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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00년 봄학기 누가복음 제 1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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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4,625회 작성일 03-01-1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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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봄학기 누가복음 제 1 강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
말씀/누가복음 4:1-15 
요절/누가복음 4:8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마귀는 육신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영적 존재요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하는 원수입니다. 예수님이 마귀에게 받으신 시험은 그 자신에게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와 관계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아담이 죄를 범함으로 모든 인류가 죄의 종이 된 것 같이 예수님이 마귀의 시험을 이기심으로 우리도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마귀의 종노릇한데서 해방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열매맺고 복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마귀의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마귀의 유혹과 함정은 무엇인가 분별하고  마귀의 공격을 물리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물질에 대한 시험)(1-4)

예수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신 후 바로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시험을 받은 것을 볼 때 이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왜 시험을 받으셔야만 했을까요?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 죄를 범하고 사단의 노예가 된 것은 최초의 사람인 아담이 사단의 시험에 넘어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이기심으로써 인간의 구원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또한 마귀의 종노릇하는 인간들과 똑같이 시험을 받으심으로써 인간들을 깊이 이해하고 도우실 수 있습니다(히2:18). 마귀는 이간질을 시키는 자요 속이는 자입니다. 우리가 조금만 틈을 보여도 예리하게 비집고 들어와 하나님을 불신하게하고 사람 사이의 관계성을 파괴시킵니다. 마귀는 강력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우리는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그때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 동안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않았을 때 그 몸이 어떠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사흘을 굶으니 헛것이 보이고 온통 먹을 것만 생각이 났다고 합니다. 들에 있는 돌멩이가 빵으로 보이고 길가의 전봇대도 떡볶이로 보였다고 합니다. 우리 속담에 '사흘 굶어 담 넘어가지 않을 선비가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뜨거운 태양이 바위와 모래를 달구는 광야에서 40일을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않고 더위와 굶주림과 외로움과 마귀의 억압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 견디셨습니다. 아담은 먹을 것이 풍성하고 아름다운  에덴 동산에서 아내와 함께 있었지만 예수님은 광야에서 혼자 고독하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광야를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연약한 가운데 처하게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십 일 동안 금식하셨기 때문에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때였습니다. 이때 마귀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3). 이 말은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냐? 하나님의 아들이 이렇게 굶어 죽게 되어서야 되겠느냐? 너에게는 돌멩이로 떡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이 돌멩이로 빵부터 만들어 먹고 목숨을 보존해라. 네가 산 다음에야 남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하는 뜻입니다. 마귀의 이 말은 예수님을 생각해 주는 것 같습니다. 또한 현실성이 있고 합리적으로 들립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스스로 빵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 무슨 하나님의 아들인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마귀의 이 말 속에는 어떤 함정이 숨어 있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구속 역사를 이루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메시야의 능력을 개인 문제, 특히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사용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메시야의 사역을 변질시키고자 함이었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절박한 때에 하나님의 아들의 능력으로 죄인들을 구원하기보다 먼저 자기의 배고픔을 해결하라고 하니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명도 먹어야 되지만 마귀는 먹는 문제에 최우선 순위를 두라고 유혹하였습니다. 이는 결국 물질을 숭배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이 시대는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데 모든 힘을 쏟고 있습니다. 우리도 아무리 믿음 믿음해도 먹고 사는 문제, 등록금 문제, 취직문제, 빚문제가 생기면 믿음 같은 것은 공허하게 여기기 쉽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사명이고 뭐고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는가? 