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00년 누가복음 제 14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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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누가복음 제 14 강
말씀 누가복음 12:13-34
요절 누가복음 12:31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생명과 소유, 믿음과 염려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물질이 풍부하면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합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부부가 함께 직장을 갖고 일을 합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생명의 풍요함을 누리기 위해서 많은 것을 소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의 생명은 소유의 풍부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믿기 보다 소유를 많게 하기 위해서 매달릴 때 염려하고 근심함으로 죽음을 확대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생명을 풍성케하고자 할 때 소유의 풍성함과 함께 죽음의 요소도 풍성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때 우리 생명에 필요한 모든 것을 더 해 주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길은 무엇입니까? 그 비결을 나누고자 합니다.
I. 생명과 소유 (13-21)
무리 중에서 한 사람이 예수님께 한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13)." 그는 형과 재산 분배문제로 불화 상태에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동생되는 사람은 억울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와서 형을 명하여 유업을 함께 나누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당시에 유산은 형이 2/3, 동생이 1/3을 갖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의 요청을 거절하시며 그에게 있는 탐심을 지적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볼 때 그는 형과의 관계를 회복하는데 힘을 써야 하는데 재물의 분배만을 구하여 그의 탐욕을 드러내었습니다. 14,15절을 보십시오. "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탐심이란 더 많이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입니다. 그래서 만족할 줄을 모르는 욕심입니다. 사람들이 소유를 많게 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돈이 많으면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누리고 싶은 것들을 원없이 할 수 있습니다. 또 돈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사람들의 인정도 받고 존경도 받습니다. 자본주의 시대에는 얼마나 많은 부를 소유했는가로 성공을 가늠합니다. 돈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유럽 배낭 여행도 하고 좋은 컴퓨터도 살 수 있고 초특급 통신망도 설치할 수 있고 비싼 오디오를 구입하여 음악을 즐길 수 있습니다. 좋은 차도 굴리고 좋은 집에서 살 수 있습니다. 돈이 많으면 최상의 의료 혜택도 받을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람들이 소유를 늘리고 싶어 하는 것은 삶을 확대하고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탐심이란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이기 때문에 갈증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물질의 노예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박베드로 선교사님의 인생 소감을 통해서 그가 근무하던 직장에서 이사님이 회의 도중에 간경변 출혈로 쓰러져 죽고 동료들이 과도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서 자살을 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인 것들이 아닙니까? 탐심은 생명을 풍요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확대하고 고난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탐심은 일만 악의 뿌리입니다. 탐심은 10계명중 열 번째 계명입니다. 성경은 돈이나 이웃의 아내, 종들, 자녀들에 대한 탐심, 여러 소유에 대한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탐심을 물리치지 않으면 탐심의 노예가 됩니다. 죄의 노예된 결과는 죽음입니다. 영원한 파멸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헬라어에서 생명이란 세가지가 있습니다. 조에, 비오스, 프쉬케가 그것입니다. 비오스는 세상적인 특성이 있습니다. 프쉬케는 개인에게 속한 목숨을 가리킵니다. 15절에 나오는 생명은 '조에'인데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생명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 계시된 그의 생명, 삶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온 자들의 생명, 삶을 의미합니다. 이 조에는 하나님의 축복을 드러내 주며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과 교통함으로써 축복된 삶을 누리는 것을 나타내 줍니다. 이러한 생명은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된 것이며 믿음으로써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에게 주어지고 육신의 죽음을 넘어 영원에 이릅니다. 이처럼 조에에 있어서의 강조점은 신자들에게 주어진 영적이고 도덕적인 생명의 특질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물질의 풍요를 구하지 말고 생명 구원과 영생을 구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주고자 하시는 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물질 욕심에 매여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경고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손해를 보더라도 형제 우애를 지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물질을 지키기 위해서 인간 관계, 부자 관계, 형제 관계를 파괴시켜 버립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과 집착이 형제 관계를 원수로 만들어 버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탐심은 마귀의 올무와 시험에 빠지게 하고 인간 관계를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외적인 소유로 마음을 채우고자 하기보다 마음을 생명과 진리로 채워야 합니다. 사람의 생명은 물질이나 여러 인간 조건들을 소유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는 참 생명, 기쁨, 행복, 힘있는 생명으로 채워야 합니다. 우리는 물질이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는 진리를 여러 예를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통계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행복은 돈에 비례하는 것이 아닙니다. 병원의 중환자실에 가서 그곳에 누워 있는 분들을 만나보면 인생에 회한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좀체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어떻게 그렇게 좇아다니기만 하다가 왔는지 후회스럽다며 한숨을 내쉽니다. 물론 그들이 좇아다닌 대상은 거의가 돈입니다.
