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서 2018 고후7강(8,9장)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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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고린도후서 제 7 강
말씀 | 고린도후서 8,9장
요절 | 고린도후서 8:7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오늘 말씀은 헌금하는 자세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는 헌금의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기근이 들어 교회들도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위해서 고린도 교회는 일년 전에 헌금을 하겠다고 했지만 미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게도냐 교회는 늦게 들었지만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그리고 힘에 지나도록 헌금을 했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헌금의 의미와 목적을 알고 어떻게 헌금을 해야 하는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헌금을 드릴 수 있는 것은 은혜입니다. 마게도냐 교회들은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교회를 말합니다. 이들은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 있으면 슬픔과 자기 연민에 빠지기 쉽습니다. 가난한 가운데 있으면 물질에 대해서 인색해지기 쉽습니다. 그런데 마게도냐 교회들은 어떻게 해서 많은 시련 가운데서도 기쁨이 있고 가난한 가운데서도 풍성한 연보를 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 안에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넘쳤기 때문입니다. 마게도냐 교회의 연보를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마게도냐 교인들이 어려움에 처한 예루살렘 교회를 연보를 통해서 돕고자 한 것은 그들의 업적이나 덕이 아니라 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헌금할 수 있는 것도 은혜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도들이 기근으로 인해서 고생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불쌍히 여기고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헌금을 했습니다. 그들은 바울 사도에게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간절히 구하였습니다. 그들은 바울 일행이 바라던 것뿐 아니라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헌금을 했습니다. 바울은 마게도냐 교회가 어려우니 헌금에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그들이 힘에 지나도록 한 헌신은 감동을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 엘리야는 이스라엘에 수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아니할 때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가서 머물렀습니다. 이때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는 시냇물을 마셨습니다. 얼마 후에 시냇 물도 말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사르밧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곳에서 나뭇가지를 줍고 있었습니다. 이에 그가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는 염치도 없이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 과부는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고 말했습니다. 엘리야는 이 과부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이 여인이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을 먹었으나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실 뿐만 아니라 구약에서도 엘리야를 통해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일반적으로 부유한 사람이라야 남에게 베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 역사를 보면 어려운 사람들이 남을 돕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아낌없이 남을 돕는 사람은 부유해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이 많은 자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또 가난한 사람은 스스로 어려운 체험이 있기 때문에 어려운 사람의 처지를 잘 이해하고 돕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부유했는데 남을 돕는 일을 밍그적거렸습니다. 바울은 물질적으로 부유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그들이 일년 전에 작정한 헌금을 하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게 하라고 디도를 통하여 권면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자족하지 않고 그들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 헌금 생활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헌금은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드리는 헌신의 표현입니다. 헌금은 예배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입니다. 신명기 16장16절에서 하나님은 내게 올 때 빈 손으로 오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적인 믿음은 헌금으로 나타납니다. 지갑이 회개해야 진정한 회개라고 루터는 말했습니다. 헌금에는 믿음의 비밀이 있습니다. 헌금은 믿음과 사랑의 진실함을 나타냅니다. 고린도 성도들의 사랑이 진실함을 고난 가운데 있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헌금을 함으로 증명이 됩니다.
헌금은 예수님을 배우는 길이기도 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가장 부요한 분이시지만 우리를 위해서 그것을 다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마굿간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는 목수의 아들로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부요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떡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아무 것도 남김없이 다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믿는 자들의 희생적인 사랑의 모범이자 원동력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진정으로 부요한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돼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기도할 때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우리는 받은 바 은혜에 기초해서 물질을 풍성히 드리는 생활을 통해서 실질적인 믿음을 체험할 수 있고 주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혜택을 입었습니다. 그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헌금을 합니다. 헌금으로 인해서 우리의 신앙생활이 풍성해집니다.
