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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서 2017년 신년2강(딤전 6:3-21)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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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05회 작성일 17-01-08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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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신년 제 2 강
말씀 | 디모데전서 6:3-21
요절 | 디모데전서 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우리는 지난 주 경건에 이르기를 연단하라는 말씀을 배웠습니다. 연단하라는 말씀은 운동선수와 같이 훈련하라는 뜻입니다. 훈련을 통해서 성장하는 것을 발견할 때 기쁨이 있고 훈련을 더 사모하게 됩니다. 육체적인 훈련에 힘쓰는 것도 약간의 유익이 있지만 경건에 이르기를 훈련하는 것은 더 큰 유익이 있습니다. 남바나바 목자님은 지난 4년 동안 가정 예배를 꾸준히 드리는 가운데 직장에서 승리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충성스럽게 섬기며 주시는 은혜를 풍성히 누렸다고 고백했습니다. 오늘날 같이 바쁘고 물질중심적인 시대에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지난 주 말씀에서는 성경을 읽고 가르치고 메시지를 전하는데 힘쓰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실제 삶에서 어떻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하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자족하라(3-8). 3,4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 말씀은 다른 교훈과 바른 말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를 때 예수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은 겸손하고 온유하며 사랑이 충만하고 진실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하나님의 모든 충만이 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경건에 이르기를 힘쓰지 아니하면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게 됩니다. 즉 말은 많은데 경건의 능력은 없는 사람들이 되기 쉽습니다.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4b,5).” 변론과 언쟁의 결과는 투기하고 비방하고 악한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마음이 부패해지고 진리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경건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게 됩니다. 권력도 지식도 그 끝이 돈인데 다른 교훈을 따르게 되면 거짓 선지자 발람과 같이 돈을 따라서 살게 됩니다. 바른 교훈은 청결한 양심과 선한 양심을 자라게 합니다(1:5). 오늘날 시대정신은 경제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라 살고자 힘을 써야 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경건에 힘을 쓸 수 있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자족하는 것은 스스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자족하고 안하고에 따라서 보이는 것이 달라집니다. 경건이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것’입니다. 칼빈도 “경건이란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여 죽을지언정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자 애쓰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자족하게 되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데 매우 큰 이익이 있습니다. 자족할 때 마음으로부터 감사가 나옵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제사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로 충만할 때 하나님을 삶 가운데서 만나게 되고 알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 자기가 목표하는 것에 이르게 하는 지혜요 탁월함입니다. 자족하기를 배우면 감사가 넘치고 행복합니다.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라”고 고백했습니다.
 
