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22년 눅2강(3:21-4:13)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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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누가복음 제 2 강
말씀 | 누가복음 3:21-4:13
요절 | 누가복음 3:22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메시아로서 대관식을 치루는 내용입니다. 저자 누가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다음에 그의 족보를 알려줍니다. 예수님의 족보가 아담을 넘어 하나님까지 올라갑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인류구속은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았습니다. 세례를 받으신 후에 예수님은 성령님께 이끌리어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십니다. 이 시험을 통해서 예수님은 메시아로서 사명을 수행할 준비가 되었는지 검증을 받으십니다. 본문을 통해서 우리도 마귀의 시험을 어떻게 이겨야 하는지 배우기를 바랍니다.
첫째,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21-22).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님도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에 자신을 죄인의 모습으로 낮추시고 죄인 중 하나와 같이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마태복음 3:15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심으로서 자신의 공적 사역이 시작되었음을 알리셨습니다. 또한 요한의 사역을 계승하시고, 죄 가운데 있는 백성들을 자신과 일치시키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죄 가운데 있는 인류를 대표해서 고난 받으시고 결국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서 모든 죄의 대가를 지불하고자 결심하는 증거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사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은 죄로 인한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사역 초기부터 사람들에게 배척을 당하십니다. 그가 십자가를 지고자 할 때 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책망하며 말렸습니다. 제자들은 다 그를 버리고 도망을 갈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를 비난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구원하려거든 너부터 구원하라고 말하면서 조롱할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마저도 그를 버릴 것입니다. 예수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며 죽으셔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 앞에 놓인 대속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났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성부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창세전부터 역동적으로 사랑하시며 스스로 존재하셨습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인류를 구속하기 위한 준비를 하셨습니다. 마침내 때가 되어 예수님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내려오셨습니다. 30세가 되어 세례를 받고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예수님 위에 성령님이 강림하셨습니다.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께서 사역을 하실 때 필요한 지혜와 능력이 성령님으로부터 공급이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취임하는 것을 인치시며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예수님이 앞으로 받으실 모든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고난의 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우리도 신자로서 제자로서 사는 길이 복이지만 때로는 시련과 핍박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모두가 나를 버리고 지지하는 사람이 없을 때, 환난 중에 있을 때 우리는 어디서 힘을 얻을 것입니까? 바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와 자신이 가는 길에 대한 확신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능력의 원천입니다. 우리는 어떤 고난과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의 뜻을 계속해서 섬겨나가야 합니다. 영혼을 구원하고 제자를 삼으며 세계만민을 구원하는 일을 우리는 어떤 어려움과 장애물 앞에서도 멈출 수 없습니다. 코로나가 아니라 코로나 할애비가 와도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일은 멈출 수 없습니다.
둘째, 예수님의 족보(23-38). 예수님의 족보는 그가 어떤 분이신지를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요셉의 아들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났다는 사실을 암시해줍니다. 그럴지라도 이 족보는 마리아의 계보를 따르지 않습니다. 일관되게 아버지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마태복음에 나타난 족보와 달리 여인들의 이름은 목록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는 다윗의 자손입니다. 마태복음은 다윗에서 솔로몬으로 이어지지만 누가복음은 다윗에게 다윗의 셋째 아들인 나단으로 이어집니다(삼하5:14; 대상3:5; 슥12:12). 마태복음은 왕의 계보요 법적인 계보이며, 누가복음은 혈통적인 계보라고 말합니다. 다윗부터 아브라함에 이르기까지의 족보는 마태복음과 일치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자손으로서 두 사람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된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담의 자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서 이스라엘과 연결된 동시에, 아담의 자손으로서 온 인류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즉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세상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첫 사람 아담과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을 비교합니다. 첫 사람 아담은 실패했고 인류를 죄에 빠뜨렸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심으로서 죄에 빠진 인류를 구원해내십니다.