작년 10월 15일자 조선일보는 ‘어느 허망한 복권 인생’에 대해 간략히 전하고 있었습니다. 귀금속 행상이던 그 사람은 넉넉하지는 않지만 무난한 결혼생활 20년에 삼남매를 둔 성실한 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84년 7월 어느 날 ‘돼지꿈을 꾸었다’는 부인의 말을 듣고 구입한 주택복권이 1등에 당첨되면서 인생에 명암이 교차합니다. 당첨금으로 건물을 사들여 건물주가 되고 다시 되팔고…, 그리하여 재산이 늘어나면서 다른 여자를 만나고 씀씀이도 커지고, 마침내 부인에게는 생활비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폭행을 일삼다 실형을 선고받고 끝내는 이혼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돈으로 불행을 산 이야기는 오늘도 우리 이웃에서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 아닙니까? 이는 돈에 의해 사랑을 잃고 생명을 잃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백만장자 카지는 칩 기술자로서 파일을 압축한 사람입니다. 그는 PK회사를 시작하여 20대 초반에 백만 장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30대에 알콜 중독자가 되어 죽었습니다. 물질의 풍요에 생명이 있지 않습니다. 도리어 죽음의 요소들을 확대시킬 뿐입니다. 물질이 많아지면 명예를 구하고 권세를 구하고 정욕을 구하고 염려와 근심이 많아집니다. 우리가 물질의 노예가 되면 생명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셔야 합니다. 그리고 물질은 우리가 다스려야 하는 피조물이요 상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질보다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일본 황태자비는 아버지 유산인 88억원을 거절했습니다. 그 이유는 왕족으로서 평민이 준 재산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의 탐심과 싸워 물리쳐야 합니다. 탐심을 부추기면 눈이 멀고 분별력을 잃어버립니다. 이 시대는 맘모니즘 시대입니다. 사실 물질은 하나님의 위치에서 인간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범죄 사건들을 보면 대부분이 물질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미 뉴욕타임스지는 6월 12일 유명한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지난주 뉴욕 맨해튼의 부잣집 자녀들을 올곧게 키우기에 관한 이색적인 모임이 열렸다고 보도했습니다. 맨해튼은 재산이 1000만달러(약 110억원) 이상 되는 갑부만 4만1000여명이 모여 사는 미국 최대 부유층 밀집지역입니다. 그러나 부호들의 자녀들이 일찍부터 마약에 손대거나 심지어 염세자살을 하는 등 청소년 문제가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이날 토론에서는 부잣집 자녀를 올바르게 키우는 방법 6가지가 소개됐습니다. 그 중 하나는 돈이 전부가 아니다. 삶의 의미는 비싼 옷, 자동차, 비행기에서가 아니라 성실하게 일하는 것과 참된 교육, 그리고 남에 대한 배려에서 나온다는 것을 부모가 직접 보여 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일은 스스로 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5세 때부터 “모두가 부자는 아니며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한다”고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부자 바보의 비유를 통해서 그의 가르침을 더욱 견고하게 했습니다.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자 마음에 생각했습니다.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그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갈쿠리로 돈을 긁어모으듯 했습니다. 그는 쌓이는 곡식 가마니를 세는 것으로도 행복했습니다. 그는 창고를 더욱 크게 짓고 자기의 모든 물건과 곡식을 쌓아두고자 했습니다. 그는 이 물질을 가지고 인생을 한없이 즐기고 누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영혼에게 말했습니다.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부자 바보는 하나님의 은혜로 소출이 풍성할 때 이를 어디에 쓸까를 생각하지 않고 이것으로 자기만을 위해서 쓰고자 했습니다. 그는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쓰지 않고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기고자 했습니다. 그는 성실하여 열심히 일하고 미래를 대비하여 저축을 하고 예비한 것은 좋은데 근시안이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했을 때 썩어 없어질 것에다가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하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또 자기 생명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는 쓸 것이 많다보니 산다는 것에 대해서 더 많은 미련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부여하신 인생이 짧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으니 그 안타까움이 더하게 됩니다. 사람이 육신을 쉬고 마음대로 먹고 마시는데 행복이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채워지면 끝입니다. 그것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한 나라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부자를 바보라고 하십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오늘밤에 죽는 줄도 모르고 헛소리를 하고 있으니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우리가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린 일입니다. 인간의 생사 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부자 바보는 생명이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이 데려가신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요즈음은 게놈 프로젝트로 인해서 인간의 수명을 2050년에는 150세 까지 연장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천년을 산다고 해도 죽으면 그 천년도 일장 춘몽인 것입니다. 야고보 선생은 우리 인생은 아침에 잠간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우리의 인생이 날아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습니다. 자기 육신을 위해서는 곡간에 쌓아놓고 하나님을 위해서는 드리기를 인색해 하는 자들이 어리석습니다. 인간의 생명과 행복은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않습니다. 사람이 돈이 많으면 교만해 집니다. 그리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게 됩니다. 우리가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릴 때 생명의 풍성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물질은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쓰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을 소망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을 위해서 돈을 벌고 그 일에 투자해야 합니다. 그것이 자신의 장래를 위해서 가장 확실한 투자인 것입니다.
