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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23년 성탄2강(1:67-80) 구원의 뿔이요 돋는 해 되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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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63회 작성일 23-12-25 07:23

본문

2023년 성탄말씀 2강
말씀 | 누가복음 1:67-80
요절 | 누가복음 1:69

구원의 뿔이요, 돋는 해 되신 예수님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메리 크리스마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를 덮듯이 흰 눈이 온 세상을 덮었습니다. 우리는 동교화랑 연합 여름 수양회, 미국 국제 여름 수양회, 학생들과의 일대일과 모임으로 바쁘게 지냈는데 벌써 한 해를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올 한 해 동안 여러 모양으로 우리를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혹시 한 해를 생각할 때 뿔이 나신 분이 계십니까? 구원의 뿔 되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가 무엇인지 생각할 때에 마음의 분노가 사라지고 평강과 기쁨이 솟아납니다. 또한 예수님은 돋는 해가 되사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부터 임하셔서 생명의 빛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사가랴는 하나님 앞에 의인이요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1:6). 그런데 그가 천사의 말을 믿지 않아 10개월 동안 말 못하는 징계를 받았습니다.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믿을 만한 제사장’ 사가랴조차도 의심할 정도로 그리스도의 탄생과 사역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새로운 일임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의 찬송은 의심에서 확신으로 위대한 도약을 이루었습니다. 10개월 동안 침묵의 시간을 통해 그가 깨달은 진리는 무엇입니까? 특히 언약의 성취와 관련하여 어떤 사실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송을 하게 하였을까요?

  첫째, 구원의 뿔 되신 예수님. 엘리사벳이 해산할 기한이 차고 아들을 낳으니 이웃과 친족이 주께서 그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하였습니다. 팔 일이 되어 아이에게 할례를 하러 와서 그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 2세로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 엘리사벳이 반대하였습니다. “아니에요. 요한이라 할 것입니다.” 그들은 네 친족 중에 이 이름으로 이름한 이가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친족들은 족보에도 없고, 돌림자도 없는 이상한 이름을 짓는다며 수군거렸습니다. 그래서 최종결정을 그 아버지에게 몸짓으로 물었습니다. 그가 서판을 달라 하여 그 이름을 썼습니다. “요한.” 사람들은 다 놀랍게 여겼습니다. 더 놀라운 일은 사가랴의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의 일성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었습니다.

  사가랴는 왜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합니까? 68,69절을 보십시오.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돌보사’라는 단어는 ‘방문하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이 심판하고 구원하기 위해 찾아오심을 가리킵니다.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모든 원수는 심판하러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속량’은 원수에게 사로잡혀 종 노릇하며 부역하는 처참한 상황을 전제로 합니다. 속량의 비참함이란 ‘원수의 포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원하지 않으나 자기의 죄, 감당하기 어려운 빚, 전쟁의 패배 때문에 사로 잡혔습니다. 이제 원수 아래서 목숨이라도 부지하고 부스러기 음식이라도 얻어먹기 위해 인질로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형편이 이와 다름이 없습니다. 죄를 혐오하면서도 죄의 낙을 즐기고, 세상의 부조리와 불의에 분개하고 개탄하면서도 그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불의와 불법에 부역하고 동조하는 모습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집에 구원의 뿔을 일으켜서 그 백성을 속량하시고 자유롭게 하십니다. 동물의 뿔은 힘과 강함을 상징합니다. 다니엘서에는 뿔이 왕들의 권세를 상징합니다(단8:20). 하나님이 일으키실 구원의 뿔 메시아는 왕이면서 강력한 구원자이십니다. 코뿔소의 뿔의 위력은 제자리에서 머리만 한번 올려 치는 힘만 해도 3t이나 된다고 합니다. 돌진해서 치면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소뿔에 찔리면 뼈가 다 부서져버립니다. 요한계시록은 사탄을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며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을 쓴 용으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밤낮으로 그 뿔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찌르며 참소합니다. 사울은 준수한 외모와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이스라엘 초대 왕이었습니다. 이런 그가 시기의 뿔에 찔렸을 때 하나님의 영이 떠나고 다윗만 쫓다가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위대한 다윗도 정욕의 뿔에 찔렸을 때 간음을 하고 살인을 조장하였습니다. 그로 인한 죄의식으로 고통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는 구원의 뿔되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전쟁에서 승승장구하고 이렇게 하나님께 찬양하였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시 18:2).”

