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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마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제자 양성 제 5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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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섬김이
댓글 0건 조회 3,709회 작성일 03-01-17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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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제자 양성 제 5 강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믿음
제자 교육 내용(Ⅳ)
말씀/ 마가복음 14-16장
요절/ 마가복음 16:15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기독교는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두 기둥 위에 세워졌습니다. 이 복음 진리를 믿는 자들은 죄와 사망 권세로부터 구원을 받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반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이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세상 영광에 마음이 더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을 사도로 키우기 위해서 오래 참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진리를 따라 살도록 제자들을 도우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새롭게 영접하고 부활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세계선교 사명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만민 구원 역사에 주역들로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Ⅰ. 십자가의 복음(14장)

 때는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번 유월절에 자신이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어 하나님께 드리는 화목제물이 되어야했습니다. 이를  위해서 종교지도자들에게 멸시를 받고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아 산채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을 당해야합니다. 이런 고난의 때에 두 부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저자는 이 예수님께 향유를 붓는 여인과 예수님을 팔아먹는 가룟 유다를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향유 옥합은 그녀의 결혼의 꿈과 진심이 고스란히 담긴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꿈과 진심을 다 쏟아 부어 예수님께 대한 사랑을 표시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으로 인해 큰 위로를 받으셨습니다. 8절을 보면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의 고난에 동참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어떤 고난의 길도 두렵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사랑하사 십자가의 고난에 자신을 맡기셨듯이 이 여인은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자신의 장래를 염려하지 않고 옥합을 다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 마음에 사랑이 있는 사람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희생하고 헌신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어려울 때 그 고난에 동참한 여인을 축복하사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눅22:28-30절에서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할 때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왕노릇하며 영광을 받게 됩니다. 주님과 함께 고난을 받으려면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열 두 제자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는 이 여인과 아주 대조적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넘겨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갔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고난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통해서 지상 메시야 왕국을 이루어보려던 자기의 꿈이 깨어지자 예수님을 배반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보다 돈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는 예수님보다 자기 꿈을 더 사랑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보다 죄의 쾌락을 더 사랑하여 번번이 예수님을 배반합니다. 죄의 쾌락을 얻기 위해서 진리를 팔고 신자의 명분을 팔고 양심을 팔아버립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팔고자 했을 때 종교지도자들은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였습니다. 유다는 어떻게 예수님을 넘겨줄 것인가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에 말씀 역사가 없자 인간적인 생각으로 가득차게 되었고 결국은 사단의 종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신다는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한 제자들도 결국 다 도망을 가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 날 예수님은 제자 중 둘을 보내어 마가의 다락방에다가 유월절 만찬을 준비시켰습니다. 날이 저물자 제자들을 데리시고 와서 식사하시는 중에 예수님은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14:18)" 이 말씀은 조용하였지만 제자들에게 굉장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제자들은 근심하여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하나씩 하나씩 여짜왔습니다. "내니이까?" "나는 아니지요? 그렇죠"  유다는 시치미를 떼고 자신도 예수님께 물어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열둘 중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특별히 제자 중에서 하나가 자신을 팔리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유다로 하여금 회개케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다의 영혼을 생각할 때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주님은 죄인이 멸망당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유다가 회개하기를 거부하고 떡을 받아먹었을 때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갔다고 기록했습니다. 회개하지 않고 성만찬을 먹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간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심으로 후에 제자들이 실족치 않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패배가 아니라 순종의 열매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유월절 만찬을 드시면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의 의미를 가르치셨습니다. 22-24절을 보십시오.