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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23년 눅38강(22:39-71) 아버지의 원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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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79회 작성일 23-05-28 13:30

본문

2023년 누가복음 제 38 강
말씀 | 누가복음 22:39-71
요절 | 누가복음 22:42

아버지의 원대로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기도하신 내용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자기 생각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실행할 힘을 덧입으셨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십자가 죽음을 감당할 내적 준비를 하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길이요 하나님과 친밀함을 가꾸는 은혜의 수단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행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습관을 따라 기도하러 감람산에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오시면 밤마다 이곳에서 기도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하심으로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영적으로 재충전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은 예수님 생애에 가장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곧 인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야만 합니다.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무엇보다도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습관적으로 기도하되 가장 중요하고 긴박하고 결정적인 순간일수록 기도해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배웁니다. 하루 하루 할 일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크리스천들은 새벽기도를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새벽마다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 말씀을 듣고 기도함으로 하루의 방향을 잡을 때 하루 하루가 의미와 열매로 충만해집니다.
 
  예수님은 감람산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도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사탄의 유혹이 있고, 또 우리도 육신을 입고 연약한 가운데 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믿음을 떨어뜨리고 죄에 빠지도록 시시때때로 유혹을 합니다. 우리는 이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영적인 전쟁을 하는 중입니다. 자신과 양들의 신앙 성장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시험을 피할 길을 주시고 시험을 이길 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영적인 분별력이 생깁니다. 십자가 사건은 예수님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큰 시련이었습니다. 몇 시간 후면 예수님이 체포되어서 심문받고 처참하게 죽으시는 모습을 목격할 것입니다. 이로 인해 그동안 예수님께 가졌던 그들의 믿음과 기대는 완전히 깨어집니다. 헛된 희망을 품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생각에 허탈해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처럼 고난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스승을 버리고 도망을 칠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보는 앞에서 세 번씩이나 그의 제자임을 확인받지만 실패합니다. 유혹이 강할수록 이에 맞설 수 있는 특별한 힘이 필요합니다. 그 힘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데서 나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줄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신실한 믿음을 갖도록 붙들어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시험 중에 있는 분이 있습니까? 낙심 되는 일이 있습니까? 의욕을 잃어버리셨습니까? 혼자서도 기도해야 하지만 합심해서 기도합시다. 두 세 사람이 합심해서 기도할 때 주님이 그 가운데 함께 하시고 시험을 더 잘 이길 수 있습니다. 시험 당하는 것을 함께 나누고 합심해서 기도할 때 많은 위로와 힘을 얻게 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중보기도하심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서 돈 던질 만큼 즉 30-40m 정도 떨어져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무릎을 꿇는 것은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자 하는 간절함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단독자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는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할 때에 “아버지여”라고 부르셨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진실되게 자기의 속마음을 아뢰었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예수님은 죽음의 잔을 마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잘 아셨습니다. 제자들에게도 여러 차례 고난 받고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죽음의 잔을 옮겨달라고 기도하십니다. 십자가에 달리지 않고도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면 그 방법대로 해달라고 기도하십니다. 이는 십자가에 달려서 죽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형은 인류가 고안해낸 가장 무서운 형벌입니다. 이런 형벌 앞에서 예수님도 두려우셨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으셨습니다. 육체적인 고통보다 예수님이 더욱 두려워하신 것은 인류의 죄로 인해서 죄인 중의 괴수가 되고, 형벌을 받고,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깨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언제나 그 분과 완벽한 친밀함을 유지하셨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서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시고 분리되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는 것은 가장 큰 고통입니다. 예수님에게는 하나님 아버지와 분리된 삶 자체가 지옥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할 수만 있다면 죽음의 잔을 마시지 않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을 하나님 아버지께 털어놓으셨습니다.

