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22년 눅4강(5:1-11)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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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누가복음 제 4 강
말씀 | 누가복음 5:1-11
요절 | 누가복음 5:10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심으로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오늘은 어부 시몬을, 사람을 취하는 제자 베드로로 부르시는 내용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전파할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먼저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시몬 베드로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부르심을 받게 되었는지 배우고자 합니다. 우리도 이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사람을 취해야 하는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아침 일찍 게네사렛 호수가로 나가셨습니다. 호수 가는 조용하고 넓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에 적합한 장소였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 주위에 몰려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아침부터 각자의 절박한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와 해결을 받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아셨습니다. 영적으로 굶주리고 기갈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계속 밀려들자 예수님은 점점 뒤로 밀려서 호수에 빠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고 어부 시몬에게 정중히 부탁을 하였습니다. “배를 좀 띄워주시겠습니까?” 예수님은 겸손하게 부탁하심으로 시몬과 인격적인 관계성을 맺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도울 때도 “물 좀 주시겠습니까?”라고 부탁을 하셨습니다. 우리도 일상 속에서 도움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저는 센터 주차장에 가끔 주차를 하는 한 대학원생에게 성경 공부를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 교회에 다녔는데 지금은 나가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이 형제와 인격적인 관계성을 더 깊이 맺고 성경을 공부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한 사모님은 ‘오른쪽 두뇌로 그리기’ 프로그램을 통해서 학생들과 접촉점을 마련하고 몇 명을 일대일 성경 공부에 초청하여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촌 마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해변으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기회를 찾으셨습니다. 흔한 말로 “현장에 답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도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모이는 캠퍼스로 올라가던지, 또는 인스타그램 속으로 들어가서 접속을 해야 합니다. 몇몇 분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속에서 복음을 전하고자 애를 쓰고 있습니다. 가을 학기에 우리도 ‘나의 베드로’을 만나기 위해서 현장 속으로 들어가길 기도합니다.
시몬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몸과 마음은 밤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해서 피곤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장모님의 열병도 고쳐 주시고 이렇게 부탁을 하시니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배에 앉아서 무리를 가르치셨습니다. 당시 선생은 앉아서 말씀을 전하고 청중은 서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황금의 입이라는 크리소스톰 이후 이 관습은 바뀌었습니다. 크리스소톰이 너무나 열정적으로 말씀을 가르쳤기 때문에 앉아서 전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일어서서 말씀을 전하였기 때문에 이후로 모든 메신저들은 서서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원고 없이 전하셨습니다. 그 자신이 말씀 자체이시고, 또 말씀이 그 안에 충만하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구전으로 말씀을 전했기 때문에 대부분 구약을 암송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언제 어디서든지 말씀을 전할 기회가 있으면 전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면 좋겠습니다. 복음요절을 암송하거나 인생 소감을 준비해 놓으면 매우 유용한 복음전도의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배 안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시몬은 피곤하였지만 졸지 않고 깨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말씀을 듣는 중에 그의 마음도 점차 열리기 시작하더니 감동이 되었습니다.