예수님의 족보는 맨 위에 하나님에게까지 이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는 그의 신성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이면서 완전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인간의 고통을 친히 체휼하십니다. 그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를 도우실 수 있습니다. 또한 그는 죄가 없으시기에 속죄를 위한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하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그는 하나님이시기에 죽음에 매여 있지 않습니다. 결국 부활하심으로 인류를 죄와 죽음의 권세로부터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심으로서, 율법 아래에서 죄와 죽음에 갇힌 인생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를 율법의 정죄로 인한 죄와 죽음에서 해방시켜주십니다. 우리를 죄와 죽음과 어둠과 정죄가 지배하는 사탄의 나라에서 용서와 생명과 빛과 사랑이 지배하는 하나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으면서 그의 형상을 닮아가며 그의 사역을 감당하며 살아갑니다. 누가의 족보에는 이런 구원 역사의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셋째,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신 예수님(4:1-13). 예수님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자기의 욕심 때문에 사탄에게 시험을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떤 결점이나 허물 때문에 시험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십니다.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왜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을 받도록 이끄셨을까요? 예수님은 인류의 대표로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사탄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사탄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죄와 마귀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모든 아담의 자손이 죽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이런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귀의 시험을 예수님이 이기셔야 합니다.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받으면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십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사시는 내내 사탄과의 싸움을 벌이십니다. 이 싸움을 통해서 사탄의 통치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을 구원하셔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동시에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수행해나가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은 사십 일 동안 광야에 계시면서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않았습니다. 극심한 굶주림으로 연약한 상태에서 그는 마귀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습니다. 마귀는 참소자요(욥1:6-12;; 2:1-7), 고소자 (슥3:1,2)요, 죄를 부추기는 자(대상21:10)입니다. 마귀는 인격을 지닌 대적자입니다(요8:37-44; 고후11:3; 계12:3-9; 20:1-4). ‘사탄’이란 말 자체가 대적자입니다. 마귀는 천사들처럼 실존하는 존재이며 창조된 피조물입니다. 마귀의 속성은 교만과 거짓말과 반역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을 거짓말로 유혹해서 멸망케 합니다. 이런 마귀는 하나님처럼 무소부재하거나 전능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통제하는 악한 영들을 통해서 어디서나 활동을 합니다. 끊임없이 인간의 약점을 공격하여 넘어뜨리고 자신의 지배를 받도록 합니다. 우리는 마귀의 능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대평가해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하나님이 허용하신 범위 안에서만 활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마귀가 가진 죄와 죽음의 권세를 파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마귀의 어떤 공격이 있을지라도 이미 승리가 보장된 싸움을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가 완전히 힘을 잃어버린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죄와 죽음의 권세를 가지고 세상의 임금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에 있는 죄의 욕구를 자극하여 죄에 넘어뜨리고 죄로 인한 고통을 맛보게 합니다. 신앙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회의와 불신을 심어서 믿음으로 살지 못하게 합니다. 헌신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세상일에 쏟게 해서 충성하지 못하게 훼방합니다. 모든 전쟁이 그렇지만 마귀는 왕 되신 예수님을 공격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전쟁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오늘날도 마귀는 영적 전쟁의 최전방에서 싸우는 모든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을 최우선적으로 공격합니다. 이를 알고 우리는 선교사와 목회자들을 위한 방패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향한 마귀의 첫 번째 시험은 무엇이었습니까? 3절을 보십시오.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마귀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능력으로 먼저 자신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삶의 우선순위 문제입니다. 가장 먼저 먹고 살아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사람답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아무 염려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마귀의 모략에 속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해 어떻게 시험을 이기셨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극심한 배고픔 가운데서 신명기 8장 2,3절 말씀을 기억하시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가진 능력을 배고픔을 해결하는데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로써 인간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라는 것을 분명히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이 돌들로 떡을 만들어 먹지 않아서 굶어죽으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하나님이 친히 생명을 지켜주시고 배고픈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빵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살 때 하나님이 친히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사람이 먹고 사는 문제에 얽매여 살게 된 것은 아담의 타락 이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명을 위해 살 때 먹는 문제를 친히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죄를 짓고 타락한 이후부터 인간은 이마에 땀이 흐르기까지 죽도록 고생하다가 결국에는 한 줌의 흙으로 사라지는 허무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문명이 발달하고 생활수준이 높아져도 여전히 사람들은 먹고 사는 일에 매여서 죽도록 고생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저주 받은 인생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31-33절에서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사명을 먼저 감당하며 살아야 합니다.
