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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단8강(8장) 적그리스도의 멸망에 대한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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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섬김이
댓글 0건 조회 4,777회 작성일 03-02-03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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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가을 다니엘서 제 8강                                                                       
말씀/다니엘 8:1-27
요절/다니엘 8:25

적그리스도의 멸망에 대한 이상
“그가 꾀를 베풀어 제 손으로 궤휼을 이루고 마음에 스스로 큰 체하며 또 평화한 때에 많은 무리를 멸하며 또 스스로 서서 만왕의 왕을 대적할 것이나 그가 사람의 손을 말미암지 않고 깨어지리라.”

다니엘서 7장과 8장 그리고 11장은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숫양과 숫염소에 대한 이상입니다. 그런데 숫염소의 한 뿔에서 작은 뿔이 나와서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뿔은 세상 권력자들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세상 권력자가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그는 파워 게임에서 이긴 자요, 술수와 무력을 가지고 권력을 장악한 자입니다. 그는 권력을 신으로 믿는 자입니다. 권력을 탐하는 것은 악령의 속성입니다. 세상 권력자들은 파괴와 살상을 일삼았습니다. 먹고 부숴뜨리고 짓밟았습니다. 히틀러와 스탈린과 독재자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고 섬기는 자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살리는 자로 오셨습니다. 회복자로 오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적그리스도의 속성을 잘 알고 환란의 때를 대비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적그리스도의 멸망에 대한 이상을 보고 끝까지 하나님의 백성으로 남아서 충성을 다하기를 기도합니다.

다니엘에게  처음에 이상이 나타난 후 벨사살 왕 삼년에 다시 이상이 나타났습니다. 벨사살 왕은 바벨론의 마지막 왕이었습니다. 다니엘은 벨사살 원년에 7장에 나타난 이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벨사살 삼년에 다시 이 이상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가 이상을 볼 때에 그의 몸은 엘람도 수산 성에 있었고 그 이상은 을래 강변에서 보았습니다. 엘람은 바벨론 동쪽에 자리한 산악 지대로서 장차 바사의 영토가 될 땅이었고 수산성은 바사의 수도가 될 장소였습니다. 을래 강은 수산 성 가까이에 있는 강으로서 페르시야만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다니엘이 경험한 것을 나중에 에스겔 선지자와 사도 바울과 사도 요한이 경험하였습니다. 에스겔은 몸은 바벨론에 있으면서 그 영은 예루살렘을 넘나들었고 사도 바울은 몸은 이 땅에 있으면서 그의 영은 하나님 나라 즉 삼층천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몸은 밧모섬에 있으면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다니엘이 늙은 몸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미래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노인들은 추억 속에서 산다고 합니다. 그에 반해서 청년들은 미래 속에서 삽니다. 우리가 나이에 상관없이 비전이 있고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면 젊은 청년의 스피릿을 가지고 활기차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장래에 대한 비전을 보려면 성령이 충만해야 합니다. 또 비전의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미래에 대해서 전문가들과 대화를 나누고 책 속에서 배워야 합니다. 비전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UBF의 장래와 세계 선교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UMI(UBF Mission Institute)를 통해서 선교사 교육을 잘 이루고 세계 선교를 힘있게 이루어 나가야 할 것을 생각하니 해야 할 일들이 많이 보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현실 속에서 30년 후, 100년 후의 미래를 생각하고 꿈꾸기를 기도합니다.

다니엘이 본 이상은 무엇입니까? 그가 눈을 들어 보니 강가에 두 뿔 가진 숫양이 서 있었습니다. 그 두 뿔이 다 긴데 한 뿔은 다른 뿔보다 더 길었습니다. 그런데 그 긴 것은 나중에 난 것이었습니다. 20절을 볼 때 두 뿔 가진 수양은 메대와 바사를 가리킵니다. 수양은 바사의 수호신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 뿔 중에 긴 것은 바사입니다. 그런데 그 숫양이 서와 북과 남을 향하여 뿔로 받았는데 그것을 당할 짐승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또 그 손에서 능히 구할 이가 절대로 없으므로 그것이 임의로 행하고 스스로 강대하였습니다. 서쪽은 바벨론, 수리아, 희랍과 아시아 일부를 가리키고 남쪽은 에디오피아와 이집트, 아라비아를, 그리고 북쪽은 아르메니아와 루디아, 스키타이를 가리킵니다. 당시 메대와 바사국은 오늘날의 미국과 같은 초 강대국으로서 임의로 행하였습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약소국들을 떡 주무르듯 하였습니다.

