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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2014년 골3강(3:1-17) 위의 것을 찾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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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359회 작성일 14-01-26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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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골로새서 제 3 강
말씀 | 골로새서 3:1-17
요절 | 골로새서 3:1

위의 것을 찾으라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의 으뜸이십니다. 우리는 그의 으뜸 되심을 훼방하는 것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행하고 그 안에 뿌리를 박고 세움을 입어 감사함을 넘치게 해야 합니다. 3,4장은 만물의 으뜸 되신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줍니다. 이 시간 우리가 가져야 할 참된 소망과 예배자의 삶에 대해서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위에 것을 생각하라. 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데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죽었다는 말은 전적으로 죽어 있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내 안에 무슨 선한 것이 있어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을 통해서 우리의 죄 값을 치루시고 그가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그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내가 진리를 사모해서,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의로워서, 내가 예수님을 믿는 목자 가정에 태어나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나아온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영적인 소원이 충만해서 말씀을 듣고자 나아온 것이 아닙니다. 그 이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나에게 뜻을 두시고 나를 택하시고 나를 부르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어느 날 누군가의 전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홀연히 성령의 능력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리심을 받은 사람은 이전과 같이 살 수 없습니다. 땅에 속한 것을 찾지 않습니다. 죽음에 속한 것들을 찾지 않습니다. 다시 태어난 사람은 과거 우상을 섬기던 것들을 다 불태워버립니다. 집 안에 있는 부적을 다 떼어 내버립니다. 조상신에게 절할 수 없습니다. 거짓된 우상 앞에 절할 수 없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사람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과거에 몰래 즐기던 음란물을 찢고 불태워버립니다. 쇼핑하는 일에 한없이 시간을 쓰는 것을 아까워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자신의 시간을 쓰게 됩니다. 우리는 땅에 속한 삶에서 하늘에 속한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계속해서 위의 것을 찾으며 사는 것입니다.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왕권을 행사하고 계십니다. 그는 권능을 행사하십니다. 우리의 삶을 살피시고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위의 것을 찾는 삶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2절을 보면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2). 생각의 중요성은 무엇입니까? 생각이 행동을 지배합니다. 생각을 하되 무엇을 생각해야 합니까? 위에 것, 예수 그리스도가 통치하고 계심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살기 때문에 통치자인 대통령의 말이나 그가 하는 일을 많이 생각합니다. 직장에서는 사장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그가 하는 일을 생각합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과 그의 말씀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나라에서 왕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그는 지금도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위에 것을 생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생각해야 합니다. 일용할 양식과 매주 주일 메시지를 통해서 주님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세미한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또 주님이 지금 우리 가운데서 어떻게 일하고 계신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은 지금 우리 가운데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주님은 학생 수양회에서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백지수표를 드리면 주님은 우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이 예배를 통해서 우리 각자에게 인격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지만 성령을 통해서 또 그의 종들을 세워서 이 땅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의 70%가 돈에 대한 것이라고 합니다. 구정을 어떻게 지내야 할지를 생각합니다. 구정에 섬겨야 할 일들과 써야 할 돈의 규모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섬길 일들과 돈을 생각하면 근심이 되고 스트레스가 됩니다. 두통, 요통, 어깨의 결림 등 여기저기가 쑤시고 아픕니다. 또 사람들은 정욕적이고 음란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요즈음 시대가 너무나 육신적이고 향락적입니다. 우리도 모르게 영향을 받고 죄에 넘어지게 됩니다. 그런 생각을 많이 한 결과는 무엇입니까?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합니다. 육신적인 생각을 방치할 때 스피릿을 잃고 무기력하게 됩니다. 결국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세상 사람과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에 대해서 많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슨 생각을 주로 해야 합니까? 위에 것을 찾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위에 것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생명은 아직 다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생명은 작고 시커먼 씨가 심겨져서 피어나온 나팔꽃, 백합화, 장미와 같이 영화로울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받는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예수님의 재림 때에 온전히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을 하나님 나라에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생각할 때 우리는 많은 보화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 자체가 보화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생명력을 충만히 누리면서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개인은 평강이 넘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가정은 화목합니다. 에덴동산과 같이 작은 천국을 이룹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의 다스림을 받는 직장은 번창합니다. 문제 많은 사업에서도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을 받으면서 불황 중에서도 호황을 누립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왕 노릇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둘째,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라. 우리가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 생명을 찾으려면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야 합니다. 앞에서는 땅에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합니다.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입니다. 모든 죄는 탐심에서 시작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습니다. 전쟁은 죽이지 않으면 죽는 것입니다. 중간 지점은 없습니다. 잡초가 무성한 밭을 통째로 갈아엎듯이 죄를 뿌리 채 갈아엎어야 합니다. 마음의 깊은 것까지 통째로 갈아엎어야 합니다. 내면이 근본적으로 변화되지 않는다면 가짜신자입니다.