마귀의 두 번째 시험은 무엇일까요? 5-7절을 보십시오.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우리가 무슨 일을 하려면 권세와 그 영광이 있어야 합니다. 천하만국을 이끌려면 그에 합당한 권세와 영광이 필요한데 마귀는 만일 자기에게 절을 하면 그것을 다 주겠다고 말하였습니다. 마귀에게 절을 한다는 것은 그에게 속한다는 것입니다. 마귀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즉 세상의 권세와 영광을 얻기 위해서 한 번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권세와 영광을 얻기 위해서 딱 한 번 반역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권세와 영광을 얻기 위해서 마귀의 종이 되라는 것입니다. 세상 권세와 영광이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천하만국을 휘두를 수 있는 권세와 영광을 얻기 위해서 마귀에게 절한다면 매우 쉬운 방법 같습니다. 그러나 결국 죄를 지으면 죄의 종이 되고 마귀가 왕노릇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어떻게 물리치셨습니까? 8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경배와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 한 분 이외에 그 어떤 피조물도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절대적으로 사랑하는 분이십니다. 신명기 6장 13절의 문맥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의 풍요로움을 제공해주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사화복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면 축복을 받고 권세와 영광을 얻게 된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길 때 세상에서 얻게 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권세와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에 따르는 고난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습니다(롬8:17). 사람이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길 때 영적인 권위가 생기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기까지 섬기는 삶을 사십니다.
마귀의 세 번째 시험은 무엇입니까? 마귀는 예수님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웠습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구속역사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마귀는 예수님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고 말하며 시험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곳입니다. 성전은 모리아 산 위에 세워졌고, 성전 밑에는 절벽과 기드론 골짜기가 있습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골짜기까지는 140m정도 됩니다. 마귀는 이런 높은 곳에 예수님을 세우고,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고 말합니다. 이곳에서 뛰어내리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릴지라도 하나님이 보호해주실 것이며,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질 것이 아닌가라고 유혹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록된 말씀을 인용하여 대적하자 마귀도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여 공격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했기 때문에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시편 말씀은 하나님을 섬기다가 위험에 처한 자들을 보호해주시겠다는 약속이지 성전에서 뛰어내리면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실 것이라는 마귀의 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자기 뜻대로 이용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나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면 안 됩니다. 도리어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나 자신을 맞추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마귀는 하나님을 시험함으로서 하나님과 예수님 사이의 신뢰의 관계를 깨뜨리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시는 자라는 확신이 사역의 원동력이 됩니다. 이것을 깨뜨림으로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 한 것입니다. 신뢰관계 속에 있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어떤 고난 앞에서도 시험에 들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났습니다. 마귀는 얼마 후에 베드로를 통해서, 또 십자가를 앞두고 가룟 유다를 통해서, 그리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통해서 공격을 합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마귀의 시험을 당하고 있습니까? 마귀는 지금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우리를 시험합니다.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환난이 닥쳐도 하나님은 감당할 만한 시험을 주시고, 감당치 못할 시험은 피할 길을 내주십니다. 하나님의 택함 받은 종으로서 우리가 하는 일에 하나님이 승리를 주심을 확신하고 도전해야 합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진실한 마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필요한 것들을 신실하게 공급해주십니다. 우리가 시험을 받을 때에 우리보다 더한 시험을 받으시고 이기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겸손하게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여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이요 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가는 목자의 길을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이 확신으로 사탄의 시험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한 주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누가복음 3:21-4:13
요절 | 누가복음 3:22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메시아로서 대관식을 치루는 내용입니다. 저자 누가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다음에 그의 족보를 알려줍니다. 예수님의 족보가 아담을 넘어 하나님까지 올라갑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인류구속은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았습니다. 세례를 받으신 후에 예수님은 성령님께 이끌리어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십니다. 이 시험을 통해서 예수님은 메시아로서 사명을 수행할 준비가 되었는지 검증을 받으십니다. 본문을 통해서 우리도 마귀의 시험을 어떻게 이겨야 하는지 배우기를 바랍니다.
