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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서 2022년 신년1강(딤후1:1-18) 나는 이 복음을 위하여 세우심을 입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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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86회 작성일 21-12-26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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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신년 제 1 강
말씀 | 디모데후서 1:1-18                                               
요절 | 디모데후서 1:11

나는 이 복음을 위하여 세우심을 입었노라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2021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한 해 동안 우리와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며 복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2022년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새롭게 하고자 합니다. 서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하며 출발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AD 60-62년경에 로마 감옥에 1차로 감금되었다가 풀려났습니다. 이후 4년 동안 땅 끝이라고 생각되는 스페인에서 전도 여행을 계속하는데, 사도행전에는 이 부분이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기간 동안에 디모데를 데리고 에베소를 방문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디모데를 머물게 하고 자신은 마게도니아로 가서 그곳에서 디모데전서를 기록합니다(AD 64년경). 그리고 네로의 박해 가운데 양들을 돌보다가 AD 66년경에 2차로 로마 감옥에 감금되어서 AD 67년에 순교합니다. 디모데후서는 2차 로마 감옥에 감금된 상태에서 기록했습니다. 그는 죽음을 앞에 두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는 이 복음을 위하여 일관된 삶을 살았습니다. 한마디로 외길 인생이었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 해를 시작하면서 복음을 위하여 세우심을 입은 사실을 굳게 하고 달려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보통 편지를 쓸 때 받는 사람을 맨 먼저 쓰고, 쓴 사람은 맨 마지막에 적는데 사도 바울과 그 문화는 먼저 발신자와 수신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를 씁니다. 골로새 교회에 편지를 쓸 때에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1:2에서는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라고 했고, 빌립보서 2:22에서는 “자식이 아버지에게 하듯이 복음을 위하여 나를 섬겼다”라고 했습니다. 목자와 양,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이와 같이 깊고 뜨거웠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위해서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그를 생각하였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에 늘 자식이 있듯이 목자의 마음에 늘 양을 위한 기도로 가득했습니다. 목자된 우리도 양들을 위해서 밤낮 쉬지 않고 간구하지는 못해도 기도에 힘써야 하는 이유는 양들을 사랑하기 때문이요, 또한 우리 힘으로 양들을 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령께서 함께 하사 인도해 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성장하도록 중보기도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생각할 때에 청결한 양심으로 섬겨오는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마5:8). 바울은 디모데의 눈물을 생각하여 그를 만나봄으로 기쁨이 충만해지고 싶었습니다. 한편 바울을 향한 디모데의 마음은 감옥에서 고생하는 연로한 목자님을 생각할 때 안타까움으로 늘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루스드라에서 만난 후에 20년 이상 복음을 위하여 함께 고난에 동참하였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충성스러운 동역자였습니다. 그는 때로는 바울의 특별한 사명을 받고 특정 교회에 파견되기도 했고, 바울이 이방인 교회들이 헌금한 연보를 가지고 예루살렘에 갔을 때도 동행했습니다(행20:4). 또한 옥에 갇힌 바울과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몬1절; 골1:1). 바울은 이러한 디모데의 성품과 충성에 감사하였습니다(빌2:20,21). 디모데는 청결한 양심으로 인해서 늘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복음 역사를 위해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디모데를 생각하면 늘 기분이 좋았습니다. 바울은 주변 사람들이 다 떠나고 깊은 외로움을 느끼면서 영적인 아들 디모데를 만나기를 더욱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4:9). 몸이 아플 때, 시련을 당하고 있을 대, 애매하게 공격을 받을 때, 심방해 주고 선물이나 전화해 주면 서로 위로가 됩니다. 선교사님들이 가장 힘든 점은 외로움입니다. 언어를 정복하고 그 문화를 배우면서 적응을 하지만 언제나 이방인과 같은 느낌, 나그네와 같은 느낌을 갖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새 해에는 선교사님들과 더 자주 카톡이나 이메일로 연락하면서 안부를 묻고 복음을 위해서 함께 일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 코로나로 인해서 서로 만난 지도 오래 되었습니다. 이제 경구용 치료제도 나온다고 하니 서로 만날 희망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새해에는 이런 소망 가운데 3차까지 백신을 맞고 만나 대면 예배를 드리기를 기도합니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 동역자들이 함께 있습니다. 교제를 나눌 때 어려움을 견디기가 더 쉽습니다. 기쁨도 나누면 배가 됩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모이기를 더욱 힘써야 할 것입니다(히10:25). 