  수 세기 전 영국에서는 처음으로 소매치기를 하다가 잡힌 자에게 오른 손을 자르고 두 번째로 잡혔을 때는 왼손을 잘랐습니다. 한 소매치기는 두 손을 모두 잃고도 그의 이빨을 사용해서 계속 소매치기를 했습니다. 육체적인 수술은 결코 그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탐심의 문제를 가지고 오랫동안 영적인 투쟁을 했습니다. 땅에 속한 죄악을 싸워서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기 때문에 우리를 제어하려고 덤벼드는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욕망을 죽일 수 있는 영적인 힘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것으로, 그리스도 안에서는 산 것으로 여기라고 말씀했습니다(롬6:11). 우리는 생명을 주시는 성령으로써 이런 죄의 세력들을 죽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물질적인 풍요를 추구함으로 만족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죽이고 검소하고 절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음란과 악한 정욕을 죽여야 합니다. 안목의 정욕을 죽여야 합니다. 작은 죄부터 죽여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큰 죄도 죽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지체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죄의 종노릇하지 않게 됩니다.
 
  셋째, 새 사람을 입으라. 우리는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습니다. 새롭게 되었다는 것은 시간상 새롭다는 말과 질적으로 새롭다, 신선하다는 뜻이 있는데 신자는 단번에 새 사람을 입었으며 그 결과로 질적으로 새롭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질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새롭게 닮아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이요 새로운 피조물의 머리이십니다. 어떻게 이 새롭게 되는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것은 지식을 통해서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가치관이 바뀌었습니다. 역사관이 바뀝니다. 결혼관이 바뀌고 물질관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세상 철학에 기초한 지식들이 많이 있지만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고 예전 것을 다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과거의 율법적인 지식, 장로들의 유전에 기초한 지식은 땅에 속한 것이었고, 왜곡된 지식이었습니다. 거기에 기초해서 살 때 땅에 속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식을 알게 되면 삶이 달라집니다. 거기에는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동양인이나 서양인이나, 사장이나 사원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십니다.

  옛 사람과 달리 새 사람을 입은 신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12-14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여기 제시된 여덟가지 덕목이 현재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입니다. 거룩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입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알 때, 자기정체성이 분명할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도 신자로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서로를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오래 참아야 합니다. 서로 용납해야 합니다. 주께서 우리를 먼저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를 용서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해야 합니다. 사랑은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습니다. 우리가 사랑할 때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고 우리 각자가 가진 은사들을 발휘하게 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온전하게 매는 띠와 같습니다. 사랑으로 하나가 될 때 공동체는 성숙해지고 풍성한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성장하는 신자의 삶은 사랑과 평강, 감사가 충만합니다. 장래의 불확실성 속에서 사람들은 불안을 느낍니다. 우리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할 때 마음에 평강이 넘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거스르면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어두워집니다. 우리는 평강을 위해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평강이 있을 때 문제들을 지혜롭게 해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 평강 속에서 우리의 구원은 자라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은 문제가 없는 가운데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폭풍 속에서 평강을 누리시며 잠을 주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바람과 파도를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우리는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신자가 하는 불평 불만은 다른 사람들에게 악한 영향을 끼칩니다. 불평은 부정적인 것들을 재생산하고 확산시킵니다. 감사가 없을 때 아담과 하와는 사탄의 시험에 넘어갔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잃어버릴 때 사람들은 무지하고 어리석게 되어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감사할 때 인간관계가 부드럽게 됩니다. 감사할 때 선한 영향이 퍼집니다. 감사할 때 사람들은 존재감을 느낍니다. 감사는 고래도 춤추게 만듭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삶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감사는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 바른 관계가 맺혀있다면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우리 신자들이 만물의 으뜸되신 예수님을 믿고 사랑과 평강과 감사가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말씀이 풍성하면 형제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습니다.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을 때 에베소 지역을 우상숭배와 미신과 마술이 사라지고 건강한 기독교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우리나라 초대교회도 성경공부 중심의 사경회가 왕성하게 일어날 때 교육 분야, 의료분야, 문서, 구제 등 사회변혁이 일어났습니다. 공평과 정의가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 가운데서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말씀 공부를 통하여 위에 것을 생각하고 찾기를 기도합니다.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할 때 우리는 그 능력으로 땅에 속한 음란, 탐심, 부정, 각종 사악한 것들을 죽일 수 있습니다.

  이번 구정 연휴에 우리가 땅에 것을 죽이고 위에 것을 힘써 찾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보화들로 여러분의 가정과 일가친척들에게도 나누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나라에 감사와 평강과 사랑이 넘치는 한 주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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