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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서 2021년 딤후 3강(3:1-4:2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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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77회 작성일 21-03-07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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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디모데후서 제 3 강
말씀 | 디모데후서 3:1-4:22                                       
요절 | 디모데후서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1893년 어느 날, 미국 보스턴에서 6천여 명이 모인 집회에서 윌리엄스(M.B. Williams) 목사가 ‘성경의 중요성’에 관한 설교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 전날 윌리엄 목사는, 설교에 맞는 마땅한 찬송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찬양 사역자 틸만 목사에게 성경의 중요성에 대한 찬송을 찾아 달라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그도 찬송을 찾을 수가 없자 “목사님이 작사를 하면, 제가 곡을 붙이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윌리엄스 목사는 자기가 사용하는 어머니의 낡은 성경책을 바라보다가, 성경을 가르쳐주시던 모습들이 떠올랐습니다. 열심히 성경을 가르쳐주시고 때로는 눈물 흘리시던 때를 생각하며 이내 찬송시를 써내려갔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어머니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 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이렇게 탄생한 가사에 틸만 목사가 작곡을 하여, 부흥집회에서 널리 불리는 찬송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찬송가에도 실려 있는 ‘나의 사랑하는 책’(새찬송가 199장)이라는 곡입니다. 여러분에게 성경이란 무엇입니까? 여러분에게 성경은 얼마나 소중한 책입니까? 성경은 왜 이렇게 소중한 책일까요? 오늘 말씀에 답이 있습니다. 왜 우리가 이 성경 말씀을 열심히 전파해야 할까요?

  첫째, 말세의 모습(3:1-9).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게 됩니다. 말세는 넓은 의미에서는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 때까지의 기간을 말하고 좁은 의미에서는 예수님이 오시기 직전의 상태를 말합니다(히 1:2). 예수님이 오실 때가 가까울수록 세상에는 환난과 자연재해와 재난이 더 많아지고 불법이 성하게 될 것입니다. 사는 것이 힘들고 위험하고 스트레스가 많아집니다. 그 이유를 19가지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가치관이 전도됩니다. 사람들이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세 가지가 나옵니다. 자기, 돈, 쾌락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근본자세입니다.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은 철저한 이기주의, 자기중심적인 삶을 말합니다. 자기 영광을 추구합니다. 자기 사랑의 결국은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기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가운데 발견되고 자라갑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음에 이웃을 사랑하고, 마지막으로 자기를 사랑할 때 진정한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먼저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돈을 사랑하게 됩니다. 돈을 하나님과 이웃의 위치에 두기 때문입니다. 2-5절을 읽겠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말세에는 경건의 모양은 있는데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경건’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처럼 살아가는 믿음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예배하는 삶에 능력이 따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시인하지만 행위로는 부인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많이 공부하기 때문에 말하는 것을 행동하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목사인 저 자신이 그런 착각에 가장 많이 빠집니다. 가르침과 실천의 괴리에서 오는 괴로움은 신자라면 누구나 다 겪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고민을 함께 나누고, 실패를 어떻게 극복했는지도 나누고, 기쁨도 나누고 슬픔도 나눕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지 못하지만 말씀대로 살고자 애쓰는 모습을 함께 나누면서 점차로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우리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마음을 나누며 감사할 때 살맛이 납니다.

  6-9절은 당시 가정교회에 침투한 거짓 교사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당시 여자들에게는 공식적인 교육이 없었기 때문에 귀부인들이 철학과 예술에 능한 학자들을 집으로 초청해서 배웠습니다. 이때 거짓 교리들과 이단 사상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여자들이 거짓 가르침에 넘어갔습니다. 오늘날에도 각종 이단들이 캠퍼스에 들어가 순진한 학생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형식적인 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나안 신자가 200만 명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시대에 악영향을 받지 않고 믿음을 지키며 선한 영향을 끼치는 신자가 되어야겠습니다. 

