야는 절망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참담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하소연하였습니다. “주여 나만 남았습니다. 그들이 나도 죽이려고 합니다.” 이런 그에게 하나님은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4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엘리야가 볼 때는 자기 외에 한 사람의 신자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칠천 명이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와~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 넘어 역사하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눈으로 볼 때는 나만 남았다 생각하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절망하고 비판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대나 남은 자들을 예비해 놓으십니다.

  중국은 공산주의자들이 교회를 핍박하고 선교사들을 추방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억 3천만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가정 교회를 통한 전도와 예배와 제자훈련이 이런 결과를 낳았습니다. 북한은 지구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기 가장 힘든 나라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이 발각되면 그 즉시 체포되어 고문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공개처형을 당하기도 합니다. 오픈도어 선교회의 통계에 의하면 현재 정치범 수용소에는 6000명에 달하는 그리스도인이 구금돼 있습니다. 이런 억압 속에서도 40만 명 이상이 숨어서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성경을 몰래 지니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성경 낱권으로 암송하고 있다가 예배 때마다 읊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성경말씀을 듣는 자체로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4,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으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남은 자들’은 불경건한 시대 속에서도 믿음의 중심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불신앙 가운데 살아갈지라도 끝까지 믿음의 중심을 지키며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세상의 영향을 받지 않고 충성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것은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 내면에 있는 신앙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둘째,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는 하나님의 신비한 구원 역사.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기 의를 주장하며 교만해져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실족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하나님은 지혜로우십니다. 이스라엘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렀습니다. 바울은 항상 먼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배척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울을 미워하고 핍박했습니다. 심지어는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방인들은 복음을 기쁨으로 영접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 안에 일어난 구원 역사를 보면서 시기심을 가지게 되고 예수님을 믿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이 복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백성이 됨으로, 세상은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이 풍성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배척하는 완악함도 쓰셔서 이방인 선교를 이루시고, 다시 구원받은 이방인에 대한 시기로 인해 유대인들을 구원하는 오묘한 역사를 이루십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하나님의 역사를 잘 살피고 섬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올해 새 일을 행하실 하나님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 가운데 가정예배를 통해서 가정을 돌아보게 하시고 자녀들을 돌보게 하십니다. 또한 온라인 일대일을 통해서 양들과 일대일을 하도록 도우십니다. 시간이 없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할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일대일 말씀 공부를 하고 제자들을 키울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들을 어떻게든지 활용하여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당시 로마 교회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인들을 보면서 “저 이스라엘 사람들은 교만하고 불순종하다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어.”라고 생각하며 멸시하기 쉬웠습니다. 또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에 매여 음식과 날에 대해서 자유롭지 못한 것을 보고 업신여기기 쉬웠습니다(14:1-3). 이런 그들에게 바울은 경고했습니다. 
 
  16-18절을 보십시오.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또 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 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 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이 말씀에서 유대인들은 참 감람나무요, 원뿌리입니다. 이방인들은 돌 감람나무요, 접붙임을 받은 가지라고 합니다. 감람나무는 올리브 나무를 말합니다. 돌 감람나무는 쓴 열매만 맺는 쓸모없는 나무입니다. 원래 이방인들은 이렇게 우상 숭배와 온갖 죄로 인해 쓸모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런 그들이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접붙임을 받아서 이제 구원을 받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마음, 높은 마음을 가지면 안 됩니다. 그것은 망하는 길입니다.

  2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들에게는 엄위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는 인자하십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는 낮추시고 겸손한 자는 높이십니다. 이스라엘이 이제라도 돌이키면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하나님을 잘 믿고 충성할 것입니다. 또한 복음을 위해서 어떤 고난도 감당하면서 구원 역사에 쓰임 받을 것입니다. 이는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입니다. 우리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잘 받겠습니까? 그들이 이제라도 돌이키면 훨씬 더 잘 믿고 구원 역사가 더욱 불이 붙게 될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돌이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대해서 놀라운 비밀을 알려 줍니다. 25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유대인들이 복음을 배척함으로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서 소아시아와 그리스와 로마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전파된 복음은 오랜 기간 동안에 유럽 전역에 머물면서 유럽인들의 신앙과 삶과 문화에 침투되었습니다. 그런 후에 복음은 미국을 중심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전해졌고, 근대에 들어서는 미국 선교사들을 통해서 아시아 국가들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한국은 기독교 강국이 되었고 한국을 통해서 세계 곳곳에 복음이 전해지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중국과 이슬람 국가인 중동과 힌두교 지역인 인도에서도 복음은 놀랍게 확장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의 충만한 수가 들어온 후에는 다시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은 전해질 것입니다.

  26,27절을 보십시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결국에는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여기서 ‘온 이스라엘’이란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지만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하여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택하신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때까지 이스라엘을 버려두신 것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계획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팔레스타인에도 그리스도인들이 많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영토분쟁으로 인하여 원수지간이 되었지만, 유대 그리스도인들과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놀라운 화해의 역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화목하게 하는 복음으로 구원 역사를 이루어가고 계심을 봅니다. 하나님은 그 언약을 친히 이루십니다. 

  30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본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던 백성들이었고 이방인들은 어둠속에서 살아가며 불순종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함으로서 버림을 받았고 이방인들은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위치가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불순종하면서 살아가던 이방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해주셨던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불순종으로 버림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아무런 조건 없이 구원해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긍휼을 통해서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긍휼이 하나님이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동기요 원동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죄인들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죄인들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가 재판장의 위치에서 판단하고 정죄하면 월권행위입니다.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그 종을 친히 판단하시고 처리하실 것입니다. 필요하면 그를 다시 세우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에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도 그 사랑에서 자라야 합니다.

  교회는 역사상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고 전염병으로 나라가 고통할 때에 가장 먼저 병든 사람들을 거두어 돌보았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사랑이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가 병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돌보는 일에 앞장을 서야 합니다. 우리가 코로나 19로 인해서 전세계에서 무시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하시고 치료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높이실 것입니다. 우리가 똑같이 병든 사람들을 무시할 것이 아니라 돌보아야 합니다. 어려울 때 서로서로를 돌아보는 가운데 사랑을 실천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3절을 보십시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고 탄복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인간이 헤아릴 수 없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하나님의 생각은 높고 대양처럼 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인생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선한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믿고 범사에 감사하며 찬양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셔야 합니다. 36절을 보십시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하나님은 각 시대마다 은혜로 택하신 남은 자들을 두셨습니다. 또한 택함을 받지 못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팔을 벌리고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들에게도 긍휼을 베풀어서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긍휼로 말미암아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이 긍휼의 하나님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것입니다. 어려운 시대에 하나님의 긍휼을 실천하고 자라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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