II. 염려와 믿음 (22-34)
부자 바보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던 것에 비해서 제자들은 당장 먹고 입는 것이 시급했습니다. 제자들은 배와 부친을 버리고 왔으므로 먹고 마시는 문제에 대해 염려하기 쉬웠습니다. 제자들은 하루하루 쓸 것이 없었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권면하십니다.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22)." 왜냐하면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더 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셨는데 음식을 주시지 않겠으며 몸을 주셨는데 입을 것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24절을 보십시오.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은혜로 주십니다. 우리가 자기 힘과 능력과 지혜로만 일을 해서 먹고 산다면 우리는 일의 노예가 되기 쉽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일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성경은 수없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27,28절을 보십시오.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백합화는 음지식물이고 들풀입니다. 들풀이라 사람이 가꾸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때마다 비를 내려 주시고 태양 빛을 비추어 주심으로 잘 자라고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백합화는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은혜로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공급하심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실제적인 믿음이 없기 때문에 염려하고 시달립니다. 염려는 필요한 것들이 채워진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채워지면 내일을 염려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고 하루 하루를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더 나아가서 제자들이 추구하는 바가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고 하십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제자들은 먹고 마시는 문제는 하나님께 맡기고 그의 나라를 구해야 합니다. 그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말합니다. 나 자신과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도록 기도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 목표로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도록 추구해야 합니다. 직장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터전으로 영접하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학교에서도 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해야 합니다. 모든 것 가운데서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고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할 때 모든 것을 더 하실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는 것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곳에 공의가 서고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남북한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해 왔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이번 남북 정상 회담을 넘치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에 생명력이 넘치고 기쁨이 넘치고 힘이 넘칩니다. 우리는 자신 뿐만 아니라 양들 안에도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최우선적으로 일해야 합니다. 말씀을 연구하고 열심히 기도하는 가운데 사단의 통치가 물러나고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인간의 자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통치 안에 있을 때 탐심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때 학업 문제, 직장 문제, 결혼문제, 가정 문제, 자녀 문제, 역사의 성장 문제 등 이 모든 것을 더 하십니다.
32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은 소수였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소수이고 탐욕을 부리고 세상 나라를 추구하는 자는 많으므로 내가 하나님 나라를 구하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 아닌가 두려워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우리에게 주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무엇을 위해서 써야 합니까? 33,34절을 보십시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나의 보물을 팔아서 써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값진 투자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생활이 가장 풍성한 삶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은 빈부격차, 남녀 노소, 지식의 유무, 인종을 떠나서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임하는 것이 참된 삶이요 삶의 풍요를 누리는 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가장 귀하게 여길 때 그 나라를 위해서 물질과 마음과 생각이 쓰여지고 그러한 삶에 참된 만족과 풍요함과 자유함과 기쁨이 넘쳐나게 되고 관계로부터의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복음을 전파하고 제자들을 양성하는 것이요 세계 선교를 감당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 힘으로 가정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자 할 때 부담감과 자신의 부족함으로 인해서 눌렸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할 때 부담감으로부터 자유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작은 것들에도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생명을 누리는 것 자체가 감사가 되었습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충만히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오직 주께 있나이다.