첫째,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21-22).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님도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에 자신을 죄인의 모습으로 낮추시고 죄인 중 하나와 같이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마태복음 3:15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심으로서 자신의 공적 사역이 시작되었음을 알리셨습니다. 또한 요한의 사역을 계승하시고, 죄 가운데 있는 백성들을 자신과 일치시키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죄 가운데 있는 인류를 대표해서 고난 받으시고 결국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서 모든 죄의 대가를 지불하고자 결심하는 증거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사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은 죄로 인한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사역 초기부터 사람들에게 배척을 당하십니다. 그가 십자가를 지고자 할 때 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책망하며 말렸습니다. 제자들은 다 그를 버리고 도망을 갈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를 비난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구원하려거든 너부터 구원하라고 말하면서 조롱할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마저도 그를 버릴 것입니다. 예수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며 죽으셔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 앞에 놓인 대속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났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성부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창세전부터 역동적으로 사랑하시며 스스로 존재하셨습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인류를 구속하기 위한 준비를 하셨습니다. 마침내 때가 되어 예수님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내려오셨습니다. 30세가 되어 세례를 받고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예수님 위에 성령님이 강림하셨습니다.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께서 사역을 하실 때 필요한 지혜와 능력이 성령님으로부터 공급이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취임하는 것을 인치시며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예수님이 앞으로 받으실 모든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고난의 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우리도 신자로서 제자로서 사는 길이 복이지만 때로는 시련과 핍박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모두가 나를 버리고 지지하는 사람이 없을 때, 환난 중에 있을 때 우리는 어디서 힘을 얻을 것입니까? 바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와 자신이 가는 길에 대한 확신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능력의 원천입니다. 우리는 어떤 고난과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의 뜻을 계속해서 섬겨나가야 합니다. 영혼을 구원하고 제자를 삼으며 세계만민을 구원하는 일을 우리는 어떤 어려움과 장애물 앞에서도 멈출 수 없습니다. 코로나가 아니라 코로나 할애비가 와도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일은 멈출 수 없습니다.
둘째, 예수님의 족보(23-38). 예수님의 족보는 그가 어떤 분이신지를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요셉의 아들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났다는 사실을 암시해줍니다. 그럴지라도 이 족보는 마리아의 계보를 따르지 않습니다. 일관되게 아버지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마태복음에 나타난 족보와 달리 여인들의 이름은 목록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는 다윗의 자손입니다. 마태복음은 다윗에서 솔로몬으로 이어지지만 누가복음은 다윗에게 다윗의 셋째 아들인 나단으로 이어집니다(삼하5:14; 대상3:5; 슥12:12). 마태복음은 왕의 계보요 법적인 계보이며, 누가복음은 혈통적인 계보라고 말합니다. 다윗부터 아브라함에 이르기까지의 족보는 마태복음과 일치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자손으로서 두 사람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된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담의 자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서 이스라엘과 연결된 동시에, 아담의 자손으로서 온 인류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즉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세상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첫 사람 아담과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을 비교합니다. 첫 사람 아담은 실패했고 인류를 죄에 빠뜨렸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심으로서 죄에 빠진 인류를 구원해내십니다.