말씀을 마치신 후에 예수님은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시몬의 실제적인 필요를 채워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번에 이다니엘 목자님이 「아프리카 선교 핸드북」을 발간하셨습니다. UBF의 선교방향과 역사방법이 아프리카에서 어떻게 역사했는가? 이런 주제로 책을 썼습니다. 아프리카 선교사님들이 초창기 13년 동안은 양들의 물질적인 필요를 어디까지 도와야 하는가가 대화의 주제였다고 합니다. 선교사님들은 이들을 물질적으로 돕되 먼저 하나님이 그를 돕고자 하시는가를 확인하였다고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도왔을 때 믿음이 성장하고 남은 자들이 자기의 양들을 그렇게 돕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말씀을 전하고 구제사역을 하는 것은 오래된 기독교의 전통입니다. 예수님은 빈 그물로 집에 돌아가야 하는 시몬의 마음을 헤아리시고 그의 그물을 채워주고자 말씀하십니다. 지금 여러분들에게는 어떤 필요들이 있습니까? 물질적인 필요가 있고, 한 양을 얻을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동역자와 또는 동료와 관계성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빠른 시대의 변화 속에서 자기 발전을 위해서 팀워크와 실행력이 필요한 분도 있습니다. 내가 돕고자 하는 양에게는 어떤 필요가 있을까요? 예수님은 양의 필요에 민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우리의 필요를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시몬의 필요를 아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이 명령에 순종하기 힘든 점이 무엇일까요? 5절을 보십시오.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는 밤새도록 그물을 내렸다 올리는 수고를 반복하느라 힘이 빠져 있습니다. 그물을 씻고 집에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피곤한 자기의 몸을 부인하고 다시 한 번 그물을 내리러 가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목수 출신입니다. 시몬은 베테랑 어부입니다. 지금은 고기를 잡을 시간이 아닙니다. 그는 갈릴리 호수를 손바닥을 들여다보듯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어떤 고기가 언제 잡히는지, 그 고기가 어떤 밑밥을 좋아하는지, 평생 고기잡는 것을 연구하고 그물을 내린 전문가입니다. 그런데 시몬은 자기의 경험이나 지식보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립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요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제까지 실패했지만 다시 한 번 더 그물을 내립니다. 시몬은 경험의 세계에서 믿음의 세계, 말씀의 세계로 나아갑니다. 우리는 자기의 경험과 지식과 전통의 세계에 머물기 쉽습니다. 경험은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하나님을 이해하고 알 수가 없습니다(고전 2:14). 하나님은 영이시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은 성령을 통해서 말씀으로 분별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깊은 세계로서 그 안에는 온갖 지식과 지혜의 보화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돈이 필요할 때 돈을 주시고, 양이 필요할 때 양을 주시고, 지혜가 필요할 때 지혜를 주시고, 말씀이 필요할 때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심으로 그의 사랑을 보이십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나를 축복하기 위해서 주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내가 순종해야 할 한 말씀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나에게 주시는 그 말씀을 붙잡고 순종할 때 엄청난 축복을 받게 됩니다.
시몬이 그물을 내렸을 때 호수 위에서 어떤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까?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6,7).” 시몬이 그물을 잡고 올리고자 할 때 묵직한 느낌과 고기들의 펄떡거림으로 인한 생명력이 느껴졌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솟아났습니다. 그 기쁨은 지난 밤의 실패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었습니다. 갈릴리 수산시장에서 이제까지 이렇게 많은 고기를 잡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자기 배만 채울 뿐만 아니라 친구의 배까지 가득 채우고 잠기게 될 정도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시몬의 실패를 만회시켜 주셨습니다. 실패를 만회시켜 주심으로 그의 마음을 펴 주시고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때로 우리의 실패를 놀라운 방법으로 만회시켜 주십니다.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나는 끝이라고 생각이 될 때 주님은 거기서 시작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실패를 통해서 우리를 겸손하게 하시고 어두움 속에서도 그는 일하고 계십니다. 한 목자님은 부부가 다 암에 걸리셨습니다. 이 분들은 “왜 우리에게 이런 고난을 주시는가? 이런 몹쓸 병이 왜 우리 부부에게 왔는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생각들이 들 때마다 사41:10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내가 너를 도우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그리고 어둠의 성경적인 의미를 탐색하기 시작했습니다. 빅터 프랭크도 나치 죽음의 수용소 체험을 통해 '로고 세라피' 곧 의미를 찾는 인간존재를 발견하지 않았는가.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도 목자 주님이 함께 계심을 믿고 생사의 경각 중에도 시23편을 노래하지 않았던가. 게릴라 폭우같이 쏟아진 영문을 알 수 없는 고난과 친구들의 공감없는 끈질긴 직언을 듣고도 “내가 연단된 후에는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욥도 신음하며 고백하지 않았던가. "오 주여! 저희 부부 불쌍히 여기소서. 약속대로 주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저희를 굳게 붙잡아 주시고 저희로 믿음의 경주에서 포기하지 않게 하소서."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항암의 고통과 어둠을 직시하고 직면할 용기가 났고 항암투병을 항암순례로 승화할 힘이 생겼습니다. 