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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2024년 느4강(8-10장)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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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81회 작성일 24-03-18 09:35

본문

2024년 느헤미야  4강
말씀 | 느헤미야 8장-10장
요절 | 느헤미야 9:38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가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봉하나이다 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은 52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성벽 재건에 성공하였습니다. 성벽을 재건했고 파수꾼도 세웠지만 건물이 그들의 신앙을 성장시켜 주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에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고 성전이 훼파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성벽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11장에서 성전 봉헌식을 하기 전에 8-10장을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신앙 공동체가 내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언약을 새롭게 붙잡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신앙 경륜이 오래 된 사람이 타락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지 아니하면 또 정기적으로 말씀을 공부하지 아니하면 신앙 경륜이 오래된 사람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히 공부하는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풍성하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성벽 재건을 완성한 후에 민간력으로 1월 1일 이스라엘 백성이 학사 에스라에게 이르러 한 가지 요청을 하였습니다. 즉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한 것입니다. 그들은 성벽 재건을 하느라 몸이 피곤할만한데 율법책을 읽고 강론해 주기를 요청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갈급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소원이 강렬했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성전답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의 양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할 때에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특별히 만든 나무 강단에 섰습니다. 회중들은 그 앞에 있었습니다.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섰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사람들이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6시간 동안 율법책을 낭독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들 중에 한 명도 졸거나 딴 짓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습니다. 그리고 백성이 제자리에 서 있는 동안 레위인들이 율법을 깨닫도록 그 뜻을 해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하고 그 뜻을 다 깨닫게 되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9절을 보십시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9장을 참고해 볼 때 자신들의 죄악과 하나님의 끝없는 용서를 깨닫자 그들은 마음에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주님이 베푸시는 크신 은혜를 생각하며 눈물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그들의 마음에 진리의 말씀이 깨달아 지고 하나님의 사랑이 전해졌습니다.

  에스라는 지난 13년 동안 레위인들을 훈련하여 성경을 읽고 준행하고 가르칠 수 있도록 준비시켰습니다. 우리도 지금 학생들이 성경 선생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매주 ‘목자의 삶’을 공부하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된 분들에게 양들을 보내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레위인들이 율법 낭독의 현장에서 특별한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레위인들의 일차적인 임무는 에스라가 히브리어로 읽는 것을 백성들의 일상 언어인 아람어로 통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낭독도 했습니다. ‘낭독’은 낭랑한 음성으로 글의 이미지나 정서를 표현하여 남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글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한 다음, 그 글의 내용이나 이미지, 정서 등을 듣는 사람에게 정확하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음의 고저장단과 완급에 유의하며 낭독했습니다. 또한 ‘낭독’이란 단어의 어근(파라쉬)은 ‘쪼개다’, ‘나누다’라는 의미입니다. 좀 더 명확한 이해를 위해 쪼개고 나누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후서 2장 15절에서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rightly divide)고 했는데 이는 올바른 해석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올바로 해석을 해야 올바른 적용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소원과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을 연구하고 순종할 때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대일 말씀 공부를 통해서 각 개인에게 인격적으로 성경을 깨닫고 적용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유익을 위해서 우상숭배를 하였습니다. 우상은 자기들이 이용하기가 쉬웠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깨닫고 보니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함으로써 실패한 삶을 산 과거의 쓰라린 죄악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도 하나님의 사랑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징계하시고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울었습니다.
 
