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주일말씀 성경별메시지 심포지엄 성경 검색
문제지 성경별문제지

고린도서 2017년 고후3강(3:1-4:6) 새 언약의 일꾼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00회 작성일 17-12-03 23:00

본문

2017년 고린도후서 제 3 강
말씀 | 고린도후서 3:1-4:6
요절 | 고린도후서 3:6

새 언약의 일꾼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지난 주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임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말씀과 선한 행실로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향기가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새 언약의 일꾼 즉 복음의 일꾼이 되었으며 이 직분이 얼마나 영광스러운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 직분이 어떤 점에서 영광스러운지를 배우고자 합니다. 또한 우리가 이 직분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이 직분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기를 기도합니다.

  고린도 교회 내에서 한 사람 또는 그 이상이 바울의 사도 자격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그들은 이를 통해 고린도 교회의 교권을 장악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문제 제기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다른 사도들이나 예루살렘 총회에서 추천서를 써 줄 수도 있습니다. 당시 이런 추천서를 가지고 있으면 어디를 가든지 숙소와 음식을 제공받았다고 합니다. 이들은 당시 총회장이었던 야고보나 사도들이 추천해 준 사람들이 아니라 구약에 기초해서 복음을 유대인의 입맛에 맞게 다르게 해석한 랍비들의 추천서를 받고 이런 일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추천서가 필요 없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추천서는 순기능이 있습니다. 당시 이단의 난립과 무자격자들이 많아서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였습니다. 이들을 정리하고 교회를 정화하는데 추천장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대적 자들과 동일한 수준으로 행동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고린도 성도들이 바울이 사도임을 증명하는 추천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즉 이 추천장은 하나님께서 바울의 복음 사역을 축복하셔서 맺혀주신 영적 열매입니다. 사람들이 만든 추천장은 위조할 수도 있고 과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추천장은 가장 확실하고 진실한 추천장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추천하신 분이십니다. 바울에게는 고린도 성도들이 바울의 목자 생활을 확증하고 있었습니다. 고린도 성도들이 바울에게 확신을 주는 추천서였습니다. 또한 바울의 삶 자체가 추천서였습니다. 이것은 뭇 사람이 다 알고 있는 바였습니다. 복음 사역자는 특별한 추천서 없이도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복음 사역자로 인정받기 위해서 학위나 목사 자격증을 추천장으로 내세웁니다. 그러나 복음 사역의 열매가 없다면 학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3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말합니다. 이 편지의 저자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바울의 추천서를 친히 써 주셔서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그리스도이시지만 바울을 통해서 추천서가 나타났습니다. 즉 고린도 성도들의 구원과 변화를 이끌어 내신 분은 하나님의 성령이십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들은 모세가 시내 산에서 받은 돌판에 쓴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마음 판에 쓴 새 언약 즉 복음의 열매인 것입니다. 바울은 돌판과 마음 판을 대조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새 언약의 일꾼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습니다. 5절을 보면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만족은 satisfaction이 아닌 competence 즉 어떤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곧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사도요 목자의 직분을 행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가 무슨 재능이나 뛰어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직분을 주시고 여러 필요한 것들을 성령으로 공급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복음 사역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만 감당할 수 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다는 뜻은 자격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새 언약의 일꾼이라는 직분이 얼마나 영광스러운가를 알려면 새 언약의 우월함을 찾아야 합니다.

  첫째, 새 언약의 우월성은 은혜의 언약 때문입니다. 새 언약의 우월성은 옛 언약 아래에서는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인으로 인정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위에 근거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헬라에 있는 유대 크리스천들은 사도 바울을 공격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복음을 경시하였습니다. 그들은 율법 조문을 암송하고 지키고자 하였지만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바리새인으로서 율법을 지키고자 얼마나 투쟁을 했습니까? 그러나 그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그는 로마서 7장에서 율법신앙의 한계에 대해서 낱낱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또한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다고 합니다. 율법은 하나 하나 다 지켜야 하고 잘 지키다가 하나라도 범하면 율법을 범한 것입니다. 그 결과는 죄인으로 남게 되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될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은 죄 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살을 찢기고 피를 흘리셔서 대속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는 장사된 지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는 부활하신 후 40일 만에 승천하셨고 50일째에 성령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 나를 위한 대속적인 죽음이요 부활이었음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게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 안에 들어오셔서 거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새 언약의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저와 여러분을 해방하였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시고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사랑에서 자라게 하십니다. 옛 언약은 율법을 지킬 수 없어 절망에 이르게 하지만 새 언약은 성령으로 율법을 지키게 하시고 속사람까지 변화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 판에 새겨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3,34).”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 유월절에 최후의 만찬을 하시면서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20)”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새 언약의 사역을 성령의 사역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성령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에 믿는 사람들을 변화시킵니다. 그들의 삶과 인간성이 변화가 됩니다.

