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23년 눅28강(16:1-31)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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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누가복음 제 28 강
말씀 | 누가복음 16:1-31
요절 | 누가복음 16:9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대한민국 최고 부자였던 고 이건희 회장이 병상에서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차를 가지고 있지만, 지금은 병원 휠체어를 타고 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의상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은 병원의 환자복을 입고 있다. 나에겐 먹고 마시는 비싼 식품들이 많이 있지만, 지금은 병원에서 약 먹을 물만 마시고 있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사람이 살아갈 때 다른 사람에게 이익이 되게 하고, 타인을 돕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인간의 도리라는 사실이다. 우리 인생은 너무도 짧다.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의 행복을 위해 도움을 주는 것이다. 타인과 함께 나누지 못했던 것이 내 인생에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다.”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말이죠? 오늘 말씀은 물질만능주의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 크리스천이 가져야 하는 물질관을 가르쳐 줍니다. 이 시간 성경적인 물질관을 잘 배우고, 또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잘 깨닫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들렸습니다. 주인이 그를 불러 해고를 통보했습니다.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청지기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당시 청지기는 주인의 재물을 맡아서 관리할 뿐만 아니라 집안 살림까지 도맡아서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재정에 대한 모든 권한을 위임 받아서 관리하며 주인의 이름으로 계약까지 체결할 수 있었습니다. 주인의 재산을 잘 관리해서 많은 이익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청지기의 책임입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본문의 청지기는 주인의 소유를 잘 못 관리해서 낭비했습니다. 자신의 안락한 삶을 위해서 주인의 돈을 유용하기도 했습니다. 직장을 잃게 된 청지기는 고민을 했습니다. “아이고,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아갈 것인가? 처식은 어떻게 먹여 살리지?” 그는 노후를 대비해서 저축해놓은 것도 아닙니다. 농사를 짓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러웠습니다. 청지기는 곧 닥칠 실직을 어떻게 대비해야 합니까? 그는 주인의 돈을 빌려간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기름 백 말이니이다.”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아이고 청지기님 정말 고맙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죠?” “쉿, 조용. 주인이 들으면 큰일 나. 내가 나중에 카톡으로 연락할게.” 또 다른 이에게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밀 백 석이니이다.”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제가 빚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는데, 백골난망입니다.” “그래 많이 감격하게. 나중에 조용한 데서 보게나.” 그는 이미 주인에게 많은 손해를 끼쳤기 때문에 심한 책망을 받았고 이 일로 인해서도 책망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주인은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습니다.
이 비유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9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이 옳지 않은 청지기는 어떤 면에서 지혜롭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장래를 대비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혹시나 일어날 사고나 질병을 대비하여 각종 보험에 가입합니다. 노후 생활을 위해서 국민연금을 비롯한 각종 연금에 가입합니다. 땅이나 건물, 주식 등에 분산하여 투자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장래를 위해서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장래는 이 땅에서의 미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를 말씀합니다. 우리는 어머니 뱃속에서 십개월, 이 땅에서 90-120세를 살고, 그 후에 영원한 삶이 있습니다. 우리는 일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삼생을 살아갑니다. 어머니 뱃 속에 있을 때 태교를 받고, 태어나면서부터는 이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서 교육을 받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영원한 삶을 위해서는 교육을 받지 않고 준비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죽을 때까지 이 땅에서 어떻게 하면 편하고 안전하게 살 것인가를 궁리하며 노후를 준비합니다. 하지만 사후를 대비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죽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잠깐입니다. 죽음 이후의 삶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어디를 대비해야 지혜로운 것일까요?
