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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22년 눅12강(8:22-39) 자연과 영적 세계를 다스리시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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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48회 작성일 22-10-16 20:16

본문

2022년 누가복음 제 12 강
말씀 | 누가복음 8:22-39 
요절 | 누가복음 8:24

자연과 영적 세계를 다스리시는 예수님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광풍을 잠잠하게 하신 사건과 거라사 광인을 치료하신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자연세계와 영적 세계를 다스리시는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광풍을 잠잠하게 하신 후 제자들에게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우리가 죽을 것 같은 상황 속에서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믿고 그가 행하실 일들을 잠잠히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문제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새롭게 체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오랜만에 노를 저으며 저녁노을을 만끽하며 뱃노래를 불렀습니다. “어기야 디여차 어야디야 어기여차 뱃놀이 가잔다. 부딪치는 파도소리 잠을 깨우니 들려오는 노소리 처량도 하구나. 어기야 디여차 어야디야 어기여차 뱃놀이 가잔다. 만경창파에 몸을 실리어 갈매기로 벗을 삼고 싸워만 가누나. 어기야 디여차 어야디야 어기여차 뱃놀이 가잔다. 창해만리 먼 바다에 외로운 등불만 깜빡거린다 어기야 디여차 어야디야 어기여차 뱃놀이 가잔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뱃노래를 자장가 삼아 깊은 잠이 드셨습니다. 예수님은 힘을 다해서 복음 역사를 섬기시느라 늘 잠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렇게 짬 시간을 내어 잠을 보충하며 피로를 회복하셨습니다. 배가 호수 중간쯤 왔을 때 하늘에 먹구름이 끼이며 헬몬 산에서 내려오던 바람이 돌풍으로 변하여 강하게 몰아쳤습니다. 그러자 파도가 크게 일어나더니 철썩, 철썩, 쏴아 하고 배에 덮쳤습니다. 제자들은 닻을 내리고 키를 조정하면서 노를 저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항해술로는 이 광풍을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물이 배에 가득하여 광풍이 이리불고 저리불자 배가 곧 뒤집힐 것 같았습니다. 

  제자들은 이때 예수님께 나아와 깨웠습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졌습니다.

  우리 인생은 항해와 같습니다. 우리가 항해할 때에 혼자서 항해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항상 동행하십니다. 그는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도 죽을 것 같은 위기가 찾아옵니다. 잘 다니던 직장에서 갑자기 명퇴를 당하게 되면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막막한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예상하지 못한 암과 같은 질병에 걸려서 두려움에 빠지기도 합니다. 가정의 위기로 인해서 두려움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인간 갈등이 처음에는 작은 문제로 시작되지만 감당할 수 없는 큰 문제로 커지게 됩니다. 학생들은 빡빡한 과제와 중간고사로 인해서 마음에 광풍이 불기도 합니다. 앞이 캄캄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제자들과 같이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울부짖게 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워서 죽게 되었다고 아뢰는 것은 기도입니다. 위급한 상황에서 예수님을 찾는 것은 신자의 겸손한 자세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주님께 구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흔들어 깨우면서도, 예수님이 광풍을 잠잠케 하실 수 있는 권세를 가졌다고는 믿지는 않았습니다. 물에 빠져 죽어가다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예수님을 깨운 것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제자들의 믿음은 제한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위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기 쉽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경험의 한계 속에서 일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연만물을 무에서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창조주이십니다. 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나님께서 이루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기 속에서 제한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해야합니다. 홍해 앞에서 모세가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를 마른 땅 같이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엘리야가 기도할 때에 삼년 동안 비가 오지 아니하고 그가 다시 기도하니 비가 내렸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 전쟁을 할 때 기도로 태양을 멈추게도 하였습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다 다르지만 하나님께서는 막강한 권세로 이를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신 것은 귀신을 꾸짖으신 것과 같은 단어입니다. 광풍을 통해서 예수님과 제자들을 수장시킴으로 구속 역사를 훼방하고자 하는 사탄의 역사를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사탄은 욥의 열 명의 자녀들이 잔치를 하고 있을 때에 돌풍을 일으켜서 그들을 다 죽음에 처하도록 했습니다. 이를 통해서 욥의 믿음을 시험하였습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 편에서 자기의 믿음을 지켰습니다. 우리도 믿음을 지키며 사탄과 싸워야 합니다. 문제의 근원과 싸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바람과 물결을 잔잔하게 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위기의 상황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그를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기뻐하시고 그 믿음대로 역사하십니다. 예수님은 너희의 항해술이 왜 그 모양이냐고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기술이 없냐고, 능력이 없냐고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사도 바울과 함께 로마로 가는 배가 우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났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사도행전 27: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두려워하는 사람들 앞에서 먼저 음식을 먹고 그들도 먹도록 도우면서 위로하고 구원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믿음은 무엇일까요?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들을 돌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내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여기시면서 도우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겪고 있는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천지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누가복음 12장 6,7절에서 시장에서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도 아시고,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삶 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조차도 예수님은 다 아십니다. 예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예수님의 주권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은 광풍을 잠잠하게 하심으로서 자연 세계까지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셨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연 세계뿐만 아니라 세상 역사와 우리 각 사람의 운명까지도 주관하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인생을 사는 동안에 항상 문제가 생깁니다. 인생은 문제의 연속입니다. 문제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깨어 기도하고 믿음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문제를 통해서 우리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새롭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광풍 같은 문제 속에서도 광풍을 잠잠케 하시는 주님을 믿고 믿음에 합당한 행동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가정 문제를 통해서 나의 믿음을 연단하십니다. 내가 죽어짐을 통해서 부활을 경험하게 됩니다. 참된 결혼은 한마디로 매일 주 안에서 내가 죽는 것입니다. 때로 주님은 광풍 같은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으시기도 합니다.  그럴지라도 이 모든 상황이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가운데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그 상황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외적인 광풍을 잠잠케 할 수는 없지만 내적인 두려움을 잠잠케 할 수는 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선하신 하나님을 믿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25b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하더라.” 광풍 이야기의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이십니까? 그는 자연 만물도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요 전능한 하나님이십니다.