  둘째,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3:10-17).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러나 너는’ 앞에 나온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시대가 아무리 악하고 타락했어도 너는 그런 삶을 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이 어떻게 목자생활을 했는지 상기시키며 자신을 본받도록 합니다. 바울은 목자로서 본을 보이는 삶을 살았습니다. 디모데는 2차 전도여행부터 바울과 동행하면서 그의 삶을 보고 배웠습니다. 바울은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로 복음역사를 섬겼습니다. 복음역사를 섬기며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안디옥에서 유대인들을 선동했다고 쫓겨났고(행13:50), 이고니온에서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돌에 맞아서 죽을 뻔했습니다(행14:5,6). 디모데의 고향인 루스드라에서는 돌에 맞아서 초주검이 된 상태로 성 밖에 버려졌습니다(행14:19). 12절을 보십시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경건과 고난은 필연적인 관계입니다. 박해를 받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경건하게 살 수가 없습니다. 쉽고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지만 이런 신앙생활에는 열매도 없고 장차 하나님께 받을 상도 없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디모데에게 어떤 투쟁을 하라고 권면합니까?

  14a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그러나 너 디모데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 진리를 배웠습니다. 이제 디모데는 예수님을 본받고 바울을 본 받아야 합니다. 또한 디모데는 자기에게 배우는 사람들에게 본이 되어야 합니다. 디모데가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려면 말씀의 생명력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파고 전할 수 있는 계승자를 세워야 합니다. 거하라가 명령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한 분이 무디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성경을 아무리 공부해도 삶이 변화되지가 않습니다. 그러자 무디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성경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당신을 붙잡게 하십시오. 당신이 말씀에 붙잡혀 살아야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경은 디모데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입니다. 성경이 다른 경전들이나 감동적인 문학작품과 다른 이유는 영감을 주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하고, 자기를 발견하게 하고,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성경을 공부하고 순종할 때 생명력이 있는 생활, 지혜로운 생활, 열매 맺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수많은 감동을 주는 문학작품이 성경에서 나온 이야기를 모토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대학생 때 많은 책을 읽으면서 결론적으로 성경의 한 구절로 요약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철학책이나 문학책이나 실용도서들을 읽는 대신에 성경 읽기에 전념했습니다. 성경을 종이가 너풀거릴 정도로 읽었습니다. 그러다가 목자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을 알기 위해서 또 여러 가지 필요한 책들을 읽었습니다.

