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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서 2020년 신년 3강(딤후 3:1-17)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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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97회 작성일 20-01-1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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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신년 제 3 강
말씀 | 디모데후서 3:1-17
요절 | 디모데후서 3:14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오늘 말씀은 새 해를 시작하는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요, 영적인 방향이 되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특히, 우리가 매일 읽고 공부하는 성경이 얼마나 중요하고 큰 유익을 주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죄악된 이 시대를 분별하고, 어떻게 믿음의 승리를 할 수 있는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말세의 모습(1-9). 1절을 보십시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말세는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 때 까지를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살던 시대나 오늘이나 말세인데 말세지말인 오늘날은 이 말씀이 더욱 실감나게 다가옵니다. 고통하는 때를 “terrible times”라고 했습니다. “끔찍한 시대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말세가 고통스러울까요? 2-5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말세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말세에는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합니다. 이 두 가지는 죄악의 첫째 뿌리와 둘째 뿌리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근본자세요 모든 죄의 뿌리입니다. 여기서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은 죄악 된 자기 본성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진정한 자기 사랑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를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죄악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곧 돈을 사랑하게 됩니다. 돈을 하나님 자리에 두고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는 사람이 됩니다. 돈은 유용한 것이지만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하였습니다(딤전 6:10).

  말세에는 원통함을 풀지 아니합니다. 원통한 일을 마음에 간직하여 남과 화해하기를 거부하고 용서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에 대해서 이를 갈고 되갚아 주고자 합니다. 또 절제하지 못합니다. 절제란 일반적인 감정조절 그 이상의 것이 요구되는 수준 높은 영적 능력입니다. 어둠의 주관자인 마귀의 역사는 언제나 우리로 하여금 절제하지 못하게 합니다. 절제하라는 말은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기라는 말입니다. 절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하는 삶을 살 때 가능합니다. 우리는 각자 절제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을 절제해야 하고 어떤 사람은 혈기를 절제하고 어떤 사람은 게임이나 드라마를 절제해야 합니다. 우리가 새해가 되었으니 절제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 말세에는 사람들이 조급합니다. 생각 없이 경솔하게 말하고 참지를 못합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신중히 생각하고 신중히 판단하며 신중히 말하고 신중히 행동합니다. 그러나 지혜 없는 사람은 아무렇게나 생각하고 아무렇게나 판단하고 무슨 말이나 다 믿고 아무렇게나 말을 내뱉고 아무렇게나 행동합니다. 그러니 서로 고통하게 됩니다. 4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마음으로 쾌락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죄악된 자기를 사랑할 때 쾌락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을 채우는 일에 시간과 돈을 흥청망청 쓰고 젊음을 낭비합니다. 쾌락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고자 합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과 그 사랑으로 채워지지 않을 때 쾌락을 추구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 사랑을 하는 데서 자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때 우리는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맛볼 수 있고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경건은 실제 삶 속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부딪치는 사건, 사람들과의 관계, 내 삶의 여정 속에서 하나님의 생각이 숨어 있고 일하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시 37:5)”라고 말씀했습니다.

  요셉은 자기를 애굽에 판 형들의 죄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심을 보았습니다. 그는 노예로 팔려왔지만 열심히 이집트 어를 배우고, 문화를 배우고, 일을 배웠습니다. 그는 보디발 집의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보디발 여사의 유혹을 이겨냈지만 도리어 감옥에 갇혔을 때도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고 열심히 간수장을 도왔습니다. 그랬을 때 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할 수 있었고 마침내 이집트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하고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먼저 이집트에 보내셔서 세상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 속에서 일하심을 알  때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건한 삶에 능력이 따라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다니엘이 하나님 앞에 뜻을 정하고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고자 결단을 했습니다. 그 결과 그 지혜와 총명이 다른 사람보다 십 배나 뛰어났습니다. 그는 이방 땅에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사 대에 걸쳐서 총리를 지냈습니다. 다리오 왕 때에는 왕의 금령을 알고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그는 사자굴에 던져졌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온 세상에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영원히 변하지 아니하시며 구원자이심을 드러냈습니다. 우리가 매일 아침 경건의 시간을 가질 때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루하루 알찬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경건한 사람들을 형통하게 하시고 기도에 응답하시며 사람들을 변화시키십니다.

  저는 이번 주 목자님들의 연요절을 들으면서 목자님들이 경건에 힘쓴 것, 기도에 힘쓴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의지했을 때 놀라운 일들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일하신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를 돌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말세에 사람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합니다. 신앙의 겉모습은 그럴듯해도 실제 삶은 형편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게서 돌아서야 합니다. 우리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그 능력을 부인하는 사람들에게 집착하지 말고 누구를 본받아야 합니까?