예수님의 족보는 맨 위에 하나님에게까지 이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는 그의 신성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이면서 완전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인간의 고통을 친히 체휼하십니다. 그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를 도우실 수 있습니다. 또한 그는 죄가 없으시기에 속죄를 위한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하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그는 하나님이시기에 죽음에 매여 있지 않습니다. 결국 부활하심으로 인류를 죄와 죽음의 권세로부터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심으로서, 율법 아래에서 죄와 죽음에 갇힌 인생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를 율법의 정죄로 인한 죄와 죽음에서 해방시켜주십니다. 우리를 죄와 죽음과 어둠과 정죄가 지배하는 사탄의 나라에서 용서와 생명과 빛과 사랑이 지배하는 하나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으면서 그의 형상을 닮아가며 그의 사역을 감당하며 살아갑니다. 누가의 족보에는 이런 구원 역사의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셋째,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신 예수님(4:1-13). 예수님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자기의 욕심 때문에 사탄에게 시험을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떤 결점이나 허물 때문에 시험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십니다.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왜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을 받도록 이끄셨을까요? 예수님은 인류의 대표로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사탄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사탄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죄와 마귀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모든 아담의 자손이 죽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이런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귀의 시험을 예수님이 이기셔야 합니다.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받으면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십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사시는 내내 사탄과의 싸움을 벌이십니다. 이 싸움을 통해서 사탄의 통치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을 구원하셔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동시에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수행해나가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은 사십 일 동안 광야에 계시면서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않았습니다. 극심한 굶주림으로 연약한 상태에서 그는 마귀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습니다. 마귀는 참소자요(욥1:6-12;; 2:1-7), 고소자 (슥3:1,2)요, 죄를 부추기는 자(대상21:10)입니다. 마귀는 인격을 지닌 대적자입니다(요8:37-44; 고후11:3; 계12:3-9; 20:1-4). ‘사탄’이란 말 자체가 대적자입니다. 마귀는 천사들처럼 실존하는 존재이며 창조된 피조물입니다. 마귀의 속성은 교만과 거짓말과 반역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을 거짓말로 유혹해서 멸망케 합니다. 이런 마귀는 하나님처럼 무소부재하거나 전능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통제하는 악한 영들을 통해서 어디서나 활동을 합니다. 끊임없이 인간의 약점을 공격하여 넘어뜨리고 자신의 지배를 받도록 합니다. 우리는 마귀의 능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대평가해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하나님이 허용하신 범위 안에서만 활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마귀가 가진 죄와 죽음의 권세를 파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마귀의 어떤 공격이 있을지라도 이미 승리가 보장된 싸움을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가 완전히 힘을 잃어버린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죄와 죽음의 권세를 가지고 세상의 임금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에 있는 죄의 욕구를 자극하여 죄에 넘어뜨리고 죄로 인한 고통을 맛보게 합니다. 신앙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회의와 불신을 심어서 믿음으로 살지 못하게 합니다. 헌신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세상일에 쏟게 해서 충성하지 못하게 훼방합니다. 모든 전쟁이 그렇지만 마귀는 왕 되신 예수님을 공격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전쟁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오늘날도 마귀는 영적 전쟁의 최전방에서 싸우는 모든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을 최우선적으로 공격합니다. 이를 알고 우리는 선교사와 목회자들을 위한 방패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향한 마귀의 첫 번째 시험은 무엇이었습니까? 3절을 보십시오.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마귀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능력으로 먼저 자신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삶의 우선순위 문제입니다. 가장 먼저 먹고 살아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사람답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아무 염려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마귀의 모략에 속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해 어떻게 시험을 이기셨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극심한 배고픔 가운데서 신명기 8장 2,3절 말씀을 기억하시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가진 능력을 배고픔을 해결하는데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로써 인간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라는 것을 분명히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이 돌들로 떡을 만들어 먹지 않아서 굶어죽으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하나님이 친히 생명을 지켜주시고 배고픈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빵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살 때 하나님이 친히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사람이 먹고 사는 문제에 얽매여 살게 된 것은 아담의 타락 이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명을 위해 살 때 먹는 문제를 친히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죄를 짓고 타락한 이후부터 인간은 이마에 땀이 흐르기까지 죽도록 고생하다가 결국에는 한 줌의 흙으로 사라지는 허무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문명이 발달하고 생활수준이 높아져도 여전히 사람들은 먹고 사는 일에 매여서 죽도록 고생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저주 받은 인생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31-33절에서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사명을 먼저 감당하며 살아야 합니다.