  7,8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사람이 어느 정도를  가져야 만족해할까요? 이는 상대적인 것입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지만 더 잘 먹고자 하고, 더 잘 입고자 하고, 더 많은 것을 즐기고자 하고, 더 소유하고, 더 물려주고자 하니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100억, 1000억 원이 있는 사람들도 자식에게 이것을 물려주면 막아먹지나 않을지 염려합니다. 또 우리는 언제 세상을 떠날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천국에 갈 때 우리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내가 벌거숭이로 이 세상에 나왔듯이 한 줌의 재만 남기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그 한 줌의 재도 결국은 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자족하는 마음을 갖고 이 세상을 감사하며 살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더 풍성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둘째, 싸우라(9-16)! 자족하지 못하고 부자가 되려는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9절을 보십시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이 세상은 돈을 많이 가지는 것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소유하는 것과 같은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자가 되고자 하는 소원을 갖습니다. 부하고자 하는 욕심이 들게 될 때 여러 가지 유혹들에 빠지게 됩니다. 분별력과 양심을 잃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법과 범죄를 저지르면서 돈을 벌고자 합니다. 그러다가 그 욕심 때문에 결국 파멸과 멸망에 빠집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돈은 사랑의 대상이 아닙니다. 돈을 사랑하는 자는 돈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합니다. 재물과 부요를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을 사랑해야지 돈을 사랑하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입니다. 세상의 모든 불법과 범죄들의 뿌리에 돈이 얽혀 있습니다. 돈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찌르게 됩니다. 예수님도 가시떨기 밭의 비유에서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한다고 지적하셨습니다. 돈을 사랑할 때 마음이 돈이 가 있게 되고 영적인 소원과 가치관을 잃고 믿음의 길에서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자본 중심의 시대 풍조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1절을 보십시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우리는 돈을 사랑하는 마음과 욕망에서 피해야 합니다. 보디발 여사가 청년 요셉을 틈만 나면 유혹했듯이 돈은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 유혹의 덫에 걸리지 않도록 피해야 합니다. 대신에 의와 경건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라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우리가 경건을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하는 시대에 돈을 사랑하는 이 세대에서 자족하고 경건한 삶을 살려면 싸워야 합니다. 돈을 믿고 사는 시대에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이 믿음의 선한 싸움입니다. 자족하는 마음을 갖는 싸움, 경건을 유지하기 위한 싸움, 자기 내면의 탐욕과 싸워야 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은 자기와의 싸움이요 사탄과의 싸움이요 이 세상 가치관과의 싸움입니다. 우리가 죄와 싸우고 흑암 권세와 싸워야 하는데 그 싸움의 출발점은 자기 자신입니다. 나의 옛 사람과 싸워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강한지 자기가 우주의 중심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칭찬을 받고 존중히 여김을 받으면 좋지만 조금이라도 무시를 당하면 상처를 받고 분노하고 섭섭해 하고 원망하고 불평을 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했습니다. 바울도 자아가 굉장히 강했던 것 같습니다. 좋은 학벌에, 좋은 가문에, 좋은 배경에 그는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었는데 예수님을 믿고 나서 자기중심이 매우 잘못된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자기가 죽고자 투쟁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사는 것은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날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믿음의 싸움에서 패하게 되면 죄와 사탄과 사람의 종이 되고 엄청나게 고생을 합니다.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으며 끊임없이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여 넘어뜨리고자 합니다. 믿음 생활은 한가로운 여행이 아닙니다. 그 어떤 전쟁터보다 치열한 전투가 날마다 벌어지는 생명이 죽고 사는 전쟁터입니다. 적당히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신앙생활을 하다가는 그냥 세상의 조류에 휩쓸려가고 맙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선한 믿음의 싸움을 잘 싸우고 있습니다. 이 싸움을 계속하여 영생을 취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서, 자기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성공을 위해서 싸우지만 우리는 영생을 위해서 믿음의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그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믿음의 싸움을 싸웁니다. 우리는 이 싸움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삶이 힘들고 역사는 더디 성장하지만 캠퍼스 개척을 위해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습니다. 지난 한 해 캠퍼스 바이블 까페와 일대일 성경 공부를 했습니다. 곽누가 목자님은 오기드온 목자님과 열심히 전도를 했는데 올해도 전도를 함께 할 분을 찾고 있습니다. 총알 전도로 복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2,30대에서 무종교자가 65%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대학청년들을 맡기셨습니다. 우리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제자 삼는 것은 믿음의 선한 싸움입니다. 시대가 혼란스러울수록 젊은이들에게 비전을 심고 믿음을 심는 일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을 위해서 힘을 다하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믿음의 싸움은 누가 명령하신 것입니까? 13절을 보십시오.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만물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과 빌라도에게 조금도 두려움이 없이 증언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이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다시 오십니다.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14-16).” 이 분이 바로 우리를 부르셨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도록 명령하셨고 이 싸움에 함께 하시며 승리를 주십니다.

  셋째, 나눠 주라(17-21)! 부자들은 기본적으로 마음이 높습니다. 이 마음을 낮추어야 합니다.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부자들은 그 많은 물질로 자기를 기쁘게 하는데 쓰기 쉽습니다. 그러면 무엇에 힘을 써야 합니까? 18절을 보십시오.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부자들은 나누어 주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남의 어려움을 깊이 동정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부자라서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의 사정을 깊이 헤아리고 나누어 주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 줄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그는 진정한 부요를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돈을 하나님이 맡겨주신 것으로 여겨 청지기 자세를 가지고 나누어 주면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19절을 보면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부자로 살 것인가, 아니면 참된 생명을 얻기 위해서 투자할 것인가? 지난 한 해 목자님들의 헌신을 인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과 복음 역사를 위해서 귀한 물질을 드려 헌신한 목자님들과 형제자매님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어려운 중에서 세계선교와 캠퍼스 개척에 물질을 드리고 헌신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올해는 인도센터 건축을 위해서 보배합을 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에도 넘치게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디모데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20절입니다.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그는 하나님이 없는 망령된 말을 피해야 합니다. 불신의 말, 다른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주는 말을 피해야 합니다. 아무 열매가 없는 헛된 말, 공허한 말을 피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믿음에서 벗어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그는 목자 바울이 그에게 부탁한 것을 지켜야 합니다. 그는 자족하라, 싸우라, 나누어 주라는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증언해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그와 함께 있기를 축원하면서 편지를 맺습니다.

  우리는 지난 한 해 히브리서, 사도행전, 말라기, 사도행전, 베드로전서 말씀을 공부하면서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고자 힘을 썼습니다. 특히 세계 선교보고대회를 준비하면서 사도행전을 공부했는데 하나님께서 선교역사를 친히 앞장서서 인도하심을 보았습니다. 고난 가운데서 인내하며 예수님을 바라보고자 힘을 썼습니다. 정유년 새해에는 새벽을 깨우는 닭과 같이 우리가 먼저 일어나서 자신을 깨우고 사람들을 깨우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자족하고, 물질 숭배와 싸우고, 나누어 주기를 힘쓰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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