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단3강(3장) 그리아니하실지라도
페이지 정보

본문
2001년 가을 다니엘서 제 3 강
말씀 / 다니엘 3:1-30
요절 / 다니엘 3:17,18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때 일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합니까? 나의 소원과 상황이 다르게 전개될 때 어떤 자세를 갖는 것이 바른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사실 그때 어떤 태도를 갖는가를 보면 우리의 믿음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또한 이런 가운데서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되 순수하게 사랑하고 충성을 다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왜 내 뜻대로 일이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믿고 섬겨야 할까요? 다니엘의 세 친구들의 믿음을 살펴보는 가운데 해답을 찾기를 기도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한 큰 신상을 보았는데, 다니엘의 해석을 통해서 그 금 머리가 자신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꿈은 세상 나라가 결국은 망하게 되고 하나님 나라만이 영원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왕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고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겸손해져야 마땅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엉뚱하게도 엄청나게 큰 금 신상을 만들었습니다. 그 금 신상은 높이가 27m, 넓이가 2.7m나 되었습니다. 그 금 신상을 두라 평지에 세우고 하얀 천으로 덮어 두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그 신상 낙성식을 성대하게 치루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제국의 방백과 수령과 도백과 재판관과 재무관과 모사와 법률사와 각 도 모든 관원을 신상 낙성 예식에 참석하게 했습니다. 낙성 예식을 위해서 세계적인 필하모니 관현악, 현악, 타악기 등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신비하고도 웅장한 분위기를 연출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수 십억원의 돈을 들여서 무대를 만들었습니다. 무대는 금, 은, 동, 철, 흙 바닥으로 만들고 왕부터 시작해서 직급에 따라서 앉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군 의장대로 하여금 사열을 하도록 준비하고 옆에는 거대한 왕의 용광로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것은 층계를 만들고 꼭대기에서 사람을 던져 넣으면 밑에서 볼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왕은 왜 이런 우상화 작업을 하는 것일까요? 이는 자기를 찬양하도록 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충성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왕권을 신장시키고 세력 확장을 위해서 이런 일을 한 것입니다. 모든 준비가 다 끝나자 반포하는 자가 크게 외쳤습니다.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아 왕이 너희 무리에게 명하시나니 너희는 …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의 세운 금신상에게 절하라. 누구든지 엎드리어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 넣으리라!”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이 모든 악기 소리를 듣자 곧 느부갓네살 왕의 세운 금 신상에게 엎드리어 절하였습니다(7). 그들이 신상에게 절하는 마음은 다 달랐을 것입니다. 금신상을 정말 신으로 믿고 절하는 무지한 사람, 신상에게 절하는 것을 충성이요 애국이라고 생각 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왕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감격적으로 절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분위기 때문에, 두렵기 때문에 대세를 따라서 절하였습니다.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겨온 사람들은 내키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자기의 연약함을 봐주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절을 했습니다.
