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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마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제자양성 제 2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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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섬김이
댓글 0건 조회 3,849회 작성일 03-01-1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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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제자양성 제 2 강
믿음과 목자 훈련
말씀/ 마가복음 4-8장
요절/ 마가복음 6:37a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저희는 지난 1강 말씀을 통해 제자의 부르심과 목적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평범하고 허물이 많지만 배우고자 하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열 두명의 청년을 부르사 제자로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그 시대를 섬길 목자요 영적 지도자로 키우고자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제자들을 어떻게 키우셨는가? 하는 구체적인 훈련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자훈련의 기본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농구 선수인 마이클 조던은 자신이 농구 황제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기본기에 충실한 선수가 되고자 많은 시간을 투자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제자로 끊임없이 성장하기위해서는 기본기가 충실해야 합니다. 이시간 말씀을 통해 제자로서의 기본적으로 받아야 할 영적 훈련에 대해서 배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1.        말씀에 대한 자세 (4:1-34)
예수님께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자 큰 무리가 모여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나가서 씨를 뿌리자 더러는 길가에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습니다.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자 흙이 깊지 않아 곧 싹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해가 돋은 후에 뿌리가 없으므로 말라버렸습니다. 더러는 가시 떨기에 떨어졌으나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아 결실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얼마지나지 않아 싹이 나고 자라 무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씨는 30배와 60배와 100배의 결실을 하였습니다.  이 비유를 가르치신 후 예수님은 무리를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들을 귀있는 자는 들으라” 
그러자 예수님께서 홀로 계실때에 열두 제자와 함께한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그 비유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기뻐하시며 그들에게 비유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길가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때에 사단이 즉시 와서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간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리운 자는 말씀을 듣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배의 결실을 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무리들에게 비유로 말씀을 가르치시는 것은 진리의 말씀을 숨기기 위함이 아닙니다.  등불을 키는 목적이 비추는데 있는 것처럼 예수님도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밝히 비추고자 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에게나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깨닫게 하지 않으시고  들을 귀 있는 자에게만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럼 들을 귀 있는 자는 어떤 자입니까?  24절을 보십시오. “또 가라사대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또 더 받으리니”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NIV영어 성경은 “Consider carefully what you hear” 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을 주의깊게 생각하고 묵상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들을 귀 있는 자란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말씀을 주의깊게 듣고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왔지만 소수의 사람들만이 예수님이 전하신 말씀에 대해서 깨닫고자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택하신 후에 그들에게 가장 먼저 말씀에 대한 바른 자세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무엇보다 들을 귀를 가지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서 열매를 맺는 것은 씨뿌리는 자의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밭이 문제라고 하셨습니다.  좋은 밭에 뿌려지기만 하면 30배, 60배, 100배의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내면의 밭을 일구어서 좋은 밭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길가와 같이 딱딱해진 마음을 회개함으로 갈아엎어야 합니다. 불신의 돌, 죄악의 돌을 골라 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 염려와 잔재미의 가시를 뽑아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끊임없이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시편 1편에서 복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깊이 묵상할 때 그 묵상의 깊이 만큼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영적 세계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귀를 가지고 듣는 자는 갈수록 영적으로 부유하게 되지만 말씀을 건성으로 듣고 건성으로 소감쓰는 사람은 받은 은혜마져도 곧 바닥나고 말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일방적인 은혜를 주시지만 말씀앞에 그 내면이 준비된 자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담을 수 있습니다.