  느헤미야와 에스라와 레위인들은 백성들에게 오늘은 하나님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며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줄 때 더욱 기쁨이 배가 됩니다. 나팔절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축제일입니다. 우리도 주일에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예배 후에 음식을 나누며 말씀을 공부하고 즐거워하는 가운데 힘을 얻습니다. 그 힘으로 한 주간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움으로 찬양하고 기도할 때에 우리는 영혼의 소생함을 얻게 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 백성들이 말씀을 깨달았다는 것은 단지 그들의 지성이 제대로 작동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백성들을 찾아오셨고, 그들의 삶 속에 들어오셨고, 그들과 교제하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고 하시며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진리의 영으로서 우리가 말씀을 공부하고 설교를 들을 때에 마음에 빛을 비추어 진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인격적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보통 ‘거룩한 날’이면 근엄하게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와 에스라와 레위인들은 백성들에게 맛있는 것을 먹고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 희락은 성령의 열매요 우리에게 힘을 주고 새롭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누리게 되는 경건한 즐거움은 우리를 복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일과 같이 거룩한 날을 지정하여 지키게 하신 목적은 우리가 즐거워하게 하기 위함입니다(신9:11,15;스6:22).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거룩하라고 하신 이유도 그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거룩이 기쁨을 가져옵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죄인들의 집에 들어가서 먹고 마셨습니다. 당시 바리새인과 요한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며 경건한 삶을 살고자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셔서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병을 고쳐 주시고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그리고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혼인 집의 신랑과 같으셨습니다. 그가 오심으로 우리는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자유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신앙생활이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우리도 말씀공부 하고나면 기쁘고 힘이 생깁니다. 또 일용할 양식 잘 먹고 나면 기쁘고 힘이 납니다. 회개하면 기쁘고 힘이 납니다.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런 즐거움으로 주님과 새 양들을 섬기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를 기도합니다. 

  13-15절을 보십시오. “그 이튿날 뭇 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에게 모여서 율법에 기록된 바를 본즉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은 일곱째 달 절기에 초막에서 거할지니라 하였고 또 일렀으되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산에 가서 감람나무 가지와 들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무 가지를 가져다가 기록한 바를 따라 초막을 지으라 하라 한지라.”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즐거워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헌신하고자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말씀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들이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지붕 위에, 혹은 뜰 안에, 혹은 하나님의 전 뜰에, 혹은 수문 광장에, 혹은 에브라임 문 광장에 초막을 짓고 그 안에 거하였습니다. 그들이 초막에 거하면서 조상들이 광야 생활을 하면서 고생한 것들을 기억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신 것을 생각할 때 너무나 기쁘고 감사하였습니다. 말씀을 듣는 것과 직접 순종해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도 말씀을 깨닫고 나서 이를 어떻게 준행할 것인가 결심하고 헌신하는 가운데 말씀을 체험하는 역사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지난 주 동아리 박람회를 위해서 많은 분들이 수고하였습니다. 신입생들에게 설문지를 돌리고, 쿠키를 만들어서 먹이고, 자리를 지키고, 기도하는 등 많은 동역자들이 합심해서 양들을 초청하였습니다. 이런 수고를 주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초청한 양들과 식사 교제를 하고 이들을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할 것인가 의견을 나누고 힘쓰기를 원합니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의 능력을 인격적으로 체험하기를 기도합니다.

  율법을 듣고 지킨 백성들 가운데 계속하여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9장 1-3절을 보십시오. “그 달 스무나흗 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고 이 날에 낮 사분의 일은 그 제자리에 서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의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 한마디로 백성들의 마음에 성령의 불이 붙었습니다. 그들은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회개하였습니다.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였습니다. 세 시간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하는 것을 듣고, 세 시간 동안은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그동안 선지자와 제사장들로부터 듣고 배우기만 하던 백성들이 이제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뜻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백성들의 소유가 된 것입니다. 영적 부흥이 일어날 때 수주일 또는 몇 달간 이런 예배가 지속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평양 대부흥 운동이 일어났을 때도 그랬고, 1980년 민족복음화 운동이 일어났을 때도 그랬고, 작년 미국 캔터키주 에즈버리 대학교에서 일어난 부흥 운동이 그러하였습니다. 백성들이 통성으로 기도하고 큰 소리로 마음껏 찬양하였습니다. “너희 무리는 마땅히 일어나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어다 주여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송축하올 것은 주의 이름이 존귀하여 모든 송축이나 찬양에서 뛰어남이니이다.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그들은 출애굽과 광야생활과 가나안 정복을 상기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우리도 나의 신앙 여정 가운데 함께 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기록할 때에 감사와 찬양이 나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앞으로 어떻게 어디로 인도하실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9:6-39절은 구약의 백미라고 합니다. 레위인들의 인도 아래에 그들은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셨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이스라엘 민족만의 조상이 아니요 약속을 믿는 모든 민족의 조상임을 말해 줍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은 모든 민족에게 열려있고, 하나님께서는 자기와 언약을 맺는 모든 백성들에게 축복의 기회를 주십니다. ‘아브라함 언약’은 열린 언약이며 모든 인류에게 열려 있는 소망이요 가능성입니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성품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여호와를 믿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그 말씀대로’ 언약을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대로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며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할 뿐 아니라 애굽으로 돌아가자며 반역을 꾀하였습니다. 송아지를 부어 만들어 하나님을 크게 모독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죄악된 본성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런 인간을 용서하십니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셔서 그들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자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우리의 구원과 믿음의 성장은 바로 이 은혜에 기초해 있습니다.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하나님의 언약은 의심할 수 없으며,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될 것임을 벅찬 감격으로 확신하게 됩니다. 바벨론 포로의 쓰라린 좌절감을 맛본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이 시점에서 ‘기록된 말씀’에 관심을 갖고 낭독해 주기를 열망하며 더 알기 위해 학사 에스라를 찾아가는 것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성품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약속이 기록으로 보존되어 우리 손에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희망이며 안식이요 위로가 됩니다.

