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00년 누가복음 제 13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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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누가복음 제 13 강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말씀/ 누가복음 11:1-13
요절/ 누가복음 11: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커다란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모두 열심히 기도했던 사람입니다. 영국 감리교의 창시자 웨슬리는 하루에 2시간 이상씩 기도했습니다. 스코클랜드의 신학자 러더퍼드는 새벽 3시에 일어나서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9세의 나에 죽은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나, 31세에 죽은 마틴같은 선교사는 젊은 나이에 죽었지만 위대한 선교사들의 빛나는 이름 사이에 그들의 이름도 빛나고 있습니다. 이들이 이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말이나 행동 때문이 아니라 기도의 생활로써 그들의 삶을 채웠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본문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마땅히 기도해야 할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내용이고 둘째는 우리가 어떤 자세로 기도해야 하는가? 가르쳐 줍니다. 저희가 본문 말씀을 통해 기도의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 주님께서 축복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I. 아버지여(1-4)
예수님께서 한 곳에서 기도를 하고 계셨습니다. 이를 보고 있던 제자 중 한 사람이 예수님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기도에 대해서 가르쳐 달라고 요청을 하였습니다.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저자 누가는 그의 복음서 여러곳에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다는 사실을 반복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같이 연약하고 능력이 부족한 자들에게 기도가 필요한 것이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기도할 필요가 있는가? 라고 생각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40일간 금식 기도를 하셨습니다. 또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후에도 기도하셨고 때로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열두 제자를 부르실때에도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고 십자가 상에서는 죄인들을 위한 용서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기도로 시작하셨고 기도로 마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기도에 대한 문제의식과 소원을 갖게 된 것입니다. 당시 요한의 제자들은 그의 스승이 가르쳐준 기도문을 가지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자들도 예수님께 좋은 기도문을 가르쳐 주시도록 부탁한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유명한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 라고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인생들이 가까이 할 수 없는 두려운 분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서기관들은 하나님을 의미하는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오면 목욕제계를 하고 자세를 새롭게 하여 기록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부르지 못하고 아도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나를 낳으시고 나를 기르시는 사랑의 아버지가 되심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까? 이는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아버지와 자녀의 친밀한 관계를 갖게된 것입니다.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이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은혜요 축복입니다. 이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우리 모두는 형제, 자매가 된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가르쳐준 첫번째 기도제목이 무엇입니까? 2절 하반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예수님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본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인간의 죄로인해 훼손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분께 마땅히 돌려야할 영광을 헛된 우상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할 신자들조차 하나님보다 돈이나 사람을 더 의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존경과 영광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든지 간에 하나님앞에 거룩한 삶을 살때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이 시대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읗시도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미국에서 노예 제도가 시작되던 때의 일입니다. 서남부 지방의 커다란 농장을 방문한 어떤 사람이 짐수레에 무거운 짐을 싣고 있는 지친 흑인 노예들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다른 노예들과는 달리 출중해 보이는 노예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 노예는 감독들이 휘두르는 채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와 등을 곧추세우고 당당하게 걷고 있었습니다. 방문객이 그 노예에 대해서 묻자 주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아프리카 왕의 아들이랍니다. 그는 결코 그것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습니다” 그럼 우리는 이시대 어떤 존재입니까?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 딸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그 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그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여기서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영역을 의미합니다. 