그런데 구름같이 많은 사람들이 절하는 가운데서도 꼿꼿하게 서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였습니다. 느부갓네살에게 은혜를 입은 세 친구들은 갈등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비록 포로였지만 느부갓네살 왕에게 은혜를 입어서 궁중 교육도 받고 출세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왕의 요구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리는 우상 숭배이기 때문에 순종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인생은 여기서 끝장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들은 나아만 장군과 같이 고급 관료로서 어쩔 수 없이 절을 할 수 있었습니다. 생명을 부지하여 동족을 보호하고 동족을 위해서 할 일을 해야 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엎드려서 기도하면 되지 않는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태도는 단호했습니다. 그들이 만약 절을 하게 된다면 이스라엘의 정신적 지도자인 그들로 인해서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상에게 절한 자라는 꼬리표가 일생을 따라 다니게 될 것입니다. 한경직목사님도 신사 참배를 했는데 템플턴 상을 탈 때도 이를 회개하였습니다. 그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항상 이 문제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 분은 겸손하게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분명하게 하나님의 역사에 헌신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시험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번 굽히면 꺾여진 신앙이 힘을 쓰지 못합니다. 군대에서도 초기에 교회를 간다고 핍박을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나가야지 그렇지 않고 타협하기 시작하면 제대할 때까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신앙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신앙의 절개를 지키자 갈대아 사람들이 나아와 참소했습니다(8). 이 갈대아 사람들은 전쟁 포로인 유대인들이 자기들보다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시기심에 사로잡혀서 이런 참소를 한 것입니다. 그들의 참소는 매우 호소력이 있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도를 다스리게 하신 자이어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 갈대아 사람들의 참소를 들은 느부갓네살 왕은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당장끌어오라고 명하였습니다. 감히 피래미 같은 것들이 모든 백성과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을 거역하다니 견딜 수 없이 화가 치밀었습니다. 그는 끌려온 그들을 당장에 용광로에 집어 넣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갈대아인들이 참소한 이유가 시기심 때문인 줄 알았기 때문에 다시 한번 그들에게 기회를 주어 자신의 넓은 아량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그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 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언제든지 …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디 있느냐?”라고 회유와 협박을 동시에 하였습니다. 왕은 그들을 아끼는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절할 수 있는 기회를 다시 주고자 했습니다. 왕의 이런 아량에 세 친구들은 마음이 약해질 수 있었습니다. 믿음도 좋지만 현실도 중요하지 않는가 생각하고 상황 윤리에 따르기도 쉬웠습니다. 또 왕은 너희를 능히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디 있느냐고 말하면서 협박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들을 풀무 불 속에 던져 넣는 것을 큰 권세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들의 생명이 왕의 손에 달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복종하라고 회유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대학원생들의 장래는 지도 교수의 손에 달린 것 같습니다. 평신도 목자들의 승진은 상관의 손에 달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목을 메게 됩니다. 사람 앞에서 살게 되면 그 만큼 비굴하고 비참한 것도 없습니다.
이때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왕의 위협 앞에서 무엇을 믿었습니까?
첫째,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실 것을 믿었습니다.그들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16,17).” 그들은 배짱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뜻을 분명하게 정했습니다. 타협의 여지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우상의 실체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유일한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또한 왕도 연약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왕의 엄포도 믿지 않았습니다. 왕의 손보다도 보이지 않는 손을 더욱 무서워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 종들을 보호하심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이런 믿음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들은 개인 신앙도 훌륭했지만 신앙 공동체를 잘 이루었습니다. 16,17절에 우리라는 말이 네 번이 나옵니다.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 혼자서 싸우는 것보다 힘을 합쳐서 싸울 때 더 잘 싸울 수 있습니다. 전4: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리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믿음을 격려하면서 불 같은 시험을 이겼습니다.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불의 세력을 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것은 신앙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실제 상황 속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기도를 하지만 상황이 어려워지면 슬그머니 기도를 하지 않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전능하셔서 당신의 뜻대로 구한 기도에 반드시 응답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번에 나이지리아 수양회를 합심해서 하도록 선교사들을 설득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이 합심해서 여름 수양회를 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선교지에서 동역을 하는 것은 한 쪽이 죽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 신앙을 가지고 죽을 때 하나가 되어 아름다운 동역의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다니엘의 세친구들은 죽은 자 가운데서도 살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왕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습니다(마 10:28).” 그들은 이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능히 구원하실 줄 믿었습니다.
둘째, 그들은 자신들이 왕의 풀무 불 속에 던져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의 믿었습니다. 그들은 왕의 위협 앞에서도 순수하게 하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왕의 풀무 불 가운데서 구원하지 아니하실지라도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죽으면 죽었지 우상 숭배는 안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믿음의 도전 앞에 순교자적인 자세로 임하였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절개를 지켰습니다. 그들은 지조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한마디로 순수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되 대가를 바라고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오,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그들의 순수한 신앙은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들의 순수한 신앙은 죽음보다도 더 강하였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왕에 대한 배반이요 반역이요 불순종이었습니다. 그들의 신앙 고백은 왕의 자존심을 크게 상하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이때까지 왕의 자존심에 이렇게까지 상처를 입힌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들에 대한 왕의 요구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믿음이 정면 충돌을 하였습니다. 진리는 대결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한 마음으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기거나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앞 뒤가 분명해야 합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는 십계명 말씀을 지켰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켰습니다. 그들의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얼마나 뜨거웠던지 왕의 풀무 불보다 더 뜨거웠습니다. 여호와의 불이 그들의 심령에서 타고 있었습니다. 왕의 위협도 그들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적으로 생각하면 꽉 막힌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인 지식 위에 체험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순수한 신앙은 복잡하지 않고 정치적이지도 않고 단순했습니다. 그들은 악형을 받되 구차하게 면하지 아니하였습니다(히11:35).