  둘째, 새 언약의 우월성은 새 언약의 일꾼이 의의 직분이기 때문입니다.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습니다. 그러나 의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넘칩니다. 검사도 영광스럽지만 훌륭한 판사와 변호사는 더욱 영광스럽습니다. 옛 언약은 정죄의 직분으로서 죽음에 이르게 하지만 새 언약은 복음을 전하고 믿게 하여서 의롭게 하고 생명을 살립니다. 7-9절을 보십시오.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그는 새 언약의 일꾼의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출애굽기 34:29-35절을 인용하여 해석합니다.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받았을 때 그의 얼굴에 영광의 광채가 나타나자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들이 옛 언약의 영광에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얼굴에 수건을 썼습니다. 옛 언약은 광채가 나며 생명을 약속하지만 사람을 살리지 못하고 죽게 합니다. 반면에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빛을 비추어 생명을 줍니다. 율법은 무법한 자들에게 죄를 깨닫게는 하지만 죄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에게는 생명을 약속하셨지만, 율법을 지키지 못함으로서 사람을 정죄하고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율법을 지켜서 생명을 얻은 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은 여전히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에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합니다(롬7:12,14). 이처럼 사람을 죽게 하는 율법도 영광이 있어서 사람들이 두려워서 볼 수 없었다면 새 언약 아래에서 주어진 성령은 얼마나 더욱 영광스럽겠느냐 라고 질문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을 영의 직분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영의 직분은 생명을 살리는 직분입니다. 우리는 목자의 직분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복음 신앙은 금방 표가 나지 않습니다. 반면에 율법적인 신앙은 금방 표가 납니다. 마음이 변화되어 행동하는 것과 마음에는 없지만 두려워서 하는 것의 차이는 태양 빛과 달 빛의 차이와 같습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 마음이 변화되면 기쁨이 넘칩니다. 생명력이 충만합니다. 주와 복음을 위해서 열정적으로 일을 하게 됩니다. 비전이 넘칩니다. 새로운 일에 도전을 합니다. 위대한 일을 시도합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자발적으로 합니다. 한 사람이 복음으로 변화될 때 주변이 변화가 됩니다. 주서택 목사는 자신이 청주에서 주님의 교회를 개척할 때 주변에 술집이 86개가 있었는데 지금은 9개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할 때 센터 앞 도로는 어둡고 술 취한 사람들이 고성방가를 지르며 지저분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동네 사람들이 이곳이 우리가 들어와서 많이 밝아지고 깨끗해졌다고 칭찬을 했습니다. 신자들이 사는 곳은 변화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 옛 언약은 일시적이지만 새 언약은 영원한 것이기에 더욱 영광스럽습니다. 10,11절을 보십시오.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옛 언약은 새 언약이 옴으로 폐하여지고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옛 언약은 없어질 영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새 언약을 주심으로 옛 언약의 임무는 끝나게 되었습니다. 율법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새 언약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사역이 끝났습니다. 하지만 인간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반영하는 율법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새 언약은 영원하기에 없어질 옛 언약보다 우월합니다.

  우리는 새 언약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현재 형편과 처지를 생각하면 초라하게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주변의 아는 사람들, 잘 나가는 친구들을 보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 회의가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바울의 처지는 우리보다 훨씬 열악했습니다. 유대교에 비해서 기독교는 한 없이 작았습니다. 어디를 가든 환영 받기보다는 배척을 당하고 버림을 당했습니다. 만물의 찌끼처럼 되었다고 그는 고백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언약의 직분이 얼마나 영광스러운가요? 우리가 보이는 열매가 없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고 새 언약의 일꾼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 영광스럽습니다. 사람들의 물질 중심적인 가치 기준으로 볼 때는 가난한 우리가 약하고 힘도 없고 불쌍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인해서 기뻐하고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바울은 새 언약의 일꾼으로서 담대히 말합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유대인들은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입니다.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질 것입니다(16).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17). 예수님도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새 언약 아래에 사는 우리는 진정한 자유인입니다. 죄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우리는 이제 이 자유로 죄를 것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삶을 통해서 선하게 써야 합니다. 죄의식과 허무와 죽음과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으니 이제는 상처를 받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8).” 우리는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새 언약 아래서 임재하시는 성령님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령의 활동의 결과로 그리스도인의 사고와 가치관과 삶이 변화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자신의 사역을 모세의 사역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사역이 더 우월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세우신 사도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직분을 맡았습니다. 우리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할 때 순수해지고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생명력을 얻습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만물의 찌끼가 되고 가난한 삶을 살고 어려움이 있지만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은혜와 자유는 새 언약 아래서 임재하시는 성령님을 통해서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 자유는 우리 자신을 복되게 하고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바울은 자신이 받은 새 언약의 직분을 어떤 자세로 감당했습니까? 4:1,2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그 열매를 눈으로 확신하는 일은 참으로 신비한 일입니다. 바울은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 이 세상의 신 즉 사탄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합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일을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존재입니다. 사탄은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양들의 종 된 것을 전파합니다. 우리 삶의 주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또한 우리가 예수님의 종된 것은 다른 사람을 섬김으로써 드러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삶은 바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삶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고린도 교인들을 실제로 섬기며 헌신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로 하나님을 바로 알고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6절을 보십시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하나님은 빛이 있으라 말씀하심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회심할 때 어두움 가운데서 빛이 비추어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는 것이요, 그 얼굴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회심은 재창조에 비견할만한 놀라운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의 빛을 비추지 아니하시면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는 것이어야 말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는 것은 복 중의 복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빛을 본 사람만이 또 빛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 주셔서 올바른 방향으로 걸어가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목자의 직분, 새 언약의 직분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새롭게 깨닫게 되어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이 직분의 영광스러움을 마음에 간직하고 복음을 전하는데 따르는 고난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이 직분을 감당하면서 예수님을 깊이 배우며 닮아가기를 기도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33건 1 페이지
주일메시지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33 고린도서 이엘리야 147 04-20
32 고린도서 최고관리자 49 04-10
31 고린도서 이엘리야 98 04-01
30 고린도서 이엘리야 107 03-25
29 고린도서 이엘리야 96 02-25
28 고린도서 이엘리야 99 02-18
27 고린도서 이엘리야 85 02-11
26 고린도서 이엘리야 91 02-04
25 고린도서 이엘리야 91 01-28
24 고린도서 이엘리야 104 01-21
23 고린도서 이엘리야 103 01-14
열람중 고린도서 이엘리야 101 12-03
21 고린도서 이엘리야 104 11-26
20 고린도서 이엘리야 97 11-19
19 고린도서 이엘리야 103 11-06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