바울은 그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헌금을 하는 것이 그들에게 유익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일 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이제는 하던 일을 성취하라고 합니다. 마음에 원하던 것 같이 완성하되 있는 대로 하라고 합니다.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실 것입니다(8:12). 예수님은 성도들이 헌금하는 모습을 보고 계셨습니다.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두 렙돈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지만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막12:41-44).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둘째, 헌금은 균등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균등하게 하려 함이니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균등하게 한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기본적인 삶을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루 세끼 먹는 데서 균등한 것입니다. 구제 헌금을 통해서 먹지 못하는 형제들의 부족함을 채우고 균등하게 합니다. 또 내가 어려울 때 내가 도왔던 사람들이 나를 도울 수 있습니다. 현재는 고린도 교인들이 물질적으로 부요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반면에 예루살렘 교회는 궁핍한 가운데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궁핍한 예루살렘 교회가 부요해질 수 있고 지금 부유한 고린도 교회가 가난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부요한 고린도 교회가 가난한 예루살렘 교회를 돕고 나중에 상황이 역전되면 풍족해진 예루살렘 교회가 궁핍해진 고린도 교회를 도움으로 균등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구제헌금의 역할입니다. 바울은 균등하게 하는 원리를 구약 성경에서 찾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모았을 때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않았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않았습니다(출 16:8).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를 모은 양에 관계없이 모두 필요한 양만큼 얻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각 사람의 필요를 아시고 그 필요에 맞게 공급해 주십니다. 오늘날 선진국에서는 세금을 많이 거두어 부의 균형을 이루고자 합니다. 가난한 자들이 항상 있지만 이들도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조세제도를 통해서 이를 실현하고자 합니다. 그렇지만 국가 제도도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구제 사역을 통해서 균등하게 하는 일을 합니다.
이디모데 안나 선교사님은 나이리지아에서 20년 동안 사역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건강이 악화되어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나갈 때도 빈손으로 나갔지만 20년 사역을 하고 나서도 한국에 빈 손으로 들어왔습니다. 50대에 직장을 얻기가 어려운데 이들이 어떻게 한국에 정착을 할 것인가 막막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분들의 목자가 되셔서 일년 동안 안식년을 갖는 가운데 필요를 여러 모양으로 채워주셨습니다. 그리고 안식년이 마치자 국제 본부의 지원을 받고 또 자립할 수 있도록 아트 앤 하트를 차리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디모데 선교사님이 작년 말에 직장을 그만 두었습니다. 올해 두 자녀가 대학에 한꺼번에 들어가서 등록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나이지리아에서 넘겼던 자동차 값을 이번에 받아 등록금 문제를 해결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가정의 목자가 되셔서 이제까지 먹이시고 입히시고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또한 윤성자 목자님 가정과 장인 장모님 그리고 여러 동역자들의 사랑을 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가정의 필요를 채워주셔서 한국에서 잘 정착하며 제자양성 역사에 귀히 쓰임 받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믿고 학생 복음 운동과 세계 선교 역사를 지원하는 일에 물질을 드리고 사람을 키우는 일에 헌신하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은 헌금 모금을 위해서 디도와 함께 다른 형제들을 보냈습니다. 그 사람은 복음으로써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요 동일한 주의 영광과 바울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교회의 택함을 받았습니다. 또 그들이 맡은 은혜의 일로 바울 일행과 동행하는 자였습니다. 연보를 집행함에 있어서 조심하는 이유는 그들이 맡은 이 거액의 연보에 대하여 아무도 그들을 비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고 했습니다. 또 그는 그들과 함께 형제 한 사람을 더 보냈습니다. 이렇게 세 명이 감으로 다른 교회에도 신뢰를 주었습니다. 우리는 선한 의도만 가지고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사탄의 훼방을 막기 위해서 이런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강도들에게서 물질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둘이 결탁하여 시험에 드는 일이 없도록 예방을 한 것입니다. 사람의 연약함을 알기에 시스템을 만들어서 체크를 하고 선한 일을 완성하고자 한 것입니다.
9:1-5절에서는 구제 헌금을 위해서 준비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마게도냐인들에게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이 일 년 전부터 준비하였다는 것을 자랑하였습니다. 과연 이 일은 많은 사람들을 분발하게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 일에 그들을 위한 자신들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고린도 교인들로 하여금 준비하게 하려고 형제들을 보냈습니다. 그들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부끄러움을 당하고 그들을 자랑한 바울 자신도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하였습니다. 미리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게 됩니다.