한 사모님은 목자 생활을 시작한지 2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꼭 말씀을 노트에 붙여서 풀고 말씀공부 후에는 개인적으로 묵상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여러 번 공부한 말씀이지만 항상 새롭게 공부하는 자세로 말씀을 대하니 말씀을 들을때마다 새로운 은혜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분은 말씀속에서 제자생활의 기쁨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말씀공부를 하면서 아예 문제를 풀지 않거나 센타 컴퓨터에 이미 풀어진 노트를 찾아 출력만 하여 참석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소감은 라면과 같이 떼우는 식을 쓰는데 의의를 두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도 당장은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갈수록 영적으로 고갈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저희가 신앙 연수를 더할수록 말씀을 처음 대하는 자세로 간절한 마음으로 듣고 묵상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또한 저희가 섬기는 양들에게도 제자로서 말씀에 귀기울이는 자세를 가르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원하시는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2.        예수님의 능력, 믿음의 능력, (4:35-41,  5:21-43)
날이 저물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갈리리 바다 건너편을 향해 노를 저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혀 배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어마 어마한 물결 앞에 제자들이 탄 배는 마치 추풍 낙엽처럼 흔들지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최선을 다해 광풍과 싸우고자 하였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위급한 상황속에서도 예수님은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깨우며 소리쳤습니다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큰 광풍으로인해 그들은 죽음의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의 머리속에 고기밥이 되는 끔찍한 상황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39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광풍과 싸우신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다에게 잠잠하라 고요하라 명령하셨습니다. 그러자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졌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통해 자연 만물을 다스리시는 창조주 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을 향해 무섭게 책망하십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이는 그들이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장차 세계 역사를 어둠에서 생명으로 바꿀 역사 창조의 주역이 되길 원하셨습니다. 이를위해 예수님은 그들을 믿음의 사람들로 키우고자 광풍 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었을 때 도리어 두려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믿음을 심어주시기 위해 광풍 한가운데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항해라고 할지라도 때로 예기치 않는 광풍이 찾아옵니다.  광풍의 특징은 전혀 예기치 못한 때에 전혀 대항할 수 없는 힘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에게는 학점의 광풍,  승진 누락의 광풍, 질병의 광풍,  해직의 광풍,  물질문제의 광풍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광풍속에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고자 하시는 선한 뜻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광풍훈련을 통해 우리를 연단하사 믿음의 정병으로 키우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광풍은 우리의 믿음을 키울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광풍속에서 주님을 의지하고 기도할 때 우리는 믿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광풍을 잠잠케 할 수 없지만 창조주 하나님이신 우리 주님은 능히 말씀 한마디로 광풍을 잠잠케 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현재 나에게 있는 광풍을 통해 주님 한분을 굳게 의지하는 믿음을 배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배를 타고 갈리리 바다 저편으로 건너가시자 큰 무리가 모여 들었습니다.  그중에 야이로라 하는 회당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보고 엎드려 많이 간구하였습니다.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그는 사랑하는 어린 딸을 살리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와 도움을 청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와 함께 어린 딸을 고치시러 가셨습니다. 바로 그 때 혈루증으로 앓고 있던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혈루증을 고치기 위해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습니다. 이로인해 그녀는 있던 재산도 다 날리고 말았습니다. 의사들은 그녀가 찾아오면 무슨 검사가 그리 많은지 검사비로 수백만원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리고 검사가 끝나면 심각한 얼굴을 하고 현대 의학으로는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병이라고만 하였습니다. 그녀는 이런 의사들로인해 더욱 고통받아야 했습니다. 그런중에 그녀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귀머거리를 고치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이시라면 자신의 혈루증을 능히 치료하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뿐만아니라 부정한 자신은 예수님께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병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많은 무리속에 뭍혀 예수님근처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러자 그녀의 혈루 근원이 마르고 병이 다 나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날아갈 듯이 기뻤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능력이 나간 줄 아시고 무리를 보시고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손댄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들은 손을 댄 정도가 아니라 몸을 비비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던 길을 멈추고 계속해서 몸에 손을 댄 사람을 찾자 여인은 두려워 떨며 모든 사실을 예수님께 아뢰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고백을 받으시고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찌어다” 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믿음을 칭찬해 주고자 하셨습니다. 뿐만아니라 여인의 믿음을 축복하시사 온전한 치료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인의 믿음을 축복해주고 계실 때 회당장 집 사람이 와서 딸이 죽었다고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이제 모든 상황이 종료 되었으니 예수님이 오실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계시던 예수님은 회당장 야이로를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예수님의 이 말씀이 의미하는바가 무엇입니까?  딸의 죽음으로인해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님만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반대는 두려움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할 때 우리는 사단이 심는 두려움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딸도 능히 살리실 수 있는 분이심을 믿고 예수님만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리고 죽은 딸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 하셨습니다. 이는 “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는 뜻이었습니다.  그러자 소녀가 일어나서 걷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본 많은 사람들이 크게 놀라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두 사건을 통해 예수님의 능력과 믿음의 능력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허준과 같은 명의가 아니라 죽은 사람도 살리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죽음과 같은 절망적인 상황속에서도 두려움을 극복하고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제자양성역사를 섬기며 양들이 영적으로 힘들어지고 일대일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할 때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기도하고 초청했던 한 양이 여름 수양회에 참석하지 않고 이제는 말씀공부도 그만두겠다고 말했을대 모든 상황이 종료된것처럼 보입니다. 내면에는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절망과 계속적인 제자양성의 실패에 대한 한계적인 생각이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저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예수님은 죽은 야이로의 딸도 살리셨듯이 죄로인해 죽어있는 영혼도 능히 살리실 수 있는 창조주 이십니다. 상황을 바라보지 말고 예수님만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죽어가는 양의 생명을 살릴뿐 아니라 제자로 키우는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제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끝까지 믿음으로 제자양성에 도전하는 가운데 부활신앙을 체험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3.        목자 훈련(6:1-13, 30-44, 8:1-10)
