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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 살후1강/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일어날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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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섬김이
댓글 0건 조회 4,224회 작성일 03-02-03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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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데살로니가 후서 제 1 강                                                           
말씀 / 데살로니가후서 1:1-2:17
요절 / 데살로니가후서 2:3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일어날 일들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데살로니가 후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서 쓰여졌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 중에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재림하셨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오셨으면 핍박자들이 심판을 받아야 하는데 도리어 핍박은 가중되고 있었기 때문에 성도들 중에는 나는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내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불안해 했습니다. 잘못된 재림 신앙으로 인해서 교회가 약해졌고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몇 그리스도인들은 일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이로 인해 불신자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와 재림 전에 있을 다양한 사건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I. 고난의 의미 (1:1-12)

 이 편지를 쓸 당시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고린도에 함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 사람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를 하면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그들과 함께 하도록 문안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의 로마 지방의 수도로서 가장 큰 도시였습니다. 부유하고 번성한 상업의 중심지 중 하나였습니다. 자유도시로서 자치가 허용되었습니다. 이런 개방적인 분위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위협할 수 있는 많은 이방 종교들이 있었고 문화적인 영향력이 강했습니다. 몇 달 전에 디모데는 데살로니가에 가서 그곳 성도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그들의 믿음에 대해서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를 써서 자신의 기쁨을 표현하고 몇 가지 질문에 답을 했습니다. 하지만 얼만 지나지 않아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재림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이 퍼지고 있고, 하던 일을 그만두는 사람들도 생겼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문제를 지적하고 대답을 하기 전에 먼저 그들로 인해서 감사한 점을 말했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 바울은 그들의 장점을 보았기 때문에 감사했습니다. 그들은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믿음과 사랑이 미루나무 자라듯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사랑은 있거나 없는 것으로 혹은 전부가 아니면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믿음과 사랑은 우리가 가꾸고 자라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실천하여 사실인지 아닌지 살펴 보십시오. 경험에 의한 증거만큼 믿음을 견고하게 해 주는 것은 세상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경건하고 많은 시련을 겪은 사람들과 사귀어 보십시오. 그들은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해줍니다. 믿음을 자라게 하는 것은 큰 고통을 겪음으로 됩니다. 위대한 믿음을 갖기 원한다면 큰 고통을 겪을 예상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막사 안에서 훌륭한 군인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총탄이 빗발치듯이 날고 대포소리, 미사일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서 훌륭한 군인들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믿음을 연습해야 합니다. 매일 운동을 하는 사람의 몸은 안일한 사람보다 2배는 더 강한 것처럼 믿음을 사용해서 일할 때 강한 믿음으로 자라게 됩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믿음이 자라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교제를 갖는 것입니다. 주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서 주님을 의심한다는 것을 불가능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영적으로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잘 이루고 서로 격려할 때 믿음은 자라고 사랑은 더욱 풍성해집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환란과 핍박이 있을 함께 고생을 했기 때문에 서로를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서로 아껴주다 보니 사랑하는 마음도 풍성해졌습니다. 이는 마치 훈련이 고된 훈련소에서 느끼는 전우애와 비슷합니다. 그러나 훈련도 없고 고생하지 않는 곳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은 전우애는커녕 잘 싸웁니다. 사람은 편안한 마음을 추구하다 보면 더욱 안일해 지고 병들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환란과 고난의 때에 더욱 이기적이 되고 서로 미워하고 불신하기 쉬운데 그들은 인내하면서 믿음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인내하고 믿음을 지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습니까? 5절을 보십시오.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으리니” 성도들이 믿음을 위해 받는 핍박과 환난은 성스러운 고난이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성도들이 받는 연단의 고난이며, 하나님께서 영광으로 보응하실 고난인 것입니다. 성도에 대한 핍박이 핍박자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핍박을 받는 성도들에게는 구원의 빙거라 하였습니다(빌 1:28).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고 그 심판의 표는 현재의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고난은 성도를 연단하여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만듭니다. 환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성품을 형성하십니다. 즉 환란은 성도들에게 굳건한 성품을 형성해 줍니다. 또 역경과 맞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고후1:3-5). 환란은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고 인내를 만들어 주며, 더 성숙하고 온전한 사람이 되도록 돕습니다(약 1:4). 또한 성도가 고난을 받으면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고 있다는 표지입니다. 또한 환란을 통해서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드러납니다. 환란은 우리의 믿음을 순수하게 하고 세상에 붙은 거짓된 소망을 제거합니다. 예수님은 믿는 성도들에게 환란과 핍박은 피할 수 없는 길입니다(행 14:22, 롬 8:17).

