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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00년 누가복음 제2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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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4,592회 작성일 03-01-17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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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누가복음 제2강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말씀: 누가복음 5:1-11 
요절: 누가복음 5:10b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인생을 살다보면 혼신의 힘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실패'라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수없이 실패해 왔습니다. 원하는 대학에 지원했지만 여러 번 실패하여 재수 삼수를 한 사람도 있고 재수를 하지 않았지만 몇 군데 원하는 대학에 실패하고 라군 인생이 되었다고 한숨을 쉬며 말하는 신입생도 있습니다. 그런데 영국 소설가 존 크리시는 753번이나 출판 거절을 당한 끝에 564권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11번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3번만 당선되고 8번은 떨어졌습니다. 두 번 사업을 했는데 다 실패했습니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실패를 많이 한 사람은 에디슨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전구를 만드는 일에만 6천 번 실패했습니다. 에디슨은 6천 번 째 실패하던 날 친구가 "실망이 컸지?"라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닐세, 그 6천 번의 방법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이렇게 실패는 누구나 하는 거지만 실패에 대한 태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실패는 말하자면 다리와 같은 것이다. 다리 한가운데에 멈춰 서서 아래로 뛰어내리는 이도 있으나 그 다리 건너편에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열려 있는 것을 아는 이도 있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 그렇습니다. 실패란 다리 건너편에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있습니다. 저는 오늘 실패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어느 젊은이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입니다. 우리 다 함께 베드로가 실패를 만회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 갈릴리 게네사렛 호숫가로 여행을 떠나 봅시다.

I.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1-7)

게네사렛 호수는 남북으로 길이가 약 20km가 되었고 동서의 폭은 약 13km, 수심 61m나 되는 넓은 호수였습니다. 수심이 깊은 곳은 213m나 되었습니다. 이 호수는 주변이 매우 아름답고 물이 맑고 공기가 깨끗했습니다.  동쪽으로는 높은 산봉우리가 솟아있고 서북쪽으로는 게네사렛 평야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호수에는 물고기가 많이 잡혀 서바나까지 수출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루는 예수님께서 아침 일찍 게네사렛 호수가에 나가셨는데 거기에는 밤새 고기를 잡고 돌아온 어부들과 그들을 마중 나온 가족들, 고기를 사러 온 상인들로 인해 시끌벅적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가시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고 각색 병든 자들을 고치신다는 소문을 듣고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여러 가지 현실적인 요구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근본 문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것으로 보시고 이를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실 때 사람들은 재미없다고 떠나갔습니까? 아닙니다. 생활 현장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자들도 일손을 멈추고 예수님을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영혼의 갈증을 해결해 주고 삶의 의미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현실의 역경을 이겨나갈 수 있는 비전과 힘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한 말씀도 놓치지 않고자 두 귀를 쫑긋 세우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듣고자 앞으로 밀고 나오는 무리들로 인해 호수에 빠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주인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한 배에 펄쩍 뛰어 오르셨습니다. 그 배의 주인은 시몬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놀란 시몬에게 "배를 육지에서 조금 띄워 주시겠습니까?"라고 청하셨습니다. 그러자 시몬은 "옙"하고는 호수 안쪽으로 배를 밀었습니다. 예수님은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셨습니다. 호숫가 바이블 아카데미는 참으로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자 사람들은 얼굴에 기쁨과 희망을 안고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인격적으로 베드로 한 사람을 돕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배를 타신 것은 무리들을 가르치면서 그를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지난 밤 고기를 잡지 못하고 실패와 좌절 가운데 있는 것을 아셨습니다. 또 거룩한 소원이 있지만 먹고사는 현실 문제에 매여서 예수님 가까이 나오지 못하는 것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를 돕기 위해서 먼저 찾아가시고 관계성을 맺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셨습니다.

