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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23년 눅29강(19:1-19) 엎드리어 감사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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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62회 작성일 23-03-19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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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누가복음 제 29 강
말씀 | 누가복음 17:1-19
요절 | 누가복음 17:16

엎드리어 감사하니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감사할 때 우리의 뇌와 신체에는 어떤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날까요? 감사함은 스트레스를 줄이고 행복감을 증가시키며 면역력을 강화하고 잠을 개선하고 우울증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감사함은 작은 일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감사가 나옵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 다른 사람도 용서가 됩니다. 감사는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 냅니다. 우리가 이 시간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감사한 마음이 있을 때 용서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1,2).” ‘실족’은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을 뜻합니다. 실족하게 하는 것은 어떤 사람을 죄를 짓도록 미혹하는 것 혹은 잘못된 신앙을 갖게 하거나 신앙을 저버리도록 꼬이는 것입니다. 실족은 예수님을 믿는 형제로 하여금 복음 진리에서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거짓된 가르침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서 파선하게 하는 죄를 가리킵니다. 이런 일들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 만일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해야 합니다. 형제가 죄를 범하는데도 관계성이 깨질까봐서 회개도록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형제로 인해서 교회는 곰팡이가 금방 퍼지듯이 죄로 만연하게 됩니다. 면책은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불쌍히 여겨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심 같이 해야 합니다(엡 4:32). 우리는 각자 자기 문제로 씨름을 합니다. 그러나 자기 문제를 넘어서서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살펴야 합니다. 우리가 요회모임을 하면서 삶을 나누고 소감을 나누다 보면 서로를 잘 알게 됩니다. 서로를 알아갈 때에 사랑이 생기고 하나가 됩니다. 한편 이렇게 자기를 드러내다보면 갈등이 생깁니다. 이런 갈등을 통해서 우리는 자기의 모난 부분이 깎이고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갑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오래 참으시고 날마다 수십 번 용서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내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내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우리는 용서해야 합니다.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에 있는 한 의사는 지금까지 15,000명의 암환자를 상대해왔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절망한 사람들, 세상과 하나님에 대해 분통을 터트리는 사람들, 용서하지 못해서 증오심에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환자들을 만날 때 첫 번째 질문이 “용서하셨나요?”였습니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심각한 암이라도 용서한 환자들 가운데 54%가 5년 이상 살았고, 10년이나 15년 이상을 산 환자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는 암에 대한 가장 훌륭한 예방약은 용서라고 말했습니다. 용서란 잘못한 사람들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생들에 대한 진정한 심판자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고 내가 복수하지 않고자 결단할 때 증오심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누리고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복수는 서로를 파국으로 이끌어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형제의 죄를 어느 정도까지 용서해주어야 할까요?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형제의 죄를 무한정 용서해주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실족하게 되어서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가 회개할 때마다 용서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반복해서 죄를 짓는 한 사람 때문에 너무나 괴로워서 하나님께 하소연했습니다. “하나님 언제까지 참아야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왜 반복해서 죄를 짓는 저런 사람을 데려가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은 이런 그에게 “나는 너를 언제까지 참아야 하느냐?”되물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일만 달란트(6조원) 빚을 탕감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죄지은 사람들을 용서해주어야 합니다. ‘용서’(아피에미)는 “자신을 풀어주다”, “멀리 놓아주다”, “자유롭게 하다”는 뜻입니다. 복수는 심판자 되신 하나님께 맡기고 마음으로부터 풀어주는 것이 용서입니다. 내게 손해를 끼친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내가 그에게 매이게 됩니다. 그가 있는 모임에 가지 않고자 피하게 됩니다. 늘 그 사람을 생각하며 마음이 불편합니다. 용서로 인해서 자유를 얻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용서는 상대방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이라는 책을 쓴 스티븐 코비가 뉴욕 지하철을 탔습니다. 옆에 한 아버지와 한 가족이 탔습니다. 아버지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 있고 어린 아이들은 지하철에서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합니다.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점점 불편해집니다. 저 아이는 어떻게 저렇게 버릇이 없냐? 저 아이의 아빠는 어떻게 저렇게 무책임하냐? 비난하는 마음으로 노려봅니다. “아이들을 좀 조용하게 해 주시겠어요?” 그 때 아이의 아버지가 고개를 들고 한마디 하지요…. “죄송합니다. 사실은 우리는 방금 병원에서 왔습니다. 아이들의 엄마가 오늘 죽었습니다.” 바로 이 말을 듣는 순간…. 스티븐 코비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180도 바뀌게 됩니다. 저 어린 것이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도 모른채 저러고 있구나… 불쌍한 마음이 솟아나고 아이고, 아내도 없이 어떻게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그러니 저렇게 경황이 없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된 것입니다. 왜 한 순간에 사람들의 마음이 바뀌게 되었습니까? 사연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사연이 있는 것처럼 상대방에게도 사연이 있지 않겠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이토록 사랑하실까? 저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사연을 다 아시기 때문이라고 종종 생각해 봅니다. 따라서 하겠습니다. “사연이 있겠지!!” “사연이 있겠지!!” 그 사람의 사연을 알면 용서가 됩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에게 믿음을 더해 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응답해 주십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은 작지만 실제적인 믿음입니다. 진실한 믿음입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현재 일하고 계심을 실제로 믿는 믿음입니다.