  바울은 디모데에게 안수를 받을 때에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 하게 하기 위하여 생각하게 합니다. 디모데가 받은 은사는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며 선포하는 은사, 교회의 치리와 행정에 관한 은사를 말합니다. 이런 은사를 다시 불일 듯하게 하라고 격려합니다. 이는 식어버린 불을 다시 지피라기보다는 현재 타고 있지만, 더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뜨거운 마음을 주셔서 은사를 발휘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도 은사를 주셨습니다. 24일 성탄 축하의 밤을 각자의 은사를 드려 섬기는 모습을 볼 때 교회에 은혜와 기쁨이 풍성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각자 가진 은사로 교회를 섬기라고 하십니다. 은사를 가지고 교회를 섬길 때 주인의식을 갖게 되고 기쁨을 누리고 본인이 성장하게 됩니다. 은사는 쓰면 쓸수록 더욱 빛을 발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은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은사를 사용할 때에 기쁨이 있고 열매가 있고 다른 사람이 인정해 주는 것을 보면 자기가 받은 은사를 확실히 알게 됩니다. 은사를 발휘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두려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움 대신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능력은 영적인 권능뿐만 아니라 두려움을 극복하는 마음의 담대함과 자부심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초월적인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의 일꾼들의 모든 나약함과 두려움을 담대함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때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되고 핍박을 받아도 겁을 먹지 않게 됩니다. 증인은 순교자라는 뜻입니다. 에콰도르에서 선교했던 짐엘리엇을 포함한 다섯 명의 선교사는 당시 가장 폭력적인 아우카 족에게 커라레이 강의 모래 사장에 경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들의 시체는 강에 던져진 피라냐의 밥이 되었고 젊고 아름다운 그들의 아내들은 과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아내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들을 살해한 그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그 부족이 모두 구원을 받을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남편 짐을 살해한 사람을 미국으로 데리고 와서 그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신 그의 은혜를 간증하게 했습니다. 짐 엘리엇은 졸업 사진에 이런 글을 남겨 놓았습니다. “절대 놓칠 수 없는 어떤 것을 얻기 위하여 절대 간직할 수 없는 것을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외칩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5-58).”

  또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님을 통해 사랑의 영을 부어주셨습니다. 이 사랑의 영을 받을 때, 어떤 죄인이라도 품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합니다. 목자 생활은 사랑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거기에 많은 수고와 희생이 따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시기 때문에 기쁨으로 자발적으로 목자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의 마음에는 사랑이 가득해야 합니다. 사랑이 동기가 되어서 복음 역사에 열정을 내야 합니다. 참된 목자와 삯꾼의 차이는 바로 사랑에 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35절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절제하는 마음, 곧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절제하는 마음’은 ‘자기 통제’, ‘건전한 생각’으로도 번역될 수 있습니다. 목자는 다른 사람을 인도하기 위해서 자신을 절제해야만 합니다. 건전한 생각 가운데 주의 일을 해야 합니다. 청년의 정욕, 감정과 혈기에 사로잡혀서 다투는 것, 물질에 대한 탐욕 등을 절제해야 합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고 교만하거나 기고만장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절제의 영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더욱 겸손하고 들레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게 됩니다. 성령은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날수록 예수님이 더욱 생생하게 드러납니다.

  나의 목자의 삶에서 지금 은사가 불타오르고 있습니까? 아니면 50%만 타오르고 있습니까? 아니면 불씨만 남고 꺼져 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가 불일 듯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합시다. 서로를 격려하고 칭찬합시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이 서로 도울 때 은사가 잘 발휘됩니다. 무언가를 지적을 하면서 도와주려면 먼저 마음을 준비시키고 칭찬을 먼저 하면 좋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지적을 잘 받아들이고 성장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자주 판단하고 정죄하면 잘 하던 일도 위축되어 실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잘 한다고 박수를 쳐주고 격려할 때 은사가 살아나게 됩니다. 난로 속에 있는 석탄 불덩이에 바람을 불어주면 불꽃이 활활 타오르게 됩니다. 지금 직면한 고난 가운데서 복음 진리를 수호하고 고난을 감당하려면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를 불일 듯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죽음을 앞둔 상태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고난도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자신과 복음에 대해서 어떤 자세를 가지라고 말합니까?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고난을 회피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어야 고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슨 고난을 받아야 할까요? 저 같은 경우는 말씀을 연구하는 고난, 메시지를 생명이 넘치도록 전하는데 따르는 고난이 있습니다. 내가 전하는 메시지를 통해서 양들의 문제가 해결되도록 하기 위해, 저 자신이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가까이 하는 생활을 하기 위한 고난이 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는 분들은 일용할 양식을 깊이 먹기 위해서 잠을 줄이고 일찍 출근하여 직장에서 양식을 먹고 기도하는 고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목자로서 양을 위해서 기도하는 고난도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 세우심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서 패더다임 쉬프트를 해야 합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길을 찾는 고난을 감당해야 합니다. 또 일대일을 하는 고난을 감당해야 합니다. 