성경적 어두움이란 빛의 반대도 빛의 부재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빛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어둠이었습니다(요1:5). 어둠 속에도 참 빛이 존재했습니다. 하나님은 빛 뿐만 아니라, 어둠도 창조하셨고(사45:7), 어두움이 창조와 구원의 모태가 되었습니다(창1:2,3, 마27:45,46). 파편적으로 알고 있던 이런 성경 지식들이 암 투병 깊은 수렁 속에서 하나씩 깨달아지고 서로 연결되어가자 그 안에 자리잡고 있던 어둠에 관한 동양적 세계관과 이원론적 세계관이 허물어지고 서서히 성경적 세계관이 구축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암 투병의 어두움 속에서 일을 하셨고 마침내 목자님이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올 여름 수양회 때 광주 3부에서는 한 간호대학에서 20여명의 학생들이 참석했습니다. 한 목자님이 간호대학 교수가 되었는데 이 분이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동아리도 만들고 섬겼을 때 20여명의 대학생들이 수양회에 참석하여 큰 은혜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지금도 놀라운 구원 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엄청난 양의 물고기를 본 시몬 베드로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아래 엎드렸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시몬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습니다. 그가 5절에서는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호칭을 했는데 여기서는 “주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주여”라고 부른 호칭은 높은 신분과 권위를 가지신 분을 나타내는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가리키는 호칭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시몬은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참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앞에 설 때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한 없이 부끄러운 죄인으로서 자신의 참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죄에는 심판이 따르고,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도망을 간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떠나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그 앞에 다리가 후들거려서 도망도 갈 수 없고, 심지어 서 있을 수 조차 없었습니다. 그는 털썩 무릎을 꿇고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고백합니다. 우리도 말씀을 받을 때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납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말씀으로 거듭나는 재창조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예수님은 시몬에게 이르십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무서워하지 말라는 말씀은 무서움의 근원인 죄에 대한 심판을 거두시고, 그에게 죄사함을 선포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용서하심과 말할 수 없는 평안이 그에게 임하였습니다.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파괴되었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었습니다. 그는 이제까지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사람으로 살았지만 실제적으로 하나님과 관계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이고 고기가 우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부르시고 삶의 전환을 이루게 하십니다.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사람을 취한다는 말씀은 사로잡는다는 뜻입니다. 취한다는 것은 산 채로 잡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서 하나님께 사로잡히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사로잡혀서 구원을 받고 그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시몬은 물고기를 잡는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이는 먹고 살기 위한 삶이었습니다. 밤에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고 수산시장에서 고기를 팔고 그것으로 삶을 영위해왔습니다. 이렇게 살다가 대부분 죽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를 부르시고 제자의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성품과 사역을 배우는 제자의 삶을 살도록 초청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죄로 병든 인생들을 치료하고 구원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제자의 삶은 생명을 구원하는 삶이요, 사람을 키우는 삶입니다. 제자를 세우고 전수하는 삶입니다.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고민을 합니다. 그러나 먹고 사는 일에 힘쓰다 보면 인생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사고를 당하거나 일을 쉬게 될 때에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도 사람을 취하는 삶을 살도록 주님께서 부르십니다. 썩어질 양식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추구하는 삶을 살도록 초청하십니다. 죄와 사망 권세의 바다 속에서 생명을 구원하는 삶을 살도록 초청하십니다. 한 사람이 구원을 받고 변화되는 것을 보는 것은 큰 기쁨이 있습니다. 주님은 이와 같이 우리가 사람을 얻는 사명인의 삶을 살도록 초청하십니다.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새로운 인생의 비전을 심어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고 사람을 취하도록 말씀하십니다. 내 힘으로 사람을 구원하고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주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입니다. 내 삶에 임한 구원의 은혜를 나눌 수 있습니다. 