세상은 죄로인해 사단의 통치를 받게 되었고 그 가운데 사는 사람은 사단의 종이 되었습니다. 사단의 다스림을 받고 있는 인생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두려움과 불안, 미움과 시기, 살인과 분쟁 등 온갖 죄악이 난무하게 되었습니다. 물질주의, 쾌락주의, 절망과 운명주의에 깊이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런 세상에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되었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막1:15)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의 심령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에는 사랑과 평화, 은혜와 기쁨, 참된 자유와 생명력이 충만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희 각자의 심령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께서 다스려 주시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무엇보다 저희가 일대일 성경공부와 여름 수양회 초청을 통해 저희가 섬기는 양들의 심령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 다음으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기도제목을 제시해 주십니다. 3절을 보십시오.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이는 날마다 우리의 필요한 만큼의 양식을 주시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이란 먹을것뿐 아니라 학과공부, 직장문제, 건강 문제, 자녀문제, 결혼문제 등 우리의 실제적인 현실 문제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심으로 한꺼번에 많이 쌓아놓고 안일하게 살도록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매일 매일 양식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살기를 원하십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용할양식을 구하지 않고 탐심으로 이틀치의 맛나를 쌓아 두었을 때 썩고 냄새가 나서 먹을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공급하심을 믿지 못할 때 늘 염려하고 근심하며 죽노록 일하다가 결국은 죽게 됩니다. 저희가 물질을 우상으로 섬기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고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생명을 누릴 수 있길 기도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라” 3절이 육신의 생명을 위한 것이라면 4절은 영혼의 생명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원치 않게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죄를 지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를 파괴시켜 버립니다. 뿐만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파괴하고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죄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죄문제는 아무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은 우리가 죄사함을 얻기 위해 먼저 다른 사람의 지은 죄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명령은 죄사함을 받지 못한 세상 사람을 위한 명령이 아니라 용서의 사랑을 받은 제자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용서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연약한 사람들끼리 살아가기 때문에 상처를 주고 받게 됩니다. 그래서 목자님들이나 동역자들에게 받은 상처는 쉽게 용서하지 못하고 이로인해 고통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용서하지 못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합니다. 말씀을 묵상하기 어렵고 소감을 쓰기도 힘이 듭니다. 기도를 하고자 하지만 기도가 막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죄사함을 얻고 풍성히 누리기 위해서는 용서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과 희생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자기 중심적인 내면으로 다른 사람에게 준 상처는 생각하지 않고 저의 상처만을 주장하며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중학교 2학년때 기술 과목 시험문제로 선생님께 따지다가 비오는날 먼지나게 맞은적이 있습니다. 이로인해 저는 아직도 그분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분만 생각하면 기도가 막히고 심령이 막히고 미운 감정에 사로잡혀 버습니다. 그러나 저의 힘으로 용서를 하고자 하면 할수록 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제가 얼마나 주님의 용서의 사랑을 헛되게 하는 자인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용서의 사랑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희가 나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고통가운데 죽으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님의 용서를 기억하고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이를통해 우리 안에 하나님이 주시는 죄사함의 은혜가 차고 넘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로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도록 하셨습니다. 여기서 시험에 들지 말게 해달라는 것은 기말고사를 보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를 넘어뜨리고자 하는 사단의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항상 사단의 시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누구도 사단의 시험과 유혹을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시험에 빠져 넘어졌다고 해도 그 사람을 정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도 똑같은 죄에 빠질 수 있는 연약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든지 시험에 빠질 수 있고 넘어질 수 있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할 수 있습니다.
II. 그 강청함을 인하여(5-13)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신 예수님은 이제 우리가 어떤 자세로 기도해야 하는가를 한 비유를 통해 가르쳐 주십니다.