말씀 누가복음 12:13-34
요절 누가복음 12:31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생명과 소유, 믿음과 염려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물질이 풍부하면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합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부부가 함께 직장을 갖고 일을 합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생명의 풍요함을 누리기 위해서 많은 것을 소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의 생명은 소유의 풍부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믿기 보다 소유를 많게 하기 위해서 매달릴 때 염려하고 근심함으로 죽음을 확대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생명을 풍성케하고자 할 때 소유의 풍성함과 함께 죽음의 요소도 풍성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때 우리 생명에 필요한 모든 것을 더 해 주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길은 무엇입니까? 그 비결을 나누고자 합니다.
I. 생명과 소유 (13-21)
무리 중에서 한 사람이 예수님께 한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13)." 그는 형과 재산 분배문제로 불화 상태에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동생되는 사람은 억울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와서 형을 명하여 유업을 함께 나누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당시에 유산은 형이 2/3, 동생이 1/3을 갖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의 요청을 거절하시며 그에게 있는 탐심을 지적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볼 때 그는 형과의 관계를 회복하는데 힘을 써야 하는데 재물의 분배만을 구하여 그의 탐욕을 드러내었습니다. 14,15절을 보십시오. "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탐심이란 더 많이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입니다. 그래서 만족할 줄을 모르는 욕심입니다. 사람들이 소유를 많게 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돈이 많으면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누리고 싶은 것들을 원없이 할 수 있습니다. 또 돈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사람들의 인정도 받고 존경도 받습니다. 자본주의 시대에는 얼마나 많은 부를 소유했는가로 성공을 가늠합니다. 돈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유럽 배낭 여행도 하고 좋은 컴퓨터도 살 수 있고 초특급 통신망도 설치할 수 있고 비싼 오디오를 구입하여 음악을 즐길 수 있습니다. 좋은 차도 굴리고 좋은 집에서 살 수 있습니다. 돈이 많으면 최상의 의료 혜택도 받을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람들이 소유를 늘리고 싶어 하는 것은 삶을 확대하고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탐심이란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이기 때문에 갈증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물질의 노예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박베드로 선교사님의 인생 소감을 통해서 그가 근무하던 직장에서 이사님이 회의 도중에 간경변 출혈로 쓰러져 죽고 동료들이 과도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서 자살을 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인 것들이 아닙니까? 탐심은 생명을 풍요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확대하고 고난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탐심은 일만 악의 뿌리입니다. 탐심은 10계명중 열 번째 계명입니다. 성경은 돈이나 이웃의 아내, 종들, 자녀들에 대한 탐심, 여러 소유에 대한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탐심을 물리치지 않으면 탐심의 노예가 됩니다. 죄의 노예된 결과는 죽음입니다. 영원한 파멸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헬라어에서 생명이란 세가지가 있습니다. 조에, 비오스, 프쉬케가 그것입니다. 비오스는 세상적인 특성이 있습니다. 프쉬케는 개인에게 속한 목숨을 가리킵니다. 15절에 나오는 생명은 '조에'인데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생명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 계시된 그의 생명, 삶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온 자들의 생명, 삶을 의미합니다. 이 조에는 하나님의 축복을 드러내 주며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과 교통함으로써 축복된 삶을 누리는 것을 나타내 줍니다. 이러한 생명은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된 것이며 믿음으로써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에게 주어지고 육신의 죽음을 넘어 영원에 이릅니다. 이처럼 조에에 있어서의 강조점은 신자들에게 주어진 영적이고 도덕적인 생명의 특질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물질의 풍요를 구하지 말고 생명 구원과 영생을 구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주고자 하시는 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물질 욕심에 매여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경고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손해를 보더라도 형제 우애를 지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물질을 지키기 위해서 인간 관계, 부자 관계, 형제 관계를 파괴시켜 버립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과 집착이 형제 관계를 원수로 만들어 버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탐심은 마귀의 올무와 시험에 빠지게 하고 인간 관계를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외적인 소유로 마음을 채우고자 하기보다 마음을 생명과 진리로 채워야 합니다. 사람의 생명은 물질이나 여러 인간 조건들을 소유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는 참 생명, 기쁨, 행복, 힘있는 생명으로 채워야 합니다. 우리는 물질이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는 진리를 여러 예를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통계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행복은 돈에 비례하는 것이 아닙니다. 병원의 중환자실에 가서 그곳에 누워 있는 분들을 만나보면 인생에 회한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좀체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어떻게 그렇게 좇아다니기만 하다가 왔는지 후회스럽다며 한숨을 내쉽니다. 물론 그들이 좇아다닌 대상은 거의가 돈입니다.