또 구원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서 꾸준히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대상자를 정하고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기도를 하되 작은 것부터, 단계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의 응답을 알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전도대상자의 실제적인 필요가 무엇인가 알고, 그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을 받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와 사랑을 체험하도록 기도합시다. 이번 가을 학기에 각 요회에 사랑하고 섬길 양들을 보내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그들은 배와 그물과 고기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것은 작은 결단이었지만 그들을 인류의 스승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물거품처럼 사라졌을 인생이었지만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제자의 삶은 고기가 목적이 아니라 예수님이 목적이 되는 삶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은혜 받고 자기가 처한 곳에서 주님께 헌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깊이 영접하고 순종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체험하고 전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누가복음 5:1-11
요절 | 누가복음 5:10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심으로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오늘은 어부 시몬을, 사람을 취하는 제자 베드로로 부르시는 내용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전파할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먼저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시몬 베드로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부르심을 받게 되었는지 배우고자 합니다. 우리도 이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사람을 취해야 하는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아침 일찍 게네사렛 호수가로 나가셨습니다. 호수 가는 조용하고 넓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에 적합한 장소였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 주위에 몰려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아침부터 각자의 절박한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와 해결을 받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아셨습니다. 영적으로 굶주리고 기갈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계속 밀려들자 예수님은 점점 뒤로 밀려서 호수에 빠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고 어부 시몬에게 정중히 부탁을 하였습니다. “배를 좀 띄워주시겠습니까?” 예수님은 겸손하게 부탁하심으로 시몬과 인격적인 관계성을 맺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도울 때도 “물 좀 주시겠습니까?”라고 부탁을 하셨습니다. 우리도 일상 속에서 도움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저는 센터 주차장에 가끔 주차를 하는 한 대학원생에게 성경 공부를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 교회에 다녔는데 지금은 나가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이 형제와 인격적인 관계성을 더 깊이 맺고 성경을 공부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한 사모님은 ‘오른쪽 두뇌로 그리기’ 프로그램을 통해서 학생들과 접촉점을 마련하고 몇 명을 일대일 성경 공부에 초청하여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촌 마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해변으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기회를 찾으셨습니다. 흔한 말로 “현장에 답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도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모이는 캠퍼스로 올라가던지, 또는 인스타그램 속으로 들어가서 접속을 해야 합니다. 몇몇 분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속에서 복음을 전하고자 애를 쓰고 있습니다. 가을 학기에 우리도 ‘나의 베드로’을 만나기 위해서 현장 속으로 들어가길 기도합니다.
시몬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몸과 마음은 밤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해서 피곤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장모님의 열병도 고쳐 주시고 이렇게 부탁을 하시니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배에 앉아서 무리를 가르치셨습니다. 당시 선생은 앉아서 말씀을 전하고 청중은 서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황금의 입이라는 크리소스톰 이후 이 관습은 바뀌었습니다. 크리스소톰이 너무나 열정적으로 말씀을 가르쳤기 때문에 앉아서 전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일어서서 말씀을 전하였기 때문에 이후로 모든 메신저들은 서서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원고 없이 전하셨습니다. 그 자신이 말씀 자체이시고, 또 말씀이 그 안에 충만하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구전으로 말씀을 전했기 때문에 대부분 구약을 암송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언제 어디서든지 말씀을 전할 기회가 있으면 전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면 좋겠습니다. 복음요절을 암송하거나 인생 소감을 준비해 놓으면 매우 유용한 복음전도의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배 안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시몬은 피곤하였지만 졸지 않고 깨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말씀을 듣는 중에 그의 마음도 점차 열리기 시작하더니 감동이 되었습니다.