5절로 8절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에게 밤중에 여행하던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그 친구는 여행중 제대로 먹지 못하여 기진맥진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에게는 아무런 음식도 없었습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이웃에 있는 자신의 친구 집에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초인종을 누르고 친구여 떡 세덩이만 빌려주게 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집안에 있던 그 친구는 나를 제발 괴롭게 하지 말게, 지금 몇시인줄이나 아나, 문은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침소에 누워있으니 일어나 줄 수가 없네 라고 대답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강청하는 친구로 인해 그는 일어나서 그가 요구하는 떡 세덩이를 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강청한다는 것은 염치없이 뻔뻔스럽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해주면 좋고 안해주면 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얼굴에 철판을 깔고 미안한 마음을 극복하고 들어줄때까지 구하는 것입니다. 그 친구인들 미안한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여행중에 자신의 집에 찾아온 친구를 먹이기 위해 그는 체면과 메너를 버린 것입니다. 그가 이처럼 강청하였을 때 잠자리에 누워있던 친구는 떡 세덩이를 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시 121: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강청하는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여 주십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여기서 구하라는 의미는 마음의 염원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찾으라는 의미는 행동에 옮겨진 탐구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찾는 기도는 구하는 기도보다 더 적극적인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한 기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드리라는 말씀은 주님을 만나 단판을 하는 단계의 기도를 말합니다. 구하고 찾은 다음에 더 적극적으로 마지막 단계인 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이 문은 응답의 문이요 하나님의 능력의 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극적으로 마음으로만 구할 것이 아니라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모든 일에 신속하게 응답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약속에 근거하여 확신가운데 기도할 수 있습니다. 막11:24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저는 때로 기도를 하다가도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시고 도와 주실것이라고 생각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다가 다리가 저려오고 피곤하여 힘들면 “하나님 다 아시지요” 하며 기도를 그치곤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저에게 강청하는 기도를 배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강청하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체험하길 원하십니다. 제가 충청도 양반처럼 기도할 것이 아니라 뻔뻔스럽게 들어주실때가 기도하는 기도의 종이 되길 원하십니다. 제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제자양성을 위해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를 감당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우리는 현재 여름 수양회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여름 수양회에 전체 150명 참석과 신입생 30명을 초청하고자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음으로만 기도하고 있다면 이 기도는 예전처럼 응답되지 못하고 끝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양들이 수양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하고 10번 이상 심방하여 섬겨야 합니다. 양이 없는 목자님들은 새롭게 양을 주시도록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저희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가운데 이번 수양회를 준비하고 섬길 수 있길 기도합니다.
11절로 13절을 보십시오. 아들을 가진 아버지는 아들이 생선을 달라고 하면 결코 뱀을 주지 않습니다. 또한 알을 달라고 하면 물려 죽으라고 전갈을 주지 않습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이처럼 끊임없이 하나님께 범죄하는 인간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주고자 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13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가장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성령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우리로 거듭나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확증시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강력한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충만하신 임재를 체험하게 되고 기도를 지속적으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장 먼저 구할 것은 성령입니다. 저희가 항상 성령을 주시도록 간절히 구해야겠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그분께 나아가 기도해야 함을 배웠습니다. 저희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기도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또한 강청하는 기도를 통해서 날마다 기도의 응답을 체험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말씀/ 누가복음 11:1-13
요절/ 누가복음 11: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커다란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모두 열심히 기도했던 사람입니다. 영국 감리교의 창시자 웨슬리는 하루에 2시간 이상씩 기도했습니다. 스코클랜드의 신학자 러더퍼드는 새벽 3시에 일어나서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9세의 나에 죽은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나, 31세에 죽은 마틴같은 선교사는 젊은 나이에 죽었지만 위대한 선교사들의 빛나는 이름 사이에 그들의 이름도 빛나고 있습니다. 이들이 이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말이나 행동 때문이 아니라 기도의 생활로써 그들의 삶을 채웠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본문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마땅히 기도해야 할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내용이고 둘째는 우리가 어떤 자세로 기도해야 하는가? 가르쳐 줍니다. 저희가 본문 말씀을 통해 기도의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 주님께서 축복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I. 아버지여(1-4)
예수님께서 한 곳에서 기도를 하고 계셨습니다. 이를 보고 있던 제자 중 한 사람이 예수님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기도에 대해서 가르쳐 달라고 요청을 하였습니다.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저자 누가는 그의 복음서 여러곳에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다는 사실을 반복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같이 연약하고 능력이 부족한 자들에게 기도가 필요한 것이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기도할 필요가 있는가? 라고 생각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40일간 금식 기도를 하셨습니다. 또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후에도 기도하셨고 때로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열두 제자를 부르실때에도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고 십자가 상에서는 죄인들을 위한 용서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기도로 시작하셨고 기도로 마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기도에 대한 문제의식과 소원을 갖게 된 것입니다. 당시 요한의 제자들은 그의 스승이 가르쳐준 기도문을 가지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자들도 예수님께 좋은 기도문을 가르쳐 주시도록 부탁한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유명한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 라고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인생들이 가까이 할 수 없는 두려운 분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서기관들은 하나님을 의미하는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오면 목욕제계를 하고 자세를 새롭게 하여 기록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부르지 못하고 아도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나를 낳으시고 나를 기르시는 사랑의 아버지가 되심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까? 