  오늘날도 사탄은 여전히 죄의 뿔로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꿈과 비전을 가져야 할 청년들이 두려움의 뿔에 찔려 픽픽 쓰러지고 소망 없이 살고 있습니다. 어두운 생각을 하면서 무기력한 생활을 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어두움, 사기, 거짓, 가짜뉴스 등을 보면 사탄이 활개를 치고 활동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절도범은 감소하는데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분야에 거짓말을 하는 세력이 너무나 뻔뻔스럽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탐욕의 뿔에 찔려서 사탄의 속박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뿔 되신 예수님은 죽기를 무서워하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온갖 죄와 허물을 뒤집어 쓰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 예수님을 보고 말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집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우리가 아기일 때 우리의 배설물을 누가 치워줍니까? 사랑이 많으시고 강하신 엄마입니다. 예수님은 사랑과 힘이 있으십니다. 그는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자신을 종의 모습으로 낮추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싸질러 놓은 죄와 각종 오물들을 그 몸에 뒤집어쓰고 죽으셨습니다. 이는 영적 도덕적 힘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비우고 죽으실 수 있을 정도로 강하셨습니다. 그는 죽기를 무서워하였지만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심으로 이를 이기셨습니다. 그 힘의 능력으로 죽으셨고 또 부활하셨습니다. 구원의 뿔 되신 예수님은 힘과 권능으로 사탄의 머리를 박살내시고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고 어둠의 권세에서 자유롭게 하십니다. 그 결과 우리에게 구원의 능력을 베푸셨습니다. 지금 주님은 성령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다스려 주십니다. 죄의 세력을 다스리시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고자 하는 소원을 주시고 주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구원의 뿔 되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날 구원의 뿔 되신 예수님을 믿고 도전하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지난 주에 박노아기성 선교사를 일본 삿포로에 파송하였습니다. 그는 공부를 하건, 취미생활을 하건 무엇을 시작해도 끝까지 하지 못하였습니다. 어려워지면 빠르게 포기하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말씀을 공부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 그는 말씀에 순종하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는 소감 쓰는 훈련을 받으면서 변화가 되어 일본 기업에 취직도 하고, 선교후보 훈련도 마치고, 선교사 파송소감도 발표하였는데 이 모든 것이 꿈만 같다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늘 함께 하셔서 일본 삿포르에서 김예레미야 선교사님 가정, 이경용, 강선주 선교사들과 합심해서 삿포르 UBF 개척 역사를 잘 섬기게 하시고 영광을 나타내시기를 기도합니다. 구원의 뿔 되신 주님께서 그와 함께 하셔서 그가 일본 사람들에게 복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를 속량하고 구원하는데 왜 이렇게 강력한 구원의 뿔이 필요한 것입니까? 왜냐하면 상대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70,71절을 보십시오.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예수님은 직접 사탄을 ‘강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11:21). 그러나 예수님만이 유일하게 사탄보다 더 강한 구원의 뿔이 되십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8:33).”

  우리는 사람을 이해할 때에 흰 개와 검은 개가 우리 안에 살고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어느 쪽 개에게 먹이를 주는가에 따라서 선한 의지가 이길 수도 있고 악한 의지가 이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사탄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거듭난 크리스천들은 새로운 본성과 옛 본성이 전쟁을 치루며 살아갑니다. 옛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새 피조물이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변화의 과정, 성장하고 성숙해 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의 뿔 되신 예수님을 의지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꾸 자기 힘으로 선한 삶, 거룩한 삶을 살고자 힘쓰다가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의를 쌓다가 하나님과 관계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도 사탄에게 종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도 그랬고(눅 22:31), 바울도 육체의 가시 곧 사탄의 사자에게 찔렸고(고후 12:7), 아나니아와 삽비라(행 5:3)가 그러했습니다. 분노와 용서하지 못하는 것, 죄의 오물들을 배설하지 않으면 사탄이 이에 붙어서 신자들을 공격을 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나를 사랑하시고 돌보시는 주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5-37).”