우리 시대는 돈을 많이 벌어서 안정을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히 청소년들도 인생의 목적이 돈을 버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회가 불안하니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어서 안정을 구하고자 합니다. 하나님 믿고 학점도 잘 받고 좋은 아르바이트 자리도 얻고 취업도 잘되고 승진도 잘 되고 하는 모든 사업이 잘 풀리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조금만 일이 꼬이고 어려움을 당하면 믿음으로 살아서 이런 고생을 한다고 생각하면서 온갖 불만을 털어 놓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무엇을 하든지 다 불안정합니다. 우리가 참된 행복과 안정을 원한다면 믿음의 연단을 받아야 합니다. 믿음의 연단을 받으려면 어떤 환란과 핍박을 만나더라도 인내하며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선교일선에서 수고하시는 선교사님들, 특히 러시아, 중국, 중동, 아프리카 등에서 헌신하시는 선교사님들에게는 많은 핍박과 환난이 있습니다. 공안 당국에 끌려 가기도 하고 철창 신세를 지기도 하고 말리리아와 강도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열악한 주거 환경과 교육 환경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내하고 믿음으로 투쟁하며 현지인들을 절대적으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동역자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우리가 이들을 본받고 이곳에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달게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6,7절을 보십시오.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신자건 불신자건 둘 다 환란을 받는데 신자는 일시적인 환난을 받고, 악인은 영원한 환란을 받습니다. 악인은 일시적인 안식을 누리지만 신자는 영원한 안식을 얻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못살게 굴고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환란으로 보복하십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믿음으로 살다가 환란을 받는 성도들에게는 영원한 안식으로 보상하십니다. 물론 그 때는 예수님의 재림의 때입니다.

7b-9절을 보십시오.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최후의 심판을 하기 위해서 천사들과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과 유대인들 중에서 복음에 불순종하는 자들을 심판하십니다. 그들은 고의적으로 하나님과 복음의 메시지를 거부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영원한 불 못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계 20:11-15).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에서 떠나게 되고 영원히 하나님과 분리되고 완전한 파괴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박해자들의 힘이 커 보이지만 하나님의 전능하신 힘과 비교할 때 무가치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날에 우리 주 예수님은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기심을 얻게 될 것입니다(10).

바울은 그들의 믿음과 사랑을 인해서 감사하고 이제는 그들의 부족한 점을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어 주시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이 핍박과 환란을 당하면서도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사람이 되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실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서 강한 훈련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특수 부대가 그 부르심에 합당한 훈련을 받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은 거룩한 백성으로서 강한 훈련을 받아야 성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주님의 은혜대로 예수님의 이름이 그들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그들도 주 안에서 영광을 얻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신자의 궁극적인 삶의 목표는 자신의 말과 생각과 행동을 통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통해서 영광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 부르심의 소망대로 산 성도들을 영화롭게 하십니다.

II. 주의 재림 전에 있을 일들 (2:1-17)

데살로니가 성도들 가운데는 잘못된 재림 사상이 나돌고 있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사도 바울이 첫 번째 편지를 쓸 무렵에는 재림에 대한 희망이 사라질 위험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상황이 반전되어 버렸습니다. 이미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직통 계시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도 바울에게서 편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위조 편지를 만들어 이런 주장을 했습니다. 주의 날이란 하나님께서 모든 악의 세력을 패배시키실 때를 말합니다. 이 날은 죄인들에 대한 징벌의 날로서 엄청난 고통이 있을 것이고 신자들에게는 최종적인 상을 주는 날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즉각적인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환난과 고통이 계속되고 있고 더 심해지니까 동심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언가를 놓치고 있거나 구원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즈음도 몇몇 시한부 종말론자들과 이단들은 예수님이 어느 날 어느 시에 재림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가 그것이 빗나가자 이제는 하늘에 재림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 있으면 땅으로 내려오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런 자들에게 미혹되어서는 안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에게 재림 전에 반드시 있어야 할 일들이 무엇인가를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첫째, 배도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3절을 보십시오.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배도는 하나님께 대한 대규모의 반역입니다. 배도는 ‘떠남’의 뜻이 있는데 하나님을 버리거나 믿음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그 일은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 사이에서 시작될 것이고 불신자들에게로 퍼져나갈 것입니다. 마 24:10-12절은 말씀합니다.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말세에는 많은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게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게 될 것입니다(딤전 4:1). 요즈음은 점쟁이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시대가 어려워 질수록 사람들은 우상을 더욱 숭배하게 됩니다. 이번에 속리산에 가보니 거대한 불상에 100Kg의 금(7억원)을 입혀 놓았습니다. 설악산에는 입구에 엄청난 좌불상을 세워놓았습니다. 지금 인터넷이나 신문 등에는 유난히 관상, 운명 등 점을 보는 것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럽을 여행하면서 본 것은 지금 유럽의 기독교 신자는 3%대로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배교의 역사가 엄청나게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아프리카, 중국, 남미 등에서 기독교가 성장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세 지 말에는 전세계적인 배도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둘째, 불법의 사람이 나타납니다(3b,4). 3b, 4절을 보십시오.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 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불법의 사람은 멸망의 가증한 것이요 적그리스도요 악의 화신입니다. 그런 유형으로 몇몇 로마의 황제, 스탈린, 히틀러 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재림 직전에는 철저하게 악한 사람이 일어날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사단의 도구로 무장을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덕법까지 무시하고 비도덕, 탈도덕 상태를 조장할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불법이 성하게 되고 사랑이 식어지게 됩니다. 그가 ‘나타날 것’이라고 한 것을 보면 그는 세상에 있다가 갑자기 권력과 명성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악의 권세를 사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성도들을 박해하는데 집중할 것입니다. 그는 경배 받기 위해서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자신을 높이고 대적할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왕권을 찬탈하거나 경배를 받고 있는 모든 것을 폐위시키려고 시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자신에게만 경배하고 복종하도록 요구할 것입니다.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하며 하나님의 자리와 통치권을 취하여 자기 것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이 불법의 비밀은 이미 활동하고 있습니다(7a).