  우리의 속 마음을 하나님께 털어 놓을 때 그 자체로 쉼이 됩니다. 우리는 인생의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 괴로운 짐을 지고 가면서 이 마음을 나눌 대상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는 그런 나눔을 하면서 위로를 받고 쉼을 얻습니다. 어린 자녀들을 키우는 어머니들이 함께 모여서 자녀 양육에 따르는 어려움을 나눌 때 마음의 위안을 얻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는 목자님들이 함께 직장생활의 어려움을 나눌 때 위로가 됩니다. 학생들은 팀플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나눌 때 위로가 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에도 하나님 아버지와 이렇게 기도하심으로 쉼과 위로를 얻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기도할 때에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듯이 하면 좋습니다. 대화를 깊이 나눌 때 정이 생깁니다. 아버지와 자녀가 하루에 일분 정도만 대화를 나눈다면 어떻게 될까요? 가족이라고 말할 수 없겠죠? 우리가 하나님과 그런 관계를 맺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우리의 소원을 아뢰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구하고 그 뜻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생각이 있지만 이를 부인하셨습니다. 자기 부인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고 부활 승리에 대한 소망도 있어야 합니다.  그때 자기의 것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자기를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과 인생을 맡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내가 갈 길도 다 알고 계십니다. 사실 하나님 아버지 편에서 생각해 볼 때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버리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것도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당하시는 고통보다 하나님 아버지가 당하는 고통이 더 크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그 길 외에는 인간을 구원할 길이 없었기 때문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셔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부인을 가장 깊게 하신 분이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는 별 관심이 없고 자기 뜻에만 관심을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어주시도록 눈물로 간구합니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삐지고, 힘들어 하고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더 이상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런 자기중심적인 기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기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자신을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뜻대로만 하고자 할 때 믿음의 성숙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영적 어린아이의 상태로 머물러 있게 됩니다. 적극적으로 자기의 뜻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영적 축복을 경험하고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아도 순종하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손해가 따른다든지, 고난이나 수치가 따를 수 있습니다. 요셉도 보디발 여사가 동침하자고 할 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를 거부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추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런 고난을 통해서 내면의 연단을 받았고, 고난 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긍휼이 깊어졌습니다. 그는 기근으로 고통당하는 백성들을 돌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됐습니다.

  예수님께서 힘쓰고 애를 써서 기도하실 때 천사가 하늘로부터 나타나 힘을 더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간절함을 가지고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영적 전쟁이기에 혼신의 힘을 다하셨습니다. 기도할 때에 우리는 기이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히브리서 5:7에 보면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요회에서, 또는 가족 기도모임을 할 때에 기도제목을 기록하고 그 응답 여부를 체크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얼마나 신실하게 응답하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4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기도할 때에 천사가 기도할 힘을 더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끈질기게 반복적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땀이 핏방울 같이 될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힘들게 기도하셨을까요? 자신이 져야 할 십자가를 생각할 때 너무나 슬프고 힘드셨기 때문에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에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한 것의 결과는 그가 심문을 받을 때 담대하게 자신을 밝힘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이르셨습니다.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예수님의 말씀에는 제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배어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그들 중 누군가가 배신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부인을 예언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도 힘들었지만, 죽음 앞에 슬퍼하고 힘들어 하는 예수님을 보면 더 힘들어 마음이 매우 슬펐습니다. 그들은 슬픔의 무게로 인해서 기도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일에 지치고 힘들면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잠을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깨어서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제자들에게 어떤 시험이 휘몰아쳤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에 한 무리가 오는 데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그들을 앞장서 왔습니다. 그는 뻔뻔스럽게 예수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하였습니다. 무리가 예수님을 잡으러 오자 주위에 있던 제자들은 주여 우리가 칼로 치리이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오른쪽 귀를 떨어뜨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르셨습니다. “이것까지 참으라.” 새 번역은 “그만해 두어라”로 표현했습니다. “더 이상 이와 같은 짓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칼로 자신을 보호해주고자 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검을 가지는 자는 검으로 망합니다. 분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습니다. 제자들의 이런 돌발적인 행동은 문제를 확대시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방해할 수 있었습니다. 영적인 전쟁을 인간적인 싸움으로 변모시켜 하나님의 일에 훼방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일어나는 일을 몸소 겪어야만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검이 아니라 희생과 겸손과 섬김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은 체포당하는 상황에서도 자신을 잡으러 온 말고의 귀를 만져 낫게 해주십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문제를 그 능력으로 수습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체포되어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갔습니다. 일이 어떻게 될까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상관없는 사람처럼 멀찍이 따라갔습니다. 자기가 죽을지언정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는 말이 생각나서 따라갔습니다.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습니다. 한 여종이 베드로가 불빛을 향하여 앉은 것을 빤히 쳐다봤습니다.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그러자 베드로가 부인하였습니다. “이 여자여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조금 후에 다른 사람이 보고 말했습니다. “너도 그 도당이라.” 베드로는 “이 사람아 나는 아니로라”고 부인했습니다. 한 시간쯤 있다가 또 한 사람이 장담하였습니다.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베드로가 큰 소리로 “이 사람아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말하고 있을 때에 닭이 참지를 못하고 울었습니다. 이때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셨습니다. 베드로의 눈과 예수님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베드로는 주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예수님은 베드로보다 그를 더 잘 알고 계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는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실 때 통곡하셨는데 베드로는 실패로 인해서 통곡을 했습니다. 그 울음은 실로 자복과 회개의 눈물이었습니다. 이 순간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죄악된 존재인가를 깊이 깨달았습니다. 이런 자신의 연약함을 다 아시면서 한결같이 사랑하시며 소망을 끊지 않으신 예수님으로 인해서 그의 마음은 뜨거워졌습니다. 실패를 통해서 그는 겸손해지고 예수님께 대한 믿음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예수님의 기도가 제자들의 믿음을 붙들어주고 견고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22:32) 
 
