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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서 2017년고후2강(2:1-17)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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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04회 작성일 17-11-26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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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고린도후서 제 2 강
말씀 | 고린도후서 2:1-17
요절 | 고린도후서 2:15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가겠다고 했다가 가지 않은 것에 대한 변명(1-4), 책망한 사람에 대한 바울의 사랑(5-11), 그리고 사도의 자기 선언입니다. 즉 바울은 자기의 사역을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씀합니다(12-17). 장미꽃의 향기, 김치의 향기, 청국장의 향기가 우리의 후각을 자극하여 아름다움과 시원한 맛과 깊은 맛을 나타내듯이 그리스도의 향기는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낼 수 있는지 생각해 보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고린도에 가지 않은 변명(1-4). 바울은 다시는 그들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첫 번째 방문에서 고린도 교회를 개척했고 두 번째 방문에서는 모욕을 당하고 에베소로 돌아왔습니다. 그가 세 번째 방문을 하지 않은 것은 고린도 교회를 근심하게 하는 것과 바울 자신이 평안하지 않은 마음으로 고린도 교회에 가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고린도에 가는 대신에 편지를 썼습니다. 이 편지를 눈물의 편지, 혹독한 편지라고 하는데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가 책망한 내용은 고린도 교회가 죄를 지은 형제를 책망하지 않고 방관하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갑작스럽게 당한 모욕과 교회의 무질서에 실망하고 당황하였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바울은 당장에라도 고린도로 다시 가서 자신에 대해 변명도 하고 또 문제를 바로 잡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방문이 자신과 고린도 교인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여 방문하지 않고 대신 편지를 썼습니다. 4절을 보면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편지를 디도 편에 보내어서 그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했습니다(1:23,24; 2:9). 교회는 범죄한 신자를 권징함으로 교회의 거룩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교회가 세상과 구별되지 않는다면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책망하면서도 행여나 잘못되어 그들 중에 믿음에서 떠나는 자가 있을까 근심하였습니다. 그의 편지지에는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진 흔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겸손과 눈물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섬겼습니다. 바울이 이런 눈물의 목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사랑을 깊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충만하여 양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목자는 복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를 풍성한 열매로 위로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책망한 사람에 대한 바울의 사랑(5-11). 5절을 보십시오.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모두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지나치게 말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근심하게 한 자’는 바울을 사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바울을 근심하게 하고 마음 아프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린도 교인 모두를 근심하게 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6). 바울의 편지를 받고 고린도 교회는 일치된 행동으로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엄하게 징계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는 교회로부터 영원히 버림 받는 것이 아닌가 염려를 할 정도였습니다. 이에 바울은 교회가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권면합니다. 7,8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라.” 교회가 잘못한 사람을 징계하는 목적은 살리기 위함입니다. 계속해서 정죄하고 소외시키면 그 사람은 회복할 수 없게 됩니다. 너무 많은 근심에 잠겨서 교회를 떠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징계의 목적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징계는 새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교회 공동체의 지체로서 함께 동역하고 섬기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징계 받고 교회를 떠난다면 권징의 순기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권징을 한 후에는 반드시 용서하고 위로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수술은 잘 되었는데 사람은 죽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수술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징계도 중요하지만 그 징계를 통해서 사람이 살아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징계를 받으면 회개하지 않고 당을 지어서 대적하기 쉽습니다. 이렇게 되면 교회가 거룩해 질 수 없습니다. 교회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권징입니다. 권징이 있을 교회에 질서와 거룩함이 유지됩니다. 초대 교회에는 권징이 살이 있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을 통해서 사람들은 다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께 거짓말을 한 죄가 얼마나 큰 죄인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에 교회는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게 그 근심하게 한 자를 용서하라고 부탁한 목적은 고린도 교회의 화합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징계와 용서는 항상 함께 해야 할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징계 받은 자가 그 모든 징계 과정을 잘 거쳐 왔다면 공동체는 그를 용서하고 다시 예전처럼 교제와 환대 속에서 사귐을 가져야 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11절을 보십시오.