다니엘이 그 나라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 한 숫염소가 서편에서부터 와서 온 지면에 두루 다니되 땅에 닿지 아니하였습니다. 숫염소가 서편에서부터 왔다는 것은 헬라를 말하고, 그 염소 두 눈 사이에 현저한 뿔이 있었다고 했는데 이것은 알렉산더 대왕을 가리킵니다.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은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정복 전쟁을 했습니다. 그 숫염소가 강가에 섰던 두 뿔 가진 숫양에게 분노한 힘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더니 가까이 다가가서는 더욱 성을 내어 그 숫양을 쳐서 그 두 뿔을 꺾어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숫양은 대적할 힘이 없으므로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숫염소가 숫양을 짓밟아버렸지만 그 손에서 벗어나게 할 이가 없었습니다. 알렉산더의 3만 5천이 이수스 전투에서 60만의 바사군을 거의 전멸시켰습니다. 알렉산더는 바사 즉 페르샤군을 격퇴시킨 뒤에 방향을 돌려 지중해의 동편인 시돈과 두로, 가사와 예루살렘을 공격해 들어갔습니다. 두로는 섬이었는데 상업의 중심지였습니다. 알렉산더는 두로를 공격하기 위해서 본토에서 섬까지 둑길을 쌓았습니다. 두로성에 대한 공략은 7개월이 걸렸는데 이때 두로인 8천명이 살륙을 당하고 3만명이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나아가는데 요세푸스에 의하면 당시의 대제사장이던 야두아(Jaddua)가 그의 제사장의 옷을 입고 앞장 서며, 흰 옷을 입은 한 무리의 행렬이 알렉산더를 맞으러 나아갔습니다. 그의 몸에는 제사장의 제복을 입고 머리에 관을 쓰고 손에는 그 위에 하나님의 이름이 새겨진 금대접을 들고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알렉산더는 가까이 다가와서 하나님의 성호를 경배하며 대제사장에게 경의를 표하였습니다. 그는 대제사장을 자기의 꿈 속에서 본 일이 있노라고 말하였습니다. 대제사장이 알렉산더에게 그가 그리스 최초의 왕이 되고 페르샤 제국을 정벌하리라는 예언이 기록된 다니엘서의 구절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때 이후로 알렉산더는 유대인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알렉산더가 건립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는 유대인들이 별도의 구역에 거주하면서 자기들의 종교 생활을 영위하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의 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세계 정복으로 인해서 유대인들은 각국으로 분산되었고 이것이 기독교가 세계화하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헬라화 정책은 세계가 헬라어로 통일되도록 하였으며 이것도 복음이 빠르게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숫염소가 스스로 심히 강대하여 가더니 강성할 때에 그 큰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현저한 뿔 넷이 하늘 사방을 향하여 났더라.” 알렉산더 대왕은 절정에 달하였을 때에 요절을 하였습니다. 그 이후 네 명의 장군이 나라를 넷으로 나누어서 통치하였습니다. 톨레미는 이집트와 구레네, 소아시아 남쪽을 차지했고 리시마쿠스는 트레이스, 비두니야 일부, 부리기아, 무시야를 차지했습니다. 캣산더는 마게도니아와 헬라를 차지했고 셀주크스는 유브라데에서 인도 접경까지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이상에서 볼 때 세상은 끊임없이 싸우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도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사이에 전쟁을 하고 있고 각 국가들은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 속에는 싸우는 정욕이 있습니다(약4:1). 사람들은 탐욕으로 인해서 싸울 수 밖에 없습니다. 전쟁을 하는 이유는 사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영토확장과 금과 은과 노예를 얻기 위해서 전쟁을 했습니다. 지금은 석유 자원을 확보하고 무기를 팔아먹기 위해서 전쟁을 합니다. 강대국의 논리를 약소국들이 따라오도록 하기 위해서 전쟁을 합니다. 알렉산더는 바벨론과 수사에서 6천만 달러에 해당하는 금과 은을 거두어 들였고 페르세폴리스(Persepolice)에서는 일억달러에 이르는 보물을 노략하였습니다. 알렉산더 군대가 인도 푼잡을 정복하고 더욱 나가지 못한 것은 자신들이 노략한 전리품이 너무 많아서 더 이상 운반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헬라는 페르샤 제국의 막대한 보화를 소유한 이후에 도덕적인 타락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동양의 악덕과 사치 풍조에 접함으로써 나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와 권력을 누리고 쾌락을 영원히 즐기고자 하지만 이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습니다. 전도서 기자는 은금과 왕들의 보배와 여러 도의 보배를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습니다. 그는 무엇이든지 눈에 원하는 것을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그 마음에 즐거워하는 것을 막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는 자신의 모든 수고를 기뻐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후에 보니 이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생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배우는 것이 마땅하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동료들과 세상 권세자들의 역사를 볼 때 그 헛됨을 깨닫고 하나님과 그 나라에 우리의 소망을 두어야 하겠습니다. 세상이 헛되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만 주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대로 이 세상에서 능력껏 돈을 벌어서 생명 구원 역사와 도움이 필요한 이웃과 힘써 나누어야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둔 사람의 자세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그 중 한 뿔에서 또 작은 뿔 하나가 나서 남편과 동편과 또 영화로운 땅을 향하여 심히 커지더니” 한 뿔에서 나온 작은 뿔은 셀주크스 왕조의 제 8대 왕인 에피파네스를 가리킵니다. 그는 남편인 이집트 땅과 동편인 바사와 아메니아, 영화로운 땅인 유대를 침략하여 정복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늘 군대에 미칠 만큼 커져서 그 군대와 하늘의 별 중에 몇을 땅에 떨어뜨리고 그것을 짓밟았습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들을 죽일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는 왕이 될 수 없는 막내였습니다. 