마귀의 두 번째 시험은 무엇일까요? 5-7절을 보십시오.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우리가 무슨 일을 하려면 권세와 그 영광이 있어야 합니다. 천하만국을 이끌려면 그에 합당한 권세와 영광이 필요한데 마귀는 만일 자기에게 절을 하면 그것을 다 주겠다고 말하였습니다. 마귀에게 절을 한다는 것은 그에게 속한다는 것입니다. 마귀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즉 세상의 권세와 영광을 얻기 위해서 한 번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권세와 영광을 얻기 위해서 딱 한 번 반역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권세와 영광을 얻기 위해서 마귀의 종이 되라는 것입니다. 세상 권세와 영광이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천하만국을 휘두를 수 있는 권세와 영광을 얻기 위해서 마귀에게 절한다면 매우 쉬운 방법 같습니다. 그러나 결국 죄를 지으면 죄의 종이 되고 마귀가 왕노릇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어떻게 물리치셨습니까? 8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경배와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 한 분 이외에 그 어떤 피조물도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절대적으로 사랑하는 분이십니다. 신명기 6장 13절의 문맥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의 풍요로움을 제공해주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사화복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면 축복을 받고 권세와 영광을 얻게 된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길 때 세상에서 얻게 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권세와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에 따르는 고난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습니다(롬8:17). 사람이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길 때 영적인 권위가 생기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기까지 섬기는 삶을 사십니다.
마귀의 세 번째 시험은 무엇입니까? 마귀는 예수님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웠습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구속역사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마귀는 예수님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고 말하며 시험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곳입니다. 성전은 모리아 산 위에 세워졌고, 성전 밑에는 절벽과 기드론 골짜기가 있습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골짜기까지는 140m정도 됩니다. 마귀는 이런 높은 곳에 예수님을 세우고,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고 말합니다. 이곳에서 뛰어내리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릴지라도 하나님이 보호해주실 것이며,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질 것이 아닌가라고 유혹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록된 말씀을 인용하여 대적하자 마귀도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여 공격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했기 때문에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시편 말씀은 하나님을 섬기다가 위험에 처한 자들을 보호해주시겠다는 약속이지 성전에서 뛰어내리면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실 것이라는 마귀의 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자기 뜻대로 이용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나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면 안 됩니다. 도리어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나 자신을 맞추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마귀는 하나님을 시험함으로서 하나님과 예수님 사이의 신뢰의 관계를 깨뜨리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시는 자라는 확신이 사역의 원동력이 됩니다. 이것을 깨뜨림으로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 한 것입니다. 신뢰관계 속에 있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어떤 고난 앞에서도 시험에 들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났습니다. 마귀는 얼마 후에 베드로를 통해서, 또 십자가를 앞두고 가룟 유다를 통해서, 그리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통해서 공격을 합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마귀의 시험을 당하고 있습니까? 마귀는 지금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우리를 시험합니다.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환난이 닥쳐도 하나님은 감당할 만한 시험을 주시고, 감당치 못할 시험은 피할 길을 내주십니다. 하나님의 택함 받은 종으로서 우리가 하는 일에 하나님이 승리를 주심을 확신하고 도전해야 합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진실한 마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필요한 것들을 신실하게 공급해주십니다. 우리가 시험을 받을 때에 우리보다 더한 시험을 받으시고 이기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겸손하게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여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이요 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가는 목자의 길을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이 확신으로 사탄의 시험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한 주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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