우리에게 필요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신앙은 무엇입니까? 하박국 선지자와 같이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17,18)”하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요회 역사가 성장하지 않아도 여호와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워 하며 기쁨을 주님의 역사를 섬겨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결혼을 하지 못할지라도 주님께 충성을 해야 합니다. 학생들은 내가 열심히 공부했지만 원하는 대로 장학금을 받지 못해도 사명인의 길을 가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나라에 선교사로 나가지 못해도 하나님의 뜻을 영접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얼마 전에 한 목자님은 열매가 없어서 선교사로 나가지 못하자 울면서 소감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해서 이방 양들을 섬기고자 했던 마음을 가지고 휘싱을 하면서 양을 얻고자 투쟁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여종의 순수한 믿음을 축복하시고 좋은 양들을 붙여주시고 열매 맺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해도 삐치지 말고 주님을 섬겨야 하겠습니다.
셋째, 그들은 지금 우상 숭배로 인해서 유대 민족이 포로 생활을 하는 줄 알았기 때문에 금신상에게 절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역사에 기초해서 현실을 직시하였습니다. 그들의 역사 인식은 날카로왔습니다. 그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는 것은 우상 숭배를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비록 높은 자리에 앉아서 편하게 생활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훈련 기간 중임을 알았습니다. 그들에게 금신상에게 절하는 것은 하나님의 훈련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겸손하게 하나님의 훈련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죽기까지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기 때문에 겸손하게 훈련을 받는 사람들을 때가 되면 높이십니다.
세 친구들의 고백을 듣자 느부갓네살 왕은 분이 가득하여 낯빛이 붉으락 푸르락 하면서 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풀무를 뜨겁게 하기를 평일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몇 명의 용사들이 왕의 명령에 따라서 세 친구들을 고의와 속옷과 겉옷과 별다른 옷을 입은 채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질 때에 풀무가 심히 뜨거워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을 태워 죽였고 세 사람은 결박된 채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떨어졌습니다.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서 급히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모사들에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런데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24).” 하나님께서는 세 친구들을 보호막으로 씌워서 보호하시고 함께 풀무 속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을 피하도록 하지 않으시고 불 속에서 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환난 가운데 있는 종들과 함께 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주님께 충성을 하는데 고난이 연속해서 닥쳐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 믿음을 지키며 인내하면 하나님께서는 기쁨을 주시고 그 신앙 인격을 연단하십니다. 환란의 터널을 통과하면 평강의 열매와 생명의 열매를 풍성히 맺히게 됩니다. 그리고 영원한 소망을 갖게 하십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극렬히 타는 풀무 아구 가까이 가서 그들을 불렀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그들이 나와서 보매 불이 능히 그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슬리지 아니하였고 고의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탄 냄새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털끝하나 상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는 그의 자녀들과 함께 하시며 물과 불 속에서도 구원하십니다. 우리는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환난 날에 무엇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자기 능력을 의지합니까? 물질을 의지합니까? 힘있는 사람을 의지합니까?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용기와 힘을 덧입어야 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조서를 내려서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가 무릇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참람한 말을 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터를 삼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바벨론에 사는 포로된 유대인들이 기를 펴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이방인 중에서 높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스스로 자기의 이름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드디어 왕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였습니다. 이를 볼 때 고난은 위장된 축복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의 검은 수레에 복을 싣고 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되 순수하게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추석 명절에 여러 우상들에게 절하도록 하는 유혹을 이기고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섬기고 죽도록 충성을 다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사는 여러분들에게 복을 넘치게 부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다니엘 3:1-30