  우리도 때로는 신자로서, 목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부끄럽고 신자 같지도 않은 자신, 목자 같지도 않은 자신을 발견할 때 부끄럽습니다. 내 속에  죄의 쾌락을 따라 살고자 함을 느낄 때 당황이 됩니다.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어 있는 것입니다(딤전 5:6). 쾌락을 사랑하는 자신을 깨닫고 회개합니다. 그러나 통곡하는 베드로를 보면서 우리는 위로를 받습니다.

  예수님이 체포되신 후 그를 지키는 자들이 희롱하며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눈을 가리고 너를 친자가 누구인지 알아맞혀 보라고 희롱했습니다. 또 여러 말로 욕하였습니다. 날이 새자 백성의 장로들 곧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모여서 예수님을 그 공회로 끌어들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심문했습니다.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우리에게 말하라.”  예수님은 내가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할 것이요 내가 물어도 너희가 대답하지 아니할 것이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하시니 다 소리쳤습니다.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예수님은 분명히 대답하셨습니다. “너희들이 내가 그라고 말하고 있느니라.”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서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그들도 어찌 더 증거를 요구하리요 우리가 친히 그 입에서 들었노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정체성을 밝히심으로 승리하셨습니다. 비록 이 고백을 통해서 죽음에 이르게 되었지만 자신이 왜 죽는지 분명히 밝히신 것입니다. 그는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서 그리스도로서 죽으셨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먼저 힘써 기도하셨습니다. 기도의 씨름을 통해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시련의 때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제자들에게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깨어 기도해야 할 때에 슬픔에 잠겨서 깊은 잠을 잤습니다. 기도함으로써 환난의 때를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고난이 닥치자 예수님을 버려두고 도망갔습니다.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예수님은 체포되고 심문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과정 속에서도 자신에 대해 예언된 말씀들을 성취해나가십니다. 육신의 괴로움에 지배당하지 않으시고 상황을 주도하시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십니다.
 
  우리는 마음은 원이지만 육신이 연약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도 그 뜻대로 살지 못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자주 넘어지고 실패를 경험합니다. 무력한 신앙생활을 극복하기 위해서 30분 이상 기도하십시오. 바쁘십니까? 그러면 한 시간 이상 기도하십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자신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에 힘씀으로서 자신의 연약함을 이기고 시대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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