5절을 보면 베드로는 밤새도록 수고를 하였지만 얻은 것이 없었습니다. 오늘날은 배에 전등을 켜고 밤에 고기를  잡으러 나가지만 당시 사람들은 횃불을 켜고 나갔습니다. 어부들은 고기들이 불빛을 보고 몰려오면 그물을 던져서 고기를 잡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밤새도록 호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그물을 던졌지만 송사리 한 마리 잡지 못했습니다. 대형 그물을 가진 로마 어선들이 고기를 싹쓸이 해가서 안 잡혔는지 적조가 생겨서 고기들이 죽었는지 그날 따라 고기가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물을 던질 때마다 고기떼는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물을 빠져나갔습니다. 잠 한 숨 못 자고 밤새도록 이렇게 그물질을 하고도 고기를 잡지 못했을 때 그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아마 고기들에게 배신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이 지쳐서 손 하나 꼼짝하기도 싫었을 것입니다. 자기만을 바라보고 사는 장모와 처자식들을 생각하면 어깨가 쳐져서 집으로 들어가기가 민망했을 것입니다. 또한 장래 먹고 살 일이 염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이 참에 다른 사업에 뛰어들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도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현실에 대한 책임감으로 피곤한 심신을 추스려서 그물을 씻어 두어야 했습니다. 이를 볼 때 그는 매우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성실만으로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시몬처럼 베테랑인데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힘을 쓰고 용을 쓰는데도 안 되는 때가 있습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고 잘 하는 사람도 한계에 부딪힐 때가 있습니다. 이때 해서는 안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의 실패를 잊어버리지 않고 오래오래 기억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꾸 실패하는 것은 과거의 실패의 경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승리자는 다른 길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나 패배자는 오직 하나의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베드로가  실패를 극복하도록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예수님은 실패한 인생들에 대해서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본래 인간을 창조하실 때 다스리고 정복하며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뜻을 두셨기 때문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예수님은 그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당시는 밤에 횃불을 사용하여 고기를 잡았기 때문에 낮에는 고기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특히 당시 고기잡이 기술로는 깊은 데서 고기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당시 어부의 상식과 경험, 이성으로는 맞지 않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시몬에게 왜 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을까요? 이는 사람의 상식이나 경험, 이성을 초월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체험시켜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베드로의 근본 문제는 고기를 못 잡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세계를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넓고 깊은 세계를 모르고 눈에 보이는 것들만 붙들고 웃고 울며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권능의 세계를 몰랐기 때문에 현실에 매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에게 인간의 이성을 초월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세계, 은혜와 사랑의 세계를 알게 해 주고자 그의 상식과 경험을 뛰어넘는 믿음의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우리를 깊은 세계로 인도하십니다. 사람들은 배를 타더라도 깊은 곳에 가기보다는 얕은 곳에서 왔다갔다하다가 여차하면 육지에 내리고자 합니다. 그런데 깊은 데로 가면 금방 육지에 내릴 수 없어 육지로 돌아오려 하기보다는 어찌하든지 거기서 끝장을 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이왕 배를 탔으면 깊은 데로 가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공부를 하려면 공부의 깊은 세계로 가서 거기서 무언가를 건져야 합니다. 믿음의 길을 가려면 믿음의 깊은 데로 가서 거기서 믿음의 보화들을 건져내야 합니다. 얕은 곳에서 몇 번 그물을 던져보고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하자, '애이 별 거 없잖아' 하고서는 세상이라는 육지로 가버리는 얕은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쉽게 되돌아올 수 없는 깊은 데로 가서 거기서 끝장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 속담에도 '한 우물을 파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우물을 깊이 팔 때 거기서 물을 얻습니다. 얕게 여기 조금, 저기 조금 파면 수고만 했지 물을 얻지 못합니다. 인터넷을 하다가 빨리 자료가 뜨지 않으면 조급해하는 현대인들은 빠르면서 얕게 세상을 살기 쉽습니다. 한 가지 일을 하다가 결과가 빨리 나오지 않으면 다른 일로 옮겨갑니다. 여기 저기 조금씩 손을 대봅니다. 사람을 사귀는 것도 한 사람을 깊이 사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유익을 따라 여러 사람을 얕게 사귑니다. 어떤 학문을 공부해도 그 학문을 깊이 있게 공부하려 하기보다는 얕게 공부해서 빨리 돈을 벌고자 합니다. 신앙생활에서도 그런 것 같습니다. 성경을 몇 번 공부해 보고 얻어지는 것이 없는 것 같으면 그만 두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꾸준히 공부하는 사람은 뭔가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말씀의 깊은 세계로 나아갈 때 거기서 영적 권세와 힘을 덧입습니다. 제가 말씀의 깊은 세계로 나아가면 말씀이 너무나 쉽고 적용이 잘 되고 기쁨이 넘칩니다. 우리는 또 기도에 있어서도 기도의 깊은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단순히 제목 기도로 때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영적 교제를 나누고 죠지 뮬러와 같이 5만번 이상 기도의 응답을 받는 깊은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순종의 깊은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한 말씀에 대한 순종을 통해서 잊을 수 없는 깊은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다가 한계에 부닥쳐 있다면 방법과 체제를 바꾸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라 더 깊은 예수님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예수님은 우리에게 깊은 데서 고기를 잡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깊은 데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베드로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5절을 보십시오.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습니다. 시몬은 자기 배 위에서 말씀을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놀라운 권세가 있음을 체험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그 말씀으로 자기 장모의 열병도 고치시고 더러운 귀신도 좇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였습니다(히4:12). 그는 결과를 알 수 없지만 말씀의 권위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는 순종을 했습니다. 승리자는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존경하며 그 사람에게 배움을 청하지만 패배자는 자기보다 우월한 사람을 만나면 시기 질투하여 그 사람의 결점만 찾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결과가 무엇입니까? 6,7절을 보십시오.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시몬이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했을 때 고기를 에운 것이 많아 그물이 찢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물을 잡은 그의 손에 고기들이 몸부림치는 파동이 전달되었습니다. 이 파동은 그의 심령에 까지 전달되어 새 힘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다른 친구들에게는 손 하나 대지 못하게 하고 혼자만 고기를 차지하고자 욕심을 부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들도 한 배 가득히 고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 동무들과 같이 나누어 가졌습니다. 이로써 베드로는 풍성히 주시는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디모데 선교사님은 한국 전력에 시험을 보고자 준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시험이 취소가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김삿갓과 같이 기차를 타고 방황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나이지리아의 선교사로 나가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당시에 ?글 1.5를 치는 기술밖에 없었지만 믿음으로 순종하여 나갔는데 그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은 엄청난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는 대사관에서 근무하고 결혼도 하고 두 아들도 낳고 양들도 많이 얻어서 제자 양성의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체험하고 받은 바 축복과 은혜를 친구들과 같이 나누어야겠습니다. 이상에서 볼 때 우리가 실패를 딛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자기의 이성과 경험을 초월해서 말씀에 순종해야됨을 배웁니다. 