요절 / 다니엘 3:17,18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때 일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합니까? 나의 소원과 상황이 다르게 전개될 때 어떤 자세를 갖는 것이 바른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사실 그때 어떤 태도를 갖는가를 보면 우리의 믿음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또한 이런 가운데서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되 순수하게 사랑하고 충성을 다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왜 내 뜻대로 일이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믿고 섬겨야 할까요? 다니엘의 세 친구들의 믿음을 살펴보는 가운데 해답을 찾기를 기도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한 큰 신상을 보았는데, 다니엘의 해석을 통해서 그 금 머리가 자신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꿈은 세상 나라가 결국은 망하게 되고 하나님 나라만이 영원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왕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고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겸손해져야 마땅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엉뚱하게도 엄청나게 큰 금 신상을 만들었습니다. 그 금 신상은 높이가 27m, 넓이가 2.7m나 되었습니다. 그 금 신상을 두라 평지에 세우고 하얀 천으로 덮어 두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그 신상 낙성식을 성대하게 치루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제국의 방백과 수령과 도백과 재판관과 재무관과 모사와 법률사와 각 도 모든 관원을 신상 낙성 예식에 참석하게 했습니다. 낙성 예식을 위해서 세계적인 필하모니 관현악, 현악, 타악기 등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신비하고도 웅장한 분위기를 연출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수 십억원의 돈을 들여서 무대를 만들었습니다. 무대는 금, 은, 동, 철, 흙 바닥으로 만들고 왕부터 시작해서 직급에 따라서 앉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군 의장대로 하여금 사열을 하도록 준비하고 옆에는 거대한 왕의 용광로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것은 층계를 만들고 꼭대기에서 사람을 던져 넣으면 밑에서 볼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왕은 왜 이런 우상화 작업을 하는 것일까요? 이는 자기를 찬양하도록 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충성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왕권을 신장시키고 세력 확장을 위해서 이런 일을 한 것입니다. 모든 준비가 다 끝나자 반포하는 자가 크게 외쳤습니다.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아 왕이 너희 무리에게 명하시나니 너희는 …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의 세운 금신상에게 절하라. 누구든지 엎드리어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 넣으리라!”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이 모든 악기 소리를 듣자 곧 느부갓네살 왕의 세운 금 신상에게 엎드리어 절하였습니다(7). 그들이 신상에게 절하는 마음은 다 달랐을 것입니다. 금신상을 정말 신으로 믿고 절하는 무지한 사람, 신상에게 절하는 것을 충성이요 애국이라고 생각 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왕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감격적으로 절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분위기 때문에, 두렵기 때문에 대세를 따라서 절하였습니다.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겨온 사람들은 내키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자기의 연약함을 봐주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절을 했습니다.
그런데 구름같이 많은 사람들이 절하는 가운데서도 꼿꼿하게 서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였습니다. 느부갓네살에게 은혜를 입은 세 친구들은 갈등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비록 포로였지만 느부갓네살 왕에게 은혜를 입어서 궁중 교육도 받고 출세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왕의 요구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리는 우상 숭배이기 때문에 순종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인생은 여기서 끝장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들은 나아만 장군과 같이 고급 관료로서 어쩔 수 없이 절을 할 수 있었습니다. 생명을 부지하여 동족을 보호하고 동족을 위해서 할 일을 해야 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엎드려서 기도하면 되지 않는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태도는 단호했습니다. 그들이 만약 절을 하게 된다면 이스라엘의 정신적 지도자인 그들로 인해서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상에게 절한 자라는 꼬리표가 일생을 따라 다니게 될 것입니다. 한경직목사님도 신사 참배를 했는데 템플턴 상을 탈 때도 이를 회개하였습니다. 그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항상 이 문제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 분은 겸손하게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분명하게 하나님의 역사에 헌신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시험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번 굽히면 꺾여진 신앙이 힘을 쓰지 못합니다. 군대에서도 초기에 교회를 간다고 핍박을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나가야지 그렇지 않고 타협하기 시작하면 제대할 때까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신앙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신앙의 절개를 지키자 갈대아 사람들이 나아와 참소했습니다(8). 이 갈대아 사람들은 전쟁 포로인 유대인들이 자기들보다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시기심에 사로잡혀서 이런 참소를 한 것입니다. 그들의 참소는 매우 호소력이 있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도를 다스리게 하신 자이어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 갈대아 사람들의 참소를 들은 느부갓네살 왕은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당장끌어오라고 명하였습니다. 감히 피래미 같은 것들이 모든 백성과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을 거역하다니 견딜 수 없이 화가 치밀었습니다. 그는 끌려온 그들을 당장에 용광로에 집어 넣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갈대아인들이 참소한 이유가 시기심 때문인 줄 알았기 때문에 다시 한번 그들에게 기회를 주어 자신의 넓은 아량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그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 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언제든지 …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디 있느냐?”