주중에 일대일을 해 주는 것이 기쁜 일이지만 때로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내가 말씀대로 사는 본을 보이는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목양은 말로만이 아니라 본을 보임으로 하는 사역이기에 고난이 따릅니다. 우리가 안일하게 살면 은사가 불타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스피릿이 있을 때 고난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은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7,18).”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입니다. 우리의 행위대로 한다면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고, 복음 사역자로 쓰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사역자로 쓰임을 받는 것이 은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원뿐만 아니라 사명을 주셔서 구속 역사에 쓰임 받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모든 인간은 100% 죽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썩고 쇠하고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은 다릅니다. 생명은 번식을 합니다. 밀을 하나를 심으면 120개가 되고, 생명이 있는 아이는 자라납니다. 죽은 물고기는 아무리 커도 물살에 떠내려가지만 생명이 있는 피라미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영생하도록 생명을 주셨습니다. 죽음을 뛰어 넘는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고 무덤 너머에 소망이 있습니다. 즉 부활과 영원한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복음을 소유했고 그 복음을 죽기까지 고난을 받으며 전파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선포자는 메신저입니다. 사도는 보내심을 받은 자로서 교회 개척을 하는 사람입니다. 교사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들로 성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것은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을 깊이 배우고 가르칠 때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들로 자라고 귀히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목자는 양들에게 하나님의 말씀뿐만 아니라 필요한 것들을 배우고 가르쳐야 합니다. 오늘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가르쳐야 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구원의 확신에 대해서 가르쳐야 하고 예수님 믿기 전의 가치관과 예수님을 믿은 후의 가치관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가르쳐야 합니다. 전도하는 법, 일용할 양식을 먹는 것, 영적인 훈련과 성숙을 위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를 경험하는 것을 가르칠 때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며 구원 역사에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예비부부학교도 배우고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결혼하고 자녀를 갖게 되면 아버지나 어머니의 역할도 배우고 가르쳐야 합니다. 사람을 잘 도우려면 상담도 배워야 합니다. 듣기와 말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배우기를 멈출 때 살아 있으나 죽은 것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는 주님과 깊은 사랑의 관계를 맺고 주님과 늘 의논하며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하나님과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순종하며 일을 했을 때 이방인 구원 역사에 귀히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충성하다가 범죄자 신분으로 고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주님을 깊이 의지하며 신뢰하고 있습니다. 그는 감옥에 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통치하시며 택하신 자들을 통해서 복음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좌절과 어려움에 직면해 있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무엇을 지키라고 당부합니까? 13,14절을 보면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하나님의 말씀을 본받아 지켜야 합니다. 디모데는 사역을 하다가 어려움에 직면할 때 목자 바울이 어떻게 결정하고 행동하였는지를 생각해 보면 자신이 할 일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이럴 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하며 말씀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또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께서 복음을 지키고 말씀대로 행할 수 있도록 소원도 주시고 힘들 때 위로해 주시고 능력도 주십니다. 사람의 죄를 감당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인내하며 섬기고 사랑해야 합니다. 학생들은 공부를 하면서, 목자님들은 자립을 위해 일을 하고, 직장 일을 하면서 복음 역사를 섬겨야 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복음을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을 해야 하고, 충성된 사람들은 또 다른 충성된 사람들에게 전수해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계승하고 구원 역사는 예수님 오실 때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죄 가운데 있는 인류를 구원할 유일한 희망입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며 사역을 할 때 어떤 사람들은 힘들어 떠납니다. 아시아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떠났습니다.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충성스러운 사람도 있습니다. 오네시보로가 그러하였습니다. 그는 자주 바울을 찾아와 만나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복음 사역자로 세우시고 쓰시는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일관되게 새해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전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기도하는 일에 더욱 힘쓰고자 합니다. 코로나 치료약이 나오고 있습니다. 방학 동안 열심히 영적인 훈련을 받고 새 학기를 준비하기를 기도합니다. 특히 출애굽기와 민수기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직면한 광야 훈련을 잘 감당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로 귀히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맡은 자로서 고난을 받으며 복음을 지키고 전파하며 계승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맡기신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아무리 시대 상황이 어렵더라도 우리 모두 복음 진리를 수호하고 전파하는데 힘쓰는 하나님의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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