그러므로 빵문제부터 해결해야 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어떤 신입생들은 대학에 들어오자 마자 취직 걱정을 하고 컴퓨터 공부나 영어 공부에 심혈을 기울입니다. 이는 남보다 앞서서 취직 준비를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취직을 한  학사들은 승진보다는 능력을 키우고자 하는 생각으로 인해서 제이 외국어나 자기 개발에 매달립니다. 이런 것도 다 먹자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실력을 쌓아야 하는데 문제는 떡에만 얽매이는 것입니다.  떡에만 얽매여 떡을 전부로 여기고 사는 사람은 정신적 공허, 영혼의 갈증이라는 더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경제문제가 어려운 사람은 경제문제만 해결되면 만사가 해결되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16년 전 서울에서 행상을 하다 1억원짜리 주택복권에 당첨된  50대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즉시  장사를 때려치우고 흥청거리다 최근 쫄딱 망했습니다. 돈이 생기자 다른 여자들과 놀아나며 부인한테는 생활비는 고사하고 폭행만 일삼다 쇠고랑을 찬 것입니다. 최근 주식 등 재테크로 벼락부자가 늘어나면서 신세망친 미국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엄청난 돈이 갑자기 생기면서 인생의 목표가 사라지자 의욕상실, 향락, 우울증에 빠지고, 극단적 허무감, 자살충동, 사람 기피증으로 정신적 공황상태를 맞아 치료받지 않으면 안될 중환자가 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애플루엔자 환자라고 하는데 이들을 상대로 상담, 치료해 주는 컨설팅 업자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도 우리 사주, 코스닥 등으로 떼돈을 번 일부 주식 갑부들이 비슷한 증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도 투자도 시들해져 날마다 수백만원, 심지어는 1천만원대 호화판 식사와 술판까지 벌이지만 권태와 허무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무력감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마귀는 지금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사람은 먹어야 산다. 먹는 것이 최고다. 먹는 것이 남는 것이다”하는 말들로 인간을 육적인 존재로만 보고 육적인 것만을 추구하도록 만듭니다. 먹고 살만한 사람에게는 욕심을 부추켜서 재테크를 해보도록 유혹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할 시간과 마음을 빼앗고자 합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사람에게 떡도 필요하지만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단언하셨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나는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철학자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사람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육신의 양식인 빵이 아니라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8:3절을 보면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몸뚱아리만 있는 존재가 아니라 영혼을 가진 영적 존재입니다. 영혼의 만족이 없이는 참된 만족이  없습니다. 우리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자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또 우리는 먹는 문제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귀히 여겨야 합니다.  설령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살찌울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해 주십니다. 마6:33절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더 나아가 우리는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먹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영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하는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생명력이 넘치는 풍성한 삶, 가장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둘째, 다만 그를 섬기라(쉬운 방법으로 권세와 영광을 얻으라는 시험)(5-8)

마귀는 이제 예수님을 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여 주었습니다. 화려함의 극치인 로마를 비롯해서 피라미드가 있는 이집트와 황금 집을 지은 나라들, 동방의 백의 민족도 보여 주었습니다. 그 안에 있는 수많은 환락의 도시들, 수많은 황금마차, 번쩍이는 보석들, 섹시한  여인들, 신체건강하고 충성스러운 수많은 군대와 노예들을 다 보여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당시 로마 황제의 권세와 영광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의 말 한마디에 임산부라할지라도 갈릴리에서 베들레헴으로 호적하러 가야하고 전 세계가 움직였습니다. 그가 엄지 손가락을 올리면 죄수가 살고 내리면 죽는 권세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결국은 만왕의 왕으로서 권세를  취하셔야 하는데 마귀에게 절만 하면 그 모든 것을 다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마귀의 거짓말입니다. 세상의 권세와 영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 마귀에게 주신 일이 없습니다.  죄 아래 있는 인간을  마귀가 스스로 지배하려고 하는 것이지 그에게 속한 것은 아닙니다. 진정하고 영원한 영광은 하나님께서 주시며 그를 섬기는 자들에게 주십니다. 사람이 인간적이고 정치적인 방법으로 권세와 영광을 얻을지는 모르지만 결국에는 마귀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권세와 영광은 풀의 꽃과 같이 잠시뿐이고 허무한 것입니다. 마귀의 노예가 된 자들은 그 권세와 영광을 얻기 위해서 마귀의 짓을 하고 결국에는 멸망을 자초하게 됩니다.  요즈음 4.13총선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보면 권력이 얼마나 매력적이면 저렇게 난리들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금뺏지를 얻기만 한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형편입니다. 