예수님이 가르쳐주시는 사후를 대비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물하면 즉시 돈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돈은 사람의 재물 중에 아주 작은 부분일 뿐입니다. 74세 시니어 모델 윤영주씨는 “살아보니까, 돈을 잃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작은 손해더군요. 건강만 잃지 않는다면 무엇이라도 좋아하는 일을 꼭 해 보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들의 건강을 돈보다 더 앞세웁니다. 그들에게 더 가치 있는 재물은 지식과 지혜와 잠재력과 젊음과 정복 스피릿, 꿈들과 이상주의 등등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들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아낌없이 쓰라고 가르치십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은 신명기 6:5 말씀과 유사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우리는 세상의 재물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영혼과 힘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이 습관적으로 우리를 위한 것일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 나라의 좋은 청지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본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고 가난한 자들을 섬기심으로 인기가 많으셨습니다. 수천의 사람들이 그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인기를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기보다 열두 제자를 양성하는 일에 집중하셨습니다. 인간적으로 말해서 그는 손해보는 장사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열두 제자 양성을 하심으로 그가 얼마나 지혜로운 청지기였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온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를 어떻게 섬겨야 할 줄을 모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물으심으로 그 이유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매번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요 21).” 제자들이 하나님의 양떼들을 먹일 때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잃어버린 자녀들을 돌봄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최선의 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돈을 위해서 돈을 벌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돈을 벌고 사용합니다. 사람을 돕고 살리는데 재물을 사용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돈을 벌어서 좋은 집을 사고 좋은 차를 사고 여행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사먹는데 사용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돈을 어떻게 사용했는가에 따라서 죽음 이후의 삶이 결정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자기만을 위해서 재물을 사용한 사람은 하늘에 보물을 쌓아놓은 것이 없기 때문에, 죽음 이후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상급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재물로 사람을 돕고 살리는데 사용하면, 우리가 죽었을 때 그들이 우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합니다. 한 마디로 재물을 가지고 사람을 돕고 살리는 것은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재물’이라고 번역된 맘몬은 하나님을 섬기 일에 미적거리게 합니다. 한 성도님은 부동산과 주식 등 투자에 몰두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음을 다 빼앗길 위험에 처했습니다. 그는 억대의 돈을 손해를 보면서 부동산과 주식을 처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마음의 첫 자리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자 물질에서 자유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분이 모든 걸 기쁘게 처분한 후에 몇 주 후 있었던 그 투자와 관련된 엄청난 소송에서 피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현실적으로도 절대 손해로 끝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분은 사업을 하지만 돈 문제에 관해서 걱정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공급을 믿고 복음 역사를 섬기며 살고 있습니다. 내가 돈을 따라갈 것인지, 아니면 돈이 나를 따라오게 할 것인지, 돈을 따라다니는 사람은 돈의 노예이고, 돈이 나를 따라오게 하는 사람은 돈을 다스리는 주인이 됩니다.
주일 예배를 마친 한 어린아이가 ‘요나와 큰 물고기’라는 그림을 안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어린이에게 장난을 치고 싶어 질문을 하였습니다. “너는 요나와 큰 물고기 이야기를 정말 믿니?” “물론이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고 오늘 주일학교에서 배웠어요.” “그럼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살았다는 이야기가 사실임을 증명할 수 있니?” “천국 가면 요나 아저씨에게 물어볼게요.” “만일 요나가 천국에 없고 지옥에 갔으면 어떻게 할래?” “그러면 아저씨가 물어보세요.” 우리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서 지옥이 어떤 곳인지 배울 수 있습니다. 지옥은 내 부모, 내 형제, 내 가족 가운데 한 사람도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곳입니다. 우리는 지옥의 소리, 부자의 애원을 깊이 들어야 합니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며 살았습니다. 자색 옷은 왕이나 귀족들이 입는 매우 값비싼 옷이요, 고운 베옷은 부드러운 속옷입니다. 이 부자는 수많은 요리와 고급 포도주를 즐기며 대저택에서 살았습니다. 그 나라에 몇 대 없다는 마이마흐 마차를 타고 다니면서 파티를 자주 열고 인생을 즐겼습니다.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온 몸에 종기투성이의 병든 몸을 가지고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개들이 와서 그의 헌데를 핥았습니다. 아무도 나사로를 위로하지 않았지만 개들이 그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부자에게 있어서 굶주려 죽어가는 거지 나사로에게 하인을 시켜서 먹다 남은 음식을 전해주는 것은 결코 힘든 일이 아닙니다. 긍휼한 마음이 조금만이라도 있으면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부자는 남에게 관심을 둘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는 호화롭게 살았지만 그의 마음은 메마르고 황량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었습니다. 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24).” 그는 지옥에서 타는 목마름으로 고통하였습니다. 물 한 방울로 혀 끝을 서늘하게 하기를 소원하였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지옥은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곳입니다. 우리가 가장 가슴 아프게 느끼던 경험을 일 억배로 확장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 지옥일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천국과 지옥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서 건너갈 수 없습니다. 죽어서 한 번 심판을 받게 되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습니다.