셋째,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둡니다(9:6). 이 말씀에서 헌금을 심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한 알을 심으면 한 알만 거두는 것이 아니라 최소 30알부터 100알까지 거두게 됩니다. 씨는 풍성한 결실을 보장해 주기에 농부는 봄에 열심히 씨를 뿌립니다. 우리가 헌금을 드릴 때 하나님은 때가 되면 거두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헌금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을 얻기 위해 뿌리는 씨앗입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는 것도 심는 것입니다. 말라기 3:10에서 십일조를 드리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헌금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십일조 생활이 허물어져 있다면 우리의 물질관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헌금을 많이 하면 궁핍해지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도들 모두에게 필요한 것을 주실 뿐만 아니라, 풍성히 주셔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도록 하십니다. 잠언 11:24-25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 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고 말씀했습니다.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뜻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과 의로운 관계가 영원히 지속됩니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우리가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고 공급해 주십니다. 죠지 뮬러는 오직 믿음과 기도로 15만 명의 고아들을 양육하였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그의 장례식에 일만 명의 고아들이 왔습니다. 그가 가진 것이 없었지만 오직 하나님의 공급하심으로 일생 동안 선한 일을 풍성하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헌금을 하는 목적 중 하나는 궁핍한 성도들을 물질적으로 돕는 것이요 둘째는 이 물질을 받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을 하도록 함에 있습니다. 감사 찬양을 드리는 일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예배입니다.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로 말미암아 넘쳐납니다.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모든 사람을 섬기는 우리의 후한 연보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또 섬김을 받는 사람들이 헌금을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로 말미암아 주는 사람들을 사모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물질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신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하고 그것을 알 때 즐거이 헌금할 수 있습니다. 지난 한 해 목자님들의 헌신적인 헌금을 통해서 우리는 많은 선한 일들을 했습니다. 힘에 지나도록 세계 선교와 학생 제자 양성에 헌신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고 봉사의 직무를 충성스럽게 감당하도록 계속해서 필요를 공급해 주시며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고린도후서 8,9장
요절 | 고린도후서 8:7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오늘 말씀은 헌금하는 자세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는 헌금의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기근이 들어 교회들도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위해서 고린도 교회는 일년 전에 헌금을 하겠다고 했지만 미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게도냐 교회는 늦게 들었지만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그리고 힘에 지나도록 헌금을 했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헌금의 의미와 목적을 알고 어떻게 헌금을 해야 하는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헌금을 드릴 수 있는 것은 은혜입니다. 마게도냐 교회들은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교회를 말합니다. 이들은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 있으면 슬픔과 자기 연민에 빠지기 쉽습니다. 가난한 가운데 있으면 물질에 대해서 인색해지기 쉽습니다. 그런데 마게도냐 교회들은 어떻게 해서 많은 시련 가운데서도 기쁨이 있고 가난한 가운데서도 풍성한 연보를 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 안에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넘쳤기 때문입니다. 마게도냐 교회의 연보를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마게도냐 교인들이 어려움에 처한 예루살렘 교회를 연보를 통해서 돕고자 한 것은 그들의 업적이나 덕이 아니라 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헌금할 수 있는 것도 은혜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도들이 기근으로 인해서 고생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불쌍히 여기고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헌금을 했습니다. 그들은 바울 사도에게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간절히 구하였습니다. 그들은 바울 일행이 바라던 것뿐 아니라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헌금을 했습니다. 바울은 마게도냐 교회가 어려우니 헌금에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그들이 힘에 지나도록 한 헌신은 감동을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 엘리야는 이스라엘에 수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아니할 때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가서 머물렀습니다. 이때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는 시냇물을 마셨습니다. 얼마 후에 시냇 물도 말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사르밧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곳에서 나뭇가지를 줍고 있었습니다. 이에 그가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는 염치도 없이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 과부는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고 말했습니다. 엘리야는 이 과부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이 여인이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을 먹었으나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실 뿐만 아니라 구약에서도 엘리야를 통해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일반적으로 부유한 사람이라야 남에게 베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 역사를 보면 어려운 사람들이 남을 돕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아낌없이 남을 돕는 사람은 부유해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이 많은 자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또 가난한 사람은 스스로 어려운 체험이 있기 때문에 어려운 사람의 처지를 잘 이해하고 돕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부유했는데 남을 돕는 일을 밍그적거렸습니다. 바울은 물질적으로 부유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그들이 일년 전에 작정한 헌금을 하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게 하라고 디도를 통하여 권면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자족하지 않고 그들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 헌금 생활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헌금은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드리는 헌신의 표현입니다. 헌금은 예배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입니다. 신명기 16장16절에서 하나님은 내게 올 때 빈 손으로 오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적인 믿음은 헌금으로 나타납니다. 지갑이 회개해야 진정한 회개라고 루터는 말했습니다. 헌금에는 믿음의 비밀이 있습니다. 헌금은 믿음과 사랑의 진실함을 나타냅니다. 고린도 성도들의 사랑이 진실함을 고난 가운데 있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헌금을 함으로 증명이 됩니다.