말씀을 마치신 후에 예수님은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시몬의 실제적인 필요를 채워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번에 이다니엘 목자님이 「아프리카 선교 핸드북」을 발간하셨습니다. UBF의 선교방향과 역사방법이 아프리카에서 어떻게 역사했는가? 이런 주제로 책을 썼습니다. 아프리카 선교사님들이 초창기 13년 동안은 양들의 물질적인 필요를 어디까지 도와야 하는가가 대화의 주제였다고 합니다. 선교사님들은 이들을 물질적으로 돕되 먼저 하나님이 그를 돕고자 하시는가를 확인하였다고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도왔을 때 믿음이 성장하고 남은 자들이 자기의 양들을 그렇게 돕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말씀을 전하고 구제사역을 하는 것은 오래된 기독교의 전통입니다. 예수님은 빈 그물로 집에 돌아가야 하는 시몬의 마음을 헤아리시고 그의 그물을 채워주고자 말씀하십니다. 지금 여러분들에게는 어떤 필요들이 있습니까? 물질적인 필요가 있고, 한 양을 얻을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동역자와 또는 동료와 관계성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빠른 시대의 변화 속에서 자기 발전을 위해서 팀워크와 실행력이 필요한 분도 있습니다. 내가 돕고자 하는 양에게는 어떤 필요가 있을까요? 예수님은 양의 필요에 민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우리의 필요를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시몬의 필요를 아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이 명령에 순종하기 힘든 점이 무엇일까요? 5절을 보십시오.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는 밤새도록 그물을 내렸다 올리는 수고를 반복하느라 힘이 빠져 있습니다. 그물을 씻고 집에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피곤한 자기의 몸을 부인하고 다시 한 번 그물을 내리러 가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목수 출신입니다. 시몬은 베테랑 어부입니다. 지금은 고기를 잡을 시간이 아닙니다. 그는 갈릴리 호수를 손바닥을 들여다보듯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어떤 고기가 언제 잡히는지, 그 고기가 어떤 밑밥을 좋아하는지, 평생 고기잡는 것을 연구하고 그물을 내린 전문가입니다. 그런데 시몬은 자기의 경험이나 지식보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립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요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제까지 실패했지만 다시 한 번 더 그물을 내립니다. 시몬은 경험의 세계에서 믿음의 세계, 말씀의 세계로 나아갑니다. 우리는 자기의 경험과 지식과 전통의 세계에 머물기 쉽습니다. 경험은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하나님을 이해하고 알 수가 없습니다(고전 2:14). 하나님은 영이시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은 성령을 통해서 말씀으로 분별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깊은 세계로서 그 안에는 온갖 지식과 지혜의 보화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돈이 필요할 때 돈을 주시고, 양이 필요할 때 양을 주시고, 지혜가 필요할 때 지혜를 주시고, 말씀이 필요할 때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심으로 그의 사랑을 보이십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나를 축복하기 위해서 주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내가 순종해야 할 한 말씀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나에게 주시는 그 말씀을 붙잡고 순종할 때 엄청난 축복을 받게 됩니다.
시몬이 그물을 내렸을 때 호수 위에서 어떤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까?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6,7).” 시몬이 그물을 잡고 올리고자 할 때 묵직한 느낌과 고기들의 펄떡거림으로 인한 생명력이 느껴졌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솟아났습니다. 그 기쁨은 지난 밤의 실패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었습니다. 갈릴리 수산시장에서 이제까지 이렇게 많은 고기를 잡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자기 배만 채울 뿐만 아니라 친구의 배까지 가득 채우고 잠기게 될 정도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시몬의 실패를 만회시켜 주셨습니다. 실패를 만회시켜 주심으로 그의 마음을 펴 주시고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때로 우리의 실패를 놀라운 방법으로 만회시켜 주십니다.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나는 끝이라고 생각이 될 때 주님은 거기서 시작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실패를 통해서 우리를 겸손하게 하시고 어두움 속에서도 그는 일하고 계십니다. 한 목자님은 부부가 다 암에 걸리셨습니다. 이 분들은 “왜 우리에게 이런 고난을 주시는가? 이런 몹쓸 병이 왜 우리 부부에게 왔는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생각들이 들 때마다 사41:10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내가 너를 도우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그리고 어둠의 성경적인 의미를 탐색하기 시작했습니다. 빅터 프랭크도 나치 죽음의 수용소 체험을 통해 '로고 세라피' 곧 의미를 찾는 인간존재를 발견하지 않았는가.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도 목자 주님이 함께 계심을 믿고 생사의 경각 중에도 시23편을 노래하지 않았던가. 게릴라 폭우같이 쏟아진 영문을 알 수 없는 고난과 친구들의 공감없는 끈질긴 직언을 듣고도 “내가 연단된 후에는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욥도 신음하며 고백하지 않았던가. "오 주여! 저희 부부 불쌍히 여기소서. 약속대로 주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저희를 굳게 붙잡아 주시고 저희로 믿음의 경주에서 포기하지 않게 하소서."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항암의 고통과 어둠을 직시하고 직면할 용기가 났고 항암투병을 항암순례로 승화할 힘이 생겼습니다. 성경적 어두움이란 빛의 반대도 빛의 부재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빛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어둠이었습니다(요1:5). 어둠 속에도 참 빛이 존재했습니다. 하나님은 빛 뿐만 아니라, 어둠도 창조하셨고(사45:7), 어두움이 창조와 구원의 모태가 되었습니다(창1:2,3, 마27:45,46). 파편적으로 알고 있던 이런 성경 지식들이 암 투병 깊은 수렁 속에서 하나씩 깨달아지고 서로 연결되어가자 그 안에 자리잡고 있던 어둠에 관한 동양적 세계관과 이원론적 세계관이 허물어지고 서서히 성경적 세계관이 구축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암 투병의 어두움 속에서 일을 하셨고 마침내 목자님이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올 여름 수양회 때 광주 3부에서는 한 간호대학에서 20여명의 학생들이 참석했습니다. 