첫째, 사람들에게 배척받는 훈련 ;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신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고향으로 가시자 제자들이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듣고 놀라며 말했습니다.  6:2,3절을 보십시오. “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뇨 이 사람의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 됨이뇨 이 사람이 마리아이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를 듣고 인간적인 생각만을 하며 도리어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고향에서 배척 받으신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예수님은 자신이 배척받는 모습을 통해 제자들이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조차 배척을 받을 각오를 하도록 도우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소수의 병인만을 고쳐 주셨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조차 배척을 받을 때 우리는 마음속에서 슬픔과 자신에 대한 연민의 감정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때 고향 사람들에게 배척 받으신 예수님을 묵상해야겠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둘재, 전도 훈련 ;  예수님께서는 배척을 받으신후에 제자들을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로 하여금 전도여행을 하도록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주머니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것도 가지지 말도록 하셨습니다. 오직 신만 신고 두벌옷도 가지지 말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회개하라 전파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자로 키우시고자 훈련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가는 곳마다 많은 귀신을 좇아내며 많은 병인에게 기름을 발라 고쳐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전도여행을 떠나는데 아무것도 가지지 말도록 명하신 것은 그들이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의지하도록 돕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전도인으로서의 영성은 청빈한 생활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셋째, 목자의 내면성 훈련, : 전도 여행을 마치고온 제자들을 보신 예수님은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잠시 쉬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오고가는 사람들로 인해 음식먹을 겨를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예수님과 제자일행이 배를 타고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도보로 달려와 예수님 일행보다 먼저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제자들의 쉬는 시간까지 좇아오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을 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합니까?  3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가지로 가르치시더라” 예수님 당시 백성들은 못먹고 못살았기 때문에 불쌍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점으로볼 때 그들이 진정으로 불쌍한 것은 목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여러가지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 길어 어느덧 해가 서산으로 뉘엇뉘엇 넘어가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빨리 무리를 보내어 그들이 먹을 것을 사먹고 집으로 돌아가도록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37절 전반부를 보십시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리를 먹일 아무것도 없음을 잘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그들에게  지도자로서의 책임감과 목자의 심정을 가르쳐 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백 데나리오의 떡을 사다 먹여도 부족할 것이라고 대답하는 제자들에게 떡 몇 개가 있는지를 찾아보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져온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오천명을 먹이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도록 하셨습니다. 
그후 예수님께서 사천명을 먹이실 때에도 예수님은 그들에게 목자로서 심정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없는 것을 찾도록 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찾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줍니까?  이는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현재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만을 예수님께 가지고 나와도 양떼를 충분히 먹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적을 이루시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 예수님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목자의 심정에 동참하고자 투쟁해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에게 있는 것을 찾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이때 오병이어와 떡일곱 조각밖에 없을 지라도 많은 무리를 먹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소국인 한국 선교사님들을 이방 지성인 제자양성 역사에 사용하실 수 있었던 비결도 바로 그들을 향한 목자의 심정과 오병이어를 드리는 믿음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한 선교사님은 저에게 이방 목자의 말을 빌어 “예전 선교사님들은 많은 것이 부족했지만 심정과 믿음이 있었는데 요즘 선교사님들은 실력도 있고 이방 문화에도 잘 적응하지만 심정과 믿음에서 초기 선교사님들에 못미친다고 하였습니다.  홍대 지성인들을 제자양성하고 세계선교를 이루는 것은 목자의 심정과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저희가 캠퍼스 지성인들을 섬기는 가운데 예수님의 목자의 심정과 믿음에서 자랄 수 있길 기도합니다.

4.        역사관훈련(6:47-52, 8:14-21)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타고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무리와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에 올라갔습니다.  날이 저물자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님은 홀로 뭍에 계셨습니다.  그런데 밤 사경 곧 새벽 3-6시 사이에 바람이 거스려 제자들은 괴롭게 노를 젓고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이 있는 배에 오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유령이 나타났다고 소리를 지르고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왜 예수님을 유령으로 생각한 것입니까? 이는 그들이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신성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건속에서 예수님이 어떤분이신가 배워야 했지만 사건마다 놀라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에게 떡이 없는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는 헛소리를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듣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오병이어 사건과 떡 일곱개로 사천명을 먹인 사건을 기억하도록 도와 주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체험했으나 새로운 어려움이 생기면 믿음이 그것과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역사관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은 사건을 통해 자신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반면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은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진 역사에 놀라기만 하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누룩 얘기만 나오면 떡 만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역사의식을 가르치심으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깊이 생각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저희가 나의 삶을 통해 이루어지는 역사속에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깊이 생각하는 역사의식을 가진 제자로 성장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말씀에 대한 자세를 가르치시고 믿음 훈련,  목자 훈련, 역사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현재 예수님께서 주시는 훈련은 무엇입니까?  저희가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주님이 주시는 훈련을 통해 주님이 원하시는 제자로 성장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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