마귀는 우리에게도 쉬운 방법으로 권세를 얻으라고 합니다. 학생들에게는 컨닝으로, 학사들에게는 복권이나 투기, 한탕주의로 영광을 얻으라고 유혹합니다. 어떤 분은  이왕 목자가 되려면 교수 목자가 되거나 전문가가 되어 세게적인 목자가 되고자 하는 소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 공부를 하고자 하면 내가 자기 영광을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정죄감에 빠지고 또 전도를 하고자 좀 힘을 쓰면 공부를 해야 되지 않는가 하면서 불안에 시달립니다. 마귀는 우리의 연약함을 비집고 들어와 공격합니다. 우리는 공부를 하든지 전도를 하든지 복음적인 가치관 위에 하나님의 영광 위해서 해야 하고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규모있게 집중해서 사용함으로 실제적인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제자 양성을 위해서  해산의 수고를 하기  보다 노력하지 않고 쉽게 한꺼번에 수백명씩 수만명씩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는 방법을 찾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단호한 결단이 무엇입니까? 8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예수님은 경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뿐이시오 피조물들은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만 빼고는 세상의 무엇이든지 경배하도록 유혹합니다. 한마디로 마귀의 공격은 다양합니다. 사람들은 예술적인 창조 행위를 신적인 것이라고 하면서 예술 자체를 경배하게 합니다. 물질을 신으로 섬기게 하고 인간 자체를 신으로 섬기게 합니다. 뉴에이지라든가 불교등은 인간 자체를 신으로 경배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권력을 준 본래의 정신은 봉사하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권력 자체가 우상이 되어 버리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권력과 세상 영광을 우상으로 삼은 정치 지도자들에 의해서 얼마나 많은 무고한 생명이 파리 목숨과 같이 죽임을 당했는가 알고 있습니다. 스탈린은 자기의 백성을 반혁명 분자로 낙인찍어 2천만명 이상이나 학살하거나 굶어 죽게 하였습니다. 모택동은  영구 혁명의 망상 속에서 2천만 명 이상을 반동분자로 몰아 처형했습니다. 전두환 전대통령은 권력 유지를 위해 수천명의 선량한 시민을 살해했습니다.  권력의 우상화, 자기 우상화는 무서운 함정입니다. 이런 우상화가 있는 곳에 인간생명의 존엄성도, 인간이 인간답게 잘 사는 사회는 결코 건설될 수 없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권력과 자기 우상화를 버리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참된 경배의 대상이시며 하나님을 섬길 때 타인에 대한 존중과 섬김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하나님만을 섬기면, 또 하나님의 뜻만을 위해서 산다면, 너의 인생은 어떻게 되느냐? 너는 너의 뜻을 한번도 펼쳐 보지도 못하고 네 인생은 희생이 되는 거야. 일생 남의 종이 되어 이름도 빛도 없이 살다가 사라지는 거야”라고 말합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 우리는 “내가 나를 위해 살아야지", 내 뜻을 위해 살아야 행복할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권세와 영광을 얻고 떵떵거리며 살아야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습니다(벧전 1:24).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세상 모든 권세와 영광을 포기하고 하나님만을 섬기신 예수님의 인생은 망하였습니까? 얼핏 보기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에 인생을 실패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토록 당신을 섬기신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히사 모든 인생들을 심판하는 만왕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들지 않는 영원한 영광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만을 섬기는 인생 목적을 갖고 살 때 세상의 모든 것을 잃는 것 같지만 하나님을 얻고 하나님 안에 있는 신령한 축복들을 얻게 됩니다. 또한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영원하고 신성한 영광을 얻게 됩니다(요 12:26, 벧전 1:3,4). 또한 하나님께서 필요한 경우 이 땅에서도 적합한 권세와 영광을 누리게 해 주십니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셋째,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하나님께 대한 신뢰의 시험)(9-15)

마귀는 예수님이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섬기고자 하자 이제는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또한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성전 꼭대기는 135미터로서 아래는 돌밭인데 그 꼭대기에 서면 현기증이 난다고 합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님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도록 유혹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 사랑하시는 자를 위해 천사를 보내어 발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받아주신다고 되어있으니 여기서 뛰어내려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증명해 보라고 한 것입니다. 앞으로 많은 고난을 감당해야 할 예수님으로서 정말 하나님께서 그를 모든 위험에서 보호해 주시는가 테스트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또한 그렇게 높은데서 영웅 베트맨과 같이 뛰어내려 사뿐히  연착륙을 한다면 표적을 좋아하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즉시 인정하고 “메시야 예수, 메시야 예수,  예수 메시야”하면서 예수님을 따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을 구원하는 일을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마귀의 함정이 숨어 있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마귀의 말대로 한다면 땅에 떨어져 뇌진탕으로 생명을 잃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귀가 인용한 시편 말씀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하나님을 믿고 사는 자가 믿음으로 살다가 위험에 처해질 때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신다는 말이지 자기 광을 내기 위해서, 혹은 하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일부러 위험한 일을 하는 자를 보호해 주신다는 말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이 시험으로 예수님을 죽게 하거나 안 죽더라도 그를 받아 주지 않으신다고 하나님을 불신하는 죄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한 인류 구원역사를 망치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마귀의 시험에 어떻게 대처하셨습니까? 