  우리가 원수들과의 싸움에서 넉넉히 이길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72,73절을 보십시오.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하나님이 시작하신 구원은 조상들에게 약속된 긍휼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신 결과 우리는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언약을 잊지 않으십니다. 언약을 기억하는 것과 긍휼(또는 인애)을 베푸는 것은 같은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언약을 기억하실 때 그의 백성들은 긍휼을 얻고 구원을 선물로 받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건지시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74,75).” 우리가 그 동안은 원수의 손 아래 있었습니다. 죄의 종이고 사탄의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언약 백성이 되어 주의 손이 함께 하십니다. 이렇게 원수에게서 건지심을 받은 구원의 결과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입니다. 주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 없이 섬기게 되었습니다.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이 예수님 때문에 가능해졌습니다.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서 속죄제사를 드려야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으실 때에 지성소와 성소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이제 그를 믿는 자는 두려움이 없이 하나님께 나아가 그를 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평생 동안 주님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관계의 회복이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원기가 왕성해도 은퇴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나이가 되어 맡은 바 직분에서 은퇴를 해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은퇴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의 뿔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는 평생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둘째, 돋는 해 되신 예수님. 사가랴의 아들 요한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게 됩니다. 그는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할 것입니다.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입니다. 요한이 해야 할 ‘준비’란 메시아의 길을 닦는 준비로서, 사람들이 메시아의 사역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당시 백성들은 세속적 왕과 같은 메시아를 기다렸으나 요한은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려야 합니다.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한다’를 NIV 성경은 ‘구원의 지식(the knowledge of salvation)’으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게 ‘구원의 지식’입니다. ‘구원’에 대한 체계적이고, 논리적이고, 정확하고, 분명한 지식을 전해주는 게 중요합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내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사탄은 사람의 생각을 사로잡아 자신의 세를 확장하고자 합니다. 만일 사탄이 우리의 생각을 다스리게 되면 사탄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의 통치권을 확장하게 됩니다. 사람의 생각을 사로잡기 위한 사탄의 노력은 다른 어떤 전쟁에서의 노력보다 치열합니다. 오늘날 사탄은 자유주의 사상, 모더니즘, 해방주의, 무신론, 인본주의, 이단의 사상 등으로 견고한 진을 구축하였습니다. 자유주의 신학, 본문 비평 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게 하고, 절대성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리고자 합니다. 사탄은 ‘동성애의 권리’라는 말을 표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전에는 우리의 의무에 대해서 교육을 받았는데 지금은 ‘권리 운동’이 홍수처럼 넘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의 권리, 개인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주장하며 변태적인 성욕구, 외도, 이혼과 가정 파괴, 마약 등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생각과 삶을 지배하는 물질적이고 상대적이고 쾌락적인 가치관들은 강력합니다.

  그러나 고린도후서 10장4,5절에 보면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라고 말씀합니다. 거짓된 사상과 가치관을 깨뜨릴 수 있는 것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탄의 궤계를 드러내고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할 만큼 강력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고 능력있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사람의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순종하도록 인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을 전하는 사람의 약함에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머리에서는 나올 수 없는 지혜와 통찰과 깊은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전할 때에 성령께서 마음에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추입니다. 우리는 외롭고 불안하고 염려하던 삶에서 주님이 함께 하심으로 평강의 길로 인도함을 받게 됩니다.
 
  돋는 해는 구약에서 앞으로 오실 메시아를 가리키는 은유입니다. 원수와 미워하는 자의 손 아래 있으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상태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합니다. 인생의 의미, 목적, 희망, 가능성을 가려서 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외로움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을 봅니다. 히브리서 2:15은 말씀합니다.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사탄은 사람들의 마음에 죽음에 대한 갈망을 일으킵니다. 하루에 44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고 합니다. 악령의 미혹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정신과의 치료도 필요하고 약물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동시에 돋는 해 예수님은 어둠에 가려져 있던 것들을 드러내어 보게 하시고 우리 인생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게 되면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고 평화의 삶으로 인도를 받습니다. 

  요한복음 1장 4절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사도바울도 율법과 죄의식으로 어둠에 사로잡힌 자였습니다. 자신의 의를 주장하며 크리스천들을 핍박하던 자였지만 전혀 마음에 평안이 없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이것이 사도바울의 고백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그에게 다메섹 도상에서 눈이 멀 정도로 강력한 예수님이 빛으로 찾아오셨을 때 그를 둘러싼 모든 어둠의 세력은 싹 물러가게 되었습니다. 장로의 유전으로 바뀐 율법, 자기의, 교만의 어둠들을 사라지게 하시고 그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는 에베소서 5장 8절에서 성도들에게 권면하였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돋는 해 예수님이 우리에게 비추어지면 더 이상 어둠이 우리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주 안에서 우리도 빛이 되어 빛의 자녀들처럼 살게 됩니다. 돋는 해 예수님은 앞이 보이지 않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막막하던 우리들을 진리와 생명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또한 해가 떠오를 때 만물이 소생하고 에너지를 얻듯이 우리의 삶은 역동적이고 열정적이 됩니다. 말라기 4장 2절은 말합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돋는 해 되신 예수님이 우리를 비추실 때 우리는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와 같이 힘차게 뛰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날마다 돋는 해 되신 주님이 비추어 주시는 은혜의 빛을 받고 일생 주님을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새해가 밝아오고 있습니다. 지나간 일들은 잊어버리고 돋는 해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산 소망으로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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