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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서 2017년 신년1강(딤전 4:1-16) 경건에 이르도록 연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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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12회 작성일 17-01-01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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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신년 제 1 강
말씀 | 디모데전서 4:1-16
요절 | 디모데전서 4:7

경건에 이르도록 연단하라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디모데전서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담임하고 있던 디모데에게 보낸 목회 서신입니다. 디모데가 영향력 있는 영적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핵심은 경건에 이르기를 연단하라는 것입니다. 대통령은 대통령다워야 하고 군인은 군인다워야 하고 목자는 목자다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목자다움이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목자에게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까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경건한 모습을 보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경건이란 무엇입니까? 오늘은 이 경건이 무엇이고, 우리가 어떻게 경건한 삶을 살 수 있는지, 그리고 경건의 유익이 무엇인지 묵상하고자 합니다.

  첫째, 영적 지도자의 목표(1-11). 1,2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어떤 사람들은 유대 율법주의자들이나 영지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릅니다. 그들은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혼인을 금하고 음식에 대해서 먹지 말라고 하는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육은 악하고 영은 선하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영이 육신의 몸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여 육신에 고행을 행하거나 금욕을 하여 영을 해방시키고자 하였습니다. 불교에서도 고행을 통해서 욕심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반대로 육신은 본래 악하니 마음대로 쾌락을 추구해도 죄의식이 없었습니다. 육신이란 본래 그런 것이니 본성대로 살아도 영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선하게 창조하셨습니다. 또 사람은 영과 육으로 분리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를 가진 통합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영혼과 육체를 분리하여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영혼이 뇌에 있습니까? 심장에 있습니까? 영혼은 사람 자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혼인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 자신을 헌신하며 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자발적인 헌신이 아니라 혼인을 금함으로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결혼을 하지 않고 불같은 정욕에 시달리다가 죄를 짓는 것보다 결혼을 하는 것이 낫습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혼을 통해서 사람이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결혼을 통해서 사람들이 소천국을 이루어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가정은 훈련장이요 교육장이요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곳이요 사람이 쉼을 누리는 곳입니다. 또한 이것은 사회의 가장 기본 단위입니다. 가정이 건강하면 그 사회가 건강해집니다.   

  3-5절을 보십시오.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합니다. 사람은 음식을 먹음으로 만족을 누리고 생명을 풍성하게 하며 일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감사함으로 음식을 먹으면 그 자체로 행복합니다. 레위기 11장에 하나님께서 먹기를 금하신 목록들이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한 백성으로 훈련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또한 우상에게 가까이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하심으로 이제 우리는 구약에서 먹기를 금지한 것에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지니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습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죄악되고 부패하여서 금욕과 고행으로 깨끗하게 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써 의롭게 되고 깨끗하게 됩니다. 율법주의와 금욕주의는 복음을 약화시킬 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런 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고 말씀합니다(6). 진리의 말씀과 좋은 교훈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믿음의 기초를 튼튼하게 놓고 계속해서 성장하게 됩니다. 진리의 말씀과 좋은 교훈은 좋은 양식과 같습니다. 좋은 양식과 반대되는 것은 불량식품입니다. 7a절에서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라고 합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는 영적으로 무가치하고 노인들이 어린아이들에게 꾸며서 들려주는 이야기 같은 것을 말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영적 성장에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버려야 합니다.

  대신에 디모데가 힘써야 할 바가 무엇입니까? 7b절을 보십시오.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경건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것입니다. 경건은 하나님의 임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품성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경건은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경건은 내 안에 하나님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죄에 빠질 수 없고, 주님을 닮기 위해서 노력함으로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벧후1:4). 경건은 자기중심성에서 하나님 중심적인 자로 가치관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자기 생각과 자기 계획, 욕심 때문에 그 마음과 생각 속에 하나님이 없었지만 이제는 자기중심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 보좌를 바라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인간관계와 사건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기뻐하시는 뜻은 무엇인가를 찾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은 구약의 요셉에게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자기를 애굽에 노예로 팔아버린 형들과 자신을 유혹하여 감옥에 쳐 놓은 보디발 여사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 미움의 종노릇을 하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일들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고 자신을 먼저 애굽으로 보내신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그가 정욕의 유혹을 피하려다가 감옥에 가게 되었지만 도리어 그곳에서 왕의 신하들을 만나고 총리로 발탁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을 추구했습니다. 그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방인들도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는 것을 알았을 때 애굽의 바로 왕은 그에 대한 신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나라까지 통째로 그에게 맡겼습니다.