작년 10월 15일자 조선일보는 ‘어느 허망한 복권 인생’에 대해 간략히 전하고 있었습니다. 귀금속 행상이던 그 사람은 넉넉하지는 않지만 무난한 결혼생활 20년에 삼남매를 둔 성실한 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84년 7월 어느 날 ‘돼지꿈을 꾸었다’는 부인의 말을 듣고 구입한 주택복권이 1등에 당첨되면서 인생에 명암이 교차합니다. 당첨금으로 건물을 사들여 건물주가 되고 다시 되팔고…, 그리하여 재산이 늘어나면서 다른 여자를 만나고 씀씀이도 커지고, 마침내 부인에게는 생활비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폭행을 일삼다 실형을 선고받고 끝내는 이혼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돈으로 불행을 산 이야기는 오늘도 우리 이웃에서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 아닙니까? 이는 돈에 의해 사랑을 잃고 생명을 잃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백만장자 카지는 칩 기술자로서 파일을 압축한 사람입니다. 그는 PK회사를 시작하여 20대 초반에 백만 장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30대에 알콜 중독자가 되어 죽었습니다. 물질의 풍요에 생명이 있지 않습니다. 도리어 죽음의 요소들을 확대시킬 뿐입니다. 물질이 많아지면 명예를 구하고 권세를 구하고 정욕을 구하고 염려와 근심이 많아집니다. 우리가 물질의 노예가 되면 생명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셔야 합니다. 그리고 물질은 우리가 다스려야 하는 피조물이요 상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질보다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일본 황태자비는 아버지 유산인 88억원을 거절했습니다. 그 이유는 왕족으로서 평민이 준 재산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의 탐심과 싸워 물리쳐야 합니다. 탐심을 부추기면 눈이 멀고 분별력을 잃어버립니다. 이 시대는 맘모니즘 시대입니다. 사실 물질은 하나님의 위치에서 인간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범죄 사건들을 보면 대부분이 물질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미 뉴욕타임스지는 6월 12일 유명한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지난주 뉴욕 맨해튼의 부잣집 자녀들을 올곧게 키우기에 관한 이색적인 모임이 열렸다고 보도했습니다. 맨해튼은 재산이 1000만달러(약 110억원) 이상 되는 갑부만 4만1000여명이 모여 사는 미국 최대 부유층 밀집지역입니다. 그러나 부호들의 자녀들이 일찍부터 마약에 손대거나 심지어 염세자살을 하는 등 청소년 문제가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이날 토론에서는 부잣집 자녀를 올바르게 키우는 방법 6가지가 소개됐습니다. 그 중 하나는 돈이 전부가 아니다. 삶의 의미는 비싼 옷, 자동차, 비행기에서가 아니라 성실하게 일하는 것과 참된 교육, 그리고 남에 대한 배려에서 나온다는 것을 부모가 직접 보여 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일은 스스로 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5세 때부터 “모두가 부자는 아니며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한다”고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부자 바보의 비유를 통해서 그의 가르침을 더욱 견고하게 했습니다.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자 마음에 생각했습니다.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그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갈쿠리로 돈을 긁어모으듯 했습니다. 그는 쌓이는 곡식 가마니를 세는 것으로도 행복했습니다. 그는 창고를 더욱 크게 짓고 자기의 모든 물건과 곡식을 쌓아두고자 했습니다. 그는 이 물질을 가지고 인생을 한없이 즐기고 누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영혼에게 말했습니다.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부자 바보는 하나님의 은혜로 소출이 풍성할 때 이를 어디에 쓸까를 생각하지 않고 이것으로 자기만을 위해서 쓰고자 했습니다. 그는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쓰지 않고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기고자 했습니다. 그는 성실하여 열심히 일하고 미래를 대비하여 저축을 하고 예비한 것은 좋은데 근시안이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했을 때 썩어 없어질 것에다가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하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또 자기 생명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는 쓸 것이 많다보니 산다는 것에 대해서 더 많은 미련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부여하신 인생이 짧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으니 그 안타까움이 더하게 됩니다. 사람이 육신을 쉬고 마음대로 먹고 마시는데 행복이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채워지면 끝입니다. 그것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한 나라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부자를 바보라고 하십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오늘밤에 죽는 줄도 모르고 헛소리를 하고 있으니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우리가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린 일입니다. 인간의 생사 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부자 바보는 생명이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이 데려가신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요즈음은 게놈 프로젝트로 인해서 인간의 수명을 2050년에는 150세 까지 연장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천년을 산다고 해도 죽으면 그 천년도 일장 춘몽인 것입니다. 야고보 선생은 우리 인생은 아침에 잠간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우리의 인생이 날아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습니다. 자기 육신을 위해서는 곡간에 쌓아놓고 하나님을 위해서는 드리기를 인색해 하는 자들이 어리석습니다. 인간의 생명과 행복은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않습니다. 사람이 돈이 많으면 교만해 집니다. 그리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게 됩니다. 우리가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릴 때 생명의 풍성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물질은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쓰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을 소망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을 위해서 돈을 벌고 그 일에 투자해야 합니다. 그것이 자신의 장래를 위해서 가장 확실한 투자인 것입니다.