부자는 자기 형제들을 위해서 아브라함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합니다.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그러나 아브라함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부자는 다시 부탁을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본문에는 나사로가 예수님을 믿었고, 부자가 믿지 않았다는 말은 없습니다. 이 부자는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는 회개할 기회가 많았지만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회개할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어리석었고 악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말하니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좋은 데 갈 것인데 예수님이 나타나서 깡패처럼 그를 믿도록 위협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옥은 스스로 선택해서 가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구원의 길을 알려 주어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이 부자는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을 들을 기회가 있었지만 스스로 이런 길을 선택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부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생각했습니다. 거지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자신은 부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혔습니다.
아브라함은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경고하였습니다. ‘모세와 선지자’는 구약 성경을 가리킵니다. 성경 말씀을 듣고도 믿지 않는다면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서 증언을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기적을 보여주면 믿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믿음을 갖도록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은 성경입니다. 성경은 기적보다도 훨씬 능력이 있는 특별한 계시입니다. 성경 말씀을 들어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해도 믿지 않습니다. “b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b 또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모든 성경은 교훈과……')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유능하게 하고, 그에게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딤후 3:16-17).” 우리가 성경 말씀을 듣고 회개할 때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구주이심을 믿게 됩니다. 이 땅에 있을 때, 성경 말씀을 들을 때가 구원받을 기회입니다. 여기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경을 배우게 된 분들은 참으로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인간의 삶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죽음 이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돈의 노예가 되지 말고 재물을 가지고 사람을 돕고 살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모든 재물과 기회와 은사를 드려서 영혼을 구원하고 제자 삼는 일에 헌신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부터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누가복음 16:1-31
요절 | 누가복음 16:9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대한민국 최고 부자였던 고 이건희 회장이 병상에서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차를 가지고 있지만, 지금은 병원 휠체어를 타고 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의상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은 병원의 환자복을 입고 있다. 나에겐 먹고 마시는 비싼 식품들이 많이 있지만, 지금은 병원에서 약 먹을 물만 마시고 있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사람이 살아갈 때 다른 사람에게 이익이 되게 하고, 타인을 돕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인간의 도리라는 사실이다. 우리 인생은 너무도 짧다.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의 행복을 위해 도움을 주는 것이다. 타인과 함께 나누지 못했던 것이 내 인생에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다.”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말이죠? 오늘 말씀은 물질만능주의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 크리스천이 가져야 하는 물질관을 가르쳐 줍니다. 이 시간 성경적인 물질관을 잘 배우고, 또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잘 깨닫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들렸습니다. 주인이 그를 불러 해고를 통보했습니다.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청지기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당시 청지기는 주인의 재물을 맡아서 관리할 뿐만 아니라 집안 살림까지 도맡아서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재정에 대한 모든 권한을 위임 받아서 관리하며 주인의 이름으로 계약까지 체결할 수 있었습니다. 주인의 재산을 잘 관리해서 많은 이익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청지기의 책임입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본문의 청지기는 주인의 소유를 잘 못 관리해서 낭비했습니다. 자신의 안락한 삶을 위해서 주인의 돈을 유용하기도 했습니다. 직장을 잃게 된 청지기는 고민을 했습니다. “아이고,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아갈 것인가? 처식은 어떻게 먹여 살리지?” 그는 노후를 대비해서 저축해놓은 것도 아닙니다. 농사를 짓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러웠습니다. 청지기는 곧 닥칠 실직을 어떻게 대비해야 합니까? 그는 주인의 돈을 빌려간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기름 백 말이니이다.”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아이고 청지기님 정말 고맙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죠?” “쉿, 조용. 주인이 들으면 큰일 나. 내가 나중에 카톡으로 연락할게.” 또 다른 이에게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밀 백 석이니이다.”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제가 빚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는데, 백골난망입니다.” “그래 많이 감격하게. 나중에 조용한 데서 보게나.” 그는 이미 주인에게 많은 손해를 끼쳤기 때문에 심한 책망을 받았고 이 일로 인해서도 책망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주인은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습니다.