  둘째, 우리가 따라야 할 본(10-13). 바울의 목자 생활이 어떠했습니까? 10,11절을 보십시오.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디모데는 2차 전도여행 때부터 바울이 어떻게 복음역사를 섬겼는지 보고 배웠습니다. 바울의 가르침과 삶은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사람들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바울은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로 복음역사를 섬겼습니다. ‘의향’은 행위의 동기, 행위의 의도를 말합니다. 남들은 그것을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아시고 진실한 그들도 아는 것입니다. 그들은 복음역사를 섬기면서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안디옥에서 유대인들을 선동했다고 쫓겨났습니다(행13:50). 이고니온에서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돌에 맞아서 죽을 뻔했습니다(행14:5,6). 디모데의 고향인 루스드라에서는 돌에 맞아서 초주검이 된 상태로 성 밖에 내버려졌습니다(행14:19). 이런 박해를 받으면서 복음을 전했고, 주님은 이런 바울을 안전하게 지켜주셨습니다. 디모데는 지금까지 목자 바울에게 말씀을 배우고 그와 함께 복음을 전하며 그의 삶을 본받았습니다. 세상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지만 디모데는 목자 바울을 따랐습니다. 바울의 인생 목적은 예수님을 배우고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선교하는 과정에서 그는 주님을 온전히 의지했고 양들의 구원을 위해서 끝까지 참고 기다렸습니다. 그의 오래 참음은 오직 사랑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그는 어떤 고난에도 견디고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디모데는 자기 목자가 당한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함께 고난을 받았습니다.

  디모데는 왜 그런 목자를 따른 것일까요? 12절을 보십시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바울이 박해를 받은 것은 그의 삶이 유별나서가 아닙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면 박해를 받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기 유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 속에서,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고, 원통함을 풀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할 때 핍박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또한 세상이 그리스도를 싫어합니다. 그를 통해서 자기들의 죄와 어둠이 드러납니다. 이때 회개하고 돌이켜야 하는데 그들은 죄를 사랑합니다. 그들은 어두움이 빛을 싫어하듯이 복음을 거부하고 박해합니다. 오늘날도 세상이 경건하게 사는 사람들을 싫어하는 것은 우리의 부족함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세상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중에 이 세상은 어떻게 됩니까? 13절을 보십시오.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박해를 받는데, 악한 사람들과 사기꾼들은 더 교활하고 악해집니다. 남을 속이고 남에게 속임을 당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이익에 철저하고 자기를 지키고,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해서 사나워집니다. 이런 사람들 속에서 경건의 능력을 인정하고 온유하게 사는 사람들은 밟히지 않을까요? 모두가 자기 이익만 보고 사는 사람들 속에서 목자로 살 수 있을까요? 이런 상황에서 디모데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셋째,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14-17). 14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그러나 너는” 이 말씀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든 너는 주의 군사로 살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더 깊은 악의 세계로 달려가지만 디모데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계속 머물러야 합니다. 그는 그런 세상과 타협하거나 물들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든 디모데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해야 합니다.

  디모데는 어떻게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할 수 있습니까? 먼저 그것을 누구에게 배운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외조모와 어머니로부터 구약 성경을 잘 배웠습니다. 그 후 목자 바울에게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디모데가 배운 것을 확신하고 그것에 머물 수 있는 것은 사도 바울의 가르침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사랑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디모데가 배운 하나님의 말씀과 목자 바울의 가르침과 삶의 영향력으로 그는 계속해서 그 가르침에 머물 수 있었습니다. 목자 바울의 영향력은 등불과 같이 그의 마음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여러 고난 속에서 디모데를 지탱해주었던 것은 목자에 대한 기억이었습니다.

  또한 디모데가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할 수 있는 것은 ‘성경’때문입니다. 그가 배운 성경은 어떠합니까? 15절을 보십시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성경에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오실 메시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에 예언된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깊이 공부하게 되면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을 공부할 때 매주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생생하게 말씀을 받고, 어떤 사람은 꿀과 같이 단 맛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가슴이 뻥 뚫리는 경험을 하고, 어떤 사람은 인생을 통찰하는 지혜를 얻습니다. 성경은 우리 각자의 인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가 있고 구원을 경험하게 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숨결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코에 호흡을 불어넣으시자 사람이 생령이 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도 하나님의 생명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 우리 마음에 빛이 비추입니다. 내가 성경을 읽는데 성경이 나의 마음을 읽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때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생깁니다.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을 아는 계시의 빛을 받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인격을 만나 믿음이 생기고 말씀을 받을 때 거듭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나의 죄를 사하시고, 나의 영존하시는 아버지가 되십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사람은 그의 사랑과 보호와 돌보심으로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자녀들에게 영의 양식이 됩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살 수 없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을 먹고 살아야 하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구할 것은 썩을 양식이 아니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때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해집니다. 

  디모데가 성경에 거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람을 교육하기에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거하는 것은 하나님의 학교에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학교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배웁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왜, 어떻게 우리를 의롭게 하셨는지를 배웁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화목하고 모든 죄가 깨끗하게 되는 길임을 배웁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줄 확신하게 됩니다. 죄악된 자신을 미워하고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배웁니다. 바르게 되기 위해서 징계도 받습니다. 이렇게 의로 교육을 받다보면 온전히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모든 선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이것에 성경에 거하는 사람이 얻는 유익입니다.

  우리가 매일 경건의 시간에 일용할 양식을 먹고, 매주 주일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먹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때 어려운 일, 스트레스를 받는 일, 고통스럽고 슬픈 일, 실패와 좌절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히 먹고 기도할 때 새 힘을 얻고 문제를 해결할 지혜를 배우게 됩니다. 목자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먹어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양들을 영양가 있는 말씀의 양식으로 먹여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을 신실하게 먹다보면 성장하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올 한 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새 일을 행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할 때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묵상하며 행할 때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되고 새 일을 행할 수 있는 열정과 비전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 안에 거할 때 생명력을 덧입고 구원 역사를 온전히 섬길 수 있습니다. 2020년 한 해 동안 각자 매일 일용할 양식 말씀과, 매주 주시는 말씀 안에 거하는 삶을 통해 더욱 더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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