II. 염려와 믿음 (22-34)
부자 바보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던 것에 비해서 제자들은 당장 먹고 입는 것이 시급했습니다. 제자들은 배와 부친을 버리고 왔으므로 먹고 마시는 문제에 대해 염려하기 쉬웠습니다. 제자들은 하루하루 쓸 것이 없었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권면하십니다.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22)." 왜냐하면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더 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셨는데 음식을 주시지 않겠으며 몸을 주셨는데 입을 것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24절을 보십시오.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은혜로 주십니다. 우리가 자기 힘과 능력과 지혜로만 일을 해서 먹고 산다면 우리는 일의 노예가 되기 쉽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일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성경은 수없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27,28절을 보십시오.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백합화는 음지식물이고 들풀입니다. 들풀이라 사람이 가꾸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때마다 비를 내려 주시고 태양 빛을 비추어 주심으로 잘 자라고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백합화는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은혜로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공급하심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실제적인 믿음이 없기 때문에 염려하고 시달립니다. 염려는 필요한 것들이 채워진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채워지면 내일을 염려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고 하루 하루를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더 나아가서 제자들이 추구하는 바가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고 하십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제자들은 먹고 마시는 문제는 하나님께 맡기고 그의 나라를 구해야 합니다. 그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말합니다. 나 자신과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도록 기도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 목표로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도록 추구해야 합니다. 직장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터전으로 영접하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학교에서도 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해야 합니다. 모든 것 가운데서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고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할 때 모든 것을 더 하실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는 것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곳에 공의가 서고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남북한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해 왔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이번 남북 정상 회담을 넘치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에 생명력이 넘치고 기쁨이 넘치고 힘이 넘칩니다. 우리는 자신 뿐만 아니라 양들 안에도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최우선적으로 일해야 합니다. 말씀을 연구하고 열심히 기도하는 가운데 사단의 통치가 물러나고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인간의 자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통치 안에 있을 때 탐심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때 학업 문제, 직장 문제, 결혼문제, 가정 문제, 자녀 문제, 역사의 성장 문제 등 이 모든 것을 더 하십니다.
32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은 소수였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소수이고 탐욕을 부리고 세상 나라를 추구하는 자는 많으므로 내가 하나님 나라를 구하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 아닌가 두려워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우리에게 주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무엇을 위해서 써야 합니까? 33,34절을 보십시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나의 보물을 팔아서 써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값진 투자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생활이 가장 풍성한 삶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은 빈부격차, 남녀 노소, 지식의 유무, 인종을 떠나서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임하는 것이 참된 삶이요 삶의 풍요를 누리는 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가장 귀하게 여길 때 그 나라를 위해서 물질과 마음과 생각이 쓰여지고 그러한 삶에 참된 만족과 풍요함과 자유함과 기쁨이 넘쳐나게 되고 관계로부터의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복음을 전파하고 제자들을 양성하는 것이요 세계 선교를 감당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 힘으로 가정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자 할 때 부담감과 자신의 부족함으로 인해서 눌렸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할 때 부담감으로부터 자유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작은 것들에도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생명을 누리는 것 자체가 감사가 되었습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충만히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오직 주께 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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