  야고보서 1:2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고아와 과부 등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경건한 사람의 실제 삶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과 친밀함을 가꾸어 가는 것은 이 세상과 동떨어져서 신비한 무엇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을 강조하게 되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앞뒤가 뒤 바뀐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연합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선한 삶의 원동력입니다. 예수님도 해야 할 일과 섬겨야 할 사람들이 많았지만 새벽 오히려 미명에 따로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시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삶의 최우선 순위에 두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예수님의 삶의 원동력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의 원천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초대 교회 사도들도 새롭게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할 일도 많아졌습니다. 또 구제하는 일에 빠지기 쉬웠습니다. 이때 사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여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자신들은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을 쓰는 방향을 잡았습니다(행 6:3,4). 그렇게 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연단은 영어 성경에서는 트레인(train)으로서 운동선수처럼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훈련을 하는 목적은 무의식적으로 그런 행동이 나오도록 하는 것입니다. 훈련의 목적은 자유함을 누리는데 있습니다. 탁구를 치는 선수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 공을 보내려면 많은 훈련을 해야 합니다. 프로 선수들이 경기하는 것을 보면 신기에 가까운 기술로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먹고 새벽 기도를 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다 압니다. 그러나 그것이 몸에 익도록 하려면 연단이 필요합니다. 제가 아는 한 분은 10년 동안 선교지에서 동역을 하면서 일용할 양식과 기도 생활을 충실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자립적으로 개척을 시작하면서 새벽 기도와 일용할 양식을 상황에 따라서 기분에 따라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무기력하게 지내거나 세상 일을 해 나가느라 영적인 생활을 등한히 하게 되고 방황하기도 하였습니다. 그가 이를 회개하고 경건에 이르고자 마음을 먹고 일용할 양식과 개인 기도에 힘을 쓸 때 영적인 힘을 얻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여 경건에 이르기를 힘쓰며 이것이 자연스럽게 되기까지 스스로를 훈련해야겠습니다. 신년에 일용할 양식을 인도하신 분들을 세웠습니다. 젊은 목자님들이 새벽을 깨워 기도하는 가운데 영적인 군사들로 훈련되어 하나님의 역사에 기둥들로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 1380년 ~ 1471년 7월 25일)는 독일의 라인 강 하류인 켐펜에서 태어나, 92년 동안의 일생을 거의 즈볼러에 가까운 아그네텐베르크 수도원에서 보냈습니다. 그는 '공동생활의 형제회'에 가담하여 모범적인 경건한 생활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청빈·정결·복종의 생활을 보내도록 노력하고 재산은 공유하며, 스스로의 노동으로 그날그날의 양식을 벌었습니다. 그들은 프란치스코회와는 달리 자신의 양식을 다른 사람에게 구걸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사본(寫本) 및 인쇄·제본과 교육으로, 특히 연소자의 교육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그보다 더 경건한 사람은 없다는 말까지 들었고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을 저술하여 기독교 세계에서 널리 애독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수도회는 아니지만 도시 속의 수도회와 같은 경건을 추구하여 그리스도를 본받기를 원합니다.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할 때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8절을 보십시오.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경건은 범사에 유익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화평을 누릴 수 있습니다. 시편 1편 말씀처럼 시절을 따라 과실을 맺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경건한 생활을 통해서 사람에 대한 통찰력을 갖게 됩니다. 사람들의 필요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 그들을 섬기게 되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를 제대로 파악하고 준비하여 과실이 풍성한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는 대성한 사람들을 보면 경건에 이르고자 자신을 부단히 연단하여 인격적으로 성숙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경건한 삶을 살게 되면 이 땅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며 살 수 있습니다. 이런 삶은 숨길 수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그리고 죽어서 내세에서도 영생을 누립니다.