그러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막는 자란 일반적으로 성령님을 가리킵니다. 성령의 역사가 악을 막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사역과 활동도 악을 억제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또한 정부와 법 집행을 통해서, 교육과 과학과 이성을 통해서, 인간의 도덕성을 고양시킴으로써 이 세상은 아직 완전한 불법이 자행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불법을 막는 자가 그 중에서 옮길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는 이 세상이 무법 천지가 될 것입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악한 자는 큰 이적을 사람들 앞에서 행하여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할 것입니다. 또한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말을 하게도 할 것입니다(계 13:13,15). 결국 적그리스도가 모든 종교를 장악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경배할 것인지 적그리스도를 경배할 것인지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 불신자들은 자신들이 따르기로 선택한 이 강력한 인물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적과 적그리스도가 사용하는 이적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이 불법의 사람은 속이고 유인하기 위해서 이적, 기사, 표적을 이용할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이적은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고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이끄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모든 이적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이적은 이적들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그 동기가 우리를 돕고 고치고 하나님을 향하게 하는 목적 때문에 중요했습니다. 불법의 사람도 놀라운 능력을 가지게 되지만 그것은 사단에게서 온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을 파멸시키고 하나님을 떠나 자신을 향하게 하기 위해서 이적을 사용합니다. 우리가 어떤 이적을 볼 때에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사역에 주의를 집중시키는 이적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능력을 자기 영광을 위해서, 자기에게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12절을 보십시오.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진리를 사랑하는 자는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부터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는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알곡과 쭉정이가 자연스럽게 분리될 것입니다. 진리를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지만 불의를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불법한자의 유혹을 감당하지 못하여 거짓 것을 믿고 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의 자유의지대로 배도를 선택합니다. 그들은 불신앙으로 마음이 강퍅해지고 영적인 눈이 어두워져서 진리에 반응하지 못하게 됩니다. 반대로 불의에 집착합니다. 이를 통해 볼 때 그리스도께 대한 헌신과 불신앙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경고가 됩니다. 

8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예수님께서 그 입 기운으로 불법한 자를 죽이십니다. 단지 기운 만으로 강력한 악인을 사르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은 하나님과 사단이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불법의 사람보다 더 강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악한 사람들로부터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불법의 사람이 나타난다 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불법의 사람의 출현은 임시적인 현상이고 그 후에 그리스도는 재림하셔서 그를 멸망시키십니다. 악의 그릇이나 그를 조종하는 사단까지도 결국 하나님의 지배하에 있어서 그 종국은 멸망으로 가게 됩니다. 이런 악의 일시적인 발동은 성도들의 믿음을 연단시켜 주고 하나님의 신비로운 구원 역사를 진전시킬 따름입니다.

바울은 이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감사 드리고 있습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바울은 하나님의 택하심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을 인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성도들은 굳게 서서 성경의 가르침을 받은 대로 유전을 지켜야 합니다.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도들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하시도록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고난의 의미를 생각했고 예수님의 재림 전에 배교와 불법의 사람이 나타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 시대는 갈수록 그리스도인으로서 생활하기가 어렵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재림의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면서 서로를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가운데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들의 믿음을 더욱 굳게 하시고 실제 생활에서 승리하게 도우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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