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가라사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예수님의 몸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참 떡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피는 많은 사람으로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흘리는 피 곧 언약의 피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새 언약을 인치는 피입니다. 옛 언약은 율법을 지키면 구원을 얻으리라는 행위 언약입니다. 그러나 새 언약은 예수님의 보혈을 마음으로 믿으면 죄사함을 받으리라는 은혜의 언약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찢기신 그 몸과 쏟으신 보혈이 나의 죄를 위한 것임을 믿으면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최후의 유월절 만찬을 마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길을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르셨습니다.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27)" 이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매우 아프셨습니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시며 제자들을 도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들의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을 의지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라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에게 더욱 강하고 생생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는 더욱 팔팔 뛰며 소리쳤습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수제자로서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는 사단의 역사를 알지 못했습니다. 인간적인 충성은 믿을 수 없습니다. 그가 죽기까지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지만 그의 연약함은 이를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가 예수님의 말씀보다 자신을 더 믿었을 때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때 영광스러운 부활의 약속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진리에 기초하지 않은 자기 확신은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님은 여덟 제자들에게 내가 기도할 동안에 여기 앉아 있으라 말씀하신 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조금 더 나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그리고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 기도는 제자들에게 다 들렸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연약함을 잘 아시고 기도하셨습니다. 배척을 받고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기 위해서 기도로 준비하셨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고민을 많이 하고 기도는 하지 않습니다. 문제를 잊기 위해서 쾌락을 추구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극장에 갑니다. 제자들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잠을 잤습니다. 그들은 아예 코를 골고 잠을 잤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고 돌아오셔서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고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37,38)." 그리고 다시 나아가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영적 투쟁이었습니다. 히5:7절은 말씀합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예수님의 기도는 얼마나 간절하였던지 그 흐르는 땀이 핏방울과 같았습니다(눅22:44). 기도를 마치고 와서 보니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심히 피곤하여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나아가 세 번째 동일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기도를 마치신 예수님은 승리의 확신이 생겼습니다. 우리도 문제가 생기면 확신이 생길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영적 전투에서 힘을 얻는 자원의 보고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오사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이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가룟 유다는 종교 지도자들에게서 파송된 군인들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께 "랍비여"하며 배반의 키스를 하였습니다. 군인들이 예수님을 체포했습니다. 베드로가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귀를 쳤습니다. 이렇게 하면 예수님께서 적극적으로 싸우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고 순순히 체포되셨습니다. 그러자 기도하지 않고 잠만 잤던 베드로와 열 제자들은 모두 도망을 쳤습니다. 그들은 두려움을 이길 힘이 없었습니다.

 이상에서 십자가의 복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고린도전서 1:18절은 말씀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일반적으로 십자가는 저주와 가장 비참한 형벌로서 거리끼는 것입니다. 사형도구를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도가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도에는 어떤 능력이 있습니까? 먼저 십자가는 죄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는 사죄의 복음입니다. 내 대신 저주를 받으시고 죽으신 예수님께서 죄가 요구하는 대가를 다 지불하셨습니다. 또한 십자가는 치료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죄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통해서 위로를 받고 그 마음의 상처가 치료되었습니다. 미움과 증오로 고통하던 사람들이 십자가를 통해서 사랑을 느끼고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하는 순종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순종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사명인의 삶을 살게 됩니다. 십자가의 도는 삶의 원리요 생명의 원리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몸에 익히는 투쟁을 할 때 능력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Ⅱ. 부활의 복음(16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고통 중에 돌아가셨지만 무덤에 장사된 지 사흘만에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맨 먼저 막달라 마리아에게 자신을 보이셨습니다. 한편 제자들은 한 곳에 숨어서 슬퍼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잃은 슬픔보다도 죽음 권세와 절망감과 산산히 조각난 자기들의 꿈에 대한 연민 때문에 더욱 슬퍼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죽음은 건장한 청년들마저도 깊은 슬픔과 절망과 허무 가운데로 빠뜨립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었고 사랑했으나 죽음의 한계 안에 갇힐 때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죽음은 사단의 최대무기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을 정복하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누구든지 부활의 주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고 죽음을 이길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를 제자들에게 보내어 자신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제자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낙향을 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청운의 꿈을 안고 예수님을 따랐던 그들의 두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그들의 발걸음은 허탈감과 깊은 실패감으로 인해 한없이 무거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그들은 말씀을 공부하는 가운데 변화되었습니다. 