  9장 25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견고한 성읍들과 기름진 땅을 점령하고 모든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과 판 우물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허다한 과목을 차지하여 배불리 먹어 살찌고 주의 큰 복을 즐겼사오나” 이런 복을 받았는데도 순종하지 않고 거역하고 율법을 등지고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들이 악행을 그치지 아니함으로 이방 나라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들 위에 세운 이방 왕들이 이 땅의 많은 소산을 얻고 그들이 자신들의 몸과 가축을 임의로 관할하니 심히 곤란을 겪게 되었습니다.

  38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봉하나이다 하였느니라.” 그들은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지도자들이 다 인봉하였습니다. 그들은 언약을 새롭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였습니다. 주일 메시지를 듣고 작은 결단을 하고 순종할 때에 신앙의 성장을 체험하게 됩니다. 삶의 변화는 작은 결심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가 매주 메시지를 듣고 소감을 써서 나누는 가운데 영적 성장과 성숙을 경험해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으로 풍요를 누릴 때에 영적인 눈이 멀어버리기 쉽습니다. 세상적인 풍요만 즐기다가 정말로 무엇이 먼저고 중요한지 구별하지 못하는 잘못을 범하기 쉽습니다. 물질적인 풍요를 하나님은 복으로 주십니다. 우리는 거기에 매몰되어 물질을 우상으로 섬기면 안 됩니다. 이런 복을 주신 근원이 누구이신지 기억하고 주신 복을 나누기를 힘쓰고 말씀을 붙들기를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유지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우리의 죄에 대해서 오래 참으신 하나님은 계속하여 오래 참으실까요? 그렇습니다. 연약한 우리는 계속하여 연약할까요? 신앙 연륜에 따라 개인적인 낙차가 있지만 여전히 연약합니다. 죄에는 면역력이 없습니다. 기나긴 역사를 통해 충분히 입증된 이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이제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인장을 찍어 언약을 갱신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하여 결심하더라도 그 언약의 효력과 지속성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근거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믿을만 하십니다.

  10장은 언약을 인봉한 사람들의 명단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들은 언약을 지키겠다는 조건으로 무엇을 맹세했습니까? 자녀들을 더 이상 악한 영향력을 끼치고 우상숭배로 이끄는 이방인들과 결혼시키지 않겠다고 합니다. 둘째로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겠다고 합니다. 우리로 말하면 주일 성수입니다. 셋째로, 십일조를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레위인들을 잘 지원하여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언약을 갱신하고 결단하는 많은 부분을 첫 열매와 십일조와 헌물에 할애하고 있습니다(34-38). 진정한 헌신은 물질적 희생을 포함합니다. 헌신은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 속에서 나오는 자발적인 것일 때 아름답습니다.

  결론적으로 느헤미야와 백성들이 율법을 듣고 깨닫는 것으로 언약 갱신이 이루어졌습니다. 율법을 통해 자신들과 맺은 언약을 신실하게 지켜오신 하나님의 놀라운 긍휼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율법을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언약에 신실하신 분인지 깨달았습니다. 율법을 통해 어떤 형편과 조건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언약을 갱신하고 회복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았습니다. 이처럼 율법을 깨닫는 것이 하나님과 언약관계를 새롭게 하고, 영적인 개혁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우리가 봄학기에 이 말씀을 즐거워하며 전하는 가운데 영적 부흥을 체험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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