1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말씀하시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신 6:16절 말씀으로 마귀의 시험을 분별하시고 대적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신명기 6:16절에서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시험하는 것은 그렇게 되나 안되나 테스트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됩니까?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처럼 헛소리를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으로 그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지 못하고 시험하는 것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있는 대로 믿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마귀은 예수님께서 높은 데서 뛰어내리는 기적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증명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는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기적으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증명하지 않을 때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지 못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무모한 일로, 외적인 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3:22)는 말씀을 그대로 믿으셨습니다. 또한 십자가에 달려 하나님께 버림을 받으시며 고통하실 때에도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시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치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시험의 대상이 아니라  신뢰의 대상이시오 경배의 대상이십니다. 

예수님을 시험했던 마귀는 지금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왜곡시켜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에 빠지도록 유혹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고자 일부러 죄를 짓고 나를 치시면 사랑하시는 증거로 알겠다고 강짜를 부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시험기간이 되면 공부하는 수고를 하지 않으면서 이번 시험에 좋은 성적이 나오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표로 알겠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사랑하시지 않는 것으로 알겠다며 하나님의 사랑을 시험하는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불순한 목적을 위해서, 혹은 믿지 못해서 시험할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말씀대로 안 이루어지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인내하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반드시 그 말씀대로 행하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특히 우리 장래를 맡기고 안심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예수님의 믿음이 얼마나 절대적인가, 고난을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얼마나 절대적으로 순종하시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죄로 멸망할 우리 인생을 구원하기 위해 그 극심한 고통 속에서 마귀와 정면대결을 하시고 처절한 싸움을 싸우시며 결국 승리하여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이 세 번째 시험도 이기시자 마귀는 잠시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틈만 보이면  예수님을 찾아와서 하나님이 주신 십자가의 길을 가지 못하도록 유혹하여 인류 구원역사를 망치고 예수님도 망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극한 상황에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은 앞으로 있는 모든 마귀의 시험도 다 이기실 수 있으셨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고 성령의 권능이 충만하셔서 갈릴리로 돌아가셨습니다. 성령의 권능이 충만하였을 때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더욱 성령 충만받고자 산 속으로 들어가셨습니까? 아닙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여러 회당에 다니시면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이는 인생들이 불행하게 된 근본원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인생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침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실 때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이 시대에 물질의 유혹이나, 쉽게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고자 하는 유혹이나 컴퓨터 게임이나 음란 사이트 등을 통한 마귀의 시험을  분별하고 물리쳐야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공부하고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마귀의 시험을 분별하여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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