헌금은 예수님을 배우는 길이기도 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가장 부요한 분이시지만 우리를 위해서 그것을 다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마굿간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는 목수의 아들로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부요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떡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아무 것도 남김없이 다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믿는 자들의 희생적인 사랑의 모범이자 원동력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진정으로 부요한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돼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기도할 때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우리는 받은 바 은혜에 기초해서 물질을 풍성히 드리는 생활을 통해서 실질적인 믿음을 체험할 수 있고 주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혜택을 입었습니다. 그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헌금을 합니다. 헌금으로 인해서 우리의 신앙생활이 풍성해집니다.
바울은 그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헌금을 하는 것이 그들에게 유익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일 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이제는 하던 일을 성취하라고 합니다. 마음에 원하던 것 같이 완성하되 있는 대로 하라고 합니다.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실 것입니다(8:12). 예수님은 성도들이 헌금하는 모습을 보고 계셨습니다.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두 렙돈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지만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막12:41-44).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둘째, 헌금은 균등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균등하게 하려 함이니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균등하게 한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기본적인 삶을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루 세끼 먹는 데서 균등한 것입니다. 구제 헌금을 통해서 먹지 못하는 형제들의 부족함을 채우고 균등하게 합니다. 또 내가 어려울 때 내가 도왔던 사람들이 나를 도울 수 있습니다. 현재는 고린도 교인들이 물질적으로 부요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반면에 예루살렘 교회는 궁핍한 가운데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궁핍한 예루살렘 교회가 부요해질 수 있고 지금 부유한 고린도 교회가 가난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부요한 고린도 교회가 가난한 예루살렘 교회를 돕고 나중에 상황이 역전되면 풍족해진 예루살렘 교회가 궁핍해진 고린도 교회를 도움으로 균등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구제헌금의 역할입니다. 바울은 균등하게 하는 원리를 구약 성경에서 찾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모았을 때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않았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않았습니다(출 16:8).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를 모은 양에 관계없이 모두 필요한 양만큼 얻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각 사람의 필요를 아시고 그 필요에 맞게 공급해 주십니다. 오늘날 선진국에서는 세금을 많이 거두어 부의 균형을 이루고자 합니다. 가난한 자들이 항상 있지만 이들도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조세제도를 통해서 이를 실현하고자 합니다. 그렇지만 국가 제도도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구제 사역을 통해서 균등하게 하는 일을 합니다.