라고 회유와 협박을 동시에 하였습니다. 왕은 그들을 아끼는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절할 수 있는 기회를 다시 주고자 했습니다. 왕의 이런 아량에 세 친구들은 마음이 약해질 수 있었습니다. 믿음도 좋지만 현실도 중요하지 않는가 생각하고 상황 윤리에 따르기도 쉬웠습니다. 또 왕은 너희를 능히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디 있느냐고 말하면서 협박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들을 풀무 불 속에 던져 넣는 것을 큰 권세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들의 생명이 왕의 손에 달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복종하라고 회유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대학원생들의 장래는 지도 교수의 손에 달린 것 같습니다. 평신도 목자들의 승진은 상관의 손에 달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목을 메게 됩니다. 사람 앞에서 살게 되면 그 만큼 비굴하고 비참한 것도 없습니다.
이때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왕의 위협 앞에서 무엇을 믿었습니까?
첫째,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실 것을 믿었습니다.그들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16,17).” 그들은 배짱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뜻을 분명하게 정했습니다. 타협의 여지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우상의 실체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유일한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또한 왕도 연약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왕의 엄포도 믿지 않았습니다. 왕의 손보다도 보이지 않는 손을 더욱 무서워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 종들을 보호하심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이런 믿음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들은 개인 신앙도 훌륭했지만 신앙 공동체를 잘 이루었습니다. 16,17절에 우리라는 말이 네 번이 나옵니다.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 혼자서 싸우는 것보다 힘을 합쳐서 싸울 때 더 잘 싸울 수 있습니다. 전4: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리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믿음을 격려하면서 불 같은 시험을 이겼습니다.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불의 세력을 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것은 신앙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실제 상황 속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기도를 하지만 상황이 어려워지면 슬그머니 기도를 하지 않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전능하셔서 당신의 뜻대로 구한 기도에 반드시 응답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번에 나이지리아 수양회를 합심해서 하도록 선교사들을 설득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이 합심해서 여름 수양회를 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선교지에서 동역을 하는 것은 한 쪽이 죽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 신앙을 가지고 죽을 때 하나가 되어 아름다운 동역의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다니엘의 세친구들은 죽은 자 가운데서도 살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왕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습니다(마 10:28).” 그들은 이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능히 구원하실 줄 믿었습니다.
둘째, 그들은 자신들이 왕의 풀무 불 속에 던져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의 믿었습니다. 그들은 왕의 위협 앞에서도 순수하게 하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왕의 풀무 불 가운데서 구원하지 아니하실지라도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죽으면 죽었지 우상 숭배는 안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믿음의 도전 앞에 순교자적인 자세로 임하였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절개를 지켰습니다. 그들은 지조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한마디로 순수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되 대가를 바라고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오,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그들의 순수한 신앙은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들의 순수한 신앙은 죽음보다도 더 강하였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왕에 대한 배반이요 반역이요 불순종이었습니다. 그들의 신앙 고백은 왕의 자존심을 크게 상하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이때까지 왕의 자존심에 이렇게까지 상처를 입힌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들에 대한 왕의 요구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믿음이 정면 충돌을 하였습니다. 진리는 대결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한 마음으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기거나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앞 뒤가 분명해야 합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는 십계명 말씀을 지켰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켰습니다. 그들의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얼마나 뜨거웠던지 왕의 풀무 불보다 더 뜨거웠습니다. 여호와의 불이 그들의 심령에서 타고 있었습니다. 왕의 위협도 그들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적으로 생각하면 꽉 막힌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인 지식 위에 체험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순수한 신앙은 복잡하지 않고 정치적이지도 않고 단순했습니다. 그들은 악형을 받되 구차하게 면하지 아니하였습니다(히11:35).