그는 로마에 인질로 잡혀갔는데 거기서 세계를 어떻게 정복하는가를 배웠습니다. 거기서 탈출하여 형님들을 다 죽이고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BC 175년에 권력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BC 170년에 이집트의 프톨레미 4세를 패배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예루살렘을 정복하였습니다. 그는 많은 유대인들을 노예로 잡아 팔아버린 외에도 4만에 이르는 남녀와 어린이들을 대량 학살하였습니다. 그는 감히 성전에 들어가 약탈을 자행하였습니다. 그는 황금 제단과 모든 봉헌된 기명들과 기구들,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많은 보물들을 노략하였습니다. 이런 무례한 행동들 외에도 무거운 세금이 유대인들에게 부과되었습니다. 안티오쿠스 4세가 누리는 사치스러운 생활 수준과 수차에 걸친 전쟁 비용 때문에 그는 자금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경제적인 이유와 유대를 헬라화 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 심히 악한 짓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는 스스로 높아져서 군대의 주재를 대적하였습니다. 그는 성전에서 매일 드리는 제사를 금지시켰습니다. 대신에 그리스의 신과 여신들에게 숭배하도록 강요하였습니다. 안식일 준수와 할례의식, 부정한 음식의 금지와 같은 율법에 기록된 대로 행하는 자들은 사형에 해당하는 죄로 간주하였습니다. 자기 아들에게 할례를 행한 어머니들은 그들의 목에 아기를 두른 채 십자가에 달려 처형되었습니다. 한 떼의 돼지를 성전에 몰아넣고 올림푸스의 제우스에게 헌납된 제단 위에서 돼지고기가 제물로 바쳐졌습니다. 그때에 일곱 형제를 둔 어머니가 있었는데 왕은 그들에게 돼지고기를 먹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어기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하자 왕은 화가 나서 솥과 가마를 뜨겁게 달구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형제들을 하나 하나 끓는 가마 속에 넣어 죽였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도 똑 같은 방법으로 죽였습니다. 이런 무시무시한 환란이 언제까지 계속되었습니까? 13b,14절을 보십시오. “매일 드리는 제사와 망하게 하는 죄악에 대한 일과 성소와 백성이 내어 준바 되며 짓밟힐 일이 2300주야까지 하리라”는 것입니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가증한 행동의 기간은 BC 171년부터 BC 165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환란이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직전 마지막 때에도 일어날 것입니다. 성경은 그 때를 감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감당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을 위해서 이 날들을 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환란의 때에 인내함으로 구원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러면 이런 환난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14절을 보면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성소가 이방인들에 의해서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졌는데 왜 이것을 성소가 정결하게 되는 길이라고 하실까요? 그것은 안티오쿠스가 나타나기 전 이스라엘의 죄악상을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제사 때 일년된 흠없는 제물을 드려야 하는데 불구된 것, 병든 것을 드리고 자기는 좋은 것을 취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고 성물에 대하여 범죄하였습니다. 그들은 세속화되었습니다. 심지어 대제사장직을 돈을 주고 샀습니다. 또한 성전의 제사장들은 그들의 제사장 직을 소홀히하는 대신에 운동 경기장의 세속적인 쾌락에 탐닉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서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그것도 안되자 마지막으로 안티오쿠스의 범죄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도록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환난의 때를 겪으면서 율법을 깊이 연구하고 헬라화 정책에 강력하게 반발하였습니다. 그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핍박과 순교를 감내하였습니다. 그들은 하시딤 즉 경건한 자, 혹은 구별된 자로 알려진 바리새파로서 율법을 지키기 위한 운동의 핵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들의 악행에 대해서 징계하셨습니다. 그들은 재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특권이 컸지만 그들이 특권을 감당하지 못했을 때 징계도 또한 컸습니다. 하나님은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성소에서 더 이상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하심으로 성소를 정결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내면의 성소가 정결함을 입을 때까지 연단하십니다. 우리가 세속화될 때 순수 복음 신앙을 회복하도록 징계하심으로 그의 거룩한 사랑의 손길을 보내십니다. 우리는 연단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15-27절은 다니엘이 본 이상에 대한 해석입니다. 다니엘은 이 이상을 보고 그 뜻을 알고자 하였습니다. 그때에 사람 모양 같은 것이 그 앞에 섰고 가브리엘에게 ‘이 이상을 이 사람에게 깨닫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이 많은 환란을 받고 그 끝에 메시야가 오실 것을 예고한 것입니다. 다니엘은 지금 바벨론 포로 생활로 고통을 받고 있는데 앞으로 더 큰 시련이 있을 것을 환상을 통해서 보고 감당하기 힘들어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어 깊이 잠이 들었습니다. 가브리엘이 그를 어루만져 일으켜 세우고 해석을 알게 하였습니다. 그는 메대와 바사 왕들, 헬라 왕과 그 네 나라 마지막 때에 패역자들이 가득할 즈음에 일어날 한 왕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그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로서 극에 이른 인간의 교만과 적그리스도의 모형이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적그리스도를 대적해야 합니까?