한 목자님이 간호대학 교수가 되었는데 이 분이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동아리도 만들고 섬겼을 때 20여명의 대학생들이 수양회에 참석하여 큰 은혜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지금도 놀라운 구원 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엄청난 양의 물고기를 본 시몬 베드로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아래 엎드렸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시몬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습니다. 그가 5절에서는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호칭을 했는데 여기서는 “주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주여”라고 부른 호칭은 높은 신분과 권위를 가지신 분을 나타내는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가리키는 호칭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시몬은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참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앞에 설 때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한 없이 부끄러운 죄인으로서 자신의 참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죄에는 심판이 따르고,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도망을 간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떠나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그 앞에 다리가 후들거려서 도망도 갈 수 없고, 심지어 서 있을 수 조차 없었습니다. 그는 털썩 무릎을 꿇고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고백합니다. 우리도 말씀을 받을 때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납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말씀으로 거듭나는 재창조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예수님은 시몬에게 이르십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무서워하지 말라는 말씀은 무서움의 근원인 죄에 대한 심판을 거두시고, 그에게 죄사함을 선포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용서하심과 말할 수 없는 평안이 그에게 임하였습니다.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파괴되었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었습니다. 그는 이제까지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사람으로 살았지만 실제적으로 하나님과 관계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이고 고기가 우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부르시고 삶의 전환을 이루게 하십니다.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사람을 취한다는 말씀은 사로잡는다는 뜻입니다. 취한다는 것은 산 채로 잡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서 하나님께 사로잡히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사로잡혀서 구원을 받고 그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시몬은 물고기를 잡는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이는 먹고 살기 위한 삶이었습니다. 밤에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고 수산시장에서 고기를 팔고 그것으로 삶을 영위해왔습니다. 이렇게 살다가 대부분 죽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를 부르시고 제자의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성품과 사역을 배우는 제자의 삶을 살도록 초청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죄로 병든 인생들을 치료하고 구원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제자의 삶은 생명을 구원하는 삶이요, 사람을 키우는 삶입니다. 제자를 세우고 전수하는 삶입니다.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고민을 합니다. 그러나 먹고 사는 일에 힘쓰다 보면 인생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사고를 당하거나 일을 쉬게 될 때에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도 사람을 취하는 삶을 살도록 주님께서 부르십니다. 썩어질 양식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추구하는 삶을 살도록 초청하십니다. 죄와 사망 권세의 바다 속에서 생명을 구원하는 삶을 살도록 초청하십니다. 한 사람이 구원을 받고 변화되는 것을 보는 것은 큰 기쁨이 있습니다. 주님은 이와 같이 우리가 사람을 얻는 사명인의 삶을 살도록 초청하십니다.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새로운 인생의 비전을 심어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고 사람을 취하도록 말씀하십니다. 내 힘으로 사람을 구원하고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주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입니다. 내 삶에 임한 구원의 은혜를 나눌 수 있습니다. 또 구원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서 꾸준히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대상자를 정하고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기도를 하되 작은 것부터, 단계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의 응답을 알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전도대상자의 실제적인 필요가 무엇인가 알고, 그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을 받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와 사랑을 체험하도록 기도합시다. 이번 가을 학기에 각 요회에 사랑하고 섬길 양들을 보내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그들은 배와 그물과 고기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것은 작은 결단이었지만 그들을 인류의 스승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물거품처럼 사라졌을 인생이었지만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제자의 삶은 고기가 목적이 아니라 예수님이 목적이 되는 삶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은혜 받고 자기가 처한 곳에서 주님께 헌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깊이 영접하고 순종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체험하고 전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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