이는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아버지와 자녀의 친밀한 관계를 갖게된 것입니다.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이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은혜요 축복입니다. 이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우리 모두는 형제, 자매가 된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가르쳐준 첫번째 기도제목이 무엇입니까? 2절 하반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예수님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본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인간의 죄로인해 훼손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분께 마땅히 돌려야할 영광을 헛된 우상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할 신자들조차 하나님보다 돈이나 사람을 더 의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존경과 영광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든지 간에 하나님앞에 거룩한 삶을 살때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이 시대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읗시도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미국에서 노예 제도가 시작되던 때의 일입니다. 서남부 지방의 커다란 농장을 방문한 어떤 사람이 짐수레에 무거운 짐을 싣고 있는 지친 흑인 노예들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다른 노예들과는 달리 출중해 보이는 노예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 노예는 감독들이 휘두르는 채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와 등을 곧추세우고 당당하게 걷고 있었습니다. 방문객이 그 노예에 대해서 묻자 주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아프리카 왕의 아들이랍니다. 그는 결코 그것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습니다” 그럼 우리는 이시대 어떤 존재입니까?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 딸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그 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그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여기서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영역을 의미합니다. 세상은 죄로인해 사단의 통치를 받게 되었고 그 가운데 사는 사람은 사단의 종이 되었습니다. 사단의 다스림을 받고 있는 인생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두려움과 불안, 미움과 시기, 살인과 분쟁 등 온갖 죄악이 난무하게 되었습니다. 물질주의, 쾌락주의, 절망과 운명주의에 깊이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런 세상에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되었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막1:15)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의 심령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에는 사랑과 평화, 은혜와 기쁨, 참된 자유와 생명력이 충만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희 각자의 심령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께서 다스려 주시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무엇보다 저희가 일대일 성경공부와 여름 수양회 초청을 통해 저희가 섬기는 양들의 심령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 다음으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기도제목을 제시해 주십니다. 3절을 보십시오.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이는 날마다 우리의 필요한 만큼의 양식을 주시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이란 먹을것뿐 아니라 학과공부, 직장문제, 건강 문제, 자녀문제, 결혼문제 등 우리의 실제적인 현실 문제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심으로 한꺼번에 많이 쌓아놓고 안일하게 살도록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매일 매일 양식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살기를 원하십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용할양식을 구하지 않고 탐심으로 이틀치의 맛나를 쌓아 두었을 때 썩고 냄새가 나서 먹을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공급하심을 믿지 못할 때 늘 염려하고 근심하며 죽노록 일하다가 결국은 죽게 됩니다. 저희가 물질을 우상으로 섬기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고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생명을 누릴 수 있길 기도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라” 3절이 육신의 생명을 위한 것이라면 4절은 영혼의 생명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원치 않게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죄를 지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를 파괴시켜 버립니다. 뿐만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파괴하고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죄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죄문제는 아무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은 우리가 죄사함을 얻기 위해 먼저 다른 사람의 지은 죄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명령은 죄사함을 받지 못한 세상 사람을 위한 명령이 아니라 용서의 사랑을 받은 제자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용서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연약한 사람들끼리 살아가기 때문에 상처를 주고 받게 됩니다. 그래서 목자님들이나 동역자들에게 받은 상처는 쉽게 용서하지 못하고 이로인해 고통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용서하지 못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합니다. 말씀을 묵상하기 어렵고 소감을 쓰기도 힘이 듭니다. 기도를 하고자 하지만 기도가 막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죄사함을 얻고 풍성히 누리기 위해서는 용서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과 희생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자기 중심적인 내면으로 다른 사람에게 준 상처는 생각하지 않고 저의 상처만을 주장하며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중학교 2학년때 기술 과목 시험문제로 선생님께 따지다가 비오는날 먼지나게 맞은적이 있습니다. 이로인해 저는 아직도 그분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분만 생각하면 기도가 막히고 심령이 막히고 미운 감정에 사로잡혀 버습니다. 그러나 저의 힘으로 용서를 하고자 하면 할수록 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제가 얼마나 주님의 용서의 사랑을 헛되게 하는 자인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용서의 사랑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희가 나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고통가운데 죽으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님의 용서를 기억하고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이를통해 우리 안에 하나님이 주시는 죄사함의 은혜가 차고 넘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로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도록 하셨습니다. 여기서 시험에 들지 말게 해달라는 것은 기말고사를 보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를 넘어뜨리고자 하는 사단의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항상 사단의 시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누구도 사단의 시험과 유혹을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시험에 빠져 넘어졌다고 해도 그 사람을 정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도 똑같은 죄에 빠질 수 있는 연약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든지 시험에 빠질 수 있고 넘어질 수 있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할 수 있습니다.