이디모데 안나 선교사님은 나이리지아에서 20년 동안 사역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건강이 악화되어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나갈 때도 빈손으로 나갔지만 20년 사역을 하고 나서도 한국에 빈 손으로 들어왔습니다. 50대에 직장을 얻기가 어려운데 이들이 어떻게 한국에 정착을 할 것인가 막막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분들의 목자가 되셔서 일년 동안 안식년을 갖는 가운데 필요를 여러 모양으로 채워주셨습니다. 그리고 안식년이 마치자 국제 본부의 지원을 받고 또 자립할 수 있도록 아트 앤 하트를 차리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디모데 선교사님이 작년 말에 직장을 그만 두었습니다. 올해 두 자녀가 대학에 한꺼번에 들어가서 등록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나이지리아에서 넘겼던 자동차 값을 이번에 받아 등록금 문제를 해결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가정의 목자가 되셔서 이제까지 먹이시고 입히시고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또한 윤성자 목자님 가정과 장인 장모님 그리고 여러 동역자들의 사랑을 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가정의 필요를 채워주셔서 한국에서 잘 정착하며 제자양성 역사에 귀히 쓰임 받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믿고 학생 복음 운동과 세계 선교 역사를 지원하는 일에 물질을 드리고 사람을 키우는 일에 헌신하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은 헌금 모금을 위해서 디도와 함께 다른 형제들을 보냈습니다. 그 사람은 복음으로써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요 동일한 주의 영광과 바울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교회의 택함을 받았습니다. 또 그들이 맡은 은혜의 일로 바울 일행과 동행하는 자였습니다. 연보를 집행함에 있어서 조심하는 이유는 그들이 맡은 이 거액의 연보에 대하여 아무도 그들을 비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고 했습니다. 또 그는 그들과 함께 형제 한 사람을 더 보냈습니다. 이렇게 세 명이 감으로 다른 교회에도 신뢰를 주었습니다. 우리는 선한 의도만 가지고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사탄의 훼방을 막기 위해서 이런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강도들에게서 물질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둘이 결탁하여 시험에 드는 일이 없도록 예방을 한 것입니다. 사람의 연약함을 알기에 시스템을 만들어서 체크를 하고 선한 일을 완성하고자 한 것입니다.
9:1-5절에서는 구제 헌금을 위해서 준비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마게도냐인들에게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이 일 년 전부터 준비하였다는 것을 자랑하였습니다. 과연 이 일은 많은 사람들을 분발하게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 일에 그들을 위한 자신들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고린도 교인들로 하여금 준비하게 하려고 형제들을 보냈습니다. 그들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부끄러움을 당하고 그들을 자랑한 바울 자신도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하였습니다. 미리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게 됩니다.
셋째,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둡니다(9:6). 이 말씀에서 헌금을 심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한 알을 심으면 한 알만 거두는 것이 아니라 최소 30알부터 100알까지 거두게 됩니다. 씨는 풍성한 결실을 보장해 주기에 농부는 봄에 열심히 씨를 뿌립니다. 우리가 헌금을 드릴 때 하나님은 때가 되면 거두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헌금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을 얻기 위해 뿌리는 씨앗입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는 것도 심는 것입니다. 말라기 3:10에서 십일조를 드리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헌금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십일조 생활이 허물어져 있다면 우리의 물질관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헌금을 많이 하면 궁핍해지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도들 모두에게 필요한 것을 주실 뿐만 아니라, 풍성히 주셔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도록 하십니다. 잠언 11:24-25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 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고 말씀했습니다.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뜻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과 의로운 관계가 영원히 지속됩니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우리가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고 공급해 주십니다. 죠지 뮬러는 오직 믿음과 기도로 15만 명의 고아들을 양육하였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그의 장례식에 일만 명의 고아들이 왔습니다. 그가 가진 것이 없었지만 오직 하나님의 공급하심으로 일생 동안 선한 일을 풍성하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헌금을 하는 목적 중 하나는 궁핍한 성도들을 물질적으로 돕는 것이요 둘째는 이 물질을 받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을 하도록 함에 있습니다. 감사 찬양을 드리는 일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예배입니다.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로 말미암아 넘쳐납니다.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모든 사람을 섬기는 우리의 후한 연보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또 섬김을 받는 사람들이 헌금을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로 말미암아 주는 사람들을 사모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물질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신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하고 그것을 알 때 즐거이 헌금할 수 있습니다. 지난 한 해 목자님들의 헌신적인 헌금을 통해서 우리는 많은 선한 일들을 했습니다. 힘에 지나도록 세계 선교와 학생 제자 양성에 헌신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고 봉사의 직무를 충성스럽게 감당하도록 계속해서 필요를 공급해 주시며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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