우리에게 필요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신앙은 무엇입니까? 하박국 선지자와 같이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17,18)”하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요회 역사가 성장하지 않아도 여호와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워 하며 기쁨을 주님의 역사를 섬겨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결혼을 하지 못할지라도 주님께 충성을 해야 합니다. 학생들은 내가 열심히 공부했지만 원하는 대로 장학금을 받지 못해도 사명인의 길을 가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나라에 선교사로 나가지 못해도 하나님의 뜻을 영접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얼마 전에 한 목자님은 열매가 없어서 선교사로 나가지 못하자 울면서 소감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해서 이방 양들을 섬기고자 했던 마음을 가지고 휘싱을 하면서 양을 얻고자 투쟁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여종의 순수한 믿음을 축복하시고 좋은 양들을 붙여주시고 열매 맺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해도 삐치지 말고 주님을 섬겨야 하겠습니다.
셋째, 그들은 지금 우상 숭배로 인해서 유대 민족이 포로 생활을 하는 줄 알았기 때문에 금신상에게 절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역사에 기초해서 현실을 직시하였습니다. 그들의 역사 인식은 날카로왔습니다. 그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는 것은 우상 숭배를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비록 높은 자리에 앉아서 편하게 생활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훈련 기간 중임을 알았습니다. 그들에게 금신상에게 절하는 것은 하나님의 훈련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겸손하게 하나님의 훈련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죽기까지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기 때문에 겸손하게 훈련을 받는 사람들을 때가 되면 높이십니다.
세 친구들의 고백을 듣자 느부갓네살 왕은 분이 가득하여 낯빛이 붉으락 푸르락 하면서 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풀무를 뜨겁게 하기를 평일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몇 명의 용사들이 왕의 명령에 따라서 세 친구들을 고의와 속옷과 겉옷과 별다른 옷을 입은 채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질 때에 풀무가 심히 뜨거워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을 태워 죽였고 세 사람은 결박된 채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떨어졌습니다.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서 급히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모사들에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런데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24).” 하나님께서는 세 친구들을 보호막으로 씌워서 보호하시고 함께 풀무 속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을 피하도록 하지 않으시고 불 속에서 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환난 가운데 있는 종들과 함께 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주님께 충성을 하는데 고난이 연속해서 닥쳐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 믿음을 지키며 인내하면 하나님께서는 기쁨을 주시고 그 신앙 인격을 연단하십니다. 환란의 터널을 통과하면 평강의 열매와 생명의 열매를 풍성히 맺히게 됩니다. 그리고 영원한 소망을 갖게 하십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극렬히 타는 풀무 아구 가까이 가서 그들을 불렀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그들이 나와서 보매 불이 능히 그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슬리지 아니하였고 고의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탄 냄새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털끝하나 상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는 그의 자녀들과 함께 하시며 물과 불 속에서도 구원하십니다. 우리는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환난 날에 무엇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자기 능력을 의지합니까? 물질을 의지합니까? 힘있는 사람을 의지합니까?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용기와 힘을 덧입어야 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조서를 내려서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가 무릇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참람한 말을 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터를 삼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바벨론에 사는 포로된 유대인들이 기를 펴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이방인 중에서 높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스스로 자기의 이름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드디어 왕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였습니다. 이를 볼 때 고난은 위장된 축복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의 검은 수레에 복을 싣고 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되 순수하게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추석 명절에 여러 우상들에게 절하도록 하는 유혹을 이기고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섬기고 죽도록 충성을 다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사는 여러분들에게 복을 넘치게 부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