이 비유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9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이 옳지 않은 청지기는 어떤 면에서 지혜롭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장래를 대비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혹시나 일어날 사고나 질병을 대비하여 각종 보험에 가입합니다. 노후 생활을 위해서 국민연금을 비롯한 각종 연금에 가입합니다. 땅이나 건물, 주식 등에 분산하여 투자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장래를 위해서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장래는 이 땅에서의 미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를 말씀합니다. 우리는 어머니 뱃속에서 십개월, 이 땅에서 90-120세를 살고, 그 후에 영원한 삶이 있습니다. 우리는 일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삼생을 살아갑니다. 어머니 뱃 속에 있을 때 태교를 받고, 태어나면서부터는 이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서 교육을 받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영원한 삶을 위해서는 교육을 받지 않고 준비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죽을 때까지 이 땅에서 어떻게 하면 편하고 안전하게 살 것인가를 궁리하며 노후를 준비합니다. 하지만 사후를 대비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죽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잠깐입니다. 죽음 이후의 삶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어디를 대비해야 지혜로운 것일까요?
예수님이 가르쳐주시는 사후를 대비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물하면 즉시 돈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돈은 사람의 재물 중에 아주 작은 부분일 뿐입니다. 74세 시니어 모델 윤영주씨는 “살아보니까, 돈을 잃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작은 손해더군요. 건강만 잃지 않는다면 무엇이라도 좋아하는 일을 꼭 해 보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들의 건강을 돈보다 더 앞세웁니다. 그들에게 더 가치 있는 재물은 지식과 지혜와 잠재력과 젊음과 정복 스피릿, 꿈들과 이상주의 등등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들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아낌없이 쓰라고 가르치십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은 신명기 6:5 말씀과 유사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우리는 세상의 재물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영혼과 힘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이 습관적으로 우리를 위한 것일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 나라의 좋은 청지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본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고 가난한 자들을 섬기심으로 인기가 많으셨습니다. 수천의 사람들이 그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인기를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기보다 열두 제자를 양성하는 일에 집중하셨습니다. 인간적으로 말해서 그는 손해보는 장사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열두 제자 양성을 하심으로 그가 얼마나 지혜로운 청지기였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온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를 어떻게 섬겨야 할 줄을 모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물으심으로 그 이유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매번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요 21).” 제자들이 하나님의 양떼들을 먹일 때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잃어버린 자녀들을 돌봄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최선의 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돈을 위해서 돈을 벌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돈을 벌고 사용합니다. 사람을 돕고 살리는데 재물을 사용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돈을 벌어서 좋은 집을 사고 좋은 차를 사고 여행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사먹는데 사용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돈을 어떻게 사용했는가에 따라서 죽음 이후의 삶이 결정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자기만을 위해서 재물을 사용한 사람은 하늘에 보물을 쌓아놓은 것이 없기 때문에, 죽음 이후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상급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재물로 사람을 돕고 살리는데 사용하면, 우리가 죽었을 때 그들이 우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합니다. 한 마디로 재물을 가지고 사람을 돕고 살리는 것은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재물’이라고 번역된 맘몬은 하나님을 섬기 일에 미적거리게 합니다. 한 성도님은 부동산과 주식 등 투자에 몰두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음을 다 빼앗길 위험에 처했습니다. 그는 억대의 돈을 손해를 보면서 부동산과 주식을 처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마음의 첫 자리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자 물질에서 자유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분이 모든 걸 기쁘게 처분한 후에 몇 주 후 있었던 그 투자와 관련된 엄청난 소송에서 피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현실적으로도 절대 손해로 끝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분은 사업을 하지만 돈 문제에 관해서 걱정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공급을 믿고 복음 역사를 섬기며 살고 있습니다. 내가 돈을 따라갈 것인지, 아니면 돈이 나를 따라오게 할 것인지, 돈을 따라다니는 사람은 돈의 노예이고, 돈이 나를 따라오게 하는 사람은 돈을 다스리는 주인이 됩니다.