  성경은 읽고 듣고 순종하는 사람에게 복을 줍니다(계1:3). 요즈음 같이 어려운 때에 성경을 읽으면서 은혜를 받는 분들이 많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순종할 때 그를 경험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을 만났다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말씀과 기도와 체험을 통해서 그를 인격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알기를 원했던 진리들을 깨우쳐 주시며 작은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는 큰 것을 체험했을 때보다 작은 소원을 응답받을 때 더욱 하나님의 섬세한 사랑을 알게 됩니다. 저는 내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을 깨닫게 될 때 감사가 넘칩니다. 성경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론이나 잠깐의 감동으로 끝나는 명작이 아니라 사람을 바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 이것이 성경의 목적입니다. 우리가 매년 복음서를 공부하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알고 닮아가게 됩니다. 올해는 요한복음 공부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 되신 예수님을 깊이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미국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이나 아브라함 링컨은 어릴 때부터 성경을 읽고 성서적 가치관을 확립했습니다. 링컨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교 공부는 많이 하지 못했지만 성경을 읽고 또 읽어(He read and reread the Bible) 위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임도 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죠. 성경을 읽는 것이 중요하고 성경 안에 모든 것이 다 있기 때문에 모임 이름을 이렇게 한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그 안에 거하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4:1-22). 바울은 디모데에게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말한 다음,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엄히 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그가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일이 가장 급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에는 구원의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상대주의를 절대화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되고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가 무엇인지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과 깨어진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기고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도 믿음을 가질 수 없고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와 영원한 심판으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예를 들어 코로나 19 백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가 백신을 가지고 있으면서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다면 얼마나 큰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까? 내가 백신을 맞고 구원을 얻었으면 나도 값없이 이를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약과 신약으로서 영혼의 백신과 같습니다. 이 백신을 나만 맞고 있으면 안되겠죠. 영혼의 백신을 맞지 못한 사람들에게 열심히 전해야겠죠? 가까이에 있는 부모님, 동생들, 친구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영혼의 백신을 맞고 구원을 받도록 복음을 전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이 귀한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힘을 써야 합니까? 2절을 다시 보십시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새번역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대는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하게 힘쓰십시오. 끝까지 참고 가르치면서, 책망하고 경계하고 권면하십시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성경 번역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삶으로 성경을 번역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때 우리가 전도지가 되고 걸어다니는 성경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환경이 되어 있지 않은 코로나 19 상황에서는 어떻게 말씀을 전파할 수 있을까요? 태국의 이데비 선교사님은 유튜브로 열심히 성경 전권을 전하고자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 조회수가 85회를 넘었습니다. 우리는 줌으로 일대일과 주일 예배 설교를 전하고 있습니다. 목자님들은 보이스톡과 줌과 미트로 일대일과 그룹바이블 스터디를 하고 있습니다. 본부에서는 유튜브로 신입생들에게 선교사님들과 목자님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만났는가를 영상으로 만들어 성경공부에 초청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가 받은 은혜를 전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것은 벽돌을 쌓듯이 여러 사람의 관심과 기도와 사랑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이 필요한 한 사람에게 밥 한 그릇 사주고, 한 마디 권면을 하고, 한 번 기도해 주는 것들이 쌓여서 한 사람이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힘써야 합니다. 한 목자님은 항상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말씀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다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라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해서 옆에서 목욕하고 있는 형제의 때를 밀어주면서, 등을 밀어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가 성경공부에 소원을 갖고 말씀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대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훌륭한 목자로 성장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전하기가 왜 힘듭니까? 3,4절을 보십시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허탄한 이야기’란 근거 없는 신화나 전설을 가리킵니다. 진리보다는 귀를 즐겁게 하고 사욕을 채워주는 이야기에 스승을 많이 두고 배웁니다. 사람들이 진리에 대해서 귀를 막고 있어서 말씀을 전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전도를 하러 다가서면 자리를 뜨며 전도자를 회피합니다. 말씀을 듣고 싶지 않다고 시위라도 하듯 모두 귀를 막는 이어폰을 끼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가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까? 5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양들을 돕는 일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포기해버리면 안 됩니다. 목자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라고 합니다. ‘신중하여’ 라는 말은 ‘정신을 차리라’는 말입니다. 말씀전파가 어렵다고 말씀전파를 포기하고 세상일에 정신 팔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복음에 대한 수용성이 떨어지는 오늘날은 관계전도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좋습니다. 깨어서 하나님을 믿고자 소원을 가진 사람을 만날 때 기회를 잘 살려야 합니다.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해야 합니다. 고난의 때를 참아야 합니다. 인내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갑니다. 또한 사랑하는 마음으로 죄를 지적해주고 회개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미리 죄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신중하게 전도자의 직무를 다 해야 합니다.

  바울은 죽음이 매우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했습니다. 그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자신을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음을 확신합니다. 그는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면류관을 주실 것이면 자신만이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라고 말합니다.

  9-16절은 디모데에게 어서 속히 오라고 말하며 개인적인 문안 인사를 합니다. 그가 이 세상을 떠날 때에 남긴 것은 겉옷과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입니다. 그는 지하 감옥에서 추위를 느끼고 있습니다. 떠나간 사람들을 생각하며 외로움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고자 합니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17).” 그의 고별메시지에는 후회가 없습니다. 아쉬움도 없습니다. 자신을 사자의 입에서 건지신 주님께 대한 감사와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충만합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는 개선장군과 같습니다. 우리도 생을 마감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때 사도 바울과 같은 말을 할 수 있다면 잘 산 인생일 것입니다. 그 날을 위해서 우리가 맡은 일에 충성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열매가 없더라도 작은 일에 충성할 때 주님은 그것을 인정하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봄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각자 있는 자리에서 기도로, 또 섬기는 일로, 말씀을 전하는 일에 힘쓰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동역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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