  제자들이 잔잔해진 호수를 미끄러지듯이 지나와서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새벽에 육지에 내리니 괴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도시 사람으로서 귀신 들린 자 하나가 예수님을 찾아와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였습니다. 귀신이 가끔 그 사람을 붙잡으므로 그를 쇠사슬과 고랑에 매어 지켰으되 그 맨 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습니다. 그의 모습은 방금 지옥에서 나온 사람처럼 쇠사슬과 고랑을 차고 있었습니다. 그는 무섭고 눈에서 파란 빛을 내며 살기가 가득했습니다. 그는 그 도시의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와 함께 놀아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외로운 늑대와 같이 마음 속에는 온갖 음란과 미움과 악한 생각으로 가득하여 당장이라도 몇 사람을 죽일 것 같았습니다. 그는 맨 몸에 옷도 걸치지 않았지만 부끄러운 줄을 몰랐습니다. 세상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듯이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충동적으로 자유를 찾아 행동할수록 그는 더욱 쇠사슬과 고랑에 매이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결국 군대귀신이 들어가서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왜 이 청년이 귀신에 사로잡히게 되었을까요? 거라사 도시는 로마 군대가 주둔한 곳이어서 폭력적이고 음란했습니다. 술과 마약과 성매매가 만연했습니다. 이런 도시에 살면서 그는 정서적으로 불안했습니다. 부모님이 끊임없이 다투고 아버지가 폭력을 행사하는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마음에는 반항심과 반발심이 가득했습니다. 부모와 다투고 가출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그의 행동이 거칠어지면서 아무도 그를 말릴 수 없었습니다. 그는 집을 뛰쳐나가 무덤에서 먹고 자고 하였습니다. 아무도 자신에게 간섭하지 않으니 자유로운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런 생활을 지속할수록 인간성을 상실한 채 짐승처럼 살았습니다. 결국 귀신이 하나 둘 그 속에 들어오더니 군대귀신을 이루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보고 엎드려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 그가 이렇게 부르짖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예수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사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명령하셨음입니다. 귀신들은 예수님을 보자마자, 그가 어떤 분이신지, 그 분의 권세가 어떠한지 즉각적으로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서 큰 소리로 아뢰었습니다. 자신은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 자신을 내버려두고 떠나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지만 관계성 맺기를 싫어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거칠게 반발하는 것은 ‘자신이 어떻게 될까?’ 하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귀신은 계속해서 귀신들린 사람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눈 앞에 보이는 이 사람과 싸우지 않고 그를 사로잡고 있는 더러운 귀신들과 싸우셨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말씀합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 마귀는 두려워할 존재가 아니라 대적해야 할 원수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사로잡고 있는 귀신의 세력을 몰아낼 수 있는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또한 귀신에 사로잡힌 영혼을 자유롭게 해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더러운 귀신에게 명령하여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대개 이름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귀신의 정체를 물으셨습니다. 동시에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가 누구인지 돌아보고 정체성을 찾도록 돕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얍복 강 가에서 하나님과 씨름을 하다가 축복을 구하는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셨습니다. 야곱이 자기의 이름을 야곱이니이다, 고백하자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기꾼 야곱을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이스라엘로 이름을 바꾸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거라사 청년에게도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셨습니다. 그가 ‘군대(legion)’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레기온(legion)’은 3000명에서 6000명으로 구성된 로마 군대 여단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에게는 수많은 떼 귀신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군대는 계급과 조직과 명령체계로 움직입니다. 귀신들은 군대와 같은 조직과 체계를 가지고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영적 전쟁 중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영적 전쟁은 나 혼자서 싸울 수 없습니다. 우리도 교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함께 영적 전쟁을 수행해야 합니다. 군대의 최소 단위는 분대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각자는 요회라는 공동체에 속해서 영적 전쟁을 치루어야 합니다. 함께 기도하고 귀신의 세력과 싸워야 합니다. 귀신의 세력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돌보고 같이 싸워야 합니다. 고통하는 영혼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끈질기게 싸울 때 귀신은 떠나갑니다.