주일 예배를 마친 한 어린아이가 ‘요나와 큰 물고기’라는 그림을 안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어린이에게 장난을 치고 싶어 질문을 하였습니다. “너는 요나와 큰 물고기 이야기를 정말 믿니?” “물론이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고 오늘 주일학교에서 배웠어요.” “그럼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살았다는 이야기가 사실임을 증명할 수 있니?” “천국 가면 요나 아저씨에게 물어볼게요.” “만일 요나가 천국에 없고 지옥에 갔으면 어떻게 할래?” “그러면 아저씨가 물어보세요.” 우리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서 지옥이 어떤 곳인지 배울 수 있습니다. 지옥은 내 부모, 내 형제, 내 가족 가운데 한 사람도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곳입니다. 우리는 지옥의 소리, 부자의 애원을 깊이 들어야 합니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며 살았습니다. 자색 옷은 왕이나 귀족들이 입는 매우 값비싼 옷이요, 고운 베옷은 부드러운 속옷입니다. 이 부자는 수많은 요리와 고급 포도주를 즐기며 대저택에서 살았습니다. 그 나라에 몇 대 없다는 마이마흐 마차를 타고 다니면서 파티를 자주 열고 인생을 즐겼습니다.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온 몸에 종기투성이의 병든 몸을 가지고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개들이 와서 그의 헌데를 핥았습니다. 아무도 나사로를 위로하지 않았지만 개들이 그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부자에게 있어서 굶주려 죽어가는 거지 나사로에게 하인을 시켜서 먹다 남은 음식을 전해주는 것은 결코 힘든 일이 아닙니다. 긍휼한 마음이 조금만이라도 있으면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부자는 남에게 관심을 둘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는 호화롭게 살았지만 그의 마음은 메마르고 황량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었습니다. 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24).” 그는 지옥에서 타는 목마름으로 고통하였습니다. 물 한 방울로 혀 끝을 서늘하게 하기를 소원하였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지옥은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곳입니다. 우리가 가장 가슴 아프게 느끼던 경험을 일 억배로 확장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 지옥일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천국과 지옥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서 건너갈 수 없습니다. 죽어서 한 번 심판을 받게 되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습니다.
부자는 자기 형제들을 위해서 아브라함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합니다.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그러나 아브라함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부자는 다시 부탁을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본문에는 나사로가 예수님을 믿었고, 부자가 믿지 않았다는 말은 없습니다. 이 부자는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는 회개할 기회가 많았지만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회개할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어리석었고 악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말하니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좋은 데 갈 것인데 예수님이 나타나서 깡패처럼 그를 믿도록 위협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옥은 스스로 선택해서 가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구원의 길을 알려 주어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이 부자는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을 들을 기회가 있었지만 스스로 이런 길을 선택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부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생각했습니다. 거지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자신은 부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혔습니다.
아브라함은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경고하였습니다. ‘모세와 선지자’는 구약 성경을 가리킵니다. 성경 말씀을 듣고도 믿지 않는다면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서 증언을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기적을 보여주면 믿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믿음을 갖도록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은 성경입니다. 성경은 기적보다도 훨씬 능력이 있는 특별한 계시입니다. 성경 말씀을 들어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해도 믿지 않습니다. “b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b 또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모든 성경은 교훈과……')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유능하게 하고, 그에게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딤후 3:16-17).” 우리가 성경 말씀을 듣고 회개할 때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구주이심을 믿게 됩니다. 이 땅에 있을 때, 성경 말씀을 들을 때가 구원받을 기회입니다. 여기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경을 배우게 된 분들은 참으로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인간의 삶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죽음 이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돈의 노예가 되지 말고 재물을 가지고 사람을 돕고 살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모든 재물과 기회와 은사를 드려서 영혼을 구원하고 제자 삼는 일에 헌신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부터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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