첫째,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적그리스도는 얼굴이 엄장하며 궤휼에 능하였습니다. 이는 철면피와 같고 긍휼이 없는 자임을 말해 줍니다. 그리고 거짓에 능한 자입니다. 24절을 볼 때 비상하게 파괴를 행하고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며 강한 자들과 거룩한 백성을 멸하리라고 하였습니다. 25a절을 보면 그가 꾀를 베풀어 제 손으로 궤휼을 이룬다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는 예루살렘을 정복할 때 안식일에 공격하였습니다. 안식일에 평화를 선언하고 유대인들이 쉬고 있을 때에 들어와서 나라를 쉽게 정복하고 엄하게 통치하였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엡6:11)”고 권면합니다. 이는 우리가 악한 날에 능히 대적하고 능히 서기 위함입니다. 거짓과 속임은 일시적이지만 진실은 영원합니다. 우리는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전투화를 신고 믿음의 방패를 가져야 합니다.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고 믿어 순종하는 역사를 이루는 것은 사단의 진을 파하는 것입니다.
둘째, 성령 안에서 기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특히 여러 성도를 위하여 중보기도 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특히 복음을 전하는 분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복음 전도와 일대일 공부는 전쟁의 최전방이기 때문입니다. 적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을 대적합니다. 그는 자칭 신이라고 하며 최고의 통치자요 유일한 통치자 즉 신의 자리까지 올라갔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인정하게 되면 그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이것을 못하니까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들을 대적하여 핍박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를 힘써야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고 죄를 이기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셋째, 적그리스도는 결국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지 않고 깨질 것을 믿어야 합니다. 적그리스도는 한 동안 파괴적인 행동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손으로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안티오쿠스는 예루살렘 성전 제단에 제우스의 제단을 차렸을 때 유대인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하여 제단을 몰아냈다는 소식을 듣고 격분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공동묘지로 만들어버리겠다고 교만한 말을 함과 동시에 불치의 병에 걸렸습니다. 이 비참한 질병은 오랫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처음에 그는 유대인들을 계속 협박했으나 결국 자신의 회복에 대해 절망하고서는, 자신이 유대인들에게 행한 악행들과 예루살렘 성전을 모독한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공손한 편지를 썼으며 만일 그가 회복된다면 그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주겠다고 맹세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병이 점점 더 악화되어감을 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 합당한 일이라.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이 하나님과 대적하는 자리에 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도다.” 결국 그는 바벨론 가까이에 있는 파카타의 산에서, 즉 낯선 땅에서 최후를 마쳤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믿는 성도들에게 최후의 승리를 주심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일어날 적그리스도는 어떠합니까? 적그리스도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되심을 부인하고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고 신자들을 미혹하여 믿음에서 떨어지게 합니다. 우리는 말세에 적그리스도가 많아져서 믿음을 빼앗고자 할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많은 환란과 핍박으로 위협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적그리스도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은 크리스챤들을 죽이고 추방하고 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뉴에이지 신봉자들입니다. 또한 포스트 모더니즘의 세력입니다. 이들은 불신 문화를 추종하는 세력들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악한 영에 의해 점령된 권력자일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들은 기독교인을 공격 제 1호로 삼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최후 승리자가 됨을 믿습니다. 우리는 적그리스도가 횡포를 부릴 때에 믿음의 방패와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 사상이 난무할 때에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깊이 공부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들이 얼마나 이 시대를 위해서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다니엘이 당시에 듣는 사람이 없어도 말씀을 전하고 기록으로 남긴 것처럼 우리도 이일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말씀을 그대로 믿고 전합시다. 하나님께서 작은 일에 충성한 자들을 칭찬하시고 오래지 않아 풍성한 열매를 주실 것입니다. 가을 수양회를 준비하면서 각자가 도전할 목표를 정하고 믿음으로 영적인 싸움을 싸우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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