  둘째, 무익한 종의 자세(7-10). 예수님 당시 주인과 종의 관계는 어떠했을까요? 어떤 사람에게 한 종이 있었습니다. 그 종은 새벽부터 밭에 나가서 하루 종일 밭을 갈고 양을 쳤습니다. 요령을 피우지 않고 충성스럽게 맡은 일을 감당했습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몹시 지치고 배가 고팠습니다. 주인은 이런 종더러 말을 합니다. “너는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허리에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이것이 당시 종의 위치였습니다. 종은 하루 종일 수고했지만 많은 일을 했다고 해서 주인에게 칭찬받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이 인정해주지 않고 보상해주지 않아도 손해의식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종은 종이기 때문입니다. 종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입니다. 나도 사람인데 이런 생각은 통하지 않습니다. 종은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당시 종은 말하는 나귀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님은 이 비유의 결론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내가 이만큼 일했으니 내가 구하는 것을 주십시오. 이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일을 하고 숨기면 은혜가 됩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어떠실까요? 누가복음 12:37을 보면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한 일에 대해서 상급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상급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그의 일을 하는 자체가 은혜입니다. 여기에 나온 종은 무익한 종이 아닙니다. 주인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유익한 종입니다. 그러나 종은 스스로 유익한 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행한 업적 때문에 교만해지지 않습니다. 대개 일을 열심히 해서 큰 업적을 이루면 자만심에 빠집니다. 교만해져서 감사함을 잃어버리고 자기 의를 주장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영적 성장이 막히고 쓸데없는 종이 되어버립니다. 사람이 충성한 후에 교만을 극복하고 겸손한 자세를 갖는 것처럼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는 누구인가 끊임없이 돌아보면 마음이 낮아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님의 뜻대로 행한 후에 교만해지지 않도록 무익한 종의 자세를 가지라고 당부하십니다.

  셋째, 열 명의 나병환자를 고치신 예수님(11-19).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셨습니다.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님을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보시고 그들에게 이르셨습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만지지도 않았고 병이 나으라는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단순히 제사장에게 가라는 명령만 하셨습니다. 나병환자들은 그 말씀에 순종했을 때 그들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참된 믿음은 순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람의 장군 나아만도 선지자 엘리사의 말에 순종하여 요단강에 가서 몸을 씻을 때에 그 문둥병이 나았습니다(왕하5:8-14).

  나음 받은 열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왔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했습니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이것은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엄청난 은혜를 받았는데 감사를 많이 잃어버리지 않았습니까? 사람은 보통 은혜는 잊어버리고 섭섭한 것은 잘도 기억합니다. 나머지 아홉 명은 나병에서 고침을 받았지만 자신들의 길로 가버렸습니다. 그들은 몸의 질병은 고침을 받았지만 영혼의 질병인 죄 문제는 해결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감사하러 돌아온 사마리아 사람을 축복하셨습니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는 육신뿐만 아니라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성을 맺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는 죄에서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치료하심에 감사했을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습니다. 또한 그의 죄문제도 나음을 받고 감사하는 사람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와 감사를 드렸을 때 그는 더 큰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영혼의 구원을 선물로 받게 된 것입니다. 주님은 감사하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감사할 때 행복해집니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에서 행복하다는 응답이 마지막에서 두 번째였습니다. 국가적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배워야합니다.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감사하며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롬1:21). 하나님께 감사할 때 우리의 마음은 순수해지고 하나님 중심적이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올바른 지위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생 죄의 열매만을 맺으며 부끄러운 인생을 살다가 영원한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방황하는 영혼들을 섬기는 거룩한 인생, 목자의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은 말씀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은 기쁠 때뿐만 아니라 고난 중에서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고난 자체보다 고난을 통해 나에게 주실 유익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채찍에 맞고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 감사하고 찬송을 했습니다. 그랬을 때 그를 묶고 있던 족쇄가 풀렸습니다. 다니엘은 기도하지 못하도록 다리오 왕의 금령이 내려졌을 때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단 6:10). 그는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하나님께서 사자의 입을 봉하시고 아무 해도 당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당하고 있는 시련은 무엇입니까? 어떤 고통과 좌절 가운데 처해 했습니까? 감사제목을 찾고 하나님께 믿음으로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평강을 주시고 어려움을 견디게 하시고 하나님의 때에 문제를 해결하시고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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