그들은 손과 발에 새 힘이 솟아났습니다. 그들은 즉시 가던 방향을 돌이켜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증거했습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람을 이렇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제자들은 역시 믿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열 한 제자가 한자리에 모여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아마 이들은 함께 모여 울다가 배가 고파서 울 힘도 없었기 때문에 다시 먹고 울고자 했나봅니다. 그들은 슬픔이 진정되자 이제 먹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직접 그들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그들을 위로하거나 동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너희 마음이 어찌 그리 완악하냐" 예수님께서 이렇게 책망하신 이유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왜 이렇게 믿음이 없고 완악했을까요? 지나치게 자기 연민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절망이 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온유와 사랑이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심하게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믿음이 없을 때 심하게 책망하십니다. 우리가 제자들을 돕는데 있어서 위로할 때가 있고 책망할 때가 있습니다. 마음이 완악한 것과 믿지 않는 것은 책망을 받아야 합니다. 책망해야 할 때 책망하지 않아 사람을 사단에게 빼앗기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부활 신앙은  책망을 해서라도 심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책망하심으로 제자들에게 부활 신앙을 심으셨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유언적인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제자 양성의 목표를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은 택하신 자들을 키우실 때 그들이 겨우 믿고 구원받는데 그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혹은 주일에만 신자가 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영접하고 세계선교를 섬기는 일꾼들이요 세계적인 인물들이 되기까지 키우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하나님의 만민 구원 역사에 주역들로 쓰임 받고 장차 하나님 나라에 가서는 가장 큰 상급을 받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세계 선교를 섬긴다고 할 때 꼭 해외로 나가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세계 선교를 섬기는 사람들 중에는 가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고 보내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세계 선교를 섬긴다는 것은 예수님의 세계선교 사명을 마음으로 영접하고 세계선교를 위해 기도하며 길을 열어 주시면 언제든지 어디든지 복음을 들고 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아직 세계 선교를 섬길 만큼 준비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세계선교를 감당하도록 믿음으로 도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온 천하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들고 가야할 곳은 온 천하입니다. 우리는 마음이 편협하여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고 싶은 곳과 가기 싫은 곳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미국이나 카나다 같은 선진국이건 아프리카 가나나 아시아 오지와 같은 후진국이건, 완고한 율법을 고수하여 생명의 위협을 받아야 하는 회교권이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시면 어디든지 나아가야 합니다.

 제자들이 온 천하에 나아가서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으로 보내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부활의 능력을 덧입고 부활의 증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명령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했습니다. 그것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것입니다. 제자를 삼는 것은 예수님을 배우는 자요 따르는 자요 본받는 자입니다.

 제자들에게 세계 선교 사명을 주신 예수님은 이제 그들에게 승리의 약속을 주십니다. 16-18절을 보십시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제자들이 예수님의 세계선교 명령에 순종하여 복음을 전파할 때 믿는 자들이 생기며 그들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게 됩니다. 병든 자를 위해서 기도할 때 병마가 쫓겨가며 제자들은 해를 받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신 후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리우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제자들이 나아가 두루 전파할 때,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역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셨습니다. 연약한 제자들이 부활신앙을 갖게 되고 성령 충만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권능을 받아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며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사도 행전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그들의 생애는 위대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만민 구속 역사에 쓰임 받는 자는 위대한 생애를 보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현세적인 꿈을 이루는데 마음을 두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죽으심의 의미를 받아들이지 않는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의미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기도로 영적인 투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고 자기 의지로 버티던 제자들은 실족하여 넘어졌습니다. 제자들은 십자가 앞에서 자신들의 허물이 다 드러나고 죄인의 심령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이런 제자들을 심방하사 부활 신앙을 심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세계 선교 사명을 주시고 제자 양성가들이 되도록 키우셨습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을 본받아 십자가와 부활의 도를 믿고 전하는 제자 양성가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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