  사탄은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에 귀신도 자기 정체가 드러나면 힘을 쓰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군대 귀신들린 자를 어떻게 자유롭게 하셨습니까? 31-33절을 보십시오.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마침 그 곳에 많은 돼지 떼가 산에서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이 그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허락하심을 간구하니 이에 허락하시니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그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호수에 들어가 몰사하거늘” 귀신들은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허락해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귀신들과 악한 자들이 영원히 거할 무저갱보다는 돼지 떼가 낫다고 여긴 것입니다. 유대 사회에서 돼지들은 부정한 짐승들로 여겨졌습니다(레11;7). 예수님은 귀신들의 간청을 허락하셨습니다. 왜 이런 허락을 하셨을까요? 악한 세력들을 최종적으로 심판하는 날이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허락하자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돼지 떼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비탈길로 내리달아 호수로 들어가 몰사했습니다. 마가복음 5장 13절에서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 떼에 들어가니 거의 2000마리 되는 돼지 떼가 바다로 뛰어들었다고 했습니다. 언제나 귀신들은 생명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예수님은 돼지 2000마리를 희생하심으로 이 사람을 구원하셨습니다. 한 사람은 천하보다 귀합니다. 예수님은 5억4천만 원의 가치에 해당하는 돼지를 희생하면서 한 사람을 구원하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물질주의에 찌든 그 도시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셨습니다.
 
  돼지를 치던 자들이 그 이루어진 일을 보고 도망하여 성내와 마을에 알렸습니다. 사람들이 그 이루어진 일을 보러 나왔습니다. 그들은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습니다. 귀신 들렸던 자가 어떻게 구원 받았는지를 본 자들이 그들에게 증언하였습니다. 거라사인의 땅 근방 모든 백성이 크게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물질적인 손해를 보지 않고자 예수님께 떠나가시기를 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배에 올라 가실새 그가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를 보내시며 사명을 주셨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말하라.” 그가 동네에 들어가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온 성내에 전파하였습니다. 그는 데가볼리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구원받은 후에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좋은 모범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사실은 귀신의 영향권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골1:13)”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권능을 주셔서 복음을 전하고 귀신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쫓아내게 하십니다. 성령의 검 곧 말씀과 기도로 악한 세력과 대적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권세와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귀신의 세력 가운데 고통하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상담을 하고 자유하도록 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귀신들린 한 영혼을 위해서 호수 건너편까지 가셨고 많은 돼지들을 희생시키셨습니다. 한 영혼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더 나아가 은혜로 택함 받은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십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 승천하셔서 하늘 보좌 앉으셔서 하늘과 땅을 통치하십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 예수님께서 예수의 영 곧 성령으로 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를 모든 위험에서 보호하시고 복음을 전할 때에 능력으로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한 영혼을 귀신의 세력에서 자유하도록 돕기 위해서 어떤 희생도 감수하며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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