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신자가 장기간 징계를 받을 경우 사탄이 그 사람을 낙담하게 하고 회중의 마음을 완악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사탄의 책략은 다양합니다. 교인의 도덕적 실패를 악용하여 그를 영원히 멸망시키기도 하고 교회를 분열시켜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사탄의 역사는 서로 의심하고 불신하고 다투게 하여서 분열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교회가 적절한 권징을 행하지 아니함으로 교회가 타락하여 쓸모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역사는 서로 귀히 여기고 격려하고 서로 견책하고 서로 허물을 용서함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사탄의 역사는 죽이는 것이요 하나님의 역사는 살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 건강하고 강해질 때 하나님 나라를 힘 있게 확장해 나갈 수 있습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향기(12-17).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렀는데 주 안에서 복음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복음을 전하면 양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일대일 성경 공부와 예배에 참석하는 역사가 왕성하게 일어났습니다. 집을 심방하면 양들은 “드로와 드로와” 하면서 쌍수를 들고 영접하였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것을 신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보낸 편지를 가지고 고린도에 갔던 디도를 만나지 못하여 그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드로아의 양들과 작별을 하고 마게도냐로 갔습니다. 마게도냐는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교회가 있는 곳입니다. 바울은 마게도냐에 이르렀지만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디도를 만나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을 사모하며 자신들의 죄에 대해서 애통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바울은 디도의 보고를 듣고 매우 기뻤습니다. 

  2:14-7:4절은 일종의 일탈(digression)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디도를 만나는 이야기를 잠시 중단하고 자신의 사도직에 대해서 변호하기 시작합니다. 자기의 대적자들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복음 사역자로서 매우 심각하게 압박을 받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압박은 아시아에서 당했던 환난과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 고린도 교회에서 경험한 고통 등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자신을 통해서 사역하셨는지 이야기 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바울은 슬프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중단하고 하나님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드립니다.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신들로 승리하게 하시며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기게 하다’의 헬라어 ‘트리암뷰오’는 본래 ‘개선행렬에 참가시키다’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를 이끌어 승리의 행진을 하게 하시며”(lead us in triumphal procession)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도 ‘승리의 행진으로 인도하는 분’이십니다. 바울은 자신의 선교사역을 마치 대적자들을 물리치고 승전한 장군의 영광스러운 행렬에 참여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목자 생활을 하면서 열매를 맺지 못했다는 열등감과 패배감에 사로잡힐 때가 많습니다. 이제까지 뭐 하며 살아왔나, 남은 것이 무엇인가 회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로 죄와 죽음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 안에서 승리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부분적으로 패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패배를 승리로 바꾸셔서,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는데 여기서 ‘냄새’, ‘향기’라는 상징어는 승리자의 개선행렬 때에 길가에 향기로운 연기를 피우는 관습을 배경으로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전쟁에서 이긴 개선장군은 휘하 장병들을 거느리고 그 뒤에는 전리품과 포로들을 이끌고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입성했습니다. 이때 승리한 장군들은 전차에서 신에게 바치는 향들을 피워서 온 성안에 향기가 충만하게 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전쟁에서 이기면 신들이 도와주어서 이겼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생명을 구원하는 향기로 생각했습니다. 복음 전파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향기는 당시 세계로 널리 퍼져나갔습니다. 향기는 악취를 제거하고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줍니다. 향기는 그 어떤 감각 경험보다 감정을 자극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기쁨과 분노를 안겨 주고, 눈물을 흘리거나 가슴을 아프게 하며 공포에 떨게 하고 욕망으로 안달하게 만듭니다. 향기는 감정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감정 자체가 될 수도 있습니다. 태국에서 음식을 먹으면 향료가 꼭 들어가는데 그 향료를 맡으면서 먹던 음식 똠양꿍과 쏨땀은 저를 매료시켰습니다. 향기는 치료 하는데도 쓰입니다. 향기 요법이란 것이 바로 향기를 통한 치료법입니다. 백단향은 신경을 안정시켜주는 효과가 있어서 불안, 우울증, 불면증 치료에 좋다고 합니다. 로즈메리는 정신을 맑게 해주며 기억력을 증진시킵니다. 라벤더는 기운을 북돋워주고 스트레스, 불안 우울증, 불면증을 줄여주는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분리불안증으로 우는 아기에게 엄마의 냄새가 나는 옷을 가져다 덮어 주면 즉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울지 멈춘다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영접할 때 마음의 상처와 인간성이 치료가 됩니다. 그가 상함으로 우리가 죄사함을 받았고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풍길까요? 우리가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함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깁니다. 15,16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합니다. 