  9-11절을 보십시오.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경건에 이르기를 힘쓰는 것은 사실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두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반대로 우리의 소망이 세상에 가 있으면 경건에 이르기를 힘쓰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소망을 하나님께 두는 사람은 누가 보던 보지 않던 꾸준히 경건훈련을 합니다. 누가 훈련을 시켜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자기 훈련을 합니다. 문제는 현실문제에 매어서 소망을 하나님께 두지 않고 세상과 직장과 아이들에게 두면서 점점 경건생활을 소홀히 하게 되고,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가 경건훈련의 중요성을 깨우치고 서로 서로 경건훈련의 유익을 독려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 공동체가 새해에는 더 성숙해지고 열매가 풍성하게 될 줄 믿습니다.

  둘째, 영적 지도자의 권위(12-16). 디모데의 현재 나이는 35세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장로들이 많았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뒤를 이어 에베소 교회의 책임 목자로 세움을 입었지만 그 연소함으로 인해서 업신여김을 당하기 쉬웠습니다. 그가 자신의 연소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2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디모데가 연소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야 합니다. 권위는 권위주의와 다릅니다. 권위가 없는 사람들이 나이로, 사회적인 직위로, 힘으로 압력을 넣지만 그것은 눈 앞에서만 굽신거릴 뿐 속에서는 반발심이 자라게 됩니다. 진정한 권위는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요 성숙한 인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마음으로부터 그의 필요를 알고 채워주어야 마음으로부터 순종하게 됩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공중 앞에서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해야 합니다. 디모데는 설교와 성경 공부와 성경 읽기에 전념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데서 자라가야 합니다. 목자가 먼저 말씀에 전념함으로 영적인 능력을 덧입을 때 그 영성과 열정이 양과 형제들에게도 옮겨 붙게 됩니다. 지도자의 영성은 삶과 말씀의 능력에서 나옵니다. 예수님을 닮은 삶과 진리의 말씀을 열심히 연구하고 갈고 닦아서 날카로운 칼, 마광한 화살이 될 때 악한 영들을 제압하고 양들을 영적인 사람으로 양육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전하는 것과 기도는 경건의 방편인 것입니다. 

  디모데는 그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말씀 전하는 은사를 불 일 듯이 해야 합니다. 은사는 적극적으로 써야 개발이 되고 발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도록 다양한 은사를 주셨습니다. 이 은사를 발휘하여 믿음으로 섬길 때 자신도 공동체에서 중요한 사람임을 깨닫게 됩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지금까지 권면한 것들에 전심전력하여 자신의 진보를 나타내야 합니다. 목자는 날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목자 자신에게도 은혜가 되고 기쁨이 됩니다. 성장하는 것을 알게 되면 기쁩니다. 또 더 성장하고자 의욕을 불태우게 됩니다. 한사람의 지도자가 영적 진보를 이루면 이것이 다른 사람을 자극시킵니다. 그러므로 성숙을 향한 전진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 목자가 성장이 멈추어 버릴 때 메너리즘에 빠지고 신앙생활의 감격과 기쁨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때 교회는 생명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6절을 보십시오.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여기서 ‘살핀다’는 말은 ‘keep a close watch’로써 자신을 세심하게 살피라는 것입니다. 영적 지도자는 세상보다도 자기 자신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자신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렇게 자신을 살피는 지도자의 가르침은 권위가 있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결국 자신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그의 가르침을 듣는 양들을 구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갔듯이 디모데에게도 그런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영적 권위가 떨어지고 진리가 도전을 받는 이 시대에,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꾼들로 불러 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어려운 시대를 섬길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끊임없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경건에 이르는 것입니다.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전심전력으로 자신을 훈련하는 가운데, 2017년 새 해에 좀 더 경건에서 깊어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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