II. 그 강청함을 인하여(5-13)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신 예수님은 이제 우리가 어떤 자세로 기도해야 하는가를 한 비유를 통해 가르쳐 주십니다.
5절로 8절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에게 밤중에 여행하던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그 친구는 여행중 제대로 먹지 못하여 기진맥진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에게는 아무런 음식도 없었습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이웃에 있는 자신의 친구 집에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초인종을 누르고 친구여 떡 세덩이만 빌려주게 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집안에 있던 그 친구는 나를 제발 괴롭게 하지 말게, 지금 몇시인줄이나 아나, 문은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침소에 누워있으니 일어나 줄 수가 없네 라고 대답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강청하는 친구로 인해 그는 일어나서 그가 요구하는 떡 세덩이를 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강청한다는 것은 염치없이 뻔뻔스럽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해주면 좋고 안해주면 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얼굴에 철판을 깔고 미안한 마음을 극복하고 들어줄때까지 구하는 것입니다. 그 친구인들 미안한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여행중에 자신의 집에 찾아온 친구를 먹이기 위해 그는 체면과 메너를 버린 것입니다. 그가 이처럼 강청하였을 때 잠자리에 누워있던 친구는 떡 세덩이를 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시 121: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강청하는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여 주십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여기서 구하라는 의미는 마음의 염원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찾으라는 의미는 행동에 옮겨진 탐구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찾는 기도는 구하는 기도보다 더 적극적인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한 기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드리라는 말씀은 주님을 만나 단판을 하는 단계의 기도를 말합니다. 구하고 찾은 다음에 더 적극적으로 마지막 단계인 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이 문은 응답의 문이요 하나님의 능력의 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극적으로 마음으로만 구할 것이 아니라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모든 일에 신속하게 응답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약속에 근거하여 확신가운데 기도할 수 있습니다. 막11:24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저는 때로 기도를 하다가도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시고 도와 주실것이라고 생각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다가 다리가 저려오고 피곤하여 힘들면 “하나님 다 아시지요” 하며 기도를 그치곤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저에게 강청하는 기도를 배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강청하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체험하길 원하십니다. 제가 충청도 양반처럼 기도할 것이 아니라 뻔뻔스럽게 들어주실때가 기도하는 기도의 종이 되길 원하십니다. 제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제자양성을 위해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를 감당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우리는 현재 여름 수양회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여름 수양회에 전체 150명 참석과 신입생 30명을 초청하고자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음으로만 기도하고 있다면 이 기도는 예전처럼 응답되지 못하고 끝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양들이 수양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하고 10번 이상 심방하여 섬겨야 합니다. 양이 없는 목자님들은 새롭게 양을 주시도록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저희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가운데 이번 수양회를 준비하고 섬길 수 있길 기도합니다.
11절로 13절을 보십시오. 아들을 가진 아버지는 아들이 생선을 달라고 하면 결코 뱀을 주지 않습니다. 또한 알을 달라고 하면 물려 죽으라고 전갈을 주지 않습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이처럼 끊임없이 하나님께 범죄하는 인간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주고자 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13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가장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성령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우리로 거듭나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확증시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강력한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충만하신 임재를 체험하게 되고 기도를 지속적으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장 먼저 구할 것은 성령입니다. 저희가 항상 성령을 주시도록 간절히 구해야겠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그분께 나아가 기도해야 함을 배웠습니다. 저희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기도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또한 강청하는 기도를 통해서 날마다 기도의 응답을 체험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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