그 향기에 대한 반응에 따라서 구원을 얻는 사람도 있고 멸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향기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구원받을 자들에게는 생명의 약속을 줍니다. 그러나 멸망 받을 자에게는 죽음을 줍니다. 복음 전도자는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향기입니다. 우리는 복음 전파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알릴 수 있습니다. 또 말씀에 기초한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깁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말하는 것보다 실제적인 삶이 어떠한지 주목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9:18에 보면 “그 숫양 전부를 제단 위에 불사르라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번제요 이는 향기로운 냄새니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번제는 향기로운 냄새라고 했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나타내는 그림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드려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하나님께는 향기로운 제사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의 헌신이 하나님께서 맡으시는 향기로운 냄새가 됩니다. 주와 복음을 위해서 고난을 받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향기입니다. 이웃들을 섬기기 위해서 드리는 우리의 희생적인 사랑도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향기가 됩니다. 

  당시 개선행렬의 종착점은 쥬피터 신전에서 포로 중 우두머리를 죽여서 개선의 제물로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개선행렬에서 피우는 향은 승리한 사람들에게는 생명의 향기가 되었지만, 멸망당하기 위해 끌려가는 포로들에게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냄새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을 영접하는 자에게는 구원과 영생이 있지만, 복음을 배척하는 자들에게는 정죄와 심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청국장 냄새는 우리에게는 ‘고향의 맛’이요 천국장이지만 외국인들에게는 '죽을 맛‘입니다. ‘록’ 음악이 어떤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소리가 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고통스러운 소음이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복음 선포가 구원을 얻는 자들에게는 생명에 이르게 하는 감미로운 향기가 되고,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역겨운 악취가 됩니다. 말씀과 찬양, 기도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향기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소음이고 고통의 시간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그리스도의 향기 때문이 아니라 복음을 듣는 사람들의 반응 때문입니다.

  이를 볼 때 복음 전파자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생명과 죽음을 가름하는 매우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라고 말했습니다(16). 쉬운성경에는 “이 일을 하기에 합당한 사람은 누구이겠습니까?”라고 번역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고귀한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온전히 자신을 100% 헌신했습니다. 그리고 조금의 사사로움이 없이 100% 순수한 동기로 섬겼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향기가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순전함으로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살기 위한 방편으로 삼는다든지, 이 세상의 실용주의 철학이나 번영을 목적으로 전하게 되면 말씀을 듣는 사람들을 온전히 구원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인기를 끌기 위해서 듣기 좋은 말씀만 전해서는 회개에 이르도록 도울 수 없습니다. 믿고 축복만 전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만약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면 그 신자는 잘못 믿은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다가 때로는 가난하게도 되고 고난도 받습니다.

  바울은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 고백합니다. ‘순전함’은 ‘정직’ ‘객관성’의 의미를 가집니다. 바울 사역의 특징은 ‘순전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자기생각이나 세상적인 풍조 등을 섞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께로부터 능력과 영감을 받아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통해서 나타난 어떤 능력도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생각하거나, 그렇게 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답게 하나님 앞에서 행동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시대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생각이나 기복신앙 등과 섞어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심도 있게 연구하고 가르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말씀에 물을 타서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메시지를 전하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서 이득을 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사람을 도울 때 조금의 사심이 없이 순수하게 그 영혼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쓰실만한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좋은 향기를 풍기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향기가 되어 말씀을 전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아름다운 향기를 피울 때 사람들은 하나님께 돌아와 회개하고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향유 옥합을 깨뜨린 여인과 같이 주와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는 분들을 통해서 한국과 세계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겨나가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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