II.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8-11) 

시몬 베드로는 두 배 가득히 무지개 빛을 내면서 퍼덕거리고 있는 고기들을 보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여느때 같으면 '형님 저와 동업해서 갈릴리 수산 시장을 잡아 봅시다'라고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앉아 계신 예수님의 무릎 아래 엎드렸습니다. 그리고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알기 전에는 자신이 비천한 죄인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기 스스로 생각해도 성실하고 법없이 살 수 있는 정직한 사람이라고 자부했습니다. 그는 장모를 모시고 사는 효자요 친구들을 생각할 줄 아는 의리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순종을 통해서 예수님의 신성을 보자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고 비참한 죄인인가를 깨달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예수님께 무지하고 무관심하게 살았습니다. 불신앙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죄인된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자연계를 주관하시는 창조주이심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부들부들 떨면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예수님이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신성을 보고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이사야가 더러운 심령으로 만군의 여호와이신 하나님을 뵈었을 때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외친 심정과 같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지만 사람은 자신을 아무리 알려고 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공부를 통해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여 그의 신성을 발견할 때 비로소 참된 자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서 자아를 발견하고 죄를 고백할 때 주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으로 고백하는 시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죄사함을 주시면서 새로운 인생 방향을 제시하셨습니다. 그것은 이제 후로는 사람을 취하는 어부가 되리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취한다는 것은 산채로 잡는다는 뜻입니다. 또는 잡아 살게 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죄와 마귀의 종된 자를 죄의 바다에서 구원하여 참 자유를 누리게 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과 같은 목자의 삶, 영적 지도자의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을 취하는 삶은 고기 낚는 삶과 어떻게 다릅니까? 고기 낚는 어부의 삶은 먹고살기 위한 생활인의 삶입니다. 이 삶에도 어느 정도의 기쁨이나 의미가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여 고기를 많이 잡고 돈을 벌어 가족을 섬길 때 기쁨이 있습니다. 새로운 고기잡이 방법을 연구하여 경쟁자들을 이길 때 승리의 기쁨과 성취감이 있습니다. 또 많은 돈을 벌어 좋은 일을 할 때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삶은 절대적인 삶의 의미를 주지 못합니다. 영혼의 만족을 주지 못하고 죄로 멸망할 인생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궁극적으로 이는 자기를 위한 삶으로 죽음 앞에서 허무하게 사라집니다. 그러나 사람을 취하는 삶은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삶으로 절대적인 가치와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삶이요 영생과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얻는 삶입니다. 이 삶은 참으로 가치 있고 위대하고 영화로운 것입니다.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만약 예수님께서 '네가 사람을 취하라'고 명령하셨다면 이 만큼 부담스러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네가 취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시몬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신 예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베드로는 가난하고 학문도 없는 갈릴리 시골 어부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삶도 쩔쩔 매며 사는 자였습니다. 그에게 무슨 능력이나 지도자의 자질이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외국어도 할 줄 몰랐고 그의 세계는 시골 갈릴리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는 내면이나 가치관이 변화되지 못하여 자연석, 짱돌과 같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후에도 그의 허물과 실수는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그를, 사람을 취하는 예수님의 제자요 동역자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현재의 모습보다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을 보시고 장차 인류의 목자요 스승이 될 소망을 가지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믿음입니다. 시몬이 사람을 취하려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 낚시꾼인 예수님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 이해심, 포용력, 인내, 사람에 대한 소망등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시몬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후로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예수님은 사람을 산채로 잡는데 최고이십니다. 예수님은 심지어 대적자였던 바울마저도 붙잡아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약속대로 베드로는 한 번에 삼천명씩 오천명씩 낚는 사람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위하여 역사를 섬기던 제게 회개의 영을 주시고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는 삶을 살도록 도우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주일 메시지를 통해서 수많은 학생들이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고 제자로 변화되리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예수님의 소망의 말씀을 들은 시몬과 그 동료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11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소망을 믿음으로 영접하고 제자의 삶을 결단하였습니다. 또한 장래를 하나님께 맡기고 생명을 살리는 주님의 역사에 자신의 전 인생을 드렸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예수님의 소망을 붙들고 믿음으로 제자의 삶을 결단하였을 때 어두운 시대에 빛을 발하며 인류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현실에 매여 허무와 절망의 바다에서 신음하며 살 우리를 사람 낚는 어부로 소망두시고 부르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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